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저항에 대한 생각

물이나 공기 같은 물질은 고정된 형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학적으로 유체(fluid)라고 분류된다. 얘들은 비록 형체가 없을지언정 자신만의 밀도와 점성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 있는 다른 물질(기체 속의 액체/고체, 혹은 액체 속의 고체)을 상대로 이것저것 힘을 작용한다. 부력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절로 작용하는 힘이지만 양력과 항력은 유체 속에서 고유한 운동을 하는 놈에게만 덤으로 생기는 힘에 속한다.

유체역학에서 항력이라고도 불리는 이 저항은 물체의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하는 일을 무척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종이나 나뭇잎을 높은 데서 떨어뜨렸는데 자유 낙하하지 않고 팔랑거리며 천천히 떨어지는 게 공기의 저항 때문이다. 미개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공기 저항과 중력 가속도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막연하게 가벼운 물체는 천천히 떨어지고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는 줄 알았던 듯하다.

하지만 공기를 쫙 뺀 진공 속에서는 깃털과 쇠구슬이 엄연히 동일한 속도로 떨어진다. 또한 달에 간 아폴로 월면차가 인증을 했듯이, 거기는 그 가벼운 흙먼지조차도 지구처럼 자욱한 연기 형태로 남지 않고 파도 물보라처럼 곧장 깔끔하게 낙하해 없어지는 걸 알 수 있다. 지구의 물보라보다 천천히 떨어지기 때문에(중력 가속도가 더 작음) 뭔가 실사 같지 않고 게임에서 나타나는 흙먼지 이펙트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걸 1970년대 초에 CG로 재연한 게 아니라면 이건 지구에서 자연스럽게 촬영하기란 불가능하다.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없다면 낙하산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이 공기 저항 덕분에 무려 수 km에 달하는 높은 고도의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고도 사람이 다치거나 물건이 부서지지 않는다. 이거 생각해 보면 꽤 신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빗방울이 일정 속도 이상으로는 더 가속이 되지 않는 덕분이다.

하물며 공기보다 밀도가 월등히 더 높은 물의 저항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공기 중에서 총알을 빠르게 발사시키는 총은 물 속 불과 수십 cm 깊이에 잠겨 있는 목표물에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운동 에너지 1/2 mv^2에서 차라리 v를 크게 희생하고 m이라도 더 높인 작살총을 쏘는 게 더 나을 정도이다.

물 속에서 다리로 바닥을 저벅저벅 디디면서 빠르게 걷기란 저항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작정하고 수영을 하며 나아가는 사람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신발조차도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벗어야 할 정도이다.
수영은 단순히 물에 떠서 생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에서 빠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비행기가 단순히 공중에 뜨는 것뿐만 아니라 빠르게 비행하는 것도 중요하듯이 말이다.

유체 속에서 운동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항력은 물체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커진다. 설마 지수함수 급은 아니지만 일단 유체와 그 물체 사이의 상대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며, 이것 말고도 유체의 밀도와 물체의 운동 방향 단면적, 그리고 유체의 모양이 결정하는 '공기저항(항력) 계수'에 비례한다. 더 자세한 것은 위키백과 설명과, 이 분야 전공자로 추정되는 어떤 분의 블로그 글을 링크하는 것으로 설명을 생략하겠다.

이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동력은 아예 속도의 3제곱에 비례한다. 저 항력 방정식에다가 속도가 한번 더 곱해지기 때문이다. 이러니 공기 중에서 달리는 차량은 고속에서의 가속이 급격히 힘들어지며, 일정 속도 이상부터는 공기 저항에 적극 대비하는 설계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물론, 정지 상태에서 첫 출발하는 것도 정지 마찰력의 극복 때문에 힘이 대단히 많이 필요하며, 저단 기어가 이런 이유 때문에 존재한다. 하지만 경제 속도를 넘어선 고속은 안 그래도 엔진이 토크가 떨어지고 힘을 쥐어 짜다시피하는 상태인데 공기 저항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다.

심지어 자동차에 에어컨이 아무리 엔진 힘을 깎아 먹는다 해도, 어지간한 고속 주행 중엔 그냥 그 에어컨을 켜는 게 창문을 열어서 바람 저항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을 정도이다. 승객도 시원하고 차에도 부담이 덜 가고..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에어컨의 오버헤드에 맞먹을 정도라는 뜻이다.

이러니 부가티 베이런이 500마력에서 1000마력으로 엔진 출력을 두 배로 올렸는데도 최고 속도는 시속 300대에서 겨우 400대로밖에 못 올렸다.
아예 공기와의 마찰열까지 고려해야 하는 건 왕복엔진 자동차 수준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차체는 아니어도 타이어가 열받는 것 정도는 현실성이 있다. 이건 무슨 법칙에 근거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무슨 변수로 기술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공기 저항의 극복을 위해서는 물체의 단면적을 그저 작게만 만드는 게 장땡이 아니다. 일명 '유선형'이라고 불리는 매끄러운 설계가 필요한데, 그 수학 이론적인 배경은 잘 모르겠다. 단지 베지어 곡선이라는 것도 비행기를 설계하는 어느 엔지니어가 이 분야만 파다가 만들어 낸 곡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공기 저항 공식에서 단면적 외의 다른 변수가 바로 '항력 계수'이며, 주요 도형에 대해 알려진 항력 계수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그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계수들은 도형의 모양을 기술하는 수식에 대해 온갖 적분 등 복잡한 연산을 동원해서 산출했는지, 아니면 그저 경험적으로 얻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 measured라고 써 놓은 걸 보니 경험적으로 얻은 값인 듯.

