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일 찬송가에 수록된 제일 최신곡

한때 우리나라 교회에서 널리 쓰인 찬송가는 잘 알다시피 558곡짜리 통일 찬송가였다.
(난 21세기 새찬송가라는 건 진지하게 사용하고 분석해 본 적이 없어서 얘에 대해서는 뭐라 단정적으로 말을 못 하겠음. 그래서 라떼 옛날 것 기준으로..)

통일 찬송가는 편찬 위원들의 창작곡을 일부러 집어넣은 것을 제외하면, 수록곡들 중에 제일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1938년작인 “온 세상 위하여” 정도였다. (명목상 이것보다 미묘하게 더 최근인 곡도 있긴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루도록 하겠음)

요컨대 이 클래식 찬송가들은 대체로, 사실상 전부 다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핵무기, UN 따위의 등장 이전 말이다.
난 개인적으로 저것들이 등장하기 전과 등장한 후의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생활 방식은 서로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음악 자체만 해도.. 내가 잘은 모르지만 국민악파니 신고전주의니를 거친 뒤, 20세기 중반쯤부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실용/세속 영역에 속한 '현대 음악'이 주류로 등장했다. 통상적인 클래식 장르는 뭔가 매니악한 별개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성탄절을 소재로 하는 노래들도 1940년대쯤부터 예수 성탄 찬송보다는 세속적인 캐롤로 확 바뀌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the Christmas song 등..
한때는 롤스로이스가 엘비스 프리슬리한테도 “당신 같은 딴따라한테는 우리 차의 품격이 어울리지 않습니다”라고 퇴짜 놓고 차를 안 팔았을 정도였던 것 아시는가? (그래도 나중엔 결국 팔았다고 함)

그리고 분야를 완전히 바꿔서 과학 쪽으로 가면.. 지금 지구의 대기는 이산화탄소 농도만 증가한 게 아니라 방사능도 전지구적으로 극미량이나마 증가해 있다고 한다. 원자폭탄 투하와 각종 핵실험 때문에..
물론 그게 인체에 당장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 정도 변화에도 민감한 초정밀 기계를 만들 때는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오죽했으면 1945년 이전에 만들어진 강철이 필요하다고 태평양 전쟁 때 가라앉은 일본 전함의 잔해 고철을 끄집어내서 재활용할 정도라고 한다. 바닷물 속에 쳐박혀 있으면 다른 방식으로 부식될지언정, 방사선으로부터는 완벽하게 차폐를 받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학 기술은 공기 중에 정말 새 발의 피만치도 들어있지 않은 방사능을 감지하고, 방사성 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도 하고, 납 성분도 덤으로 감지해서 무연 휘발유까지 만드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

지질학에서 6500만 년 전, 46억 년 전 할 때의 before present 기준 연도는 바로 이런 관측이 시작된 시기 근처인 1950년 1월 1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것처럼.. 195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찬송가들은 1945년 이전에 만들어진 철과 비슷한 대표· 상징적인 의미가 영적 분야에 있는 것 같다.
다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산마다 불에 탄다 고운 단풍에” 같은 창작곡은 1967년작이다~~ ㅎㅎ

2. 앨버트 심슨, Once it was the blessing

앨버트 심슨은 찬송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를 작사한 캐나다의 목사, 신학자이다.
이 사람이 작사한 찬송가 중에는 저것 말고도 "Once it was the blessing"이라는 게 있다.

"한때는 난 오로지 복만 잔뜩 받고 싶어했는데 지금은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한때는 난 '필'에 꽂히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말씀을 더 좋아합니다.
한때는 열심히 간구 기도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이용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하나님이 날 사용해 주시길 원합니다.
...
한때는 내 혼자 뭘 열심히 해 보려 애쓰고 낑낑댔지만 지금은 난 그분 안에서 평안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해 있고 그분이 모든 것이십니다."


송 명희 시 같은 대구로 가득하면서 신앙 생활과 영적 성숙의 본질이 잘 담긴 굉장히 훌륭한 시임이 틀림없다.
본인은 몇 년 전에 울 교회의 주보를 통해서 이 시를 처음으로 접했다. 담임목사님께서 엄청난 학구파 독서광에 거의 걸어다니는 신앙 서적 검색엔진 급이신 분이어서..; 온갖 출처로부터 신앙 생활과 관련된 유익한 글이 있으면 일부 excerpt를 소개하곤 하셨기 때문이다.

난 신앙 서적 검색엔진은 아니지만 회중 찬양 선곡과 인도 짬이 10수 년.. 내 찬송가 책이 다 낡고 성경책 이상으로 너덜너덜할 정도로 책을 많이 뒤진 상태였다. 걸어다니는 찬송가 검색엔진은 얼추 된다.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는 '복음 찬송가' 책에 저 시와 비슷한 내용의 가사가 담긴 신곡을 본 적이 어렴풋이 있었다. 직접 불러 보거나 들은 적 없이, 악보를 눈으로 대충 읽고 지나갔던 기억만으로 말이다.

그걸 찾아냄으로써 "768장 복을 바라던 나 주를 바라고"가 울 교회에서 회중 찬송 때 최초로 소개되었다. 요런 것도 찬양 인도자가 경험하는 작은 보람이다.

