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정보들이 전산화, 디지털화되고 통신 기술도 눈부시게 발달한 2010년대 오늘날까지.. 여전히 손글씨 내지 하드카피 같은 원시적인(?) 방법론이 유효한 분야를 찾아보면 먼저 이게 떠오른다.
(1) 유서/유언장 내지 (2) 투표/개표.

유언장이야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의 필적이 맞다는 genuineness를 보장하기 위해 자필 실물만을 법적으로 인정한다.  또한 유언장 말고 육성 유언도 조작이 너무 쉬운 디지털 음원보다는 구닥다리 아날로그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것이 비슷한 맥락에서 법적으로 더 신뢰받는다고 한다.

저 분야는 그렇다 치지만,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 정치인 투표쯤은.. 전국 어디서나 간단히 인터넷 내지 터치스크린 클릭으로 짠 해치우고 개표 결과는 투표 마감 땡과 함께 곧장 나와야 할 것 같지 않나?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전산화에도 뭔가 금단의 영역이 있다.
이들은 위조· 조작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여전히 보수적인 방법론이 사용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까운 미래에 이 관행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마치 과거에 킹 제임스 성경을 만들 때 서로 으르렁대던 청교도 학자와 성공회 학자들이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교차검증을 해서 둘 다 동의하는 좋은 번역본이 나왔듯이, 선거 개표도 각 정당에서 뽑힌 대표 참관인들이 각각의 표에 대해서 개표 결과에 눈으로 수긍을 하고 동의하고 교차 검증이 돼야 다음 표의 개표가 진행된다.

성경이 필사되는 과정, 수능 문제가 출제되는 과정처럼 투명성과 공정성, 정확성을 입증하는 절차가 결코 호락호락 허술하지 않다. 그나저나 비록 아날로그 매체이긴 하다만 잉크 묻힐 필요 없이 종이에 닿기만 하면 깔끔하게 마킹이 되는 그.. 투표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 도장은 어떻게 만드는지 참 신기하긴 하더라.

그 다음으로..
(3) 도박이나 추첨: 요즘은 로또 당첨 번호 추첨 같은 걸 어떻게 진행하나 모르겠는데, 본인이 어렸을 때는 주택 은행 복권의 당첨 번호 추첨을 TV에서 생중계했던 것 같다. 예쁘게 차려입은 진행요원 아가씨들이 100, 10, 1 등 자릿수별로 서 있고.. "쏘세요!" 신호와 함께 주사위를 던지던가 다트를 쏘던가 해서 그렇게 번호를 무작위하게 추출했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게 제일 뒤끝 없고 공정하긴 했는가 보다.

(4) 요즘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무인화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분야는 단순 접객 서빙과 요금 수납, 그리고 교통수단의 조종이지 싶다. 교통수단 중에서는 제일 안정적인 육상 궤도 교통수단이 무인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 중이다.

(5) 열차 승차권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예매가 완전히 일상화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석과 설에 확실하게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오늘날까지도 역에 발품 팔아 찾아가서 줄 서서 '오프라인 방식'으로 표를 사야 한다.

모든 열차 좌석을 인터넷 예매로 팔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예매 가능한 좌석 수의 전체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컴맹 세대 내지 사정상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계층을 배려한 것도 있고, 또 원격으로 표를 너무 쉽게 지름으로써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암표와 예약 부도(일명 '노쇼')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6) 국내의 고속도로 톨게이트들은 신용카드 내지 티머니 결제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패스가 없다면 반드시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언뜻 보기에 굉장히 원시적이고 미개해 보이는 관행인데.. 수많은 자동차들이 24시간 끊임없이 드나드는 곳에서 외부 카드 회사와 통신이 이뤄져야 하는 시스템은 신뢰성 문제 차원에서 채택하지 않은 거라고 한다. 하이패스야 자기들이 운용하는 시스템이니까 내부 통신만 이뤄질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고속도로도 주차권 없이 모든 차량의 출입이 100% 자동 인식되는 주차 시스템처럼 바뀌어야 하는데 문제는 고속도로는 단순 건물이나 캠퍼스 안의 주차 시설과는 넘사벽급으로 규모가 크다는 점이다. 365일 24시간 신뢰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7) 고속도로 말고 강원랜드 같은 도박장도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다. 거기는 건전한(?) 금융거래를 하는 곳이 아닌 관계로, 법적으로 카드 긁는 게 금지돼 있다. 돈을 쓸 거면 노름꾼들에게 늘 현금박치기를 강요시켜서 피 같은 내 돈이 실물로 없어지는 게 직접 눈으로 보이고 실감나게 하는 것이... 도박장들의 소득 규모를 손쉽게 파악하고 탈세를 방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도박 중독자들이 판돈을 카드로 확 지른다고 생각해 보라. 도박이 아닌 일반적인 지름신 영접만으로도 일부 경제 관념 없는 사람들이 카드빚 때문에 죽네 사네 할 정도인데 저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부르겠는가?

Posted by 사무엘

2017/03/01 19:31 2017/03/0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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