Windows 8 사용기

나보다 훨씬 더 전부터 8을 사용해 오신 분들께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정보이겠지만 어쨌든.
Windows 8은 잘 알다시피 데스크톱 PC용 소프트웨어에다 모바일 컨셉을 최대한 융합시킨 형태로 만들어졌다. UI 상으로는 Ctrl+클릭이 아닌 일반 클릭(=일반 터치)만으로 아이템 개별 복수 선택이 가능하게 바탕화면 아이콘들에 체크 박스가 뜨는 변화가 눈에 띈다.
그런데 문제는 Windows는 모바일 컨셉을 아무 단절감 없이 갖다붙이기에는 20여 년의 짬밥을 자랑하는 legacy가 너무 많다는 것. 이를 잘 절충하는 것도 숙제라면 숙제였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Windows와 마소 제품들은 XP 이래로 모든 GUI가 “각진 직선이건 것이 둥근 곡선으로, 무미건조하던 단색이던 것이 그러데이션으로”라는 트렌드를 따르고 있었는데..
8에서는 이 추세를 정면으로 뒤집은 단순한 복고풍 디자인으로 돌아갔다.
이건 전력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 모바일 환경과의 조화를 염두에 둔 설계라고 그런다. 흠..
아이콘도 마찬가지로, Office, Visual Studio도 2012 버전은 아이콘 디자인이 다 초단순 형태로 바뀌었다.

IME들은 아이콘이 아예 흑백 컨셉 배색으로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모든 프로그램들이 IME와 한/영 상태를 공유하는 파격적인 기능이 추가되었으며, IME 아이콘과 상태 아이콘 딱 둘만 갖고 있게 단순화된 것은 TSF의 도입 이전 internat.exe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아울러, 프로그램 제목이 Windows 95/NT4 이래로 왼쪽 정렬이던 것이 가운데 정렬로 바뀐 것은 3.x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그 전의 1.x부터 3.x까지는 죄다 가운데 정렬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8은 메트로인지 뭔지 Modern UI 엔진을 얹느라 어쨌든 더 무거워졌을 텐데 그래도 비스타/7에 비해 체감상 딱히 무겁다는 느낌은 안 든다. 덩치에 비해 최적화를 잘 한 것 같다.
Modern UI 기반 앱은 전체 화면으로 동작하는 게 마치 예전의 도스용 프로그램들이 화면 해상도와 색상이 훨씬 더 향상된 채로 동작하는 것 같다.

단,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건, 과거 비스타/7의 Aero 컨셉이 완전히 폐기되었느냐는 것이다.
프로그램 창의 굵은 border에 비스타/7처럼 금속/유리 느낌이 드는 반투명 효과를 내는 기능이 없어지고 굵직한 입체 효과 그림자도 없어졌으며, 그저 투박한 solid color만 표시해 주는 걸로 일부러 바꿨는지? 비주얼에 관한 한 이건 좀 진보가 아니라 퇴보인 것 같다. 정발된 제품 말고 preview 버전에서는 반투명 효과가 여전히 있었던 것 같던데.
사실은 예제로 제공되던 테마와 배경 사진들의 수도 Windows 7 시절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또한 Windows 95/NT4부터 이어져 온 전통인 시작 메뉴가 없어지고, PC에 설치돼 있는 프로그램들을 리스트 형태로 한눈에 조회할 수가 없고, 심지어 컴퓨터를 끄는 방법도 직관적으로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무리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했다 해도 너무 이질적이고 과격한 것 같다. 실제로 Windows 8을 구했지만 이런 것 때문에 너무 불편해서 다시 7로 복귀한 사람도 주변에 심심찮게 보인다. 과거에 비스타 쓰다가 XP로 도로 복귀하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나도 컴퓨터 끄는 명령을 못 찾아서 한동안 그냥 데스크톱 바탕 화면에서 Alt+F4를 누르곤 했다.
마우스로 화면 우측 하단을 가리킨 뒤, Settings를 고르고, Power, Shut down을 순차적으로 고르면 되긴 한데 예전 버전보다 접근하기 불편하긴 하다. 컴퓨터 사용을 끝내려고 하는데 왜 시작(Start) 버튼을 눌러야 하느냐는 전통적인 딴지를 의식한 디자인인 건지?

