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일반 공도에서 주변 민폐를 끼치면서 차나 오토바이로 과속· 폭주를 즐기는 양아치한테 일반인들이 흔히 하는 핀잔 중 하나는 "그렇게 폭주가 좋으면 그런 짓은 서킷에나 가서 해라"이다.

본인도 나름 성질이 급하고 운전대를 잡으면 과속을 즐기며, 난폭운전은 직접 하는 것과 남의 차에 탑승하는 걸 다 좋아하는 취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짓을 주변 차에다가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지는 말아야 한다. 차가 없고 시야가 확보돼 있는 한적한 고속도로에서야 150~200km/h까지도 밟지만, 엄폐물이 많고 당장 앞과 옆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좁은 골목길에서는 시속 20도 안 밟으면서 천천히 가는 게 베스트 드라이버의 덕목이라 하겠다.

그건 그렇고 본인은 이 시점에서 의문이 들었다. 그 말로만 듣던 서킷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더 나아가 Formula 1처럼 지금까지 말로만 들어 온 자동차 경주라는 업계의 사정은 어떠할까..?

1. 도로 시설

서킷은 통제된 환경에서 프로 선수들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차를 위험하게 다루면서 극한의 속도 경쟁을 하는 곳이다. 공도가 전혀 아니며, 통상적인 도로교통법이나 자동차 보험 등에서 완전히 열외되어 있다. 일반인이 차를 슬금슬금 몰다가 실수해서, 혹은 극소수의 술 먹은 미치광이가 난입해서 사고가 나는 곳이 아니다.
이는 군인이 전투 중에 적군을 사살하는 건 살인죄가 전혀 아니며, 반대로 자기가 전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통상적인 민간 생명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과 같다. 위험도와 사고 발생 형태가 규모와 차원 면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발명된 이래로 자동차 경주라는 건 경마의 업그레이드 버전 차원에서 옳다구나 거의 곧장 존재해 왔다. 물론 이건 말 그대로 기름을 길바닥에다 뿌리는 짓이며, 장비값, 기름값, 보험료, 선수 인건비 등 돈이 굉장히 많이 깨지는 비싼 스포츠이다.
하지만 자동차 경주는 나름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기 제품의 기술력을 뽐내는 중요한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이벤트가 하나쯤 있는 것은 자동차 산업의 관점에서 이해타산이 맞고도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경주 대회는 망할 일이 없으며, 기업 후원을 통해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다. 아니, 그저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올림픽이나 축구 월드컵에 맞먹는 팬을 보유하고 있고 장사가 잘 된다. 물론 경주용 자동차들의 표면과 레이서들의 옷은 온~~통 스폰서의 광고들로 덕지덕지 도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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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0여 년 전에 전라남도 영암에서 F1 서킷을 건설하고 경기를 유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를 진행해 보니 수지가 맞지 않고 적자만 쌓인지라, 몇 년 못 가 중단됐다.
우리나라는 세계 선진국들의 평균 추세에 비해 경주처럼 자동차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영 발달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니 모터쇼도 자동차가 아니라 반쯤 레이싱걸 모델 전시장처럼 됐고 말이다..;;

2. 레이서

레이싱에서는 머신(자동차)뿐만 아니라 레이서, 즉 사람의 역량도 매우 중요하다. 사고가 나지 않을 만치만 차의 성능을 극한까지 짜내면서 최대의 급가속 급선회 기동을 적절한 타이밍 때 수시로 구사해야 한다. 그리고 전투기 조종사만큼이나 사방에서 발생하는 가속도를 잘 견뎌야 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도 몸 쓰는 게 아니라 기계를 조종한다고 해서 심신 단련을 안 하는 게 절대 아니다. 여느 운동 선수나 정예 군인에 준하는 수준으로 한다.
키와 체중은 일정 수준 이하여야 하며 높은 시력도 타고나야 한다. 말 타는 기수도 아니고 몇백 마력의 출력을 자랑하는 자동차를 모는데 체중이 10kg 가까이 더 나가 봤자 무슨 차이가 있겠는지 이해는 안 되지만.. 그 바닥 사정이 그러하다.

오죽했으면 세계적으로 봤을 때, 각 스포츠 분야의 1인자들 중에서 연봉과 사회적 지위가 제일 높은 사람은 무슨 축구나 농구 스타가 아니라 특급 카레이서이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 수당도 있고, 타 스포츠와 달리 자동차 산업으로부터의 자본 투입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3. 차량

그럼 서킷을 달리는 차들은 어떤 형태일까?
레이싱의 성격에 따라서는 일반 양산차를 쓰기도 하고 그보다 더 뛰어난 스포츠카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속도가 생명인 경주용 차들은 공도를 달리는 평범한 차들과는 지향하는 특성이 다소 차이가 있다.

  • 무게 최소화: 일반 양산차로 경주를 한다면, 불필요한 좌석이나 편의장치를 몽땅 떼어내는 정도의 개조가 무조건 필수이다.
  • 접지력 최대화: 그래서 스포츠카들은 조금만 툭 튀어나온 과속방지턱도 제대로 지나기 어려울 정도로 바닥이 낮다(무게중심이 아래에 있어야..). 그리고 주름이 하나도 없는 타이어를 장착한다. 주름 없는 타이어는 접지력은 좋지만 도로가 조금이라도 젖으면 미끄러져서 위험하다. 공도에서는 이런 타이어를 장착하고 주행할 수 없다.
  • 공기 저항 최소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니 자동차 경주에서는 양산차도 아니고 부가티· 포르셰 같은 차도 아니라, 큼직한 바퀴가 네 짝 달리긴 했는데 굉장히 특이하게 생겼고 한 명만 탈 수 있는.. 그 경주 전용 자동차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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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들은 그야말로 배기량이 제한된 엔진의 힘을 이용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일 먼저 결승선에 도달하는 것만을 목표로 아주 특수하게 커스텀 제작된 물건이다.
부가티· 포르셰 같은 차는 성능에다가 일반인 운전자의 편의성까지 생각한 자동차이지만, F1용 머신은.. 오로지 성능 지향이다.

