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스 시절 명령어

도스에서 파일(과 디렉터리)을 다른 곳에 복사하는 명령은 copy이다. 얘는 명령 셸인 command.com이 자체 지원하는 내장 명령이다.
그런데 도스에는 copy의 일종의 강화 버전이라 할 수 있는 xcopy라는 것도 있으며, 이건 별도의 프로그램을 통해 실행되는 외부 명령이다.

xcopy는 일반 copy와 달리 (1) 서로 다른 드라이브 사이에 서브디렉터리까지 재귀적으로 통째로 복사하는 걸 지원했으며, (2) 복사에 사용하는 메모리 버퍼 크기가 더 크고, 여러 개의 파일을 한꺼번에 읽은 뒤(대략 수백 KB 정도 크기까지) 타겟에다 쓰는 걸 지원했다. xcopy의 전치사 X는 일반적으로 cross라고 발음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둘은 차별화 요소가 전혀 될 수 없으며 굳이 분리할 필요가 없다. 그냥 copy가 원래 (2)처럼 동작하면 되고, (1)은 /s 같은 옵션을 추가해서 지원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옛날에 xcopy가 외부 명령으로 존재했던 이유는 겨우 그 정도 고급 복사 옵션/기능마저도 command.com에다 상시 집어넣고 있기에는 메모리가 부족하고 아까웠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베이직 인터프리터가 Ready 출력할 메모리조차 아까워서 프롬프트를 Ok로 바꾼 시절이 있었다는 것 기억하시는가? (단 3바이트를 아끼려고!) 검색을 해 보니 xcopy는 1987년, MS-DOS 3.2에서 첫 도입됐다고 한다.

하긴, 옛날에는 다단계 디렉터리를 재귀적으로 탐색하면서 뭔가를 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외부 유틸리티를 많이 이용해야 했다. 파일 찾기는 말할 것도 없고, 지우는 것도 옛날에는 deltree라는 명령이 따로 있었지 싶다. 그건 지금은 del에 /s옵션으로 통합됐지만 말이다.
유닉스 계열 셸은 내장과 외장 명령어 구분이 어찌 되나 모르겠다. cp, mv, rm은 외부 프로그램인 것 같던데 설마 pwd, cd 이런 것들도 다 외부 프로그램이려나?

그리고 옛날에는 플로피 디스크(일명 디스켓)란 게 쓰여서 파일 시스템 차원에서 완전히 똑같은 디스크 복제를 해 주는 diskcopy라는 외부 명령이 있었다. 얘는 굳이 외부 명령으로 만들 거면 디스크 이미지 파일을 만들거나 이로부터 복제 디스크를 만드는 기능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1.2~1.44MB짜리 디스크를 단일 드라이브에서 복사하려면 source와 target 디스켓을 여러 번 갈아 끼워야 했는데.. Norton Utilities 같은 다른 유틸리티들은 EMS 및 XMS 메모리를 활용하여 한 번만 갈아 끼우고 바로 복사가 된다는 걸 장점으로 내세우곤 했다. 프로그램을 하나 설치하려 해도 "제품의 이제 1~N번 디스크를 넣고 아무 키나 누르세요" 이러던 참 아련한 옛날 추억이다.

2. 16비트 Windows의 실행 모드

예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1990년대 초중반에 Windows라는 운영체제가 32비트 플랫폼으로 처음 갈아타던 시절에는 Win32 API라는 것의 구현체가 Windows NT, Windows 95, Windows 3.1+Win32s라는 세 계통으로 나뉘었다. NT가 가장 이상적인 레퍼런스 구현체이고, Win32s는 제일 허접하다.

그리고 그 중간의 95는 비록 NT처럼 스레드도 지원하고 도스로부터 많이 독립했다고는 하지만, 도스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기보다는 도스를 내부적으로 흡수· 합병한 것에 가깝다. Windows NT의 마이너 축소판이라기보다는 Win32s가 각종 한계 없이 제대로 구현된 형태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런데 95 계통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Windows 3.0이 나왔을 때에는 동일 제품· 단일 바이너리 하에서 실행 모드가 세 갈래로 나뉘었다. 바로 8086 리얼 모드, 286 표준 모드, 386 확장 모드이다.
Windows NT 4가 가장 많은 아키텍처를 지원하는 32비트 운영체제였다면, Windows 3.0 (3.1 말고)은 실행 모드가 가장 다양했던 16비트 도스용 운영 환경(?)이었다.

원래 Windows 1과 2에서는 리얼 모드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Windows는 진짜 도스 위의 덧실행 껍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리얼 모드에서는 메모리가 기본 640K밖에 없었으며, 그 번거로운 16비트 Windows 3.x보다도 프로그래밍 환경이 더 열악했다.

그러다 Windows 2.0의 후속 버전으로 2.1은 286 표준 모드를 도입한 Windows/286과, 386 확장 모드의 전신인 Windows/386 이렇게 두 갈래로 나왔다. 사실, 16비트 80286 프로세서에도 보호 모드가 있긴 했지만 프로그래밍에 애로사항이 많았는지 그걸 사용한 프로그램은 매우 소수였으며 여전히 거의 봉인돼 있었다. 그냥 EMS/XMS 같은 규격으로 메모리를 수백 KB 남짓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했다. 386 확장 모드도 첫 버전답게 문제가 많았으며, 2.11이 더 나와야 했다.

