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당선의 특징

자칭 철도 분석 전문가 사무엘 님이 진단한, 신분당선의 특징.

1. 눈에 확 띄는 홍색 노선색

1990년대엔 서울 지하철 1호선이 회색(국철) + 홍색(순수 지하철 구간)으로 구분하여 노선도에 표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관행이 없어지면서 수도권 전철에서는 한동안 홍색을 볼 수 없었다. 인천 지하철, 공항 철도, 경의· 경춘· 중앙선 등등은 모두 청색이나 옥색 계열을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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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혹시 9호선이 홍색을 쓰지는 않을까 논의된 적이 있었지만 9호선의 노선색은 금색이라고 쓰고 커피색, 황토색, 똥-_-색이라고 읽는, 6호선과 비슷한 색깔로 정해졌다. 공교롭게도 6호선과 9호선은 각각 강북과 강남 전용으로 서로 환승이 되지 않으니 딱히 혼동될 우려는 없긴 함.

대구 지하철이 1호선에서 홍색이라기보다는 적색에 가까운 붉은 색을 처음으로 시도한 후, 수도권에서는 신분당선이 붉은 노선색을 물려받았다. 어쨌든 튀는 건 사실이다.

2. 무인 운전

예전 글에서 언급했듯, 신분당선 전동차는 국내 최초로 운전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완전 무인 운전인 중전철이다. (무인 운전 “경전철”은 부산에 이미 있음) 그래서 열차를 타면 앞과 뒤의 전망이 훤히 보여서 너무 좋으며, 맨 앞 칸에 승객이 몰린다. 인천 공항 내부의 무인 운전 셔틀 전철인 스타라인을 타면서 느꼈던 감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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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기관사가 없을 뿐이지 승무원 자체는 한 명이 객실 내부에 상주하며, 상황에 따라 차내 육성 안내방송도 한다.

열차 안의 모니터에서는 현재 열차의 주행 속도와 다음 역까지 남은 거리가 미터 단위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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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철도들의 폐색 방식이 큼직한 구역 단위로 열차의 위치를 파악하고 1폐색 1열차 통제를 하는 반면, 신분당선은 발달된 RF-CBTC (무인 운전 + 무선 통신 기반 이동 폐색식) 신호 시스템을 채택하여, 모든 열차의 위치가 미터 단위로 세밀히 파악되기 때문이라고. 덕분에 동일 구간 사이에 열차를 더욱 촘촘이 배치할 수도 있다.

이 신호 시스템이 후지고 똑똑하지 못하면, 앞 열차가 출퇴근 시간 때 조금만 지연되어도 뒤 열차는 걸핏하면 “열차 신호 대기 관계로 천천히 운행 중입니다” 크리를 먹는다. 일반 자동차도 GPS로 내비에서 위치가 m 단위로 실시간으로 파악되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궤도 위밖에 달리지 않는 철도는 더 똑똑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3. 지하철체와 형형색색 컬러 테마

신분당선의 비주얼 UI는 우릴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서울 디자인 가이드라인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덕분에, 서울 지하철 9호선이나 3호선 연장 구간과는 역 내부 인테리어가 전혀 다르다(난 개인적으로 그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안 좋아한다-_-). 어차피 신분당선은 우측통행도 아닐 정도로 서울+지하철과는 뿌리가 다르긴 하다만, 이 정도로 파격적일 줄은 몰랐다.

신분당선에는 굉장히 이례적으로, 재래식 서울 지하철 전속 서체(초롱테크 개발)가 다시 등장했다. 1990년대 중반의 서울 2기 지하철 이래로 전국의 지하철에서 찾을 수 없던 그 추억의 서체 말이다.
그리고 노선색이 홍색이랍시고 모든 역에 다홍색 띠만 도배한 게 아니라, 각 역마다 테마를 정하고 그 테마에 맞는 서로 다른 색깔을 부여했다. 게다가 각 역마다 온갖 기하학적인 인테리어까지! 철도역을 마치 예술 작품처럼 꾸며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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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지금 있는 각 역마다 개성을 너무 많이 부여해 놓으면, 나중에 역을 추가하기가 힘들 텐데.

