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대학교 전산과는 무슨 비주얼 C++ IDE 사용법이나 C/C++ 문법 같은 걸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그 정도로 특정 플랫폼에 종속적인 툴이라든가 테크닉은 학생이 알아서 익히는 걸로 간주하며, 학교에서 따로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런 걸 전문으로 가르치는 곳이라면 아주 실무 위주 교육의 IT 학원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반면 대학교 전산과에서 가르치는 건 오늘날 디지털 컴퓨터의 이론적 기반이 되는 배경 지식이다. 튜링 기계, 시간 복잡도, 형식 언어, 오토마타, 유한 상태 기계, 계산 이론 같은 것들. 오늘날 무수한 IT 노동자들이 생업의 수단으로 삼는 툴과 테크닉들을, 처음에 만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걸 만들었을지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배운다. 아주 고차원적인 방향으로 머리를 단련하는 것이다.
비슷한 논리를 국문과에다가도 적용해 보자.
본인은 국문학 전공자라고 해서 표준어/맞춤법을 다 꿰뚫고 있다거나 우리말의 달인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알맞은’과 ‘알맞는’ 중 무엇이 맞는지, ‘내일’을 나타내는 순우리말이 있는지, 어떨 때 ‘잘못’을 쓰고 어떨 때 ‘잘 못’을 쓰는지, ㅐ와 ㅔ의 발음 차이가 뭔지 같은 것들은.. 물론 국문학 전공자라면 응당 알아야 하는 내용이지만 대학교의 국문과가 저런 단편적인 지식만--전산과로 치면 프로그래밍 언어 스킬-- 주입하는 곳은 결코 아닐 거라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저런 건, 저런 쪽으로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련 서적 한두 권만 사서 공부해서 쉽게 익힐 수 있는 내용이다. 대학에서는 그런 지엽적인 게 아니라 더 어려운 걸 가르칠 것이다. 국어학 분야로 한정짓자면 한국어가 세계 각국의 언어들과 비교해서 무엇이 특이한지, 이 단어의 품사가 무엇이고 형태소 분석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중세 국어는 현대 국어와 무엇이 달랐는지 같은 것들.. 그러고 보니 국문과는 뭔가 언어학 계열 아니면 문예 창작 계열로 나뉘는 듯.
영문학을 전공하고도 미국인과 free talking을 못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전산학을 전공하고도 컴퓨터 조립을 못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렇듯, 어느 분야를 가도 실무 지식과 이론 지식은 뭔가 살짝 괴리가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아는 국문과 출신의 지인 중에는, 학창 시절에 수능 언어 영역 110점을 어렵지 않게 넘기는 친구도 있었고(아버지가 소설가라고 한다!), 일반인은 400~600점대밖에 안 나온다는 KBS 한국어 능력 시험에서 무려 800점을 넘긴 친구도 있었다. 물론 둘 다 여자. 차라리 텝스를 800 넘으라면 공부 좀 해서 넘겠는데, 저 시험은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이다. 한 번 응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시험 수준을 안다. -_-;;;
문과 머리와 이과 머리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 * * * * * * * * *
저는 학부를 졸업한 지 거의 5년만에 풀타임 직장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올가을부터 학생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대학원에 합격했거든요. (연세 대학교 언어 정보학 협동 과정)
블로그 말고 제 홈페이지 대문이나 방명록을 보신 분이라면 이미 눈치 챘을 겁니다.
윗글에서 언급한 딱 국어학 + 전산학을 결부 지은 협동 과정이지요.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