위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의외로 그저 동글동글하게만 만드는 것도 장땡이 아니다. 물론 걔도 아예 각이 진 놈들보다는 계수가 작지만 말이다.
정말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사방팔방으로부터 가해지는 극심한 수압을 견뎌야 하는 잠수정이다. 그리고 걔들은 고속 주행이 목표인 물건이 아니다.

하다못해 골프공조차도 매끈한 구가 아니며, 표면이 온통 옴푹 패여 있다. 이 역시 나름 유체역학적으로 공기 저항을 극복하고 잘 날아가라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며, 골프공 제조사의 고유한 기술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이걸 영어로 dimple이라고 하는데, 사람 얼굴에 옴푹 패인(?) '보조개'라는 뜻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여 년 전 대우 에스페로가 광고에서 항력(공기 저항) 계수가 0.29라고, 그 당시 국산 양산차들 중 최저인 과학적인 외형이라며 이 수치를 최초로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자랑을 쳤었다. 마치 뇌세포의 성분 DHA가 들어간 '아인슈타인 우유'처럼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좋아 보이게 마케팅을 한 셈이다. 본인은 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스페로는 첫 출시되었을 때는 쏘나타 같은 2000cc급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후기 모델들은 아반떼 같은 준중형급으로 엔진을 다운사이징한 게 이례적이다. 물론 차체의 크기는 동일한 채로 말이다.)

한편, 이륜차는 단면적이 일반 자동차보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공기 저항에는 의외로 그리 유리한 외형이 아니다.
오토바이는 워낙 가볍고 단위 중량 당 마력이 큰지라 초반 가속은 자동차를 아득히 관광 태운다. 하지만 의외로 시속 200 이상급의 고속은 헉헉대는데, 다름아닌 공기 저항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륜차가 그런 고속 주행을 하면 안전 관점에서도 심각하게 안 좋기도 하고 말이다.

엔진 없이 사람의 발로 페달을 밟아 달리는 자전거도 돈지랄을 한 경량화에다 기어비 최적화, 초인적인 라이더 같은 최상의 변수를 동원하면 순간적으로나마 거의 시속 100을 능가하는 고속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의 초고속 주행 기록은 앞에서 커다란 우산? 양산?을 후방으로 펼쳐 주고 주행하는 자동차를 바짝 붙어서 따라가면서 세운 거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공기 저항을 앞의 자동차가 대신 받아 주니 고속 주행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단체 관광버스들이 교통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앞뒤로 대열운행, 일명 떼빙을 여전히 일삼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다같이 무리해서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허나, 보조적인 이유로는 연비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커다란 선두가 공기 저항을 다 받으면서 출발하니까 뒷차들은 상대적으로 나아가기가 쉽다고..
그 정도로 연료 절감 효과가 존재하고 경험적으로 입증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원리는 철도 차량에도 적용 가능할 듯하다. 단순히 쇠 레일+쇠 바퀴로 인한 마찰 계수 감소 말고, 다수 차량의 밀집 운행으로 인한 효율 증대도 장점이 되겠다.

사실, 자동차의 옆에 툭 튀어나와 있는 백미러는(후면경) 유체역학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으며, 방해가 되는 물건이다. 비행기의 날개처럼 양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돌출된 것도 아니고..
허나 운전을 위해서는 절대로 없어서 안 되는 필요악이기 때문에 달려 있다. 이걸 자그마한 카메라로 100% 대체가 가능하다면 연비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상...;;
열역학에서는 이상 기체라는 개념까지 설정해서 기체가 열과 압력을 받아서 액화나 기화하고 그 과정에서 열을 수송하는 과정을 수식으로 설명한다. 거기는 물리뿐만 아니라 반쯤은 화학에도 속하는 영역 같다. 물론 엔진이나 냉동 기관 같은 게 다 열역학 이론에서 비롯된 기계이므로 이건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요 기술이다. 에어컨이 발명된 덕분에 인간이 거주하고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넓어졌으며, 냉장· 냉동고가 발명된 덕분에 식품의 장거리 수송과 장기간 보존이 가능해졌다. 동력 엔진의 발명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유체역학에서는 그렇게 기체의 상태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 안에서 운동하는 강체의 에너지 효율을 다룬다. 서로 영역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가 만들어졌는데 걔네가 조금이라도 연료를 덜 소모하고 더 경제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차체를 유체역학적으로 잘 디자인 하는 게 필수이니 두 역학 분야는 동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늘과 실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1 19:29 2016/11/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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