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구조를 공부하면서 배우는 기본 개념 중 하나는, ‘컴퓨터 내부에서 숫자가 표현되는 원리’이다.
부호 있는 정수는 소위 말하는 ‘2의 보수’ 형태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모든 비트가 1인 숫자는 -1이 되는 형태이다. 이런 방식을 쓰는 이유는 연산 회로를 설계할 때, 뺄셈을 덧셈의 변형만으로 매우 손쉽게 구현할 수 있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베이직 언어는 다른 언어들과는 달리 TRUE의 값이 -1인데, 그 이유가 바로 이런 컴퓨터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 베이직은 비트 연산자와 논리 연산자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0 아니면 1밖에 모르는 디지털 컴퓨터는 연속이나 무한 같은 개념을 표현할 수 없다. 숫자도 정수만 다루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숫점이 동반된 실수를 다뤄야 할 일도 매우 자주 발생한다.

소수를 표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소위 ‘고정소수점’이다. 가령 32비트 고정소수점의 경우, 정수와 완전히 똑같은 방법으로 숫자를 표현하되 실제로는 그 수의 의미를 정수를 16비트 크기만큼(65536) 나눈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즉, 수의 정밀도만 1이 아닌 1/65536으로 기계적으로 높아지는 셈.

고정소수점은 일단 덧셈· 뺄셈· 비교 연산을 정수와 완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할 수 있어서 처리 속도가 매우 빠르며, 곱셈과 나눗셈을 할 때만 약간 주의해서 자릿수 정돈을 하면 되니 편하다. 실제로 일부 벡터 그래픽이나 글꼴 쪽 분야에서는 이런 고정소수점 방식이 잘 쓰이고 있다. 그러나 표현 가능한 수의 범위가 매우 심각하게 제한을 받기 때문에 범용성은 떨어진다.

자리수의 제약을 받지 않고 소수점을 좀더 자유롭게 표현하려면, 유효숫자와 자릿수를 따로 둘 필요가 있다. 그게 훨씬 더 실용적이다. 부동(floating)이라는 개념이 여기에서서 나왔다. 제일 큰 자리수의 숫자가 무엇이며 그 뒤에 0이 몇 개 붙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런 체계에서는 10.5에서 0.5는 제대로 표현할 수 있지만, 10000000.5에서 0.5는 손실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고 한 숫자를 결국 두 수의 조합으로 표현해야 하므로, 각종 연산이 단순 정수보다 훨씬 더 느리고 힘들어진다.

옛날에는 이런 부동소수점 계산을 하드웨어 회로 차원에서 바로 해 주는 코(보조)프로세서가 별도로 존재했다. fdiv, fmul 같은 인스트럭션. 심지어는 제곱근이나 삼각함수 값까지 바로 구하는 명령이 있다!
하지만 시중에는 그런 게 없는 컴퓨터도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1990년대에 상업용으로 쓰이던 어지간한 컴파일러들을 보면 소프트웨어적으로 부동소수점 계산을 흉내 내는(엄청 느리지만-_-) 코드를 추가할지를 지정하는 옵션도 있었다.

그런데 부동소수점을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통일돼 있어야 그 기준에 따라 코프로세서를 만들든지 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표준 규격이 바로 IEEE754이다. 1985년에 제정되었다.

이 규격은 좀 정밀도가 떨어지지만 처리 속도가 더 빠른 32비트와, 용량이 넉넉하지만 역시 속도의 압박이 있는 64비트로 나뉜다. CPU 단위가 16비트이고 부동소수점을 소프트웨어적으로 처리하는 게 보편적이던 옛날에는, 아예 컴파일러 재량으로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한 48비트(6바이트-_-.. 파스칼에서 Real) 실수와 80비트(C/C++에서 long double) 실수도 존재하였으나 지금은 완전히 흑역사가 되었다. 요즘은 화면 픽셀 크기도 24비트는 존재하지 않으며 32비트이다. 죄다 컴퓨터가 처리하기 편한 단위로 그냥 확장된 듯하다.