그러다가 Windows 3.0은 리얼, 286 표준, 386 확장을 모두 통합하여 출시됐다. 이때는 DPMI 규격도 갓 제정되었기 때문에 2.x 시절보다 보호 모드 지원도 더 개선되었다.
이때는 3.0에다가 멀티미디어 API가 최초로 추가된 확장팩이 나왔으며, 3.1은 네트워크 API가 추가된 Windows for Workgroup 3.11, 그리고 중국어 입출력 지원이 추가된 3.2 이런 식으로 기능 확장팩이 많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한 업데이트가 가능한 시절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Windows 3.1에서는 리얼 모드가 삭제되고 win /2 또는 /3을 통해 286 표준 모드만 지원하지만, 이것은 성능이 굉장히 많이 열화된 모드였다. 그리고 Windows 95부터는 표준 모드도 빠져서 기술적으로 언제나 386 확장 모드로만 동작하는 형태가 됐다.

이렇듯, Windows 3.x는 비록 순수한 32비트 운영체제는 아니지만 보호 모드라든가 도스용 프로그램을 내부에서 구동할 때처럼 일부 기능에서 80386 이상 CPU가 제공하는 가상화 기능을 사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32비트 CPU가 필요했다. 386 확장 모드가 지원하는 기능이 그런 것이었다.
이는 과거에 존재하던 PIF 편집기가 확장 모드에서는 표준 모드에 비해서 지원하는 옵션이 얼마나 더 다양해지는지를 보면 얼추 짐작 가능하다. 286 표준 모드에서는 요게 전부이던 옵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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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확장 모드에서는 XMS뿐만 아니라 EMS 규격, 그리고 멀티태스킹 우선권 등 다양한 옵션들이 별도의 대화상자와 함께 추가되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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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 95 역시 순수 32비트 프로그램이 아니면 도스용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제대로 된 가상 머신과 선점형 멀티태스킹을 지원했다. 16비트 Windows 프로그램을 강제 종료하면 운영체제와 얽혀 있는 스레드 동기화 오브젝트 같은 것이 얼어붙으면서 시스템의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LimitEmsPages 이런 함수는 32비트가 아니라 이미 Windows 3.x 시절부터 deprecated돼 있었는데, 아마 리얼 모드 시절의 잔재이지 싶다.
Windows 1~2.x용 실행 파일은 후대 Windows와 실행 파일 포맷은 동일하지만(NE) 내부의 플래그로 구분되어 있어서 3.x에서 실행하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수 있음" 경고가 뜨곤 했다. 요컨대 Windows의 역사를 살펴보면,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갈 때만치 큰 변화는 아니지만, 같은 16비트 안에서도 1~2.x와 3.x 사이에 보호 모드가 도입되기 전과 후에는 기술적으로 나름 변화와 단절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3. 외주로 제작되었던 보조 프로그램과 게임

Windows에 내장돼 있는 기본 프로그램들 중에는 마소에서 직접 만들지 않은 외주 프로그램도 있다. Windows 95 시절에 잠깐 있었던 하이퍼터미널이라는 터미널 접속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로, 스플래시 화면이라든가 각종 UI 외형이 대놓고 기존 마소 프로그램과는 어울리지 않아서 마소 자체 개발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게임 중에서도 Windows XP에까지 제공되었던 3D 핀볼(시네마트로닉스 개발, 맥시스 유통)은 외부 프로그램이었으며, Vista/7 시절에 그래픽이 쇄신했던 지뢰찾기 등의 기본 게임들도 외주였다(Oberon games).

그런데 더 옛날에 Windows 3.1의 내장 프로그램들을 보면, 굉장히 단순하게 생겼고 이 정도면 자체 제작했을 법도 한 프로그램이 About 대화상자를 보면 외주인 경우가 은근히 더 있었다. 게다가 아래의 목록에서 보다시피 제작자/제작사가 프로그램마다 완전 제각각이었다.

  • 계산기: Kraig Brockschmidt
  • 터미널: Future Soft Engineering 사
  • 레코더: Softbridge 사
  • 지뢰찾기: Robert Donner & Curt Johnson
  • 카드놀이: Wes Cherry

그러니 Vista/7 이전에 제공되던 기본 게임들도 알고 보니 외주였던 셈이다. 특히 지뢰찾기는 Windows 1.0부터 3.0까지 존재하던 Reversi(일명 오델로)를 대체할 목적으로 3.1에서 처음 선보였던 게임이기도 하다.
레코더의 경우 Windows의 역사상 거의 전무후무하게 존재하던 키보드· 마우스 매크로 유틸리티인데 95와 그 이후로는 결코 재등장하지 않았으니 희소성이 크다.

물론 이것들 말고 프로그램 관리자, 파일 관리자, 제어판이라든가 간판 앱인 문서 작성기(오늘날의 워드패드)와 페인트(오늘날의 그림판)은 외주가 아니라 내부 자체 제작이다.

4. 색깔의 미묘한 차이

말이 나왔으니 옛날 추억 회상을 더 해 보자면,
컴퓨터의 주메모리가 아니라 비디오 메모리가 딱 1MB이던 시절에는 Windows 3.1의 비디오 모드를 (1) 꼴랑 640*480 저해상도인 대신에 트루컬러, (2) 800*600에서 적당하게 하이 컬러, 아니면 (3) 1024*768에서 256색.. 셋 중 하나로 골라 쓰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Windows 3.1은 원래는 우리에게 익숙한 짙은 파란색으로 윈도우의 굵은 틀을 표현했지만, 하이 컬러 이상부터는 어인 일인지 은은한 하늘색으로 색깔을 바꿔 표시했다. 왜 무슨 근거로 색깔을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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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 3.0은 슈퍼 VGA나 트루컬러로 진입할 일이 있긴 있었는지, 그래픽 드라이버가 개발되거나 3.1 것과 호환되긴 했는지에 대해 본인은 아는 바가 없으며, 이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3/04 08:30 2018/03/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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