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5 전쟁은 그로부터 40년 전의 경술국치와 거의 동급으로, 단군의 후손과 대한민국이라는 민족 정체성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사건이 돼 있다. 이를 기리기 위해 박 두진 작사, 김 동진 작곡의 main OST가 만들어져 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그 곡 말이다.
박 두진이라 하면 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듯이 “해야 솟아라 맑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시조가 떠오르지만, 동일 인물이 그로부터 겨우 2년 뒤에 6· 25 노래의 가사도 썼다. (<해>는 1949년에 발표되었으니, 아마 해방의 감격을 해에다 비유했을 것이다)
1.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2.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 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3.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이 노래는 휴전 후가 아니라 아직 전쟁 중이던 1951년에 만들어지고 발표되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전국토가 쑥밭이 되고 공산당 빨갱이들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꼴을 생생히 목격한 그 트라우마가 가사에 담겼다.
단순히 나와 다르니까 적군이 아니라 상대방은 도덕적으로 완전 불의하고 천벌 받아야 마땅하며 인간으로서 상종 못 할 역적패당 인간말종임을 적절하게 잘 표현해 놓았다. 2, 3절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곡도 잘 썼다. 슬프고 엄숙한 느낌이 나는 E단조풍으로 시작했다가 그래도 희망적인 G장조 분위기로 끝난다.
북괴 얘기는 쏙 빼고 6· 25가 무슨 남북 공동의 책임인양 가사를 굉장히 이상하게 바꿔 놓은 “신 6· 25 노래”가 한때 나돌았는데 본인은 그건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빼고 '지옥'을 삭제하는 변개와 동급으로 극도로 저주하고 혐오한다.
이것 말고 승리의 노래라는 것도 있다. 다만, 제목이 고유명사 같지 않으며, 요즘은 그런 문구로 검색하면 찬송가가 더 많이 튀어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가사 첫 줄로 검색하는 게 변별력이 훨씬 더 낫다.
2. 쳐부수자 공산군 몇 천만이냐 / 우리 국군 진격에 섬멸뿐이다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얘 역시 1951년작이며, 위의 그림은 작사 내지 작곡자가 1951년 1월 11일에 자필로 직접 쓴 악보의 복사 이미지라고 한다. 서울을 도로 빼앗긴 1· 4 후퇴로부터 겨우 1주일 뒤의 일이다. 이 곡은 작사자는 잘 모르겠고 작곡자 권 태호가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라 물고요" 동요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위의 두 노래는 북한군을 공산군 괴뢰군을 넘어 오랑캐라고 일컬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도 비슷하니 6· 25 전쟁이 벌어지던 그 시절엔 진짜 그런 표현이 쓰였는가 보다. 우리 어머니도 “무찌르자 오랑캐”에 맞춰서 고무줄 놀이 하시던 추억을 생생하게 기억하시더라.
<멸공의 횃불>보다 훨씬 더 수위가 높고 적개심이 강한 군가풍의 노래가 민간에까지 널리 불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죽했으면 1953년 8월, 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 된 거의 직후에는 반공 정신 투철한 학생들이 “이렇게 전쟁을 어영부영 끝낼 수는 없다. 반드시 멸공 북진 통일을 완수해야 한다”이러면서 행진을 했는데, 북괴 빨갱이들을 아래와 같은 징그러운 괴물로 묘사하면서 신랄하게 디스를 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휴전 회담에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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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짓거리가 저 괴물의 묘사만치 간악하고 비열했기도 했고, 또 전쟁이란 게 기본적으로 인간성을 황폐화시키기 때문이다. 지금도 북괴는 공산주의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의 “수법”이 문제이다. 오늘날 종북 용공분자들은 저런 괴물의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양의 탈을 쓰고 평화, 대화, 우리민족끼리 이런 타령이나 늘어놓으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불평 불신풍조 조장하면서 체제 전복 공작을 벌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6월 25일엔 국가 차원에서 기념식을 열어서 6· 25 노래를 부르면서 “이 날을 죽어도 절대 잊지 말자 뿌드득” 그랬다. 그리고 70년대까지는 우리나라를 구해 준 UN도 고맙다면서 UN 창립일까지 공휴일로 지키곤 했다.
저 때에 비해 지금이야 세월이 참 많이 흘렀고 북괴로부터 적어도 재래식 병력에 의한 전쟁 도발 가능성은 0에 가깝게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통일은 무슨 외세나 반통일 수구꼴통들 때문에 못 하는 게 아니라, 99.99% 북괴의 잘못된 주체사상 대남적화 통치 이념 때문에 못 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 헌법이 아무리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고 규정한들, 북괴가 저런 체제인 한 평화적인 통일은 현실적으로 사실상 불가능이다. 둘 중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난 개인적으로 빨갱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하며, 빨갱이는 빨갱이라고 적극 부를 것이다. 걔네들의 성품에 잘 어울리는 멸칭이다.
빨갱이 소리 들어서 제아무리 기분 나쁘다 한들, 그게 설마 “6· 25 남북 공동 책임론” 이딴 소리보다 사람 더 열받게 하고 기분 더 잡치게 할까?
아직도 웬 케케묵묵은 반공 타령이냐고 혀를 차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북괴가 1950년대나 지금이나 케케묵은 이념이 하나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북괴가 대남적화 이념을 완전히 버렸다는 것을 입증할 생각은 안 하고 오로지 자국 정부가 반공 빌미로 잘못한 것밖에 내세울 줄 모르는 애들은 백 날 떠들어 봐도 내 생각을 절대로 반박하거나 바꾸지 못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냥 잠자코 조용히 있기 바란다.
이상, 6월 25일을 며칠 안 남기고 든 생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