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은 수도권 전철계의 오랜 숙원이 둘이나 이루어진 달이다.
일단 월초엔 남쪽으로만 길어지던 분당선이 드디어 서울 강북까지 올라와서 왕십리-선릉 구간이 개통했다. 수서-선릉 구간이 2003년 가을에 개통했으니 거의 9년 만의 추가 연장이다. 이로써 한강에는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사용하는 것에 이어 철도용 하저 터널이 하나 더 추가되었으며, 여타 코레일 관할 노선과의 연결이 없이 수도권 동남부에서 혼자 고립되어 있다시피하던 분당선은 드디어 연결점이 생기게 되었다.
그 뒤 지난 10월 27일엔, 서울 지하철 7호선이 서쪽으로 더 길어졌다. 온수-부평구청 연장 구간이 개통함으로써 서울 지하철 7호선은 의정부와 광명뿐만 아니라 부천과 인천 외곽까지 가는 긴 노선이 되었다. 그 결과 7호선은 1996년의 장암-건대입구(1차), 2000년의 건대입구-온수(2차)에 이어, 2012년의 온수-부평구청이라는 세 단계 개통 내력을 갖게 되었으며, 차량 계보도 1차와 2차, 3차가 모두 외형과 구동음이 제각각인 독특한 체계를 구성하게 되었다.
2009년에 9호선이 개통하고, 2010년 말에 3호선 수서-오금 연장 구간이 개통하고, 이제 7호선 연장 구간까지 개통했으니, 1990년대 초반에 수립되었던 서울 3기 지하철 계획은 IMF 때문에 폐기된 것을 제외하면 다들 완결되었다.
이번 7호선의 연장 구간 개통은, 약 4개월 전의 수인선 개통과는 다음과 같은 여러 비슷한 점들이 있다. (1) 토요일 개통, (2) 개통 당일 비, (3) 10km 남짓한 개통 구간의 길이와 9~10개 정도의 역 수도 비슷함,
(4) 온수든 오이도든 시승 지점 주변은 별다른 상업 시설 없는 외곽 지대, 그리고 (5) 새 노선으로 인해 인천 지하철에 환승역이 추가됨(7호선과는 부평구청, 수인선과는 원인재).
이에 본인은 이것도 새벽 5시 반 첫 차를 시승하러 금요일 밤부터 준비하고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날 밤에 전철 막차를 타고 미리 가서 노숙이나 외박을 한 게 아니라, 철도 답사 목적으로는 난생 처음으로 차를 가져갔다. 외박까지 하기에는 기력이 부족했고, 이왕 멀리까지 나간 김에 차로 다목적 테마 여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더구나 추위와 비 같은 날씨 사정을 감안했을 때, 차를 가져간 건 결과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선택이었다.
새벽 2시. 강변북로와 경인대로를 달려 온수 역에 도착했다. 이런 늦은 밤인데도 도로에는 차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지도상으로 온수 역 남단에 공영 주차장을 확인하긴 했으나, 그쪽으로는 안 가고 북단의 어느 공사장 옆 골목길에다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차 뒷좌석에 누워서 두어 시간가량 잤다. 새벽부터 기온이 더 내려가고 비가 오기 시작했으나 차 안은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차를 가져가는 대신 밖에서 군것질은 안 하려고 물과 각종 간식에 심지어 도시락까지 챙긴 상태였다.
5시 20분. 차에서 내려서 드디어 7호선 온수 역 승강장으로 갔다. 그리고 30분 정시에 부평구청으로 떠나는 첫 차에 성공적으로 탑승했다. 다음은 연장 구간과 관련된 몇 가지 관련 정보들이다.
- 운영: 7호선의 모든 열차가 부평구청까지 가는 건 아니다. 마치 분당선에 죽전 행과 기흥 행이 반반씩 있듯, 7호선에도 온수 행과 부평구청 행이 반반씩 다닌다. 따라서 온수-부평구청 사이의 실질적인 열차 배차 간격은 마치 5호선 상일동-마천 지선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예상 수요, 차량 기지의 위치, 보유 중인 전동차 수 등 여러 정황상, 모든 열차를 연장하는 건 현재로서는 힘들다고 그런다.
- 차량: 음 성직 사장 시절에 개발된 자체 전동차 SR001이 신규 투입되었다고는 하지만 기대는 안 하는 게 좋다. 나도 1시간 반 남짓한 시승 시간 동안, 상· 하행을 통틀어서 신형 전동차는 한 번도 못 봤다. 전체 전동차 수에 비해 3차 도입분 차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은 미미하다. SR001을 못 타 본 건 좀 아쉬운 점.
- 인터페이스: 7호선 연장 구간은 역명판이나 각종 안내 표지판에 서울 남산체나 전통적인 초롱테크 지하철체가 아닌 일반적인 고딕체를 사용하였다. 9호선처럼 지하철의 지상 출입구에서부터 열차 위치를 표시해 놓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번 연장 개통 구간은 크게 두 개의 phase로 나뉜다. (온수)-까치울-부천시청, 그리고 다음 상동-부평구청으로 말이다. 앞의 서울-부천 구간은 모두 터널식으로 건설되었다. 그래서 열차가 달리는 터널을 보면 단선 쌍굴이며 역들이 죄다 섬식 승강장이다(왼쪽 문 열림). 7호선은 특히 강남 구간은 섬식 승강장을 거의 찾을 수 없는 노선(보라매 역이 유일)으로 유명한데 그 관행을 부천 연장 구간이 깨뜨렸다.
