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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29 우이령길 탐방기 by 사무엘

우이령길 탐방기

북악산 이후로 본인은 한동안 성남과 하남처럼 서울 동남부에 있는 산을 올랐는데, 그 다음에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서울 북부로 갔다.
북한산이야 워낙 크고 넓으니 예전에 간 적이 없는 새로운 등산로를 얼마든지 개척해서 오를 수 있지만, 그건 뒤로 미뤘다. 여느 등산로 대신, 북한산과 도봉산의 경계에서 서울과 양주를 연결하는 '우이령길'에서 뭔가 특이함을 느껴서 거기부터 먼저 찾아갔다. 서울 강남에 우면동(우면산. 소가 쉬는 모습)이 있다면, 강북에는 우이동(소의 귀 모양)이 있는 게 흥미롭다.

우이령이라는 고개에 이런 길 자체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북악산의 제2 산책로(일명 김 신조 루트)와 마찬가지로, 1· 21 사태의 여파로 인해 보안을 위해 거의 40년간 민간인의 출입과 통행이 금지된 내력이 있다. 그 대신 군부대 유격장 같은 군사 시설이 여기 일대에 들어서게 됐다.
그러고 보니 6· 25 전쟁 중에 월턴 워커 장군이 교통사고로 순직한 곳도 지금의 서울 도봉구 일대이니, 우이령길 자체는 아니지만 거기 근처이다. 그리고 거기는 그 당시엔 아직 행정구역상 인서울이 아니었다.

군인을 제외하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덕분에 우이령길 주변의 자연 환경은 비무장지대에 준하는 급으로 잘 보존되어 왔다. 여기는 역시 김 신조 루트와 동일하게 2009년경에 봉인이 풀리고 민간인에게 제한적으로 개방됐다. 아무나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건 아니고 예약을 해야 한다.

무슨 국정원이나 대성동, 판문점 같은 곳을 방문하는 것처럼 보안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자연 보호를 위해서 단순히 단위 시간당 동시 접속자-_- 수를 제한하기 위해 그런다. 서울 우이동 쪽에서 500명, 그리고 반대편인 양주 교현리 쪽에서 500명 이렇게 매일 최대 1천 명만 입장과 통행을 허용한다고 한다.
입산은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가능하고, 그 뒤 오후 4시 전까지 모든 입산자들은 산을 빠져나가야 한다. 낮이 긴 여름에도 예외가 아니다. 단, 하산(퇴장)할 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든 반대편으로 나가든 그건 상관없다.

이런 점에서 우이령길은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보다도 경비가 더 삼엄한 셈이다. 북악산도 나름 인적 사항을 적고 목걸이를 받아야만 입산 가능하지만, 그래도 거기는 무슨 사전 예약까지 해야 한다거나 인원수 제한이 걸려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약은 인터넷으로 하는 게 원칙이나, 장애인· 외국인 같은 취약 계층에 한해서 전화 예약도 받는다. 환경 보존 명목으로 이렇게 예약을 해서 제한된 인원만 탐방 가능한 산길이 우이령길 말고도 전국적으로 국립 공원에 몇 군데 더 있는 모양인데, 거기들의 탐방 예약을 한 사이트에서 통합해서 받는다.

