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흑백 사진, 흑백 화면만이 더 옛날의 모습인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흐르니 이제는 컬러여도 4:3 종횡비에 저화질, JPG 깍두기 artifact, 아날로그 노이즈가 가득한 영상은 까마득한 옛날 역사의 흔적이 돼 간다. 오늘날의 초고화질 와이드 동영상에 비하면 저런 영상들이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없게 보인다.

차라리 순 아날로그 영화 필름이면 재질 차원에서 리마스터링이라도 할 수 있지만, TV 신호나 VHS 신호는 정보가 저게 전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없는 주사선 수를 무슨 수로 더 늘리겠는가? AI를 동원해서 소실된 정보를 인위로 창작해서 재구성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무튼.. 우리로서는 2002년 월드컵조차 유튜브가 없던 시절, TV가 아직 아날로그이던 시절, 20년도 더 전의 아련한 과거가 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이던 6월 29일 아침 10시 25분, 황해 연평도 부근에서는 남북 해군 간에 군인들이 피흘리고 배가 부서지는 전투가 벌어졌다. 그 당시 명칭으로는 서해교전, 현재 정정된 공식 명칭으로는 제2 연평해전이다.

1987년 6월 29일엔 민주화 선언이 있었고, 1995년 6월 29일엔 삼풍 백화점이 붕괴됐다. 그리고 2002년 6월 29일엔 저 사건이..;; 간격도 비슷하고 참 절묘하다.
제2 연평해전 때 보였던 북괴의 공격 패턴은 이랬다.

1.
모두들 잘 알다시피 우리 쪽에서 상대방을 정말 선의적으로 보고 배 옆구리까지 노출하면서 저지(차단) 기동을 했는데, 저놈들은 그때 비열하게 허를 찌르고 선빵을 날렸다.
이 일을 겪은 뒤에야 우리 측의 교전수칙이 개정되어 차단 기동이 삭제됐다.

이런 번거로운 기동 자체가 무슨 그 당시 대통령 때 처음으로 도입된 건 아니다. 하지만 1999년에 "NLL을 지키되, 우리 쪽에서 절대 먼저 공격하지 마라(강조), 나머지는 (그 번거로운) 교전수칙대로 해라" 이걸 골자로 하는 대통령 발 지시가 내려오기는 했었다.

2.
전투가 시작되자, 놈들은 기회가 되자마자 적장부터 바로 사살했다.
참수리 고속정 357의 정장이었던 윤 영하 소령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무슨 이 순신이나 넬슨 제독처럼 전투가 다 끝난 타이밍에 전사한 게 아니었다. 전투 초반에 몇 분 못 가 "저격"을 당해서 전사했다.

그는 처음엔 포탄 파편에 맞아서 다쳤고, 이때는 다시 일어나서 지휘를 계속했다. 허나, 함교가 부서지면서 자기 모습이 외부로 노출되었고, 이 때문에 조준 사격을 받고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 단순히 눈 먼 총알이나 파편에 맞은 게 아니었다.
정장이 전사했기 때문에 교전 중에 실질적인 지휘는 부정장인 이 희완 중위가 맡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눈 먼 총탄들 때문에 만신창이가 돼서 한참 나중에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의무병인 박 동혁 병장이었다. 의무병은 여느 전투원들처럼 엄폐물 뒤에 숨어서 발포만 하는 게 아니라, 부상병을 나르러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투 중에 헤드샷 맞아 즉사했건, 나중에 부상 후유증 때문에 사망했건, 이것도 평범한 사고사나 순직 정도가 아니라 당연히 전사이다.

(참고로 1996년 강릉 무장공비 때도 무려 육군 대령이 공비에게 저격을 당해 전사한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전투복의 계급장도 멀리서도 잘 보이는 선명한 색이 아니라 눈에 잘 안 띄는 검정 계열로 바뀌었다.
물론 공비 입장에서는 아무 보급도 없이 적진에서 총알을 최대한 아끼면서 최대한 중요한 인물부터 제거하는 게 마땅했을 것이다.)

