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70년대: 시점의 변경

우리나라의 대표 고속도로라고 일컬어지는 경부 고속도로는 1970년에 전 구간이 4차로 크기로 만들어졌다.
옛날 사진을 보니, 그 당시엔 중앙분리대에 화단이 꾸며졌거나, 아니면 비상활주로 운용을 염두에 두고 중앙분리대가 이동식으로 허접하게 꾸며진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1970년대 개통 초기에는 경부 고속도로의 법적 시점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즉 도심 한복판이었다.
그때는 한남대교와 그 이북 제1 남산 터널까지(남산 1호 터널) 합쳐서 '서울부산선'으로 쳤던 것 같다. 마침 얘들 역시 1969년 말(한남대교)과 1970년 광복절(터널), 경부 고속도로와 거의 같은 시기에 개통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로서는 저 교량과 터널도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였고 "조국 근대화 잘 살아 보세, 우리는 할 수 있다" 국뽕 아이템이었다.

경부 고속도로 덕분에 한국에는 고속버스라는 것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초창기에는 서울 구시가지의 근처인 신촌이나 종로5가 같은 곳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회사와 행선지별로 듬성듬성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지만..

그러다가 1970년대 말에 강북 구간은 이 고속도로의 법적 시점에서 짤렸다. 지금으로 치면 한남IC 부근으로 시점이 남하했다. 옛날에 철도는 경부선 서울 역이 서대문에서 남대문으로 남하하기는 했었다만.. 고속도로는 아예 한강 이남으로 내려간 게 흥미롭다.

이때는 몇 차례 북괴의 도발을 겪고 나서(땅굴, 무장공비, 판문점 도끼 만행..) 가카께서 수도를 통째로 남쪽으로 옮길까 하는 극단적인 고민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그 정도 남하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시국 덕분인지 서울 강남이 집중적으로 개발됐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서울 강남 반포에 최초의 통합 '고속버스 터미날'이 만들어져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에는 엄청난 외곽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지금은 이 터미널조차 주변이 너무 비좁다면서 이전 요구가 나오는 실정이다.

2. 1980년대: 서울 요금소의 남하, 최초의 확장 공사

(1) 경부 고속도로에 처음으로 확장 공사가 행해진 시기와 구간은 바로 1987년.. 중부 고속도로(35)와의 분기· 합류 지점이다. 회덕(대전)-남이(청주) 사이가 처음으로 6차로로 확장됐다. 그 뒤 나라에서는 중부 고속도로도 좀 이용하라고 강남 고텀에 이어 강변 동서울 시외버스 터미널을 개장했다~!

쌍팔년도 이전엔 경부 고속도로가 심지어 서울-판교-수원 구간조차도 아직 겨우 4차로였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 역 주변 역시 쓰레기 매립지였을 정도로 엄청난 미개발 황무지였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다른 이름을 붙일 게 도무지 없어서 걍 밋밋한 '강변'이었던 거다. 마치 대전광역시의 이름이 과거에 '한밭' 뻘밭이었던 것과 비슷한 작명이다. 1987~88년 사이에 울나라 고속도로 업계에 참 많은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경부 고속도로의 최북단 요금소인 서울 요금소에도 변화가 생겼다. 원래 이 요금소는 양재 IC 부근에 있었다. 그러던 게 1987년 말에 훨씬 더 남쪽인 지금의 성남 궁내동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기존 요금소는 명색이 서울의 관문인데 매표소 차로가 겨우 7개 밖에 없어서 너무 너무 비좁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더 확장할 부지는 없고.. 더 남쪽 외곽으로 이사 가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오늘날 서울 요금소는 행정구역상 서울에 있는 게 아니다. 거길 통과하고도 한참을 더 달려야 인서울이 나온다.
옛 서울 톨게이트가 차지하던 부지는 만남의 광장 휴게소로 바뀌었다.

(3)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경부 고속도로'라는 명칭이 공식 명칭으로 정착한 것도 1980년대 초의 일이다. 그 전에는 얘는 그냥 서울부산선, 서울-부산간 고속도로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남침 땅굴도 1970년대 당대에는 '지하 터널'이라고 불렸고, 한강대교 양화대교 한남대교도 1980년대 이전에는 그냥 제1~3 한강교라고 불렸듯이 말이다. 1980년대에는 이런 아기자기한 명칭들이 많이 확립됐다.

