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천안에 갈 일이 생겨서 옳다구나 새마을호 열차편을 검색했다.
오전에 볼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침 10시를 전후해서 천안에 도착하는 하행 새마을호를 검색했는데..

두 가지 사실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KTX 개통 이후 새마을호가 매우 희귀해지긴 했지만 경부선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을 모두 통틀어도 원하는 시간대의 열차가 도통 검색되지 않는 것에 일단 놀랐다.

그 후 나를 정말 경악시킨 것은 그 다음이었다.
사실은 비슷한 시간대에 새마을호가 두 대나 지나는데, 하필이면 이들은 모두 천안을 무정차 통과하는 열차였던 것이다. ㅎㄷㄷㄷ

목포/여수 행 복합 1101/1121
  용산 8:55, 평택 9:45, 천안 통과

마산 행 1031
  서울 8:25, 무려 수원 8:58 후 천안 통과

경부선을 출발하여 경부선이 아닌 다른 마이너 노선을 지나는 열차는, 수도권 경부선 구간에서는 일반 경부선 열차보다 정차를 덜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열차 중에는 KTX 개통 후에도 천안 역을 무정차 통과한다거나 심지어 서대전-수원 직통인 열차도 간혹 있었다.

KTX가 개통하기 전에 새마을호의 명목상의 필수 정차역은 대전, 동대구뿐이었다. 사실 그 외에도 정차역이 많았지만 필수는 아니었던 것이다. 서울-부산 중간에 서는 역은 6~8개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KTX가 개통한 후 새마을호는 정차역이 크게 늘어났다. 일단 KTX 개통 전부터 상당수의 열차가 정차했던 영등포, 수원, 구미, 대구, 구포는 필수 정차역으로 추가됐다. 그 외에도 천안, 경산, 김천, 밀양 같은 역에도 대부분의 열차가 서기 시작하여 새마을호는 가히 옛날 무궁화호급으로 정차역이 늘었다.

KTX 개통 직후에는 서울-부산 시간이 5시간 20분에 육박했다가 그나마 지금은 5시간은 가까스로 안 넘기게 개선되었다. 그때 KTX는 대전 무정차 통과, 심지어 동대구 무정차 통과 열차조차 잠시 다니던 시절. 새마을호 2*1 특실만큼이나 한국 철도 역사상 전무후무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어쨌거나.
결론은 천안은 비록 많은 열차가 서고 장항선이 분기하는 중요 환승역이기까지 하지만, 구미나 수원과는 달리 새마을호의 필수 정차역은 여전히 아니다.
내 생각에 천안은 육상 교통도 굉장히 잘 돼 있고 굳이 새마을/무궁화가 아니어도 KTX(비싸고 좀 외곽이긴 하지만)에, 누리로에, 전동차까지 별별 열차까지 이미 잘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필수 정차역에서는 뺀 것 같다.

지금 찾아보니까 천안 통과 새마을호가 예상보다는 자주,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이 있다. KTX 개통 직후에는 거의 하루에 딱 한 번 심야 새마을호나 천안을 통과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아침에 천안 통과 열차가 생겨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1.
소비자들은 빠른 KTX와, 싸고 편안한 새마을호가 서로 대등하게 경쟁하길 원한다. 이렇게만 되면 사실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예전에도 본인이 글로 쓴 적이 있듯, 철도 경영자의 생각은 다르다. 사운을 걸고라도 KTX만으로 돈 벌어야 되고 나머지 모든 열차들은 KTX 연계용 내지, KTX가 안 다니는 간선에나 다니는 열차로 구도를 바꿔야 한다.

KTX와 새마을호가 동일하게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열차를 운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인천 공항이 개항한 후에도 김포 공항에 유럽, 미주 노선을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물론..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들여 새 선로를 깔고 새 열차를 들여왔으니 뽕을 뽑아야 한다는 심리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새마을호는 기름으로 달리고 KTX는 전기로 달리는지라 수송 원가가 서로 게임이 안 되는 것도 크게 작용한다.
본인 생각에, 새마을호가 전기로만 달렸어도 지금 같은 이 정도로 심각한 계륵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부선 자체가 무려 2006년이 돼서야 전철화가 완료됐으니 현실은 시궁창.

2.
천안 역 하니까 생각난다. 천안 역은 경부선 남쪽으로 내려가는 경부· 호남· 전라선 일반열차를 취급하는 동부, 그리고 장항선하고 전동차를 취급하는 서부로 양분되어 있다. 그런데 서부 승강장의 경우 장항선 일반열차와 전동차 승강장이 그렇게 엄격하게 분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마음만 나쁘게 먹으면 전동차 무임 승차가 가능하다.

현재 또 비슷한 예로 서울 지하철 9호선과 공항 철도가 공용하는 승강장이 있다. 승강장을 어떤 구조로 만들까 고심한 끝에 결국은 별도의 승차 게이트를 만들지 않기로.. 쉽지만은 않을 결정을 내렸다. 지하철 9호선, 공철 일반열차, 공철 직통열차는 원칙상으로 운임 체계가 셋이 다 다른 열차인데도 말이다. ㄷㄷㄷ

아울러 최근에 또 새롭게 등장한 개념은 소프트 환승이다. 전철 역시 게이트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갈 때도 환승 적용이 일부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했다.
신용산-용산 역을 게이트를 통과한 뒤에도 환승되게 해 달라고 사람들이 줄기차게 요구할 때는 아무 말도 없더니, 소프트 환승 자체는 기술적으로 아무 어려울 게 없음이 현재의 노량진(1, 9호선) 역과 서울(기존 지하철 vs 경의선) 역을 통해 입증되어 있다.

3.
추억의 서울 지하철 영화 <튜브> 영화 파일이나 DVD를 웃돈 주고라도 구하고 싶다.
스토리도 멋있고, 무엇보다도 스크린도어 설치 내지 내장재 교체 이전 시기의 서울 지하철의 역사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3/26 19:02 2010/03/2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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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 기윤 2010/03/27 08:06 # M/D Reply Permalink

    ㄲㄲㄲ;;; 뭐든지 포스팅꺼리;;;

    + 천안역 하니까 떠오르는데, 1호선을 신창 까지 연장한 이후로 플랫폼 배치가 좀 바뀌어서 엉뚱한 플랫폼으로 가서 햇갈려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1. 사무엘 2010/03/27 10:19 # M/D Permalink

      진짜로 하고 싶은 일(날개셋 개발 같은)을 오랫동안 제대로 못 해서 욕구 불만-_-이 축적되면,
      집중은 안 되고 자꾸 잡생각이 많아지고 블로그질이 늘지요.
      떠오르는 생각은 죄다 글로 정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서요. =_=;;

      제가 천안 역은 신창 연장 개통 후에 딱히 답사한 적이 없습니다.
      하긴, 종착역이 단순 통과역으로 바뀌면 승강장의 이용 구도가 살짝 바뀌어야겠죠. 가령, 예전에는 두 곳에서 랜덤하게 출발 열차가 들어오던 게 지금부터는 방향 구분이 딱 생기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마 9-공철 김포공항 역도 2차 구간이 다 개통하고 나면 그런 변화를 겪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한 층에서는 공항 방면 통근 열차, 한 층에서는 공항 방면 직통 열차이지만 나중에는 종별 구분 없이 상행(서울 역 방면)과 하행(인천 공항 방면)으로 용도가 바뀌겠죠?
      그나저나 저 역은 수도권 전철, 공철 일반 열차, 공철 직통 열차가 운임 체계가 모두 다른데 승객을 구분 없이 섞어 놓으면 운임 산출이 꽤 골치아파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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