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여행기가 5부작으로 올라오는 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서 8월이 다 지났다. 말복과 입추를 넘어 광복절도 지났지만 폭염과 열대야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올해는 적어도 서울· 수도권 한정으로는 심한 태풍이나 폭우 없이 여름이 무난히 지나간 것 같다. 그렇다고 가뭄도 아니고, 2주에 한 번꼴로 잊을 법하면 비가 내리기도 했으니 참 다행이다. 전력 부족 사태도 없었다.
이 글에서는 본인이 강원도 여행 이후에 8월 동안 개인적으로 행한 여가 생활을 늘어놓도록 하겠다.
1. 호박 호박 호박..!
8월 12일, 올해 갓 수확된 호박이를 가락시장에서 드디어 입수했다. ^^ 바로 며칠 전에 물건이 들어왔다고 한다.
반갑다~!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이제 캠핑의 동반자까지 생겼다.
얘는 한두 달쯤 뒤, 동네 채소 가게에 더 큰 아이들이 들어올 때까지 관상과 힐링용으로 놔 뒀다가 죽을 쒀서 먹을 것이다.
늙은호박은 아무 상표나 포장지도 안 붙었고 원산지 표기도 없고 철 지나면 그냥 끝난다.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유통 과정이 정말 날것 그대로인 듯하다. 단호박이나 애호박하고는 취급되는 방식이 다르다.
한편, 지난번 물난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호박, 그리고 거기에다 또 새로 심은(...!) 호박은 그럭저럭 다시 잎을 내며 잘 살고 있다. 심지어 꽃도 한 송이 다시 피웠다.
앞으로 두 달 정도밖에 못 살 듯하지만, 서리 맞아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잘 자랐으면 좋겠다. ^^ 무럭무럭 자라서 저 잡초들을 잎으로 몽땅 뒤덮어 버리길..!
2. 호박 할머니
일본에 '쿠사마 야요이'라는 설치 예술가가 있는가 보다. 고령에다 세계적으로 엄청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본인은 아주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사람.. 정말 열혈 호박 매니아이구나~!!!! ^^
굉장히 야성적이며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끝없이 사로잡는다.
나, 호박 너무 좋아
호박은 나에게는
어린시절부터 마음의 고향으로서
무한대의 정신성을 지니고
세계 속 인류들의
평화와 인간찬미에 기여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호박은 나에게는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호박은 말을 걸어준다.
호박, 호박, 호박
내 마음의 신성한 모습으로
세계의 전 인류가 살고있는 생에
대한 환희의 근원인 것이다.
호박 때문에 나는 살아내는 것이다."
이야.. 백 남준에다 낸시 랭, 러버 덕을 합친 똘끼인 듯..
정신세계가 좀 특이한 할머니 같다만, 개인적으로 완전 마음에 들어 버렸다. 바로 그거야!!!
앞으로 존경해 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시의 일본어 원문을 좀 보고 싶다.
안토닌 드보르자크는 철도에 미친 작곡가였고, 쿠사마 야요이 할머니는 호박에 미친 예술가이다.
3. 서울 북부 교외의 계곡
올해 본인은 성남, 광주, 철원, 화천, 양구, 고성 등.. 동쪽으로 여행을 많이 다녀왔다.
그러나 그래도 폭염이 그칠 줄 모르니 지난 8월 18~19일 사이엔 양평· 남양주가 아니라 북쪽으로 짤막하게 피서 여행을 다녀왔다.
캠핑은 조용하고 넓은 공터 있는 일영 유원지에서 하고..
물놀이는 물이 더 맑고 깨끗하고 시원한 송추 계곡에서 했다.
이렇게 했더니 정말 대박이었다.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
며칠째 열대야에 고통 받다가.. 모처럼 텐트 창문을 닫아도 될 정도로 시원한 곳에서 캠핑이라니..
텐트 안에서 호박 쿠션은 머리에다 베고, 진짜 호박은 팔로 껴안고 잘 잤다.
집에서 막 가깝지는 않지만, 그래도 강원도 급으로 먼 것도 아니니 가끔 잊을 법하면 다녀와도 될 것 같다. 일영 유원지에서도 더 깊숙히 상류 쪽으로 가면 일영 계곡이라는 게 나오는구나. 거기도 나중에 가 봐야겠다.
그리고 저기 말고 폐역된 교외선 역 구내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 짱박하고 싶기도 하다. 가령, 일영이나 송추 같은 역에서. 그건 겨울에 시도할 만하겠다.
물놀이야 뭐.. 더운 낮에 했으면 훨씬 더 시원하고 환상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사람도 많고 주차도 훨씬 더 힘들어지니 그것 때문에 가성비가 깎인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에도 물놀이는 얼마든지 가능하니 이렇게 잠깐 들렀다 가는 게 더 나았다.
4. 지하철 정기권
올해 8월부터 서울시의 버스 요금이 크게 올라서 지금의 조조할인 요금이 인상 전의 평소 요금과 대등해졌다.;;
그런데 지하철은 나중에 더 찔끔찔끔 오를 예정인지라, 현재는 버스의 기본 요금이 지하철의 기본 요금을 추월한 상태이다.
이를 기념하여 본인은 요 한 달은 지하철 정기권을 결제하고 지하철과 노예 계약을 맺었다.
55000원으로 한 달 동안 회사와 교회를 오가는 교통비를 몽땅 해결하고도 남는 대신.. 버스 환승을 못 한다.
가락시장에서 저 늙은 호박을 사 올 때도 버스 없이 지하철만 갈아타고 많이 걸으면서 좀 애썼다.;;
지하철역에서 교회까지도 1km 남짓 되지만.. 이제 버스 없이 걸어야지.
9월에는 하순에 추석이 껴 있어서 정기권의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지금 정기권의 기한이 다한 뒤에는 그냥 일반 교통카드를 쓰다가, 10월에 지하철 요금도 오르기 직전에 또 정기권을 써 보면 어떨까 싶다. 여름이 지나면 폭염도 없어지고 슬슬 걸을 만해지니까.
그럼 올해 하반기도 파이팅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