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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06 인공지능에 대해서 by 사무엘

1. 완전히 새로운 알고리즘 분야

컴퓨터는 정말 대단한 기계이다.
정보의 최소 단위인 0과 1을 분간하고, 임의의 주소가 가리키는 메모리의 값을 읽거나 쓸 수 있고 프로그램의 실행 지점도 메모리의 값을 따라서 변경 가능하게 했더니(튜링 완전)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양의 정보를 가히 무궁무진한 방식으로 처리가 가능해졌다.

이런 이론적인 근간이 마련된 뒤에 반도체의 집적도가 더 올라가고 메모리와 속도가 더 올라가고 가격이 더 내려가는 건 그냥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복잡한 계산이나 방대한 검색을 빠르게 해내는 것만으로 컴퓨터가 인간의 고유 영역을 완전히 침범하고 대체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그건 그냥 자동차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중장비가 인간보다 더 힘센 것만큼이나, 기계가 인간의 역할을 일부 보조하고 확장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단순히 동력과 관련된 분야는 말이나 소 같은 동물도 인간보다 약간이나마 더 우위에 있긴 했다. 그에 비해 정보 처리 분야는 자연계에 지금까지 인간의 라이벌 자체가 아예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인간도 속도가 느리고 개인의 능력이 부족할 뿐이지.. 많은 인원을 동원하고 많은 시간만 주어지면 기계적인 정보 처리 정도는 '유한한 시간' 안에 언젠가 다 할 수 있다. 일을 좀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만 갖고 '창의적이다', '인간을 닮았다'라고 평가해 주지는 않는다.

정렬과 검색에, 다이나믹이니 분할 정복이니 하는 최적해 구하기처럼 고전적인 분야에서 고전적인(?) 방법론을 동원하는 알고리즘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다 연구되어서 깔끔한 결과물이 나왔다. 그런 건 이미 대학교 학부 수준의 전산학에서 다 다뤄지는 지경이 됐으며, 정보 올림피아드라도 준비하는 친구라면 아예 중등교육 수준에서 접하게 됐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더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깔끔하게만 접근했다가는 시간 복잡도가 NP-hard급이 되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적당히 타협하여 풀어야 한다.
중· 고등학교의 고전역학 문제에서는 "공기의 저항은 무시한다" 단서가 붙지만, 대학교에 가서는 그런 것까지 다 고려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수적으로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근사치를 효율적으로 구하기 위해 수치해석이라는 기법이 등장했듯, 전산학에도 각종 휴리스틱과 근사 알고리즘이라는 게 존재한다. 압축 알고리즘으로 치면 무손실이 아닌 손실 분야인 셈이다. 구체적인 건 학부 수준을 넘어 대학원에 소속된 별도의 연구실에서 다룰 정도로 난해하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여전히 사람이 범접하지 못하는 분량의 계산 문제를 최대한 빠르게 효율적으로 푸는 방법에 대한 연구이다. 그런 것 말고 사람은 간단히 하는데 컴퓨터에게는 굉장히 난해해 보이는 일이 있다.
컴퓨터로 하여금 텍스트나 음성 형태의 인간의 자연어를 알아듣고 타 언어로 번역한다거나, 그림으로부터 글자 같은 정보를 알아보게 할 수 없을까?
컴퓨터를 바둑· 장기· 오목 같은 게임의 고수로 키울 수 없을까?

이건 단순히 TSP(순회하는 세일즈맨 문제)를 더 그럴싸한 가성비로 다항식 시간 만에 푸는 것과는 분야가 다르다.
저런 걸 기계가 인간과 비슷한 속도와 정확도로만 해내더라도 굉장한 이득이다. 기계를 부리는 비용은 인간을 고용하는 인건비보다 넘사벽급으로 저렴한 데다, 기계는 인간 같은 감정 개입이 없고 지치지 않고 실수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속도와 정확도가 인간 전문가의 능력을 능가하게 된다면 게임 끝이다. 기계적인 단순 노동력이나 판단력만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사라지며, 인간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더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일자리로 갈아타야 할 것이다.

2. 흑역사

소위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는 진공관이니 트랜지스터니 하던 무려 1950년대 컴퓨터의 초창기 때부터 천조국의 날고 기는 수학자, 컴퓨터 공학자들에 의해 진행돼 왔다. 특히 세부 분야 중 하나로서 기계번역도 연구됐으며, 1954년에는 조지타운 대학교와 IBM이 공동 연구 개발한 기계번역 솔루션이 실제로 출시되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계번역이란 게 연구된 언어는 러시아어 → 영어이며, 이는 전적으로 냉전 덕분이다. 하긴, 2차 세계 대전 때는 번역이 아니라 암호를 해독하는 기계가 개발되긴 했었다. 적성국가들의 언어 중 일본어는 영어와의 기계번역을 연구하기에는 구조가 너무 이질적이고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 번역가가 아닌 컴퓨터가 러시아어 텍스트로부터 영어 텍스트를 허접하게나마 뱉어 내자 학계와 업계는 흥분했다. 이런 식으로 조금만 더 연구하면 컴퓨터가 금방이라도 세계의 언어 장벽을 다 허물어 줄 것 같았다.