제일 간단하게 말하자면, 32비트 실수에서는 1비트는 이 수의 부호를, 다음 8비트는 지수를, 다음 나머지 23비트는 유효숫자를 나타낸다. 64비트 실수에서는 그 비율이 1:11:52이다.
컴퓨터가 사용하는 부동소수점의 지수의 밑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10이 아니라 2이다. 따라서 2의 거듭제곱의 역수가 아닌 모든 소수들은 끝자리가 잘린 ‘순환소수’가 된다! 0.25, 0.125, 0.5 같은 수가 아닌 다른 모든 수들.. 0.1, 0.2, 0.3 이런 것들은 화면에서는 적당하게 근사되어 표현되었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그 수의 100% 정확한 형태로 저장되지 않은 셈이다. 부동소수점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어쨌거나.. 2^23과 2^52에다 base가 10인 로그를 씌워 보면 32비트 실수의 유효숫자 정밀도는 약 7자리, 그리고 64비트 실수의 정밀도는 약 15자리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자리수의 범위는 32비트는 약 38자리, 그리고 후자는 약 308자리이다(비트가 3개 더 늘어서 2^3인 8배가 더 늘었으므로). 소수점 밑으로도 그만치 내려갈 수 있다.

까놓고 말해 이런 공용체를 통해 부동소수점을 쉽게 해부할 수 있다.

union REAL {
   float fValue;
   struct {
      unsigned sign: 1; //부호
      unsigned expo: 8; //지수부
      unsigned mantissa: 23; //가수부
   };
};

공용체와 비트 필드가 존재하는 C/C++ 만만세. ㄲㄲ
단, 우리가 쓰는 인텔 CPU는 little endian이므로 sign, expo, mantissa 순이 아니라 반대로 mantissa, expo, sign으로 멤버 순서만 바꿔 주면 된다. 쉽죠?

그런데 지수부와 가수부 사이에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을 경우 동일한 숫자를 여러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어 문제가 생긴다. 4를 2의 2승, 4의 1승 이런 식으로 표현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IEEE754는 가수부는 가장 큰 자리수의 비트값이 무조건 1인 것만 인정하게 하고 그 1은 명시적인 표기를 생략했다. 이를 ‘정규화’된 형태라고 한다.

거두절미하고, 32비트 부동소수점에서 구조체의 각 멤버로부터 부동소수점 값을 다시 얻어 오는 식은 다음과 같으므로 참고하자. 식에서 23과 24는 가수부의 자릿수 23비트와 관계가 있으며, 126은 지수부의 크기 8과 관계가 있다. 2의 8-1승보다 2 더 작은 값이다. 1<<23이 바로 생략된 최대 자리수인 셈이다.
그저 의미를 알 수 없는 블랙박스 같던 부동소수점이 좀더 친근하게 와 닿을 것이다.

pow(2.0, (double)( (int)a.expo-24-126))* ((1<<23)|a.mantissa) * (a.sign ? -1:1)

IEEE754에는 이외에도 무한대를 표현하거나 불능을 뜻하는 규격이 있다. 정수를 0으로 나누면 CPU 차원에서 바로 exception이 일어나지만 부동소수점은 에러는 안 나고 저런 특수한 숫자가 돌아온다.
또한 정규화를 해서 자리수를 강제로 늘리는 바람에 표현할 수 없게 된 일부 극히 작은 수를 별도로 표현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심지어 ‘고정소수점’ 방식을 임시로 사용하는 규정조차 갖추고 있다. 마치 퀵 정렬이 작은 구간에서는 삽입 정렬을 사용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참고로,
1. IEEE754 부동소수점에는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0이 +0과 -0 이렇게 두 개 존재한다.
2. 역사상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로 일컬어지는(논란의 여지는 좀 있지만) 에니악은 10진법을 사용했다! 전자 신호 4비트(=16)로 10진법 숫자 하나를 표현했을 것이고 매우 비효율적으로 동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엔 이 기계로 탄도 계산도 하고 풍동 실험도 하고 심지어 일기 예보도 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4/22 22:53 2010/04/2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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