서울에서 연장 구간이 첫 시작되는 온수-까치울 사이는 도로를 따라 만들어진 게 아니라 야산 아래로 “길이 없는 곳을 억지로 파고들면서” 만들어졌다. 덕분에 주행 중에 커브 소음이 느껴지며, 중간에 역을 만들 곳도 없어서 역간거리가 거의 2km에 달한다.
7호선은 어차피 강남 구간에 이런 구간이 좀 있다. 내방-고속터미널도 중간에 공원 아래를 지나며, 남성-숭실대입구도 언덕과 아파트 단지 아래를 지나서 역간거리가 아예 2km를 넘는다.
똑같이 섬식 승강장이어도 신중동-부천시청 역은 여타 역들보다 플랫폼이 대단히 넓다. 이는 지상에 고가도로가 있어서 이를 건드리지 않고 공사를 한 귀결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에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인해 독특한 모양의 승강장이 생긴 역이 있다(아현 고가 차도).
* 대합실이 아니라 심식 승강장이 이렇게 거대하다.부천시청 역의 인근에는 안 중근 기념 공원이 있다. 실제로 부천시는 중국 하얼빈 시와 자매 결연을 맺기도 했다고 한다. 지하철이 개통했으니 이 공원의 접근성과 인지도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 안 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 10월 26일인데, 7호선 연장 개통이 그 이튿날인 것은 그냥 우연이려나?
그리고 독립 운동가를 기리는 비슷한 심상의 다른 전철역으로 신분당선 '양재 시민의 숲' 역이 있다. 거기는 인근에 윤 봉길 기념관이 있으며, 역의 부역명이 아예 '매헌'(윤 봉길의 호)이다. 조국을 사랑하는 철도 덕후라면 잊지 말고 찾아가 보시기 바란다.
자, 상동부터는 섬식 대신 상대식 승강장이 시작된다(오른쪽 문 열림). 여기는 터널식이 아니라 도로를 파헤쳐서 박스를 집어넣는 개착식으로 건설되었으며, 한 터널에 복선 철길이 깔려 있다.
종착역인 부평구청 역의 인천 지하철 환승은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보통 수준인 것 같다.
다만, 밀폐형 스크린도어에다 고해상도 올컬러 액정 모니터까지 갖춰진 최고급 서울 지하철에 비해, 아직 스크린도어도 없고 청색이 없는 저해상도 LED(발광 다이오드) 전광판을 쓰는 인천 지하철 승강장을 보니, 지하철 시설조차도 지역별로 양극화가 시작된 건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 가지 옥의 티: 부평구청과 부천시청.. 전자에서는 '청'의 한자를 중국 간체자로 썼는데 후자에서는 그냥 한국 번체자이다.
아침 일찍 7호선 연장 구간을 쭉 왕복하고, 환승역에서 환승 통로를 둘러 보고, 중간의 역에서 한번 내려서 나가 보기도 했다. 수많은 정보들을 수집한 뒤 내 승용차가 있는 온수 역 인근의 기지로 복귀(?)하니, 아침 7시가 좀 넘어 있었다.
7호선에 대해서 두 가지만 더 얘기한 뒤 지하철 얘기는 마치도록 하겠다.
* 7호선의 상대적 심도
수도권 전철 노선들 중에 환승역 사이의 상대적인 심도가 가장 높은 것은 단연 서울 지하철 7호선이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온수부터 시작해 이수, 건대입구, 태릉입구, 도봉산 등 모든 환승역에서 7호선은 다른 노선보다 언제나 더 아래로 지나거나 최소한 심도-고도가 뒤떨어지지는 않았다. 심지어 깊기로 악명 높은 5호선조차도 다른 모든 환승역에서는 아래로 지나지만 7호선과 만나는 군자에서만은 7호선이 아래이고 5호선이 위였다.
그랬으나 이 7호선에도 예외가 생겼다. 2009년에 개통한 9호선 고속터미널 역은 7호선보다도 더 아래로 지난다. 그리고 분당선 강남구청 역도 7호선 강남구청 역보다 더 아래로 지난다. 분당선 역시 서울 강남 구간에서는 거의 공항철도 서울 시내 구간에 필적하는 엄청난 깊이를 자랑하는 걸로 잘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 서울 정기권 통용 여부
서울 1기 지하철들은, 서울 시내 순환인 2호선을 제외한 나머지 1, 3, 4호선들이 다들 코레일 광역전철과 직통 운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2기 지하철들은 그런 관행이 없이 오로지 인서울을 표방하고 있다. 5, 6호선이야 정말로 인서울이지만, 8호선은 성남 구시가지를 경유하며 7호선은 의정부와 광명을 잠깐 경유하고 이제는 부천과 인천까지 가는 방대한 노선이 되었다. 서울만의 지하철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8호선은 여전히 전구간이 서울 도시철도 공사(도철) 관할이다. 그리고 도철 관할 노선은 행정구역상으로 인서울이 아니어도 서울 전용 지하철 정기권이 통용된다는 이례적인 관행이 있었다. 8/분당선 환승역인 모란 역이 이것 때문에 '아리까리한' 대표적인 사례인데, 코레일 분당선 게이트로는 서울 정기권을 쓸 수 없지만 8호선 게이트로는 서울 정기권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관행에도 예외가 생겨, 7호선의 부천-인천 연장 구간에는 서울 정기권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게 확인되었다. 이제 도철도 모든 구간이 서울 구간은 아니게 된 셈.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