3.
우리 357 고속정이 이렇게 기습 공격을 당하자, 근처의 358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북괴 684를 향해 사정없이 불벼락을 내렸다.
그러나 놈들은 배가 너덜너덜 박살나고 수십 명의 승조원들이 죽거나 다치는 와중에도 358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진짜 끝까지 집요하게 357만 때리다가 자기 배가 다 박살난 걸레짝이 된 뒤에야 간신히 예인을 받으며 퇴각했다.

이런 집념 때문인지, 우리 357 고속정은 손상과 누수가 너무 심해서 예인 도중에 결국 침몰해 버렸고, 나중에 다시 인양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위의 1~3을 한 줄로 요약하면??
북괴놈들은 자기들이 피지컬이 딸리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효율적으로 치고 빠진다. 기습하고, 기회가 생기자마자 바로 적장의 목을 날리고, 한 놈만 집중적으로. 모든 공격을 최고의 가성비를 뽑을 수 있게.. 모든 타격을 철저히 계획적으로 한다는 거다. 제1 연평해전에 대한 보복으로 제2를, 제2에 대한 보복으로 천안함을.. 이런 식으로 우연이란 없다. 아랫것들의 돌발 일탈 따위는 더욱 없다! 알겠는가?

제2 연평해전 이후로 북괴는 잠수함 어뢰나 지뢰, 아니면 아예 미사일로 신경 거슬리고 있지, 저렇게 가까이 대면해서 총포 쏘는 방식으로 도발하지는 않고 있다.
저런 전투를 겪었기 때문에 북괴는 이런 식으로 바다에서 배로 찝쩍대서는 자기들이 더 크게 다친다는 걸 알게 됐고, 더는 그런 짓을 하지 않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수리 357의 영웅 같은 분들이 없었으면..?? 북괴는 계속 NLL 넘어 오고, 그 부근에서 조업하는 울나라 어선들을 수시로 나포하고 바다의 일진 양아치 짓을 계속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김씨 대통령 시절에만 해도 울나라 어선이 일본에 나포되기도 했던 거 같은데 요즘은 그런 소식은 없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연평해전"은 너무 엄근진한 소재를 다루는 것 대비 영화로서의 연출력 완성도는 떨어진다는 평이 있었다. 클리셰가 너무 뻔하고 진부한 채 애국심만 억지로 주입한다고 말이다.
허나, 딴 얘기는 접고.. 다 끝나서 결말부에, 살짝 하얗게 밝아진 배경으로 "그때 교전이 없었고 357 승조원들이 평소처럼 임무 마치고 복귀했다면 그 날 밤은?"을 상상한 장면은.. 정말 울컥스러웠다.

평소에 주인공을 괴롭히고 가혹행위 비스무리한 것도 저지르던 고참도, 평소에 아주 엄격하고 깐깐하게 굴던 함장도.. 다같이 TV로 축구 경기 보면서 얼싸안고 응원하는 거.. 영화로서 굉장히 적절한 연출이자 마무리였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터키의 무려 4강전 경기가 당일 저녁에 치러졌기 때문이다~! 이때는 양국의 선수 모두 제2 연평해전 전사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잠시 한 뒤에 경기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부터 3월 넷째 금요일을 '서해 수호의 날'이라고 제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날짜는 천안함 피격에서 유래되었다. 제1, 제2 연평해전에 이어 이 사건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2 연평해전 때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다가 천안함 때 전사한 분도 있으니 말이다. (박 경수 상사~!!! 1981-2010)

북괴가 황해에서 얼마나 많이 찝적댔으면 이런 기념일까지 따로 제정될 정도였겠나?
10여 년 전 박 근혜 시절엔 국군의 날 기념식이 정말 웅장하고 좋았는데, 올해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이 완전 마음에 들었다. 대통령이 제2연평해전, 천안함, 연평도 포격 때 전사한 분들의 이름을 직접 다 불렀고, "댓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 북괴가 도발하는 한 1원도 원조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언급을 했으니 완전 사이다 아닌가? 이건 진정 대통령 잘 뽑은 덕분이다.

