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절도와 강도

남의 물건을 몰래 슬쩍 하는 절도(도둑)하고, 남을 폭력으로 위협해서 물건을 빼앗는 강도 중에 어느 게 더 나쁜 범죄일까? 오늘날의 관점에서야 후자라는 것에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 특히 중세 서양 말이다. 결투와 린치라는 게 관습상 허용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근성과 깡 의지드립", "이기든지 죽든지" 기사 내지 무사의 사고방식이 훨씬 더 강했던 살벌한 시절엔 관점이 좀 다르기도 했다.

강도는 당당하게 남을 대면하는 수고라도 감내해서 물건을 빼앗은 것이지만 절도는 남이 안 보는 데서 물건을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더 비열하고 치사하다..;; 그러니 절도가 더 나쁘다. 엥..??
물론 피해자가 저항하다가 죽거나 다치기까지 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고 가정할 때 말이다.

오죽했으면 서양, 특히 영국에서는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전쟁터에서 잠수함이나 저격수조차 신사답지 못한 치사한 전술이라고 깠다. 그 심정이 이해된다.
옛날에 스파르타에서는 애들한테 일체의 보급을 안 줘서 도둑질까지 조장하는 극한의 생존 훈련을 시켰는데.. 훈련생이 배가 고파서 민가에 침입해 음식을 훔쳐 먹다가 걸리면 물론 벌을 받았다. 그런데 벌을 받는 이유가 도둑질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능하게 걸리고 잡혔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들도 다 "강도가 절도보다 차라리 더 정정당당하고 남자답다"=_= 사고방식의 일환인 것 같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살(단순 비관)은 여느 살인 이상의 매우 큰 죄로 간주되어 왔다. 여기에는 "자살까지 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악바리 있게 노오오오력하고 버티면 무슨 일인들 못 해? 나약해 빠져갖고 어디 부모님이 주신 생명을 감히.." 이런 괘씸죄라는 가치 판단이 가미되어 있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세상을 비관하다가 나 혼자 죽을 수는 없다면서 옛날에는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칼부림을 한 미친놈도 있었고, 차를 몰고 여의도 광장을 질주해서 사람들을 치여 죽인 아재도 있었으며.. 지하철 열차에다 확 불을 질러서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든 싸이코도 있었다. 그런 놈(강도)들에 비하면 혼자만 곱게 자살한 사람(도둑)은 오히려 선량한 게 아닌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악바리 있게 노오오오력을 삐딱하게 하면 어디서 또 무슨 사건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설마 이것마저도 도둑보다 강도가 더 낫다는 식의 논리로 실드가 가능하겠느냐 말이다.

그러니 오늘날은 범죄나 인권에 대한 관점이 과거하고는 달라졌다. 무분별한 똥군기 근성 의지드립은 심리 치료나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잘못되고 부적절한 짓으로 간주되어 지양의 대상이 됐다. 그건 욥기에 나오는 욥의 친구들의 조언처럼..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면서 잔인하고 사람 인성만 파괴하는 뻘소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강도와 도둑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살펴보는 게 문득 흥미롭게 느껴진다.

2. 묵비권

2000년대 이후에 개정됐다고는 한다만..
과거에 중공의 형사소송법은 묵비권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93조에 “범죄 혐의자는 수사관의 질문에 사실 그대로 이실직고해야 한다. 꽝~”이라고 쓰여 있었다. ㄷㄷㄷㄷ

위반 시의 처벌 규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정말 대륙의 기상이 느껴진다.
이런 사고방식에 미란다의 원칙이라든가 “형사소송에서 자백만이 피고인에게 유일하게 불리한 증거일 때는 그건 유죄 증거가 될 수 없다” 같은 사고방식이 딱히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냥 “네 이놈, 니 죄를 니가 알렷다~! / 죄를 불 때까지 죄인을 매우 쳐라”이다. =_=;;

3. 무고, 위증 등..