그런데 F1 경주라고 해서 무슨 부가티· 포르셰 급의 8기통 이상 6000~8000cc짜리 엔진이 장착된 차량이 달리는 게 절대 아니다.
이런 경주에서 엔진에 아무 제한을 걸지 않으면 온갖 기상천외한 짓거리를 한 머신이 등장해서 사고의 위험이 커지며, 자동차 제작 비용이 너무 치솟아서 경기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게 된다. 거기에다 아무리 속도만을 즐긴다고 해도 배기가스 환경 문제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격투기에 체중에 따른 체급 구분과 제한이 있는 것처럼 자동차 경주에는 엔진의 배기량 제한이 있는데.. 이게 낮아지고 낮아지기를 반복한 끝에 2014년부터는 F1 기준으로 겨우 1600cc라고 한다..;; 헐~~ 쏘나타보다도 작은 아반떼 배기량인데..

요즘 F1 차량은 그 배기량만으로 1000마력이 넘는 출력을 내고 2~3초대의 사기적인 제로백을 자랑한다. 즉, 튀어나가는 성능은 당연히 부가티· 포르셰에 뒤지지 않는다.
차 무게를 600kg대까지로 후려치고, 엔진 내구성도 후려치고.. 차량을 그야말로 경주를 위해 몇 시간 동안만 돌아가는 사실상의 일회용품 수준으로 쥐어짠 덕분이다.

컴퓨터계는 해커들이 겨우 100KB짜리 압축된 실행 파일로 거의 5분, 10분짜리 3차원 그래픽 데모를 선보이는 미친 최적화를 하기도 하는데, F1 머신에는 그런 식의 마개조가 일상이다.

그 대신 이런 F1 머신 같은 차들은 시동 걸고 운전하는 방식이 일반 차들과는 완전히 다르며, 사실 일반 공도를 제대로 주행하지도 못한다. 일반 자동차들은 동력원이 전기로 바뀌고 자율 주행 기술이 도입되고 있으니 경주용 자동차와는 개발 방향이 더욱 달라지고 이질화되고 있다. 스포츠 사격과 군대 저격수의 사격이 성격이 서로 다른 것처럼 말이다.

※ 그 밖에

(1) 지금까지 주로 F1을 기준으로 얘기했지만.. 이것보다 더 작은 체급으로 '카트'를 이용한 레이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넥슨의 캐주얼 게임인 카트라이더의 인지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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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너무 작기 때문에 아무래도 큰 엔진을 얹어서 막 빠르게 달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바닥에 주저앉다시피해서 달리기 때문에 체감 속도는 굉장히 높게 느껴진다.
F1 프로 레이서들도 어린 시절에 카트부터 먼저 시작한 경우가 많다. 카트는 아무래도 양발을 한데 모을 수 없으니 브레이크는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왼발로 밟게 된다.

(2) 비포장 도로를 주행하는 오프로드 레이싱이라는 것도 있다. 얘들은 아무래도 속도에만 최적화된 타 레이싱과 같은 속도를 느낄 수는 없지만, 또 다른 방면으로 스릴과 박진감을 선사한다.
여기를 달리는 차들은 아주 큼직한 타이어를 장착하고 차체가 높은 게 특징이다. F1 머신과는 디자인이 정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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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에 Ivan "Ironman" Stewart's Super Off Road, 일명 방구차라는 게임이 바로 오프로드 레이싱을 다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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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자동차 경주 게임이지만 화면 스크롤이 없다~! 한 화면에서 모든 경주가 행해진다. 스크롤도 없고 콩알만 한 자동차 스프라이트로 무슨 박진감을 표현하겠나 싶지만 평면에서 나름 복잡한 지형과 입체적인 자동차의 움직임을 그 시절 하드웨어로 표현하는 것은 딱 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 보인다. 방향과 각도별 스프라이트 로직 설계를 어떻게 했을까? 나보고 저것과 똑같은 게임을 만들라고 하면 못 하거나 엄청 고생하지 싶다.

우리 주인공은 빨간 차인데, 노랑과 파랑은 제끼고 회색 차가 유난히 잘한다. 쟤만 따돌리면 된다.
이 게임의 별명이 '방구차'인 이유는.. Nitro라는 아이템을 먹어서 그걸 터뜨리면 마치 스타크래프트 마린이 스팀팩을 쓰듯이 일시적으로 차의 추진력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3) 사회 각지에서 금녀의 벽이 허물어진 지 오래이지만, 교통수단을 다루는 분야는 여성의 진출이 더딘 편이다.
옆의 레이서들에게 양산 씌워 주거나 자동차 옆에서 포즈만 취하고 있는 레이싱걸 병풍 말고.. 현업 여성 카레이서도 있다. '권 봄이'라는 사람이 지난 2010년대 동안 꽤 유명했는데 요즘은 뭘 하고 지내나 모르겠다.

또한, 여성 오토바이 라이더들도 모임이 있을 정도이며, (☞ 링크)
20대 여성 고속버스 기사 (☞ 링크),
20대 여성 트레일러 기사 (☞ 링크),
도 있다~!
한때는 " '이 운전사는 저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 '이 아이는 제 자식입니다' 그럼 저 버스 기사의 정체는?" (아이의 어머니)
이게 "논리야 XXX" 시리즈 책에 실려 있을 정도로.. 짙은 선입견 때문에 일반인이 답을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퀴즈였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4/27 08:36 2021/04/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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