4. 요즘 대세는 사철, 급행화

신분당선은 구 분당선보다 역 수가 훨씬 더 적다. 그리고 노선의 선형도 경부 고속도로를 따라 곧게 나란히 이어지기 때문에, 경부 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근처인 정자에서 강남까지 겨우 16분밖에 안 걸린다.

쏟아지는 차들로 인해 만성적인 정체 몸살을 앓고 있는 경부 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 양재IC 사이를 생각하면, 이는 정말 시간 혁명이 아닐 수 없다. 도심 한복판의 서울 역에서 김포 공항까지 딱 20분 주파를 달성해 낸 공항 철도의 위엄에 필적할 만하다.

신분당선의 1차 개통 구간을 공항 철도의 1차 개통 구간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재미있지 않은가?

- 강남(환승) → 양재(환승) → 양재 시민의 숲 → 청계산입구 → (꽤 긴 거리) → 판교(본사가 있는 곳) → 정자
- 김포공항(환승) → 계양(환승) → 검암(본사가 있는 곳) → (꽤 긴 거리) → 운서 → 공항 화물 청사 → 인천 공항

신분당선은 건설과 운영이 100% ‘싸제’인 최초의 철도이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은 건설이 아닌 운영만 싸제인 경우인데, 지금은 운임도 기존 지하철과 완전히 동일하게 매겨지고 있다. 자기네만 따로 비싼 운임을 부과하려 했으나, 서울시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깨갱 한 후 저렇게 운영하는 것임.

공항 철도는 처음엔 100% 싸제였으나, 쌓이는 적자 때문에 운영 주체가 코레일로 인수되면서 요금 체계도 좀 하이브리드 형태가 됐다. 서울 포함 내륙 구간은 기존 지하철 운임 체계에 흡수된 반면, 영종도로 가는 곳은 그렇지 않다.

이런 전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분당선은 진짜 자신만의 운임 방식을 최초로 시행하였으며, 기본요금도 900원보다 훨씬 더 비싼 1600원에서 시작한다. 버스로 치면 진짜 빨간색 광역 버스 같은 위상. 이런 독자적인 요금 체계를 쓰는 전철이 자꾸 등장하면서 정기 승차권의 위상이 좀 애매해져 있다. 공항 철도와 신분당선은 현재 자기만의 정기권 체계를 따로 세워 놓은 상태이다.

5. 기타 잡설

- 양재 시민의 숲 역은 인근에 윤 봉길 의사 기념관과 서울 교육 문화 회관 같은 주요 장소가 존재하며,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희생자 위령탑도 거기 근처에 있다. 부역명이 ‘매헌’인데, 이는 아주 이례적으로 지역명이나 근처의 기관명이 아니라, 윤 의사의 호이다.
경춘선 김유정 역과, 안산선 상록수 역(최 용신)에 이어 셋째로, 위인을 컨셉화한 전철역이 또 등장했다. 고인이 생전에 남긴 걸로 알려진 유명한 문구가 역 승강장에 새겨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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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산입구 역은 신분당선의 역들 중 역세권이 가장 없고 가장 한적하고 잉여력이 강한 서울 교외의 역이다. 인테리어도 산과 숲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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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당선 전동차는 6량 1편성이며, 구동음은 요즘 새로 도입되는 전동차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 역 내부엔 역 주변 안내도가 없는 것 같다. 모니터로만 표시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 스크린도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차가 도착할 때 요즘 트렌드인 멜로디 대신 재래식 경보음이 들린다.
게다가 이때 화면에 뜨는 문구는.. “열차가 곧 도착하니, 승객 여러분은 스크린도어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아놔 이건 좀 시대에 맞지 않은 과잉 안내 같은데? 개통 후 나중에 다시 가 보니, 과잉 안내 멘트는 없어졌다.

Posted by 사무엘

2011/12/03 08:35 2011/12/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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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범준 2011/12/03 20:19 # M/D Reply Permalink

    아~ 기다리고 기다렸던 신분당선 글이 올라왔군요.
    정말로 신분당선은 철도계의 대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 백성 2011/12/03 20:29 # M/D Reply Permalink

    그때그때 같이 답사했지요... ㄲㄲㄲ
    그나저나, 무인 운전을 그렇게 자랑스레 내세울 정도면, 기술이 좋아지긴 많이 좋아졌나 봅니다.

