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흑백 사진, 흑백 화면만이 더 옛날의 모습인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흐르니 이제는 컬러여도 4:3 종횡비에 저화질, JPG 깍두기 artifact, 아날로그 노이즈가 가득한 영상은 까마득한 옛날 역사의 흔적이 돼 간다. 오늘날의 초고화질 와이드 동영상에 비하면 저런 영상들이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없게 보인다.

차라리 순 아날로그 영화 필름이면 재질 차원에서 리마스터링이라도 할 수 있지만, TV 신호나 VHS 신호는 정보가 저게 전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없는 주사선 수를 무슨 수로 더 늘리겠는가? AI를 동원해서 소실된 정보를 인위로 창작해서 재구성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무튼.. 우리로서는 2002년 월드컵조차 유튜브가 없던 시절, TV가 아직 아날로그이던 시절, 20년도 더 전의 아련한 과거가 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이던 6월 29일 아침 10시 25분, 황해 연평도 부근에서는 남북 해군 간에 군인들이 피흘리고 배가 부서지는 전투가 벌어졌다. 그 당시 명칭으로는 서해교전, 현재 정정된 공식 명칭으로는 제2 연평해전이다.

1987년 6월 29일엔 민주화 선언이 있었고, 1995년 6월 29일엔 삼풍 백화점이 붕괴됐다. 그리고 2002년 6월 29일엔 저 사건이..;; 간격도 비슷하고 참 절묘하다.
제2 연평해전 때 보였던 북괴의 공격 패턴은 이랬다.

1.
모두들 잘 알다시피 우리 쪽에서 상대방을 정말 선의적으로 보고 배 옆구리까지 노출하면서 저지(차단) 기동을 했는데, 저놈들은 그때 비열하게 허를 찌르고 선빵을 날렸다.
이 일을 겪은 뒤에야 우리 측의 교전수칙이 개정되어 차단 기동이 삭제됐다.

이런 번거로운 기동 자체가 무슨 그 당시 대통령 때 처음으로 도입된 건 아니다. 하지만 1999년에 "NLL을 지키되, 우리 쪽에서 절대 먼저 공격하지 마라(강조), 나머지는 (그 번거로운) 교전수칙대로 해라" 이걸 골자로 하는 대통령 발 지시가 내려오기는 했었다.

2.
전투가 시작되자, 놈들은 기회가 되자마자 적장부터 바로 사살했다.
참수리 고속정 357의 정장이었던 윤 영하 소령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무슨 이 순신이나 넬슨 제독처럼 전투가 다 끝난 타이밍에 전사한 게 아니었다. 전투 초반에 몇 분 못 가 "저격"을 당해서 전사했다.

그는 처음엔 포탄 파편에 맞아서 다쳤고, 이때는 다시 일어나서 지휘를 계속했다. 허나, 함교가 부서지면서 자기 모습이 외부로 노출되었고, 이 때문에 조준 사격을 받고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 단순히 눈 먼 총알이나 파편에 맞은 게 아니었다.
정장이 전사했기 때문에 교전 중에 실질적인 지휘는 부정장인 이 희완 중위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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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총탄들 때문에 만신창이가 돼서 한참 나중에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의무병인 박 동혁 병장이었다. 의무병은 여느 전투원들처럼 엄폐물 뒤에 숨어서 발포만 하는 게 아니라, 부상병을 나르러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투 중에 헤드샷 맞아 즉사했건, 나중에 부상 후유증 때문에 사망했건, 이것도 평범한 사고사나 순직 정도가 아니라 당연히 전사이다.

(참고로 1996년 강릉 무장공비 때도 무려 육군 대령이 공비에게 저격을 당해 전사한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전투복의 계급장도 멀리서도 잘 보이는 선명한 색이 아니라 눈에 잘 안 띄는 검정 계열로 바뀌었다.
물론 공비 입장에서는 아무 보급도 없이 적진에서 총알을 최대한 아끼면서 최대한 중요한 인물부터 제거하는 게 마땅했을 것이다.)

3.
우리 357 고속정이 이렇게 기습 공격을 당하자, 근처의 358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북괴 684를 향해 사정없이 불벼락을 내렸다.
그러나 놈들은 배가 너덜너덜 박살나고 수십 명의 승조원들이 죽거나 다치는 와중에도 358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진짜 끝까지 집요하게 357만 때리다가 자기 배가 다 박살난 걸레짝이 된 뒤에야 간신히 예인을 받으며 퇴각했다.

이런 집념 때문인지, 우리 357 고속정은 손상과 누수가 너무 심해서 예인 도중에 결국 침몰해 버렸고, 나중에 다시 인양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위의 1~3을 한 줄로 요약하면??
북괴놈들은 자기들이 피지컬이 딸리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효율적으로 치고 빠진다. 기습하고, 기회가 생기자마자 바로 적장의 목을 날리고, 한 놈만 집중적으로. 모든 공격을 최고의 가성비를 뽑을 수 있게.. 모든 타격을 철저히 계획적으로 한다는 거다. 제1 연평해전에 대한 보복으로 제2를, 제2에 대한 보복으로 천안함을.. 이런 식으로 우연이란 없다. 아랫것들의 돌발 일탈 따위는 더욱 없다! 알겠는가?

