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철 1호선에 있는 구일 역은 구로 역에서 분기한 경인선 철도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역이다.
이 역은 1995년에 개통되어 경인선 2복선화 공사 과정의 복잡한 사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특이한 역이다.
다만, 경인선에는 구일보다도 나중에 생긴 역도 있다. 2001년에 개통한 도화 역이 막내이며, 이게 아마 경인선 최후의 신설역으로 남을 것이다. 경인선은 이제 전구간이 거의 지하철 수준으로 역이 많아져 있기 때문에.
구일 역은 위치부터가 심하게 특이하다. 역이 잘 알다시피 안양천을 건너는 철교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신대방, 구로디지털단지, 대림 3개역이야 도림천을 따라 복개 고가로 건설되어 물위에 역이 있다지만, 강을 수직으로 횡단하면서 그 길목에 역이 있는 경우는 구일 역이 유일하다. 그 위치가 개봉과 구로의 정중앙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2호선의 경우, 아무리 선상역이라고 해도 구일 역처럼 선로 아래로 강물이 출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거나 하지는 않다. -_-;;)
경인선 자체가 처음부터 복선으로 건설된 철도가 아니고 1965년에야 복선화가 된 만큼, 안양천 철교 역시 단선 교량이 새로 놓이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두 교량 사이에 공간이 넉넉했는지, 구일 역은 처음에 섬식 승강장으로 만들어졌다. 기존 선로에 신설되는 역이 섬식 승강장인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마치 섬식 승강장을 확장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개통 당시에 구일 역의 구조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를 선로, ■를 승강장이라고 생각하라.
인천 방면(서쪽)
..┃■┃..
서울 방면(동쪽)
그런데 이것만 있었느냐? 그렇지 않았다. 구일 역이 생기던 시점에는 이미 경인선의 2복선 선로가 딱 개봉 역 직전까지 진행되어 있었다. 서울-구로는 3복선까지 생겼고 말이다. 즉 실제 선로는
인천 방면(서쪽)
│┃■┃│
서울 방면(동쪽)
로, 양 옆에 또다른 복선 선로가 있었다. 2복선 공사를 왜 해야 했는지는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구로 이북의 경부선 서울 시내 구간은 선로별 복복선이 되어 새로운 전동차 선로가 기존 선로의 최북단에 깔려서 ┃┃││처럼 된 반면, 경인선은 방향별 복복선이 되어 새로운 선로가 남쪽과 북쪽에 하나씩 추가된 것이다.
경부선이 경인선처럼 일관성 있게 방향별 복복선이 되지 못한 이유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선로를 그렇게 추가할 부지가 없어서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더구나 남쪽에는 일반열차 선로까지 이미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선로별 복복선이던 선로가 방향별 복복선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한 선로가 다른 선로를 필연적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입체 교차로가 생겼다. 특히 인천 방면 선로는 인접한 경부선 선로를 모두 타넘고 남쪽 끝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고가 위로 붕 떠 있었으며, 이는 안양천을 건너는 구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구일 역의 인천 방면 신규 선로는 다른 세 선로보다 높이가 높다.
경인선의 2복선 신규 선로가 개봉까지만 있던 시절에는 철도청에서 오늘날 경인선 급행 전동차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영등포-주안 반복 열차라는 열차를 운행했다. 구일 이북부터는 그냥 다시 기존 복선 선로를 이용해서 달리고 영등포-구일까지만 신선으로 다니는 그런 열차였다. 경인선 완행 전동차의 일부 선로 용량을 빼내서 거기다 투입시켰던 것 같다. 지금은 영등포-광명 셔틀 전동차가 있지만, 그때는 영등포 역이 그런 부류의 전동차의 시종착 취급도 했다는 게 신기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경인선도 그렇고 경부선 구로 이북도 그렇고, 전동차 선로는 지금의 급행 전동차가 다니는 선로가 먼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완행 전동차는 지금의 급행 전동차 선로로 다녔다. 그래서 경인선 전동차는 구일 역에 그대로 정차했으며, 그 반면 바깥쪽 선로를 다니던 '영등포-주안 반복 열차'는 아직 승강장이 없었기 때문에 구일 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구일 역을 통과한다는 점만 빼면 영등포-주안 열차의 정차역은 다른 경인선 전동차의 그것과 완전히 동일했다. 아직은 2복선 구간 자체가 너무 짧았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1999년, 경인선 2복선이 부평까지 개통했다. 이제 철도청은 새로운 전동차의 운행 계통을 기존 완행의 계통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했다. 영등포-주안 반복 열차를 없애고, 더 북쪽인 용산에서 출발하되 남쪽으로는 주안이 아니라 2복선이 존재하는 부평까지만 가고, 별도의 선로에서 정차역 수도 줄인 열차를 도입했다. 그때 철도청은 이 열차를 '직통열차'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코레일 민영화 후에야 용어가 급행으로 바로잡힌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으니, 바로 이때부터 내선과 외선의 용도가 바뀌었다. 기존 완행은 새로 추가된 외선으로 들어가고, 급행이 기존 내선으로 들어가서 이 관행이 오늘날까지 이른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물론, 일반열차가 내선을 쓰고 전동차가 외선을 쓰는 경부선처럼, 경인선도 빠른 열차가 내선을 이용하게 일관성 있게 바꾼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용산에서 먼저 회차하는 급행 전동차를 내선에다 배치함으로써, 청량리와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1호선 풀코스 전동차와의 평면 교차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은 게 어차피 서울 시내 구간은 방향별 복복선도 아니고 선로별 복복선이다. 게다가 노량진부터는 일반열차의 선로가 남쪽에 있다가 북쪽으로 꽈배기굴을 통해 위치를 바꾼다. 경부선 3복선 공사와 관련된 더 복잡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서까지는 본인은 아직 잘 모르겠으며, 이에 대한 설명이 있는 자료도 아직까지 접하지 못했다.
이렇게 내선과 외선이 교환됨으로써 구일 역 1층의 중앙 섬식 승강장은 완행이 아닌 급행 전동차가 지나가게 되었고, 구일 역은 급행 무정차 통과역이 되었다. 따라서 그 승강장은 잉여로 전락했다.;;
그 대신 외선에 승강장이 설치되어 완행 전동차는 거기에 정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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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구일 역은 섬식 승강장의 양 옆에 승강장이 하나씩 더 설치됨으로써 쌍상대식 승강장 형태가 되었는데, 특별히 인천 방면 승강장은 위에 따로 단선 승강장처럼 설치된 특이한 형태가 되었다.
이 글이 이해가 잘 안 되시더라도 구글에서 구일 역 승강장 사진을 찾아 보거나, 이 글을 프린트해서 구일 역을 답사해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참고로 구일 역은 출입구가 동쪽 서울 방면에 하나만 있다. 그래서 강 건너 부천 방면에서 구일 역을 이용하는 사람은 건너편까지 가서 우회를 좀 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