본인은 살인· 강간 같은 물리적인 흉악 범죄에 대해서만 사형 제도를 지지하고 "심은 대로 거둔다" 원칙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입만 뻥긋해서 짓는 죄에 대해서도 절대로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희롱 예방과 피해자의 권리 교육을 그렇게도 세뇌에 가깝게 시켰으면, 반대급부로 무고· 위증죄나 장난전화 같은 죄의 심각성과 해악을 가르치는 교육도 응당 시키고 처벌도 엄하게 해야 한다.

무고죄는 무고가 들키지 않을 경우에 억울한 피해자가 받을 형량에 비례한 벌을 받게 해야 한다.
강간을 무고한 자는 강간범에 준한 벌을 받아야 한다. 형사 처벌이 아니면 민사로라도 징벌적인 위자료를 부과해서 가해자를 쫄딱 망하게 하고 참교육 시켜야 한다. "아님 말고" 식으로 남을 무고는 절대로 못 하게 해야 한다.

이건 너무 너무 너무 너무*100 당연한 소리 아닌가..?? 요즘 성범죄자 누명은 50여 년 전의 빨갱이 누명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참 공교롭게도 중국이 사이다 같이 법을 집행한다. 무고를 당한 사람이 받아야 할 형벌을 무고를 한 사람에게 그대로 선고한댄다.;;

4. 탈옥

한편으로 독일인가 일부 외국의 법은 탈옥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이 자유를 찾아 최대한 노력하는 것 자체는 마치 전쟁터에서 군인이 적군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정당한 권리로 본다는 발상이다. 도로 잡히더라도 탈옥 기간 동안 정지됐던 나머지 형기만 살면 된다.

피고인 당사자의 자백 여부와 무관하게 검사가 먼저 증거를 찾아내고 유죄를 입증해야 하듯, 죄수가 탈옥해 버리는 것 자체는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죄수의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국가의 책임일 뿐이다. 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
단지 탈옥 과정에서 공공물자를 부수거나 교도관을 해코지 했다면 그에 대한 처벌만이 추가된다.

5. 자살, 안락사 관련

사형 제도라든가 동성애, 낙태 같은 것은 성경의 관점에서는 비교적 명확하게 답이 나와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현실 세상의 법에는 안락사라든가 자살 방조 같은 좀 미묘한 상황에 대해서 범죄의 성립 기준도 다루고 있으며, 이 기준은 각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뇌사자의 연명 치료만 중단하는 정도인 소극적인 안락사는 마취와 보험조차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아닌 한, 종교적으로도 거의 문제가 없다고 여겨진다. 그 정도면 살인이 아니라 그냥 신이 그 생명을 데려가도록 놔 주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노인은 "나는 나중에 혹시 의식을 잃더라도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하지 말고 죽게 내버려 두세요. 자식들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각서를 미리 유언처럼 써 놓고 평소에 지니고 다니기도 한다.
사실, 성경이 쓰여지던 옛날에는 애초에 그런 연명 치료 의술 자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게 법적으로 긴가민가 문제될 여지도 없었다.

그런데... 스위스인가 유럽의 어떤 나라는 "자기가 살고 싶지 않을 때, 더 추해지기 전에 존엄하게 죽는 것도 인간의 권리이다"를 확대 해석해서 굉장히 적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한다. 자살하려 하는 사람에게 방법을 추천해 주고 독약을 건네주는 것 정도는 아예 죄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안락사 시술(?)을 많이 한 모 유명 의사는 죽음의 장사꾼이라는 악명을 얻었으며, 주변 외국에서도 그리로 원정 자살(!!!)을 하러 가는 막장 사례까지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자살을 억제하려고 언어 차원에서 불필요하게 '死, 殺'자가 들어가는 단어들까지 몽땅 없애는 중이다. 자살골 대신 자책골, 사구간 대신 절연 구간, 심지어 언론에서는 자살이라는 말도 일체 안 쓰고 죄다 '극단적 선택'이라고 한다. 마포대교 같은 곳에는 몽땅 CCTV로 도배를 해 놓고 감시하며, 다리 난간에서 오랫동안 서성거리는 사람만 있으면 곧장 경고 방송을 내보내고 119 요원을 출동시킨다.

