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유료 도로이다.
요즘은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 국도도 4~8차선에 중앙 분리대까지 갖추고 고속도로 뺨칠 정도로 좋은 자동차 전용 도로로 건설된 경우가 있지만, 최대 시속 80km짜리 도로와 100km 이상짜리 도로는 커브의 반경이 다르고 설계 과정에서 뭐가 달라도 차이가 나는 법이다.
유료 도로이다 보니 고속도로에는 요금을 징수하는 톨게이트가 필요하다. 지하철을 탈 때와 내릴 때 각각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카드를 찍듯이, 고속도로도 들어가고 나가는 과정이 있는 폐쇄식 톨게이트 체계가 기본을 이룬다.
하지만 수도권에는 진출입로가 지방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존재하고 고속도로를 매일 이용하는 출퇴근 차량도 엄청 많다. 이런 곳은 그냥 주요 구간에 개방식 톨게이트를 설치하여,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 고정된 요금만 징수하고 있다. 즉, 이런 곳은 한번 돈만 내면 끝이며, 뭘 받았다가 반납하고 정산을 할 필요가 없다. 또한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않는 구간만 이용한다면 고속도로를 무료로 드나들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톨게이트는 차량 소통을 매우 심하게 방해한다는 것. 빠르게 잘 달리던 차를 기어이 세워서 돈 계산까지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최 덕규 씨는, 저서 <길이 제대로 돼야 나라가 산다>에서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똥자루 고속도로다!"라고 혹평하면서 이놈의 톨게이트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 없애야 한다고 통렬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고속도로 유지비를 기름값에다 추가하든지 해서 재정은 다른 방법으로 마련하고, 전국 고속도로의 톨게이트 직원들에게 다른 일자리를 알선해 주고서 죄다 내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톨게이트만은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 말이다.
이 불편을 체감상으로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지난 김 영삼 정권 때는 고속도로 통행료 후불제가 시행되었다. 물론 통행료 후불제도 엄밀히 말하면 조삼모사격 조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에도 목적지를 유동적으로 변경할 수 있고(미리 목적지에 대한 통행료를 내는 게 아니라, 최종 목적지에서 돈을 내므로) 당장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 오버헤드가 크게 줄어들므로, 선불제보다는 기분상으로 고속도로 이용하는 느낌을 더 낫게 만들었을 것 같다.
그러다가 21세기에는 IT 강국-_- 대한민국답게 거물급 물건이 도입됐으니, 바로 하이패스이다.
차가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면 그 차에 장착된 하이패스 단말기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자동으로 무선 통신을 하여, 카드에서 통행료가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차를 세우고 번거롭게 현금 챙길 필요 없어서 좋고, 도로 공사 입장에서는 돈 걷는 단순 노동 직원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하이패스 카드 충전 명목으로 목돈을 선금으로 미리 챙길 수 있어서 좋고...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좋다 보니, 도로 공사 측에서는 하이패스를 적극 홍보하고 장려하고 있다. 하이패스 이용 차량은 전용 출구로 톨게이트를 더욱 빠르게 통과시켜 주고 통행료를 약간 할인까지 해 준다. 하지만 하이패스가 필요할 정도로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단말기 설치비를 회수할 만한 큰 장점이 없으니 고속도로의 모든 진출입로가 하이패스 전용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아무리 손전화가 대중화하더라도 공중전화가 아주 없어질 수는 없으며, 시내버스 안에 현금통이 아예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서울 시내버스는 옛날에 현금 승차는 아니고 토큰이라는 게 따로 있었는데, 2004년의 요금 개편 후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구나.
그런데 아직까지도 이따금씩 문제가 되고 있는 건 하이패스 단말기의 오작동이다. 하이패스 전용 출구는 차단기가 쓱 내려와 있다가 하이패스 단말기와 거래가 정상적으로 처리되는 순간 차단기가 올라간다. 톨게이트를 들어설 때 차를 완전히 세울 필요는 없지만 시속 30km 정도로 서행하라고 도로 공사는 권장하나... 실제로 차들은 시속 최하 50~60km로 쌩 통과한다. 그래도 문제는 거의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인식이 안 되면?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계속 달리던 차는 차단기와 충돌하게 된다. 이거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차단기를 들이받아 박살내고 차는 범퍼만 약간 긁히고서 통과라도 무사히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앞에 차단기라는 장애물이 쓱 내려오니 대부분의 운전자는 이때 본능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옆으로 꺾게 된다.
건물과 부딪치고, 뒤따라오던 차들이 연쇄 추돌을 일으키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실제로 이런 일이 몇 차례 있기도 했던지라,
도로 공사는 하이패스 출구의 차단기를 딱딱한 금속 재질에서 고무 재질로 교체하기도 했다. 차단기와 충돌해도 차에 아무 손상이 가지 않으며 차단기 역시 휘어지기 때문에 파손이 발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일종의 훼이크 과속 단속 카메라 내지, 훼이크 경찰차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장애물을 피하려는 핸들+브레이크 급조작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를 예방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로 이 점을 악용하여, 톨게이트 차단기를 씹고 통행료를 안 내고 달아나는 운전자가 생겼다고 한다.
멍청한 친구 같으니.. 자기 차 번호가 버젓이 노출돼 있는데, 당연히 걸릴 수밖에 없는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상습적으로... 보험 사기나 자동차 속도 위반 같은 거 요즘 얼마나 잘 잡아 내냐 말이다.
마치 공항에서 출입국 금지자 단속을 하듯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번호판을 단 차가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경보음이 울리고, 직원들이 곧바로 출동해서 차량 진입을 저지한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하이패스가 동작하지 않아서 차를 근처에 세워서 수동 정산을 끝낸 후, 고속도로를 횡단하여 자기 차로 가던 한 운전자가 다른 차에 치여 숨진 일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판결은 도로 공사 쪽에 상당히 불리한 쪽으로 내려졌고, 그쪽에서 사망자 유족에게 상당한 액수의 보상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근본적으로는 하이패스가 오작동이 없어야 할 텐데 말이다. 오작동률이 0.몇 % 미만이라지만, 하루에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차들이 대체 몇 대인가.
고속도로 통행료도 T머니(교통 카드) 결제가 되게 하면 어떨까? 아, 이미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자가용을 몰고 다닐 정도인 사람이라면 경제력도 뒷받침되고 응당 신용카드 같은 것도 있을 테니, 굳이 교통 카드 따위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혼자서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이따금씩 하이패스 없이 자가용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선불식 교통 카드 한 장만으로 고속도로 통행료 결제까지 된다면 편리하지 않겠나 싶다.
아무쪼록, 자동차 운전자의 세계도 대중교통 이용자의 세계만큼이나 이런 저런 사연이 많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