우리나라 국군은 엄연한 정규군임에도 불구하고 북괴의 도발에는 거의 일본 자위대 수준으로 왕창 소극적인 최소한의 대응밖에 못 하고 있다. 선빵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언제나 우리가 먼저 맞은 뒤에 대응하며, 찍소리 못 하게 만들 보복도 못 한다. 여기에는 확전 예방이라든가 미국 눈치 같은 여러 정치적으로 불가피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도 핸디캡을 감수하고 불리한 여건에서 너무 신사적으로 대해 주고 있는데 천안함이고 연평해전이고 간에 뭔 패잔병이라느니 군이 무능하다느니 이딴 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일본과 북괴에 대한 잣대가 같지 않은 걸 정말 눈 뜨고 못 보며 싫어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3/10/28 08:36 2023/10/28 08:36
, , , ,
Response
No Trackback , 3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24

1.
미드웨이 다음으로 "남자들의 야마토"(2005) 영화를 보니 뭔가 참 짠하다.
야마토 급 전함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군이 운용했던 초대형 군함으로, 항공모함이 아니라 함포만 쏘는 전함 중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배였다. 거의 타이타닉의 군함 버전과 비슷하달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3년 전, 미드웨이 시절엔 일본군도 항공모함들을 운용하면서 비행기 날리고 미군을 굉장히 악랄하게 괴롭혔었다. 그러나 미드웨이, 과달카날, 레이테 만 등의 전투에서 연달아 패하면서 그들은 그 병력을 다 날려먹었다.

1945년 4월, 야마토는 아군을 지원하러 오키나와로 가던 중, 아군 비행기 한 대 없이 기관총과 함포나 찍찍 갈기면서 100여 기나 되는 미군 날파리 비행기들을 힘겹게 상대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다가 어뢰와 폭탄을 잔뜩 맞고 장렬하게 박살나 버림으로써 인류의 전쟁사 전체를 통틀어 불멸의 안습한 이름을 남겼다.

미드웨이 시절에는 미국 어뢰가 불발 불량이 많았었던 반면.. 야마토 때는 그렇지 않고 펑펑 잘도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어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시정하고 수학· 과학을 동원해서 시스템을 개선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저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은 물자 생산량이 늘고 공장 근로자와 병력의 숙련도가 올라갔다. 그 반면, 일본은 국가 인프라가 망가지고 사람과 물건의 질이 떨어지고, 전쟁을 더 지속할 수 없는 막장 상황으로 치달았다.

2.
사실, 야마토의 마지막 임무는 애초에 아무 승산 없고 꿈도 희망도 없는 개죽음 임무였다.
하지만 천황 폐하께서 "그럼 이제 군함은 더 없는 건가?"라고 물으시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는 개뿔, 야마토도 남김없이 옥쇄시켜야 해군 수뇌부들의 가오가 선다. 그래서 "오키나와에 가서 뼈를 묻으라" 명목으로 출격한 것이었다.

미군의 정찰기와 잠수함들은 야마토가 움직이는 걸 곧장 다 파악해 버렸다. 야마토 운전실에서조차 "이제 뭐 경로를 훼이크 칠 필요도 없겠군. 오키나와로 직선 거리로 가도록 한다. 변침 실시~" (정찰기한테 발포한 뒤) 이렇게 대응했다.

그 뒤 전투 과정에서 기적 같은 건 없었다. 야마토는 목적지에는 당연히 못 가고 격침됐다.
야마토에서 3천여 명(전체 승조원의 90% 이상), 호위하던 아군 구축함과 경순양함의 승조원까지 포함해서 4200명에 달하는 자국 군인들이 전사했다.
그 동안 야마토가 총포 쏴서 필사적으로 떨군 미군 비행기는 딱 13대요, 미군의 전사· 실종도 딱 13명이었대나 어쨌대나.. 우금치 전투를 조선 동학뿐만 아니라 일본 해군도 치른 거나 마찬가지였다.