북한은 그런 거 없이 누가 자살하면 그냥 유가족에게 연대 책임을 물어 해코지를 할 뿐이다. 경애로운 장군님이 다스리는 지상락원에서 감히 자살이라니, 불경죄 괘씸죄를 유가족에게 부과시키는 셈이다. 뭐, 일본은 누가 전철에서 투신 자살을 하면 철도 회사에서 열차 지연으로 인한 손해 위자료를 유가족에게 청구하긴 하는데.. 이건 형사상의 괘씸죄는 당연히 아니고 그냥 민사상의 피해 보상일 뿐이다.
이런 것도 나라마다 법률적인 관점이 제각각인 것을 알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12 08:35 2022/01/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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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카이 2022/01/16 15:14 # M/D Reply Permalink

    고대인들의 사고 방식이 이해하기 어려운 게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가 너무 예쁘니까
    다른 사람이 자기를 해치고 사라를 빼았아갈까봐 두려워서
    아내라고 안 하고 누이라고 했었는데
    납치혼이 유목민들 사이에서 널리 인정되는 문화였다고 해요

    칭키즈칸이 태어난 게
    아버지 예수게이가 호엘룬이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하는데
    첫눈에 반해서 납치해서 결혼을 했거든요
    그것에 대한 보복으로 칭기즈칸은 자기의 아내를
    또 납치당하게 되죠 그래서 첫째 아들이 자기 아들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었다고 해요
    2대에 걸친 비극 때문에
    몽골을 통일하고 납치혼을 금지시키죠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800-900년 전이니까
    인류의 역사가 6000년이라고 하면
    법과 제도가 발달하여 사람들이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게
    몇 백년도 안 되죠
    머 프랑스 수학자 갈루아 같은 경우는 200년 전인데 결투로 목숨을 잃기도 했고

    또 웃기는 게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로 쳐들어가서 다리우스와 대결 전에
    다리우스가 훨씬 더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적전 회의 중에 어떤 부하 장수가
    우리가 수가 적으니 밤에 기습을 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알렉산더가 하는 말이
    나 알렉산더는 승리를 밤에 훔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고 해요

    납치해서 결혼하고 목숨 걸고 결투하는 것은 남자다운 거고
    밤에 기습을 하는 건 비겁해서 남자답지 못하다는 건가?






    법의 존재 목적이
    개인간의 사적 보복을 허용하면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되어서
    공멸할 수 있으니까
    그걸 국가가 대신 공정하게 처리해서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인데

    요즘 인권이 너무 발달하다보니까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하고 가해자의 인권만 챙겨주는 거 같아요
    조두순 출소했는데
    얼마전에 어떤 사람이 조두순 집에 쳐들어가서 조두순과 싸웠다고
    이미 합법적으로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국가 권력도 아니고 개인이 공격을 하는 것은
    이게 법대로 원칙대로만 하면 그 사람이 분명히 잘못한 거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또라이들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국가가 가해자의 인권만 챙겨서 공의가 지켜지지 않으니까
    저를 포함하여 대중들이 그런 마음을 품게 되는 거겠죠

    살인범과 아동성폭행범에 대하여
    대통령이 긴급명령, 계엄령을 발동해서
    한 번 싹 청소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1. 사무엘 2022/01/17 02:09 # M/D Permalink

      그러니 어떤 행동이 법적으로 합법인지 범죄인지 판단하는 잣대는 시대와 장소, 문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게 있는가 하면, 그래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문화에서나 절대적으로 죄인 것도 있는 듯합니다.

      단지 옛날에는 더 억세고 호전적이고 의지드립 강조하고 "안 되면 되게 하라, 이기든가 죽어라" 관념이 더 강했지만, 지금은 실리와 인권을 더 따지고, "무의미한 희생을 하지는 마라, 살아서 돌아오기라도 해라 / 처벌보다는 교화" 쪽으로 바뀌긴 한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인권이라는 게 정말 이상하게 반대편 극단으로 적용되어서 피해자보다 가해자 인권을 지나치게 많이 챙기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강력한 처벌이 무서워서 범죄가 억제되는 효과라는 게 절대로 무시 가능한 게 아닌데..
      사형 집행을 안 하는 것도 사형 집행을 잘못 하는 것과 완전히 동급의 인권 유린인데.. 왜 이런 걸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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