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의 상행과 하행

교통수단에는 상행과 하행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은 철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두 방향 중 어디를 상행으로 볼 것인지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순환선에서는 상하행이라는 개념 구분이 없으니 ‘시계 방향’이라고 모든 논란을 종식시키는 좋은 기준이 있긴 하나, 순환이 아닌 노선에서는 어느 방향을 ‘상행’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

이 주제에 대해, 우리나라 철도 덕후의 롤모델이라 할 수 있는 한 우진 님께서 개념을 명확하게 잘 정리해 놓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철도역이든 지하철 역이든 역마다 다 번호가 붙어 있는데, 철도 노선에서 역 번호가 감소하는 방향이 상행이다. 그리고 열차 운행 번호도 하행은 홀수, 상행은 짝수로 매긴다. 최소한 우리나라 업계는 그렇다.

일단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하고, 한국 철도는 그 텃새가 더욱 심하다.
해발 수백 m에 달하는 강원도 고산 지대에서 출발한다 하더라도(z축),
또 우리나라 최북단에서 출발한다 하더라도(y축 -_-)
서울로 가는 건 무조건 ‘올라간다’고 표현하지 않던가? 그래서 가장 큰 원칙으로는, 서울로 가까이 가는 방향이 상행이 된다. 심지어 경의선이나 경원선은 서울 방면이 지리적으로 남쪽이지만 그 방향이 상행이다.

그럼, 경전선이나 충북선처럼 시종점 어느 것도 서울과 연결되지 않은 노선은 어디가 상행이 될까?
그리고 아예 서울 안만 돌아다니는 서울 시내의 지하철은? (그리고 여타 광역시의 지하철들도?)

일단 나름대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간선 철도의 경우, 더 가중치가 높은 간선과 이어지는 종점 방면이 상행이다. 더 큰 도시가 가중치가 높고, 경부선이 다른 철도보다 더 가중치가 높다. 그래서 경전선은 목포가 아닌 부산 방면이 상행이 되고, 충북선은 제천이 아닌 대전 방면이 상행이다.
양 끝의 노선 직결이 없는 지선이라면 당연히 간선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하행이고, 간선과의 합류 지점과 가까워지는 게 상행이다. 정선선의 경우 민둥산 역 방면이 상행이고 아우라지 방면이 하행.

지하철처럼 저런 식의 가중치 지정이 무의미한 노선에서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북쪽이나 서쪽으로 가는 게 상행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은 남북이 우선적으로 감안되어 대화나 당고개 행이 상행이다. 이 정도면 쉽다? 8호선 역시 북쪽 암사 행이 상행.
5호선은 동서가 감안되어 서쪽의 방화 행이 상행이요, 6호선 역시 서쪽의 응암 쪽이 상행이고 9호선도 개화 방면이 상행이다.

문제는 일종의 ┘자 모양으로 동서와 남북 방향을 모두 골고루-_- 갖춘 7호선.
남북 방향인 강북 구간이 훨씬 더 먼저 개통했다는 점으로 인해 북쪽이 상행이 되었다. 그래서 9호선과 5호선의 서쪽 종점인 개화와 방화는 901, 510 같은 작은 번호인 반면, 7호선의 서쪽 종점인 온수는 750이라는 큰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어차피 7호선은 더 서쪽으로 부천까지 연장되고 있기도 하고..;;

대구, 대전 같은 어지간한 지방 광역시 지하철들도 이런 원칙을 지키고는 있으나, 정반대의 예외를 고집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부산이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은 앞서 언급한 것 같은 보편적인 통념을 깨고, 남쪽의 신평 방면이 상행이다. 2호선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 횡축인 3호선마저도 동쪽으로 가는 게 상행이다!
부산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동남쪽에 있는 도시이고, 부산 최남단에 자리잡은 부산 역에 가까운 방향, 바다 때문에 막혀서 더 확장할 여지가 없는 방향을 상행으로 본 게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가 철도와는 달리 고속도로는, 통일을 염두에 두고 서울이 아닌 부산을 시점으로 설정했듯이 말이다.

철도의 상행, 하행만 갖고도 이렇게 얘깃거리가 많다.
한때 서울 지하철은 승강장에 상행 방면 열차가 들어올 때는 '때르르르릉' 경보음이 나오고, 하행 방면 열차가 들어올 때는 '땡땡땡땡...' 경보음이 나왔다. 그게 관례였다.
다만, 순환선인 2호선은 시청 역의 번호가 201이고 을지로입구가 202. 다시 말해 시계 방향으로 도는 내선 순환이 하행이요 반시계 방향의 외선 순환이 상행처럼 된 셈이나, 경보음은 반대로 내선 순환이 땡땡땡땡, 외선 순환이 때르르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경보음은 다 없애는 추세인 듯하다. 도철(SMRT)이 최초로 안내 방송을 교체하면서 경보음을 없앴다. “지금 XX, XX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항상 5 6 7 8 서울 도시철도를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뿐만이 아니라 2호선도 경보음을 없앤 대신, 멘트가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뿐이던 게, “XX 방향으로 가는 내/외선 순환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로 바뀌었다.
하긴, 스크린도어가 생겼으니 한 걸음 물러서 달라는 멘트뿐만이 아니라 경보음(alarm) 자체도 필요가 없어지긴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2/18 09:01 2011/02/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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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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