기존 통일 찬송가에도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이라고 곡이 실려는 있지만..
얘는 가사가 굉장히 딴판으로 번역되는 바람에 사람이 성숙하여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원문의 저런 반전 역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은혜를 구했더니 은혜, 신유를 구했더니 신유..;;;; 바뀐 게 없잖아~~ ㅋㅋㅋㅋㅋ

3. 웬일인가, 웬 말인가

우리말 찬송가 중엔 ‘웬일~’ 이렇게 놀라움, 경악을 뜻하는 ‘웬’이라는 글자로 가사가 시작하는 곡이 두 개 있는데.. 작사자는 서로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멜로디가 동일하다. 가사가 5절까지 있는 것까지도 같다~!
하나는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라고 예수님이 감히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어 주셨다니~! 그렇게 감격하고 놀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웬일인가, 내 형제여”라고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너 그렇게 안 믿다가 죽어서 지옥 가겠구나, 마귀를 좇고 재물만 좇다가 나중에 쫄딱 망하겠구나, 불에 활활 타겠구나, 인실X을 체험하겠구나..;;” 이렇게 경고하는 굉장히 부정적인 내용이다. 찬송가에 속해 있지만 내용은 찬양이라기보다는 복음성가에 더 가깝다.

게다가.. 찬송가 가사라는 게 보통은 한국어 번역이 영어 원문보다 더 부드럽게 희석되고 미화되는 편이다. 영어에서 hell이 있다 해도 그대로 번역 안 하는 편인데..
“웬일인가 내 형제여”는 한국어 가사가 영어보다도 ‘지옥’이 더 많이 나온다~! 이건 굉장히 이례적인 번역 스타일인 것 같다.

이 정도로 청자에게 부정적인 경고, 책망조의 가사는 개인적으로 딴 데서는 주찬양 1집 “참 소경” 정도밖에 못 봤다.
“(말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를 못 하는 사람이 벙어리, 앞 못 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소경 등등등~) 당신은 소경이 아닌가 / 당신은 병신이 아닌가” 이런 가사이다.;; 이건 가사가 노래 없이 시의 형태로 먼저 존재했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나저나 영어 찬송가는 tell과 롸임을 맞춰서 hell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 “웬일인가..”뿐만 아니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도 딱 저 롸임이 존재한다~!

4.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이 유명한 찬송가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지금의 형태로 완성됐기 때문에 내력이 좀 복잡한 곡이다. 깔끔하게 단일 작사자나 작곡자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원곡은 스웨덴 민요 멜로디에다가 언어조차도 영어가 아니었다고 한다. 독일어와 러시어 가사부터 먼저 있다가 나중에 영어 번역이 몇 가지 나왔으며, 가사는 3절까지 있던 것이 추후에 4절이 추가됐다.
이 때문에 이 곡은 처음 1, 2절은 자연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 8편 같은 분위기이지만 3절은 "살아 계신 주" 같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 얘기, 그리고 4절은 무려 재림 얘기까지 기독교 교리가 두루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엔 1949년작 영어 가사가 채택되어 있다. 이거 가사를 번역한 사람이 4절을 추가하고 멜로디를 개작도 한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은 연식에 비해 최종 작사· 작곡 연도가 2차 세계 대전까지 지난 굉장한 현대라고 기재되어 있다.
게다가 영어 가사만 바리에이션이 있는 게 아니다. 한국어 번역도. 가톨릭 쪽 번역과 개신교 쪽 번역이 서로 나뉜 상태이다.

이 곡의 영어 가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2절에서 "그랜저"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grandeur는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의 이름으로나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웅장함, 장관' 이런 뜻을 지닌 보통명사이기 때문이다. When I look down from lofty mountain grandeur.. 그랜저가 저렇게 쓰인 걸 본인도 난생 처음 봤다.

그랜저는.. 한때 지존파의 살생부에 이 차의 차주가 올라가 있을 정도였고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랜저로 답했습니다" 이런 정신나간 CF도 만들어졌을 정도로 고급차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그랜저가 30년 전만치 고급차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도 여전히 아무나 탈 수 있는 서민형 차는 아니다.

5. 샤론의 꽃 예수

멜로디가 굉장히 예쁜 곡답게, 현대에 속하는 1920년대에 발표된 곡이다.
얘는 4개의 절로 된 가사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결교의 4대 강령과 순서대로 대응하는 것 같다. 중생, 성결, 신유, 재림. 그래서 신유에 해당하는 3절을 보면 얘는 찬송가 중에서는 흔치 않게 “질병을 고쳐 주소서”라는 간구가 들어있다~!

아울러, 영어 가사는 똑같이 my life이지만 1절은 중생(거듭남)이라는 갓 구원 문맥이기 때문에 “내 생명”이고, 2절은 그 뒤의 성화되어 가는 모습(성결) 문맥이기 때문에 “나의 삶”인 것도 주목해 보자.
아 2:1 rose of Sharon은 ‘무궁화’라고 통용되는 단어인데.. 정작 무궁화를 국화로 쓰고 있는 나라에서는 장미나 무궁화도 아니고 수선화라고 더 널리 알려져 있다. ㅎㅎ

이렇듯, 어떤 찬송가는 아주 원론적이고 무난한 메시지만 있는 게 아니라 특정 노선이나 교파의 교리를 좀 더 부각시킨 경우도 있다. 이러니 종말이나 천국을 소재로 한 찬송가는 가사를 쓰기가 난감해진다.

그런데.. “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이 거역하는 인생을 은혜로 택했네 … 자랑하지 않게 함이요, 하나님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 요 곡은..
개신교/기독교라면 차이가 존재할 리가 없는 구원과 은혜라는 공통 교리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예정론 냄새가 같이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꼭 장로교가 아니어도 크게 신경 안 쓰고 부르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1/07/30 08:33 2021/07/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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