3.
이 야마토는 타이타닉보다 더 큰 덩치에(약간만 더 큼) 당시 일본 국가 예산의 무려 2%를 소모해서 만든 미친 물건이었다.
(참고로 1960년대에 미국이 인간을 어떻게든 쏘비에트보다 먼저 달에 보내려고 NASA에다가 매년 꼬라박았던 돈지랄이 자기네 정부 예산의 1~3% 그랬었음)

야마토는 자국의 최고 과학 기술에, 돈지랄에, 자존심이 몽땅 동원된 최고의 기함이었다. 일반 촌뜨기들이 보기엔 가히 SF 급의 기계가 아니었을지? 승조원은 무려 3천 명을 넘었으며, 때문에 이 승조원들에 대한 복리후생도 단연 최고였다.
1940년대엔 자국 국민들이 배급이 부족해서 쪼들리고, 동남아로 간 육군 땅개들이 쫄쫄 굶으면서 개고생 하고 괴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야마토에서는 그 와중에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쌀밥에 고기 통조림과 과일이 배급됐다.

얘는 배 크기에 걸맞게 함포도 거대했다. 1.5톤짜리 포탄을 쏜 주포의 사정거리가 무려 40km에 달했다. 포의 구경이랑 장갑의 두께가 다 비슷하게 400mm대였다는 게 흥미롭다. 참고로 나치 독일의 구스타프 열차포는 구경이 800mm..;; 비슷하게 정신나간 괴물이었다.

허나, 야마토는 배를 너무 크게 만든 게 계륵이 돼 버렸다.;; 한창 싸워야 할 때는 전투력 보존 차원에서 야마토 호텔짓을 너무 오래 하다가.. 나중에 지원 유닛을 다 잃은 뒤에야 너무 늦게 투입되었다.
그리고 승조원들 복지는 최고였지만, 급탄이나 조준 등 전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설비는 미국 군함 대비 많이 낙후하고 기술이 딸렸던 듯하다.

야마토는 건조되던 당시부터 전함으로 만들지 항공모함으로 만들지가 해군 수뇌부의 고민거리였다고 한다. 이때도 실용적인 이유보다는 높으신 분들의 간지 체면 명분이 개입해서 전함이 선택됐던 듯하다. 그 시절에 전함이냐 항모냐 하는 고민은 IT 업계에서 웹이냐 모바일이냐, 무슨 플랫폼이 뜨냐 하는 고민의 20세기 초중반 군대 버전이었지 싶다.

4.
타이타닉 호가 동형함/자매함으로 브리타닉과 올림픽이 있었듯, 야마토도 1호인 야마토 이후로 '시나노'와 '무사시'라는 이름의 자매함이 있었다.

나중에 건조된 '무사시'는 1944년 가을의 레이테 만 해전에서 직싸게 얻어터지고 원조 '야마토'보다 먼저 격침 당해 없어졌다. 그래도 이 배는 물이 새면서 곱게(?) 침몰했으며, 승무원들도 전투 후에 모두 갑판 위에 모인 채로 곱게(?) 퇴함하고 구조될 수 있었다. 비록 전투 중에는 주변이 생지옥이었더라도 말이다.

그 반면, 야마토는 끝까지 남겨져 있다가 더 외롭고 더 처참하게 부서졌다. 침수 때문에 곱게 침몰한 게 아니라 배가 옆으로 완전히 자빠졌으며, 이때의 충격 때문인지 탄약고까지 유폭해 버렸다.
그야말로 천지가 다 울리는 굉음과 불기둥이 발생하면서 야마토는 무슨 타이타닉처럼 둘로 쪼개져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상당수의 승조원들은 자기 위치에서 퇴함 명령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채 몰살 당했다. 오죽했으면 그 대폭발 후폭풍에 휘말려서 삐끗거리고 추락한 미군 함재기도 있었을 정도이니.. 마지막 순간까지 적과 동귀어진을 하긴 했다. -_-;;

참고로, 야마토 급 전함 중에서 딱 하나 '시나노'는 전함으로 만들던 중에 유일하게 항공모함으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하지만 1944년 11월, 취역한 지 겨우 9일 뒤에 구레 기지로 이동하던 중에 미군 잠수함 겨우 한 척으로부터 어뢰 4발을 맞고 격침당해 버렸다. 수많은 함재기들로부터 다구리 당한 것도 아닌데, 제대로 비행기 하나 못 띄워 보고 생을 마감했다.