그리고 내가 쓰던 어떤 Windows 8은 팝업 메뉴가 전통적인 왼쪽 기준이 아니라 오른쪽 기준으로 완전 듣도 보도 못한 생뚱맞은 엉뚱한 방식으로 표시되곤 했다. 이건 R2L이 일상인 아랍 문화권에 대한 배려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어나 영어밖에 볼 일이 없는 나 같은 사람한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기능임. 구글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다음 레지스트리 값을 1이 아닌 0으로 고친 후 계정 로그인을 다시 하면 된다.

HKEY_CURRENT_USER\Software\Microsoft\Windows NT\CurrentVersion\Windows → MenuDropAlignment

전반적으로는..
8은 분명 나쁘지는 않다. 허나 멀티터치가 지원되는 화면에서 Modern UI 앱을 즐겨 쓸 게 아니면, 굳이 7 잘 쓰던 걸 8로 바꿀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끝으로, 바야흐로 201x년대에 등장한 Windows 8에서도 여전히 버프를 못 받고 시간이 완전히 정지해 버린 듯이 보이는 legacy GUI 요소를 둘 보이고 글을 맺겠다.

1. MDI 창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구에 습기가 찬다. 응용 프로그램의 border가 다 딱딱한 사각형으로 바뀐 마당에 MDI 프레임은 여전히 둥근 모서리 그대로이다. Windows Vista 이래로 코드가 하나도 고쳐진 게 없다는 뜻이다.

2. HTML 도움말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15년 전에 HTML 도움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나 지금이나, 일단 프로그램 아이콘이 16색 그대로이다. 레지스트리 편집기와 더불어 아이콘이 고정불변인 극히 드문 프로그램에 손꼽힌다. -_-;;

그리고 HTML 도움말의 About 화면을 보면 연도가 2002년에서 멈춰 있음을 알 수 있다. 캐안습.
그래도 마소가 HLP와는 달리 CHM의 지원은 그렇게 섣불리 중단하지 못할 것이다. 운영체제 차원에서 이 정도로 완성도 높은 도움말 엔진을 제공해 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마소 역시 다른 모든 프로그램에서는 구닥다리 HTML 도움말을 버리고 다른 방식으로 도움말을 표시하지만, 레지스트리 편집기에서 F1을 누르면, 여전히 CHM 도움말이 HTML 도움말로 표시된다.
일반 사용자들이 즐겨 쓸 걸로 예상하지 않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UI를 대강 만들고 legacy 기술만으로 대충 때운다는 걸 알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10 08:30 2013/05/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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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샤나즈 2013/05/11 16:50 # M/D Reply Permalink

    컨슈머 프리뷰까지는 에어로 글래스가 되다가 릴리즈 프리뷰에서 사라졌었네요. 그러고 보니 이전 프리뷰 버전에선 블루필이란 거 먹여서 메트로 모양으로 버튼모양 바꾸는 등 숨겨진 기능 활성화했던 기억도 있네요. 나중에 오피스 2013이 오피스 15라고 스크린샷 유출되어서 아 윈도8은 저렇게 나오려나 싶어서 에어로 글래스 끄고 테마 하얗게 입혀서 이쁘다 하고 쓰고 그랬는데!

    수학식 입력판? 정도로 번역되었을 것 같은 Math Input Panel도 메트로로 바뀌지 않고 에어로 UI 그대로 갖고 있더군요...

    1. 사무엘 2013/05/12 10:28 # M/D Permalink

      아하, 제가 봤던 Aero 되던 놈도 아무에게나 받는 링크가 공개되어 있던 컨슈머 프리뷰였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윈8이 정발된 뒤에도 개발자용 msdn으로 풀린 물건과, 노트북 PC에 기본으로 깔렸던 물건은 처음에 메뉴의 방향이라든가 copyright 연도 등 사소한 UI들이 이것저것 차이가 있어서 왜 그런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Aero도 어느 샌가 사라져 있었고요.

    2. 김재주 2013/05/12 16:26 # M/D Permalink

      수식 입력기였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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