    1. 사무엘 2011/12/03 21:10 # M/D Permalink

      무인 운전은 1990년대의 서울 2기 지하철에서 이미 구상은 해 놓고 있었지만 이제야 실현됐지요. (5호선이 1996년 개통 초기에 몰래 무인 운전을 한 적이 있었지만 흑역사가 됐습니다)

      197, 80년대: 저항-쵸퍼 전동차, 자갈 노반, 롤지, 2인 승무
      1990년대: VVVF 초기 전동차, 콘크리트 노반+장대 레일, LED(발광 다이오드), 1인 승무
      200, 2010년대: VVVF 표준형 전동차, 전구간 스크린도어, 컬러 모니터, (+ 무인운전)

      기술 트렌드가 대략 이렇습니다.

  3. 사무엘 2011/12/03 21:13 # M/D Reply Permalink

    범준· 백성 형제, 정읍엔 잘 다녀왔습니까?
    신분당선은 여러 모로 정말 기념비적인 철도입니다.
    글 내용의 대부분이 신분당선 개통 당일에 쓴 것들인데, 개통 전에 써 놓은 글들이 다 올라온 뒤에 이제야 이곳에 올라왔습니다. ㅋㅋㅋㅋ

    신분당선은 운임 시스템이 재미있습니다.
    공항 철도는 1차 개통 시절엔, 기본 요금은 동일하나 임률이 좀 높고 여타 교통수단들과 환승 할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신분당선은 환승 할인은 되면서 700원이 덧붙는 형태이죠.
    공항 철도를 시작으로, 독자 운임 체계를 쓰는 전철은 언제부턴가 노선도에서 solid color가 아니라 이중 색깔로 선이 그어지는 관행이 생겨 있는데요, 이 관행 역시 신분당선이 물려받고 있습니다.

    신분당선은 그렇게 비싼 운임으로 재미를 좀 보려면, 무엇보다도 노선이 지금보다 더 길어져야 됩니다.
    7호선 논현과도 환승되고, 한남 대교와 남산 1호 터널을 따라 광화문까지 쫙 가야 됩니다.
    전철이 서울 시내의 미친 도로 정체를 비웃어 주면서 아침 출근 시간대에 광화문-강남-정자를 30분 만에 주파하고 높은 착석률까지 덤으로 보장한다면, 요금이 2천이 아니라 3천원대에 달하더라도 탈 사람은 다 탈 겁니다.

    전철이 비싸 봤자 1인 기준 “전철 비용 < 자가용 굴리는 비용 < 아예 가까운 곳에서 사는 주거비용”임은
    산술-기하-조화평균 부등식만큼이나 명확하니까요! ㄲㄲㄲㄲ

    1. 소범준 2011/12/03 22:05 # M/D Permalink

      네~ 넘흐 잘 갔다왔습니다.
      정말 거기 오신 분들은 정말 순수하시더군요. ㅎㅎ
      특별히 천년왕국 최형제님 부부의 각별한 수고로 정말 잘 보내고 왔습니다.

      근디~ 신분당선 글 보고자퍼서 죽겠었는디 ^^;
      진짜루 신분당선 처음 탔던 감회가 새롭습니다.ㅎㅎ

  4. 김 기윤 2011/12/05 13:57 # M/D Reply Permalink

    양재 시민의 숲 역 하면 저는 떠오르는건 AT센터뿐.(..)

  5. 남정현 2011/12/05 19:33 # M/D Reply Permalink

    저의 강남출퇴근 애마인 9200번 급행버스가 강남에서 인천으로 나가는 길과 일치하는 노선이라 잠시 타봤는데 역시 민영노선은 뭔가 다르구나 싶었어요 ㅋㅋ

  6. 사무엘 2011/12/05 23:33 # M/D Reply Permalink

    김 기윤: 학여울 역처럼 말이죠? ㅋㅋㅋㅋ

    남정현: 오랜만에 뵙네요~ 신분당선을 시승해 보셨다니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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