얼마나 돈 많이 쓰고 고생해서 그 큰 배를 만들었을 텐데, 최후가 다들 이랬다. 그나마 '무사시'가 제일 평범한 최후인 것 같고 '시나노'는 너무 황당하고 허무하다. 제일 마지막에 제일 처절하게 죽은 '야마토'가 제일 주목받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어 보인다.
(여담이지만, 타이타닉과 야마토는 해저 탐사를 통해 잔해가 발견된 시기도 1985년 7~9월대로 비슷하다. ㄲㄲㄲㄲㄲㄲ)

5.
이런 사연이 있으니, 일본에서는 영원한 자기들 국뽕인 러일 전쟁 쓰시마 해전 영화뿐만 아니라 반대로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해전 영화도 만들었구나 싶다. 그것도 2005년, 종전 60주년 기념 명목으로 말이다. 오늘날은 그런 큰 전함을 만들 일 자체가 없어졌으니 더욱 추억 돋는 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히로시마 현 구레 시에 있는 해사 역사 과학관에는 야마토 전함의 1/10 크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야마토~! 왕년에 자기들이 만들었던 왕창 큰 전함을 잊을 수가 없다.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만도 하다.
그래서 쟤들은 창작물에 은하철도 999만 있는 게 아니라 우주전함 야마토도 있다. 전쟁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정서적으로 도저히 상상이 안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일본인에게 야마토는 한국인에게 거북선과도 같은 존재이다. ㅡ,.ㅡ;;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도 "우주전함 야마토"를 따라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1979)이라는 애니를 만들다는 걸 생각해 보자. 서로 자기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군함인 것이다.;;

또한, 일본 해군은 육군과 달리, 조선인 강제 징용이라든가 현지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 범죄와 접점이 (거의) 없다. 바다에서 미군 함재기들을 상대한 일본 해군 수병 중에 조선인이 있었다거나 한 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울나라의 손 원일이니 심지어 신 성모니.. 하는 사람들도 다 그냥 상선사관 출신이지, 일본 해군 출신.. 이딴 커리어 전혀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야마토를 그리워하는 것 자체를 뭐 군국주의 전쟁 범죄 미화 급으로 불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 봤자, 나라 등골을 짜내서 만든 배가 저렇게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사라졌구만.. 그거 만들고 운영할 돈으로 차라리 다른 경제 발전이나 도로· 철도 건설, 자국민들 복지를 하는 게 결과적으로 더 나았을 것이다.. -_-;;;
쓸데없이 남의 나라 침략하고, 그걸 저지하는 강대국들한테 개기느라 더 손해 보고 쪽박 찼다.

영화는 나름 고증 훌륭하고 그 시절 재현을 객관적으로 잘한 것 같다. 심지어 정신주입봉으로 후임들 줘 패는 씬도 들어가 있다. 적인 미군 쪽은 그저 비행기로 야마토를 때리기만 할 뿐, 딱히 사람 출연이나 대사가 없는 것 같다.

※ 관련 무기 발전사 여담

(1) 해군
전근대 시절엔 해군· 수군이라는 건 아주 위험한 보직으로 여겨지고 엄청난 기피 대상이었다. 군인과 뱃사람의 믹스인데 일이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땅도 아니고 바다에서 죽어서 가라앉으면 시체도 못 찾는다. 그러니 험악하고 질 낮은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해군만 그 정도로 독보적으로 열악한 건 아니다. 열악하고 시체 못 찾는다는 독보적인 특징은 일반 배가 아니라 잠수함 정도로 넘어간 듯하다.
어느 나라건 해군은 육군과 다른 흰색 아니면 남색(네이비색)의 뽀대 나는 전투복을 입고, 문화와 관습이 뭔가 다른 게 있다. 일단 육지 야전에 맞춰진 위장을 전혀 할 필요 없으니, 전투복 색깔이 완전히 다르긴 하겠다. ㄲㄲㄲㄲ