그때는 학자들이 자연어에 대해서 뭔가 순진 naive하게 원리 원칙대로 규칙 기반으로, 낭만적으로 접근하던 시절이었다. 인간의 언어도 무슨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유한한 문법과 생성 규칙만으로 몽땅 다 100% 기술 가능하고 parse tree를 만들고 구문 분석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규칙이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촘스키 같은 천재 언어학자 몇 명을 외계인과 함께 골방에다 갈아 넣고 며칠 열나게 고문하면 다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언어의 기계 분석은 게임 끝이지 않겠냐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전세계 모든 언어들의 교집합과 합집합 요소를 망라하는 중간(intermediate) 언어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각국의 언어들을 그 중간 언어와 번역하는 시스템만 만들면 전세계 사통발달 언어 번역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정도 생각은 나조차도 한 적이 있다.

그랬으나.. 뚜껑을 열어 보니 영광은 거기서 끝이었다.
기계번역은 빵점 백지 상태에서 4, 50점짜리 답안을 내놓는 것까지는 금방 할 수 있었지만, 거기서 성적을 7, 80점짜리로라도 올려서 실용화 가능한 상품은 오랫동안 연구비를 아무리 투입해 줘도 선뜻 나오지 않았다.
인간의 언어라는 게 절대로 그렇게 호락호락 만만하지 않고 매우 불규칙하고 복잡한 구조라는 게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용한 연구 방법론 자체가 약발이 다하고 한계에 다다랐다.

이 때문에 1970년대에는 돈줄을 쥔 높으신 분들이 "인공지능"이란 건 밥값 못 하는 먹튀 사기 허상(hoax)일 뿐이라고 매우 비관적이고 보수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컴퓨터는 그냥 계산기일 뿐, 그 돈으로 그냥 인간 번역가나 더 양성하고 말지..
이 단어 자체가 학계의 흑역사 급으로 금기시되어 버렸다. 인공지능이란 게 키워드로 들어간 논문은 저널에서 믿고 걸러냈으며, 관련 연구들의 연구비 지원도 모조리 끊길 정도였다.

이 현상을 학계에서는 제1차 AI 겨울(혹한기, 암흑기, 쇼크, 흑역사 등등...)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무슨 오일 쇼크 내지 게임 업계 아타리 쇼크처럼 말이다.
그렇게 고비를 겪었다가 더 발달된 연구 방법론으로 활로가 발견되고, 그러다가 또 2차 겨울을 극복한 뒤에야 요 근래는 인공지능의 중흥기가 찾아왔다고 여겨진다.

3. 문제는 데이터

지금은 기계번역이건, 게임 AI이건, 패턴인식이건 무엇이건.. 인공지능의 주재료는 규칙이 아니라 데이터이다.
기계번역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언어학 문법 지식이 동원되지 않으며, 보드 게임 AI를 만드는데 통상적인 게임 규칙 기반의 알고리즘이 동원되지 않는다.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는 게 아니라 요즘 인공지능이라는 것은 아이디어는 매우 간단하다. 기출문제와 정답을 무수히 많이,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주입시켜 준 뒤, 이로부터 컴퓨터가 규칙성을 찾아내고 새로운 문제가 주어졌을 때 정답을 추론하게 하는 방법을 쓴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기술하고 정답의 조건을 명시하고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걸 인간이 일일이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컴퓨터가 알아서 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계학습', 그 이름도 유명한 machine learning이다. 이것이 이전에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방법론이던 '전문가 시스템'을 대체했다. 이런 무지막지한 방법론이 적용 가능할 정도로 요즘 컴퓨터의 속도와 메모리가 매우 크게 향상된 덕분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기계학습을 시키는 방식은 지도(supervised learning) 또는 비지도 학습으로 나뉜다.
그리고 기계의 입장에서 학습(?)을 실제로 수행하는 방법으로는 인공 신경망, 앙상블, 확률(은닉 마르코프 모델), 경사/기울기 하강법 같은 여러 테크닉이 있는데, 기울기 하강법은 복잡한 선형 방정식을 푸는 심플렉스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든다.

인공 신경망은 생물의 신경망이 동작하는 원리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기계학습 모델이라고는 하지만 당연히 실제 인간 뇌의 작동 방식에 비할 바는 못 된다.
MLP니 CNN이니 RNN이니 하는 신경망 용어들이 존재하며, 그리고 이 인공 신경망을 어떻게 하면 잘 갖고 놀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연구 분야를 '딥 러닝'(심층학습)이라고 한다. 마치 네트워크 계층의 다양한 기술 용어만큼이나 AI에도 계층별로 다양한 기술 용어가 존재한다.

