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고향 방문 후기

지난 설 명절 땐 고향을 방문하여 주변에서 여러 의미 있는 일들을 치렀다.

1. 변 정용 교수님 만남

고향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교에 이런 교수님이 계신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작년 가을쯤에 드디어 개인적으로 연락이 됐고, 개인적인 만남까지 성사되었다. 오오~~!

그분도 자기와 관심분야가 가까운 젊은이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니 굉장히 반가워하셨고.
짤막하게나마 그분의 한글과 훈민정음 견해, 북한의 학자들과 교류하느라 평양 시내와 금강산 실물을 진작부터 몇 번이나 구경했던 이야기, 각종 학계와 업계 사정 이야기 등등을 들었다. 국가보안법을 어기면서 몰래 갔다 온 게 아니요, 달러 엄청 뜯기면서 단순 관광객으로 갔다 온 것도 아니니 부럽다.

난 내가 14년째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 하나로 이 바닥에서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의 업적을 남겼고, 확실히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석사도 아니고 박사 정도 되면, 뭘로 학위논문을 썼는지가 학계· 업계에서 어딜 가나... 너의 얼굴이자 자존심이자 프로필과 스펙으로서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그러니 그게 평생 밥줄 수준인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어야 된다”라고 충고를 하시더라. 난 물론 그걸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아무튼, 이쪽으로 기를 충전(?)하고 돌아오니.. 난 코레일 공채 준비하지 않아도 원래 본업으로 먹고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쉬운 걸 굳이 하나 짚자면.. 남들처럼 20대가 가기 전에 박사 학위를 후딱 받지 못하고, 인제 입문해서 뒤늦게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대신 그 전에 저런 걸 이뤄 놨다.
그리고, 남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억제하고 노력해서 목표를 성취한 것이며, 특히 이공계는 비록 인문계보다야 졸업이 이르고 취업도 더 잘 되겠지만 그 대신 군기 센 폐쇄적인 집단 안에 틀어박혀서 고생도 훨씬 더 한다.

그 반면 나는 덕업일치 형태로 전혀 힘든 것 없이 완전 널널하게 목표를 성취한 거다. 그런데도 성취 시기가 서로 똑같기를 바라는 거야말로 도둑놈 심보가 아닐까 한다.

2. 시내 간이역 답사

차 끌고 나가서 국도 7호선을 따라 동해남부선 동방, 불국사, 죽동 역을, 그리고 국도 4호선 따라 중앙선 모량, 건천 역을, 끝으로 국도 20호선과 지방도 68호선 따라 동해남부선 나원 역을 답사하여 사진을 찍고 무사히 귀환했다.
늘 이용하는 경주, 서경주, 신경주 말고 경주에 있는 다른 마이너 역들을 거의 다 답사했다. 자동차는 이런 훈훈한 일을 하는 데 쓰라고 있는 거다.

이 중 영업을 하고 여객열차가 정차까지 하는 역은 불국사와 건천뿐이고
직원은 있지만 여객 취급을 안 하는 역은 나원.
건물만 있고 주변이 폐쇄된 역은 동방, 모량.
죽동은 그냥 임시승강장만 있고 사실상 폐역 상태다. 주변에 울산-포항 고속도로(고속국도 65호선)가 건설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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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에 도착할 때마다 뭔가.. 경건해지고 내 마음의 고향, 종교적인 성지를 방문하는 듯한 느낌이다.
일부 간이역은 이미 코레일이 매각하여 민간 상업용 건물로 전환된 경우가 있다. 동해남부선 모화 역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건 유럽에 크리스천들이 갈수록 감소해서 교회 예배당 건물이 나이트클럽이나 무슬림 예배당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차원의 비극이다.

아아 철도여!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교통수단이다.

3. 1992년 세계 자동차 연감

초딩 시절 나의 자동차 수련의 잔재를 고향집에서 모처럼 발견했다.
1992년도 세계 자동차 연감. 어머니께서 20년 전 물가로 무려 39000원이나 하는 비싼 물건을 나를 위해 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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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수백 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자동차 화보가 올컬러로 고급 코팅지에 인쇄돼 있어서.. 비싼 게 수긍이 간다.