단, 요즘은 해군이 배 타고 있는 중에는 저녁에 쉴 때도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는 점이 육· 공군 대비 큰 단점이 돼서 병 복무를 기피할 지경이 됐다고 한다. 우와 이건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 했네..;;

(2) 거함거포주의
야마토 전함은 '거함거포주의'에 종지부를 찍은 예시라고 역덕 밀덕들한테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까지는 해전이란 게 배끼리 총포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러일 전쟁이나 1차 대전). 그러니 배를 크게 만들어서 멀리 항해하고, 포도 강하고 사정거리 길게 하는 게 장땡이었다.

그러나 포를 아득히 능가하는 병기인 비행기와 미사일이 발명되면서 배는 민간 상선과 군함을 불문하고 예전보다 작아지게 됐다. 타이타닉 같은 대형 장거리 여객선이 없어졌고, 군사에서도 대형 전함이 퇴출된 것이다. 이건 마치 PC통신이 인터넷에 밀려 없어진 것만큼이나, 재래식 갑옷이 총 앞에서 퇴출된 것만큼이나, 재래식 공성전이 퇴출된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배가 비행기를 직접 품든지. 떠 다니는 공항인 항공모함만이 왕창 거대하다. 그리고 얘는 잠수함이나 상륙함처럼 군 전용이다.
일본은 항공모함이고 레이더고간에.. 처음엔 자기들이 먼저 도입해 놓고는 그걸 제대로 끝까지 활용을 못 했다.

(3) 공작함
옛날 2차 세계 대전 시절에는 공작함이라는 게 있어서 전투 중 손상을 입은 군함을 현지에서 즉석 수리를 했다. 의무병의 선박 버전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일본이 태평양 전쟁 당시에 딱 한 대 운용했던 아카시 공작함은 배에다가 간이 제철소 조선소를 얹은 수준이었다. 얘는 멀리 나가 있던 자기네 군함들을 현지에서 수리함으로써 전투력 유지에 큰 도움을 줬다.

그러나 오늘날은 미사일 한 방 제대로 맞기만 하면 그대로 수리 불가 격침이다. 그렇잖아도 배가 예전처럼 크지도 않으니..
이 때문에 공작함이라는 것도 유행이 지나고 퇴출됐다. 기존 군수지원함에다가 아주 경미한 파손이나 수선하고 부품을 교체하는 정도이지, 제철소 조선소 마이너 버전 급의 전용 공작함을 운용하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전근대 시절엔 무기가 화력이 약했기 때문에 바다에서도 사람끼리만 총질 칼질이지, 배는 그냥 나포했었는데 말이다. 참 격세지감이다. 배에 불이 나면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까지도 나서서 불 끄는 걸 거들었다. 나포해야 할 적선이 통째로 사라지면 자기들도 손해니까..

아까 얘기했던 저 아카시 공작함은 미군의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제거 대상이었다. 1944년 3월에 진작에 격침 당했으며, 얘가 없어진 뒤부터 일본 해군의 전투력은 실제로 유의미하게 하락했다.

(4) 항공모함
핵무기와 미사일, 제트기가 2차 세계 대전 말미에 첫 등장했다면, 항공모함이라는 건 1차 대전 말미에 첫 등장해서 전간기 때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복엽기가 배 위에서 뜨고 내리는 광경이 극히 드물게나마 있긴 했다는 뜻이다.
그때는 이 분야가 최초로 개척되고 있었으니 반은 전함 포탑이고 반은 활주로인 '항공전함'이라는 것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할이 어중간한 짬뽕이니 그런 건 폐기되고 역할이 세분화 전문화됐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잠수함에다가 항공모함의 기능을 얹을 생각을 했었다. 허나, 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그런 건 영 무리.. 이제 잠수함은 비행기가 아니라 미사일이나 쏘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 작은 드론, 무인기 정도 날리는 항공모함은 잠수함 버전이 있을 수도 있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3/10/25 08:35 2023/10/25 08:35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23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983188
Today:
925
Yesterday:
1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