3. 1990년대: 계속되는 확장과 버스 전용 차로

경부 고속도로는 '빨리빨리 선개통 후개량'의 산물인지라 찔끔찔끔 땜질과 확장 공사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이걸 악의적인 졸속 부실시공이라고 폄하하는 건.. 열악했던 예산과 부족한 시간과 온갖 시행착오 속에서 고생했던 작업자들에 대한 모독일 터. 그땐 고속도로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쌩판 처음이던 시절이었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1) 저렇게 최초의 확장 공사가 행해진 뒤, 1990년대 초엔 터져나가던 수도권 양재(서울)-수원 구간에 드디어 칼질이 가해졌다. 얘는 도로의 양쪽 끝에 차로를 더 만드는 게 아니라, 옆에다가 똑같은 4차로 도로를 하나 더 만드는 식으로 한꺼번에 8차로로 확장됐다.

같은 시기에 오늘날 수도권1순환(외곽순환) 고속도로의 전신인 구리-판교 고속도로도 건설이 시작됐다. 서울 요금소를 남쪽으로 옮긴 것은 쟤를 '개방식' 톨게이트 구간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 성격도 있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기에 철도 업계에서는 경부선에 구로-서울 3복선화 공사가 시작됐다. 경인선 2복선화와 경부선 수원-천안 2복선화도 시작됐지만 얘들은 2000년대가 돼서야 완료됐고..

(2) 1995년부터는 이렇게 넓어진 차로를 바탕으로 경부의 수도권 구간에서 버스 전용 차로가 처음으로 시행됐다.
서울 시내의 천호대로에서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시행된 것과도 시기가 거의 비슷하다. 시내버스와 고속버스는 분야가 완전히 다른데도 말이다.
천호대로는.. 서울 지하철 5호선을 건설하느라 어차피 파헤쳤던 도로를 복구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정류장을 설치할 수 있었다. 타이밍이 잘 맞았던 셈이다.

4. 2000년대 이후

(1) 2003년에는 김천-영동-옥천 쪽에 대대적으로 선형이 개량되었다. 산 타면서 꼬불꼬불 위험하게 가던 길이 고가 교량으로 바뀌었다. 30여 년 전에 그렇게도 고생하며 힘들게 만들었던 구닥다리 대전육교와 당재터널(옥천터널)이 드디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0년엔가 추풍령 일대에서 연쇄 추돌 교통사고가 거하게 난 뒤에야 과업에 속도가 붙었다. 단, 얘들은 4차로로 만들어져 버려서 추후에 차로 확장이 꽤 난감해졌다.
비슷한 시기에 경부선 철도에서는 수원 역에서 전철의 평면교차 회차를 없애려고 수원-병점간 2복선화 공사가 한창이었다.

(2) 서울 수도권 구간은 10차로 더 확장됐고 대전· 대구 구간도 다 이런 식으로 확장됐다. 수원신갈 IC의 경우, 넘쳐나는 차들을 감당치 못해서 톨게이트가 상행과 하행별로 따로 분리되는 기괴한 구조가 됐다. 모든 차들이 종이 통행권 대신 하이패스가 장착돼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2010년대 중후반에는 아직도 4차로인 구간은 옥천 부근과 영천-경주-울산 두 곳밖에 남지 않았다.

그랬는데 드디어 경주 부근도 엄청 오랫동안 공사를 한 끝에 6차로로 확장됐다. 경부 고속도로 최초의 터널이라 일컬어지는 경주 터널도 옆에 광폭 터널을 하나 더 뚫어서 확장됐다.
이제 경부 고속도로 전체를 통틀어서 4차로는 20여 년 전에 개량됐던 옥천 구간이 유일하다.

(3) 그리고 2020년대에는 경부 고속도로에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칼질이 가해졌는데.. 바로 지하화다.
동탄 부근 1km 남짓한 구간이 잠깐 지하 터널로 내려갔다. 으음~~~
앞으로 이런 구간이 얼마나 더 생길지는 모르겠다.

이상이다. 경부 고속도로에 대해서 지금까지 글을 많이 썼지만 이런 식으로 역사를 정리하고 종합한 건 처음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4/10/09 08:47 2024/10/0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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