제2 연평해전 이후로 북괴는 잠수함 어뢰나 지뢰, 아니면 아예 미사일로 신경 거슬리고 있지, 저렇게 가까이 대면해서 총포 쏘는 방식으로 도발하지는 않고 있다.
저런 전투를 겪었기 때문에 북괴는 이런 식으로 바다에서 배로 찝쩍대서는 자기들이 더 크게 다친다는 걸 알게 됐고, 더는 그런 짓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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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리 357의 영웅 같은 분들이 없었으면..?? 북괴는 계속 NLL 넘어 오고, 그 부근에서 조업하는 울나라 어선들을 수시로 나포하고 바다의 일진 양아치 짓을 계속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김씨 대통령 시절에만 해도 울나라 어선이 일본에 나포되기도 했던 거 같은데 요즘은 그런 소식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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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평해전"은 너무 엄근진한 소재를 다루는 것 대비 영화로서의 연출력 완성도는 떨어진다는 평이 있었다. 클리셰가 너무 뻔하고 진부한 채 애국심만 억지로 주입한다고 말이다.
허나, 딴 얘기는 접고.. 다 끝나서 결말부에, 살짝 하얗게 밝아진 배경으로 "그때 교전이 없었고 357 승조원들이 평소처럼 임무 마치고 복귀했다면 그 날 밤은?"을 상상한 장면은.. 정말 울컥스러웠다.

평소에 주인공을 괴롭히고 가혹행위 비스무리한 것도 저지르던 고참도, 평소에 아주 엄격하고 깐깐하게 굴던 함장도.. 다같이 TV로 축구 경기 보면서 얼싸안고 응원하는 거.. 영화로서 굉장히 적절한 연출이자 마무리였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터키의 무려 4강전 경기가 당일 저녁에 치러졌기 때문이다~! 이때는 양국의 선수 모두 제2 연평해전 전사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잠시 한 뒤에 경기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부터 3월 넷째 금요일을 '서해 수호의 날'이라고 제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날짜는 천안함 피격에서 유래되었다. 제1, 제2 연평해전에 이어 이 사건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2 연평해전 때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다가 천안함 때 전사한 분도 있으니 말이다. (박 경수 상사~!!! 1981-2010)

북괴가 황해에서 얼마나 많이 찝적댔으면 이런 기념일까지 따로 제정될 정도였겠나?
10여 년 전 박 근혜 시절엔 국군의 날 기념식이 정말 웅장하고 좋았는데, 올해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이 완전 마음에 들었다. 대통령이 제2연평해전, 천안함, 연평도 포격 때 전사한 분들의 이름을 직접 다 불렀고, "댓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 북괴가 도발하는 한 1원도 원조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언급을 했으니 완전 사이다 아닌가? 이건 진정 대통령 잘 뽑은 덕분이다.

우리나라 국군은 엄연한 정규군임에도 불구하고 북괴의 도발에는 거의 일본 자위대 수준으로 왕창 소극적인 최소한의 대응밖에 못 하고 있다. 선빵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언제나 우리가 먼저 맞은 뒤에 대응하며, 찍소리 못 하게 만들 보복도 못 한다. 여기에는 확전 예방이라든가 미국 눈치 같은 여러 정치적으로 불가피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도 핸디캡을 감수하고 불리한 여건에서 너무 신사적으로 대해 주고 있는데 천안함이고 연평해전이고 간에 뭔 패잔병이라느니 군이 무능하다느니 이딴 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일본과 북괴에 대한 잣대가 같지 않은 걸 정말 눈 뜨고 못 보며 싫어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3/10/28 08:36 2023/10/2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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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카이 2023/11/25 23:09 # M/D Reply Permalink

    지금 전쟁 중인데가 2곳이나 있는데

    북한과 실제 소규모 전투가 벌어지는 일은 625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이후에 사실 굉장히 많았었죠

    전쟁이라는 게 결국 정치의 연장이라고 하는데
    말단 부하 병사 몇 명 죽는 건 북한 입장에서 아무런 정치적 타격이 없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병사 몇 명이 전투로 죽는다고 하면 집권 여당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겠죠

    또 다른 관점에서 한반도서 소규모 국지전이 아니라
    전면전이 발생하는 걸 가장 두려워할 사람들은
    대한민국 대통령도 아니고 (해봐야 5년 밖에 못하고 임기 끝나면 감옥 갈지도 모르는)
    대한민국의 재벌들 삼성 LG 현대 등의 기업 회장도 아니고(기업 회장들 정치권력이 없으니 맨날 잡혀서 재판 받음)
    가장 많은 걸 가지고 있고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김정은과 평양 집권 세력이라고 하죠

    아주 오래전에 무슨 어디 대자보에
    "안녕들 하십니까?"이런 말이 있었는데
    우리민족 반만년 역사에서 그나마 지금 처럼 안녕하고
    풍요로웠던 적이 있을까 하네요

    전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날만한 곳이
    이스라엘 지역, 러시아 우크라니아, 또 대만, 한반도 이렇게 되는 거 같은데
    2곳은 이미 전쟁중이고
    대만의 경우는 중공군이 쳐들어온다고 하면 상륙 작전이 군사작전들 중에서 정말 어려운 거라고 들었는데 또 거기다가 중국인들은 역사적으로 대규모 상륙작전을 해본 경험도 없어서 대규모 전면전이 발생하기는 쉽지 않을 거 같네요
    한반도는 사실 전면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죠
    세계 최강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니까요
    미국 상대로 깝칠 나라가 있을까요?

