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자 표기
지금이야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된 지 어언 20년이 돼 가기 때문에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과거의 유물로 전락해 있다.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소리 표기는 정확할지 모르지만 ㅓ, ㅜ를 표기할 때 컴퓨터 키보드에 없는 반달점 붙은 글자를 써야 하고, ㅋㅌㅍㅎ에 ' 를 덧붙이는 등 실용적으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국내에서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1980, 90년대에만 도입되어 쓰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다.
1970년대 같은 더 옛날로 가면 오히려 그때는 지금처럼 ㅓ를 EO를 써서 표기하고 있었다. 현재의 로마자 표기법은 어찌 보면 더 먼 과거로 복귀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증거로..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식 기록 영상에 등재돼 있는 '수원' 역명의 로마자는 SU WEON이라고 적혀 있다. '서울역앞'도 SEOUL YEOG-AP이고 말이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 2호선도 전구간 개통하기 전, 신설동부터 강남 구간의 부분 개통만 했을 때는 로마자 표기법이 보다시피 매큔-라이샤워가 아니었다.
'서초'도 화면상으로는 짤렸지만 Se...로 시작하는 걸 볼 수 있다(Seocho).
1983~84년 사이에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되면서 1984년, 2호선이 전구간 개통할 때쯤부터 매큔-라이샤워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기존 안내판들은 다 새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1980년대에 2호선에서 구 로마자 표기법이 잠깐 쓰였던 시절은 우주왕복선으로 치면.. 액체 연료 탱크에도 하얀 도색이 칠해져 있던 초창기 시절을 보는 것 같다.
또한, 저 "교대 - Gyodae"라는 압박스러운 표기에서 유추할 수 있듯, 2호선은 개통 당시에 '이대'역도 Idae...라고 표기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얼마 못 가, 로마자 표기는 각각 'SNU of education', 'Ewha womans univ..'처럼 긴 정식 명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하철 역명판에 지금처럼 한자까지 병기된 것은 훗날, 2000년의 현행 로마자 표기법 개정과 비슷하다.
이 글을 쓰면서 뒤늦게 알게 된 건데.. 전국의 다른 모든 **여대들은 ** women's university라고 표기하고 있고 그게 직관적인 반면,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이화여대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공식 영문 표기가 womans university이다. 믿어지지 않으면 직접 확인해 보시길.. 어퍼스트로피도 생략하고 없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 냈다.
다음은 교대와 아주 가까이 있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역삼 역의 개통 당시 승강장 모습이다.
역시 로마자 표기법은 매큔-라이샤워 이전의 초창기이고 지금과 동일하다. 그래도 한자 표기는 없다.
인상적인 것은 에스컬레이터 픽토그램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는 모습이다. 국내에서 지하철 역사상 최초로 내부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역이 저기라고 한다.
스크린도어가 최초로 설치된 역은 기준과 조건에 따라 인천, 김포공항, 신길 등으로 나뉜다만... 에스컬레이터 1호는 저기이다.
옛날에는 자동차에 자동 변속기가 고가 사치품이었던 관계로 이 옵션이 장착된 자동차는 겉면에 automatic이라고 써 붙여서 큼직하게 광고를 했었다.
그것처럼 옛날에는 에스컬레이터도 있다는 것도 자랑하고 광고하고 유세를 떨 만한 사유였던 듯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은 노선의 구분을 위해 지금과 같은 노선색 체계를 정립했으며(2호선은 초록색!), 그리고 일명 '지하철체'라고 불리는 역명판 전용 서체도 정립했다. 1호선만 있던 박통 시절에는 그런 게 아직 없었다.
그러다가 1984년, 2호선이 순환선 형태로 완전히 개통할 즈음에는 매큔-라이샤워 로마자 표기법이 도입되었으며, 65세 이상 노인의 무임승차도 딱 이때부터 시행되었다. 2호선의 완전 개통을 알리는 다음 대한뉴스 동영상을 보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호선의 성수 지선에 위치한 용답 역이 원래 이름은 기지였다는 사실 자체는 본인도 알고 있었지만 사진으로나마 당시 흔적을 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Kiji (vs Idae...) 대신에 Car Depot (vs Ewha WU..) 인 것, 역번호가 본선이 아닌 지선 형태로 매겨진 것을 감안하면, 저건 개통 초창기가 아니며 2호선 전체 완공 후 좀 시간이 흐른 뒤의 모습이다. 실제로 저 역은 1980년대까지는 계속해서 이름이 '기지'이다가 90년대에 와서야 용답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도 저기는 서울에서 제일 먼저 생긴 지하철 차량 기지이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울 시내· 중심부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잡긴 했다.
2. 철교의 정체
지난 여름에 용산 역을 가 보니, 내부 광장에는 "필름 속에 담긴 한국 철도 -- 철도를 통해서 본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희망" (주최 주관 코레일, 후원 국토교통부)라는 제목으로 자그마한 옛날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다.
경인선을 비롯해 일제 시대 옛날 철도의 모습, 해방자호 이런 건 유명한 흑백 사진이다.
나중에는 김 대중 시절에 경의선을 연결해서 도라산 역을 개통하던 것, 그리고 2007년 노 무현 때의 동해선 연결 남북 시범 운행 사진도 걸려 있었다.
그리고, 6· 25 때의 모습이라면서 바로 문제의 저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3번은 "대동강 철교"라고 소개돼 있지만 글자가 패치된 흔적이 보인다.
안 봐도 비디오다. 저건 "한강 철교"라고 자료를 잘못 만들었다가 오류를 지적받고는 허겁지겁 수정한 것이다.
저 사진은 1950년 12월 초, 평양에서 북한 공산 괴뢰군의 대동강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서 유엔군이 다리를 폭격해서 저렇게 부숴 놓은 것이다. 그때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우리가 눈물을 머금고 후퇴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머지않아 다리를 망가뜨려 놓을 테니까 피난 가려면 빨리 가라고 사전에 시민들에게 경고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때 교통 통신이 지금처럼 좋지가 못했으니, 다리가 파괴되고 열차 운행이 중단된 뒤에야 소식을 뒤늦게 접한 사람들은 저거라도 붙잡아서 어떻게든 강 건너 피난 가려고 북적거렸다.
한강 인도교 내지 철교를 배경으로 피난민들의 영상 기록이 남겨진 건 내가 알기로 없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