견출명조 + 헤드라인 서체는 정말 1990년대 광고 전단지의 클리셰다. 응4, 응7 같은 레트로 영상 매체를 만드는 분이라면 고증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저 때는 신명 시스템 서체의 리즈 시절이기도 했다. 저 책도 페이지 번호는 SM중고딕, 본문은 SM신명조더라.
당장 저 표지의 '1992'는 악보의 번호에 즐겨 쓰이던 Bodoni라는 외국 서체이고.

쏘나타 2, 뉴 엑셀, 엘란트라, 에스페로 같은 추억의 자동차를 다시 만나 볼 수 있다. 대우는 물론이고 아시아 자동차(RV 록스타)까지 나와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일본 미쓰비시의 데보네어 V가 우리나라 그랜저를 베낀 거라고 아주 애국심 충만하게 생각했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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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에 우리나라 자동차 연표가 나와 있어서 이건 매 페이지를 폰 카메라로 찍었다. 철도사가 일부 실려 있기도 해서 더욱 귀중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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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 문수 목사님 만남

이분은 PC 통신 프로그래밍 동호회를 통해 거의 1990년대 중반(나의 중고딩 시절)부터 알긴 했는데, 그 뒤 소식이 끊어졌다가 먼 훗날 킹 제임스 성경 진영에서 극적으로 다시 만난 분이다.
목사가 된 뒤엔 사랑 침례 교회에 잠시 계시다가 포항을 거쳐 부산 제일 성서 침례 교회에서 자리를 잡으셨다. 내 고향에서야 1시간 남짓한 거리이니 한번 찾아뵙고 왔다. 목사님 부부도 날 아주 좋아하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교회가 역사가 길고 자체적인 부지와 예배당--좀 낡긴 했지만--을 갖추고 있다 보니, 건물 임대료 지출이 없는 것은 재정에 굉장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한국 교회가 괜히 '성전 건축'을 강조한 게 아닌 듯. ㅎㅎ)
영남의 대도시에 흠정역을 쓰는 지역 교회가 생긴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부산 대학교를 포함해 금정산 기슭의 각종 학교들하고도 가까이 있는데 학생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사랑 침례 교회와의 관계는 어찌 된 건지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니 짤막하게만 언급하자면, 역시 좁은 바닥에 태양이 둘일 수는 없고 목회 철학과 사역 방식,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서로 독립한 것에 가깝다. 이분 역시 사랑 침례 교회에서도 담임목사직을 즉시 완전히 승계하는 게 아닌 이상, 애초에 거기서 오래 계실 걸 생각하지도 않으셨다고 하고.

큰 교회에서 재직하는 부목사들은 어김없이 가능한 한 독립과 개척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다른 업종이 아니고 교육자이니 어지간히 열악해도 자기만의 살림을 차리고 싶어하는구나. 의사가 개인 병원 차리냐 그냥 페이닥터로 지내느냐, 변호사가 개인 사무실을 차리냐 아니면 대형 로펌에 취직해서 월급만 받고 사느냐를 고민하는 그런 차원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동 시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4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눴지만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위치가 부산 북부이니 갈 때는 응당 노포동 버스 터미널을 이용했지만, 돌아올 때는 동래 역에서 동해남부선 열차를 이용했다.
서울은 시내에 있던 단선 철도가 전부 복선 전철로 바뀌거나 아니면 폐선되는 등 확실하게 정리가 되었지만, 부산은 시내를 깊숙히 파고드는 단선 비전철과 간이역이 있으니 아주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4/02/12 08:23 2014/02/1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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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선민 2014/02/13 17:54 # M/D Reply Permalink

    날개셋 입력기, 편집기를 6년째 잘 쓰고 있는 열혈 유저이며 IT업계에서 일하는 1人 입니다.
    제가 봤을 때도 용묵님의 한글 기계화에 대한 업적은 넘사벽인 것 같습니다.

    1. 사무엘 2014/02/13 23:38 # M/D Permalink

      5.x 시절 때부터 사용하셨겠군요.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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