    북한군은 휴전선까지 탱크가 굴러올 기름이나 있을려나 모르겠네요
    위협이 될 만한 게 장사정포인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휴전선과 별로 멀지 않아서
    전쟁이 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니 그런 말도 있었죠

    그런데 사실 진짜 전쟁이 난다고 하면
    북한 포병부대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을까요?
    딜레마에 빠지게 되겠죠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는 걸 타격해야지
    자신들의 포병 전력을 전략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서울의 콘크리토 아파트에 쏟아버리면
    한국군과 미군은 아무런 타격없이 북한 포병을 반격할 수 있게되고

    북한 포병들이 한국군의 핵심 전력을 노리기에는
    정확도가 너무 떨어져서
    포탄, 포 등 정비가 제대로 안 되어서 불량이 많겠죠

    땅굴관련해서는
    예전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알아봤었는데
    북한의 땅굴 기술은 지네들 수도인 평양에서 대동강을 횡단하는 지하철도 만들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해요
    땅굴이 대한민국 후방까지 대한민국에 걸리지 않고 몰래 뚫려있다는 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아무리 인력을 갈아 넣어도(북한이 유일하고 잘 하는 거)
    기술이 없어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죠

  2. 신세카이 2023/11/25 23:19 # M/D Reply Permalink

    혹시나 땅굴이 있다고 해도
    베트남전 같은 옛날이랑 다른 게 요즘은 초정밀 미사일이 발달했고
    일반 재래식 폭탄에 GPS를 부착하여 비싼 미사일이 아니더라도
    값싼 폭탄으로 초정밀 타격을 할 수 있고
    헬기의 성능도 과거랑 비교가 안 되게 발달되어서 땅굴의 입구만 포격해도
    끝나버리고
    강릉무장공비 침투같은 거 요즘이면 한국군이 보유한 아파치 헬기에서
    기관포나 미사일만 쏴도 금방 끝나버릴 거에요

    중공군의 대만 침략은 그 자체로 어려운 것 말고도
    국제정치적인 문제가 있는데
    중국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와 분쟁을 해서 적이 너무 많기에
    중국의 군사력이 대만을 향해 모두 몰리면
    인도나 베트남이 눈치를 보고 있다가 육지에서 중국을 공격할지도 모르고
    또 바다에서는 일본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만약에 한반도나 대만에서 전쟁이 난다고 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이나 북한의 정치인들이 바보가 아니기에
    그렇게 큰 리스크를 감당 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네요

    1. 사무엘 2023/11/27 09:31 # M/D Permalink

      반갑습니다. 여러 주제를 거론하셨네요. ^^
      민주주의에 자유와 인권 챙기고 다 개방하는 체제의 국가가 있는가 하면,
      1인 독재 체제에서 검열하고 탄압하는 전체주의 국가도 있습니다.

      당장은 전자가 정치판이 시끌시끌 잡탕 같고 비효율적이고, 일 하나 벌이자면 챙겨줘야 할 것도 많고 제대로 못 돌아갈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주변에도 선한 영향을 끼친 진영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일 겁니다.

      안보라든가 경제 개발 같은 예외적이고 특수한 목적을 위해 잠시 후자 흉내를 냈던 나라라도.. 궁극적으로는 전자로 전환을 지향해야겠지요. 우리나라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풍요로워졌어도 상대적 빈곤 운운거리면 뭐 답이 없을 겁니다.;;

      2차 대전 이후에 그나마 평화 평화 거리면서 열강들이 서로 대놓고 싸우지는 않게 됐습니다만, 이 구도가 앞으로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북괴는 재래식 병력으로는 승산이 없고, 게다가 남한이 먼저 쳐들어올 일도 절대 없을 테니 그쪽은 더욱 아오안인 것 같습니다. 그 대신 비대칭 무기에만 목숨 거는 중..
      북한을 원조하고 도와주더라도 핵 미사일 기지 폭격도 병행하면서 도와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고 화근을 저렇게 키워 버리니 평화통일은 더욱 물건너 갔습니다.

      요즘 세상에 남침 땅굴이야.. ㅎㅎ 만에 하나 돈과 인력이 남아돌아서 판다고 해도 전방 여러 곳에 산발적으로 짤막한 놈을 파지, 무슨 후방까지 장거리는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전혀 현실성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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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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