보안 때문에 예약을 받는 게 아니므로, 무슨 1~2주씩이나 전에 예약한다든가 할 필요는 없다. 예약은 방문 당일의 바로 전날 일과 시간(오후 5시) 중으로만 하면 된다. 한 사람이 최대 10명까지 동시에 예약할 수도 있다. 국가에서 공익을 위해 운영하는 시설인 관계로, 예약과 입장에 비용이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 모든 입산자들은 길 어귀의 초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요컨대 우이령길의 탐방에 제약이 걸려 있는 이유는 여행 금지 국가에다 비유하자면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급이 아니라 남극과 같은 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든 산에는 등산객더러 지정된 등산로를 이탈하지 말고 자연을 보호하라는 캠페인이 권고 차원에서 붙어 있긴 하지만, 여기는 특별히 국립 공원이며 그 권고가 더욱 강하게 적용된다. 지정된 시간대와 지정된 탐방로를 벗어나서 산 속에 짱박혀 있다가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서울에 이런 신기한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인 역시 예약을 했고, 우이령길을 잘 다녀왔다. 요 얼마 전에 등산을 했을 때와는 달리 이 날은 날씨가 아주 맑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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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은 아무래도 도시의 변두리 외곽이며 시내버스나 지하철의 종점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검단산 인근은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연장 공사가 한창이더니, 여기는 우이 경전철의 건설 공사가 아직 한창이었다.
우이 경전철은 차량기지조차 몽땅 지하에 만들어져서 땅 위로 보이는 게 하나도 없을 거라고 한다. 무슨 평양 지하철처럼 말이다.;;

'우이령길' 쪽으로 계속 오르막을 오르자 '우이 유원지' 구간이 1km가 넘게 계속됐다. 온통 식당, 카페, 산장, 팬션 등등.. '송성훈 큰머리'체를 써서 만들어진 간판이 인상적이다.
용인의 '고기리 유원지' 같은 곳이 서울에도 있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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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시설들이 없어진 뒤에도 몇백 m를 더 오르자 드디어 우이동 탐방 지원소가 나타났다. 자동차 도로로 치면 이제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나타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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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지원소를 지나자 군부대..가 아니라 전투경찰 숙소 건물이 나타났고, 그 뒤부터는 자연을 즐기면서 산책 탐방을 할 일만 남았다. 이런 식의 길이 계속 쭉 이어졌다.
사진은 내가 눈으로 직접 본 풍경을 완벽하게 재현을 못 한 것 같다. 색감이나 화각 같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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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명 '대전차 방호벽'이다.
전쟁이 나서 적군이 특별히 탱크를 몰고 쳐들어와서 이 길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면, 저 위의 크고 무거운 시커먼 콘크리트 덩어리를 아래로 떨어뜨려서 진로를 차단한다. 물론 적군도 공병을 투입해서 장애물을 제거하겠지만, 그래도 그 작업 시간 동안만치 진격을 지연시키고 아군에게 시간을 벌게 해 준다.

교량이나 터널이라면 아예 끊어 버리거나 메우는 식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만 그냥 땅 위에 놓인 멀쩡한 길이라면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사실, 파주나 철원 같은 전방 도시의 주요 도로 길목엔 지금도 저런 대전차 방호벽이 놓인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의정부나 고양처럼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위성도시에도 방호벽이 일부 있으나, 거기가 본격 수도권에 들어가고 아파트가 잔뜩 지어지고 인구가 늘면서..;; 도시 미관에 안 좋고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철거되기도 했다.

전차의 주행을 차단한다는 건 우이령길이 여느 등산로와는 달리 차량이 통과 가능한 길이라는 뜻이다.
우이령길은 처음부터 그렇게 넓게 닦인 길은 아니었다. 미군 공병대가 투입되어 1965년에 길을 확장한 덕분에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춘 듯하다. 이 블로그에서는 사진 첨부를 생략하지만, 대전차 방호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를 기리는 개통 기념비가 있다. (미군 제36 공병단 소속의 109/102공병대대)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못 가 김 신조 사건이 터지면서 우이령길은 사실상 군 전용 도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대전차 방호벽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비록 김 신조 일행은 정규군이 아니라 비밀 공작원이니 100% 도보만으로 침투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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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우이령의 정상에 도달했다. 사실, 유원지 구간을 지나면서 우이령을 이미 많이 오른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이동 탐방 지원소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정상에서 양주 교현리 탐방 지원소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짧다. 정상에는 넓은 공터와 벤치,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우이령길 탐방은 비록 고개를 오르는 것이지만 역시 어지간한 등산에 비해서야 훨씬 널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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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상을 지나서 교현리 방면으로 완만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저 멀리 오봉산 봉우리가 보였다. 주변 경치가 대단히 아름다웠다. 지도를 보니 저 오봉산을 오르는 등산로도 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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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길에는 가끔씩 이런 계곡도 있어서 주변에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편, 이쯤에서 웬 '석굴암'이라는 이름이 붙은 절과 함께 군부대 유격장이 있었다. 석굴암은 경주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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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닌 양주 쪽이 가까워지자 길가엔 도랑 대신 울타리가 보이고, 전신주까지 나타났다. 서울 쪽이 더 잘 꾸며져 있고 경치가 더 좋긴 했다.