게임 AI라면 단순히 뭔가를 인식하고 분류만 하면 장땡인 게 아니라 뭔가 극한의 최적해를 찾아가야 할 텐데.. 이런 걸 학습시키는 건 딥 러닝의 영역이다. 알파고처럼 말이다. 그런데 알파고 하나가 지구상의 최고의 인간 바둑 기사를 이긴 것은 물론이고, 다른 재래식 알고리즘으로 십수 년간 개발되어 온 기존 바둑 AI들까지도 다 쳐발랐다니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뭐, 개인용 PC 한 대만으로 그렇게 동작하는 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날 연구되고 있는 인공지능은 무작정 인간과 동급으로 생각하고 창조하는 기계는 당연히 아니고, 컴퓨터의 막강한 메모리와 계산 능력으로 지금까지 주어진 데이터를 토대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답안을 꽤 그럴싸하게 제시하는 '약한 인공지능'일 뿐이다.

쉽게 말해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 읊는다"처럼 말이다.
추리소설를 한 1000편쯤 읽고 나니 다른 새로운 추리 퀴즈에도 설정이 뻔히 보이고 답이 보인다.
드라마를 1000편쯤 보고 나니 비슷비슷한 드라마들은 스토리 전개가 어찌 될지 '안 봐도 비디오'처럼 된다.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저게 말처럼 쉬운 일인 건 아니다.
학습 대상인 무수한 텍스트· 이미지· 음성 데이터 내지 각종 게임 복기 데이터를 어떤 형태로 수치화해서 벡터 형태로 표현할 것인가?
그리고 '학습'이라는 걸 하는 동안 해당 AI 엔진의 내부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슨 계산 작업이 행해지는가?
컴파일러만 해도 결과물로 OBJ 파일이라는 게 생기는데, 그 내부적인 학습 상태는 어떤 형태로 표현되며, 이것만 따로 저장하고 불러오는 방법이 존재하는가? 본인은 AI알못이다 보니 전혀 모르겠다. ㅡ,.ㅡ;;

수천, 수만, 아니 그 이상 셀 수 없이 많은 숫자들로 이뤄진 벡터 I가 또 수없이 많이 있다고 치자. 이 숫자들은 현실 세계를 표현하는 미세한 자질을 표현한다.
그런데 어떤 블랙박스 함수 f가 있어서 f(I_1..n)에 대한 결과가 O_1..m라는 벡터 집합으로 나왔다고 한다.

컴퓨터는 이 I와 O 사이에서 규칙성을 찾아서 I에 대해 O와 최대한 비슷한 결과를 산출하는 함수 f를 구한다. 그러면 이제 임의의 다른 아무 input에 대해서도 수긍할 만한 출력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패턴 인식? 기계번역? 유사 작곡이나 창작? 현실에서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이건 machine learning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저걸로 요약된다. 내가 AI 쪽으로 아는 건 이게 전부이다.

지금은 TensorFlow 같은 범용적인 기계학습 엔진/라이브러리까지도 구글 같은 괴물 기업에 의해 오픈소스로 몽땅 풀려 있으며, 이걸 파이썬 같은 간편한 스크립트 언어로 곧장 돌려볼 수도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런 라이브러리를 직접 개발하고 유지보수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방대한 현실 데이터를 수집해서 저기에다 적절하게 집어넣고, 이로부터 고객이 원하는 유의미한 추세나 분석 결과를 얻는 것만 해도 뭔가 프로그래밍 코딩과는 별개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 영역의 일이 돼 있다.

오늘날 AI 엔진의 연구를 위해서는 근간 이론이라 할 수 있는 선형대수학, 편미분, 확률 통계는 무조건 먹고 들어가야 된다. 엔진 코드를 직접 다루지 않고 쓰기만 하는 사람이라도 엔진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아야 가장 적절한 방법론/알고리즘을 선택할 수 있을 테니 저런 것들을 맛보기 수준으로라도 알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 정보 사냥 대회가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주어진 데이터로부터 새로운 문제를 잘 푸는 기계학습 모델을 설계하는 것이 경진대회의 아이템 내지 학교와 직장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늘어난다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보다 더 수준 높고 추상적인 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연어의 문법과 어휘 자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데이터 학습만으로 댓글이 선플인지 악플인지를 기계가 분간할 수 있는 걸까? 그래도 클레멘타인 영화에 늘어선 댓글이 선플인지 악플인지 판단하려면 그에 대한 특별한 학습-_-;;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변화무쌍 복잡한 필기체의 인식이 아니라, 그냥 자동차 번호판의 정향화된 숫자 내지 겨우 QR 코드의 인식 정도는.. '영상 처리 기술'의 영역이지, 저 정도의 거창하게 기계학습이니 뭐니 하는 인공지능의 영역은 아니다. 그건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래 전부터도 각종 전산학 알고리즘 용어를 검색할 때 종종 걸려 나오긴 했는데.. 국내 개인 사이트 중에 AIStudy라는 곳이 있다. 나모 웹에디터가 있던 시절부터 존재했던 정말 옛날 사이트이다. 그런데 운영자가 내 생각보다 굉장히 어린 친구이다. 정말 대단할 따름이다.
당연히 과학고-카이스트 라인이려나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고 일반고-서울대 테크를 타 있다. 앞날에 건승을 빌어 본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06 08:33 2019/07/0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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