그리고 드디어 교현리 탐방 지원소에 도달함으로써 우이령길 횡단이 끝났다. 한 탐방 지원소에서 다른쪽 탐방 지원소까지 4km 남짓한 거리를 가는 데 약 1시간 10분 남짓밖에 안 걸렸다.
서울 우이동 방면 입구는 유원지여서 식당과 산장이 즐비한 반면, 양주 교현리 방면 입구엔 군부대 사격장이 자리잡고 있어서 분위기는 이거 뭐 서로 극과 극이 따로 없었다.
여기를 평일에 갔는데, 사격 훈련 중이었는지 사실은 고개 정상에 있을 때부터 총 소리로 추정되는 탕탕~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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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담벼락에는 이런 뭔가 안 어울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남한산성을 구경하러 청량산을 올랐을 때 지나쳤던 그쪽 군부대에도 담벼락에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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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를 지나서 한참을 걷자 드디어 큰길(북한산로)이 나오고, 시내버스 정류장에도 도달했다. 길 건너편에는 마을 회관과 함께 이런 표지석이 있었다.
이 사진에서 뒷배경으로 깔린 저 언덕은 노고산의 끝자락이다. 노고산도 김 신조 일행이 서울로 침투하기 위해 넘은 산 중 하나이다.

여기 근처에는 온통 군부대, 특히 종로· 서대문 지역의 예비군 훈련장들이 밀집해 있다. 본인은 대학원 재학 중엔 이쪽에서 예비군 훈련을 몇 차례 받은 적이 있어서 여기 지리가 친숙했다. 단, 그때는 다 차를 가져갔기 때문에 여기서 버스를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한산로에서 뚜벅이들의 이동을 책임지는 시내버스는 704와 34 딱 두 종류이다. 전자는 서울 소속이고 후자는 경기도 소속이다.
본인은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학교에 들렀다. 저 버스들이 학교로 바로 가는 건 아니니, 구파발에서 버스를 한 번만 갈아타면 됐다. 버스 차창 밖으로 북한산로 일대, 구파발· 진관동, 그리고 학교의 서쪽에 있는 서대문구청, 자연사 박물관, 안산 옆의 백련산 언덕 등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서울 북서부로는 갈 일이 별로 없었는데 거기 관광에는 이런 묘미가 있다.

그나저나 은평구는 한자가 恩平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여기서 자기 구를 홍보할 때 '은혜와 평화의 땅'이라고 수식어를 붙였고, 지금도 은평구청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는 구 노래에는 "은혜와 평화로세 은평이라네"라는 가사가 있다.
그런데, 저 이름이 처음에 그런 의도로 작명된 건 아니었겠지만, 이건 여느 종교에서는 찾기 힘든 굉장히 기독교적인 용어이다. 그 당시에 구청장이 아주 독실한 신자였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은혜와 평강(평화)'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얻을 수 있으며, 이건 바울 서신서들 첫머리에 마르고 닳도록 나오는 표현이다.
지금까지 난 은평구라 하면 지하철 3/6호선, 북한산 이런 것만 떠올랐는데 앞으로 은평구를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6/29 08:33 2016/06/2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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