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국민의 외국 여행이 완전히 자유화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5년쯤 전인 1989년 1월 1일부터다.
그 전에, 특히 1980년대 이전에는 대한민국 국민은 단순 관광 목적으로는 아예 여권을 만들 수 없었다.

대학생의 어학연수나 배낭 여행? 그런 거 없었다.
신혼여행으로 하와이나 몰디브? 푸켓? 그런 거 없었다. 단순히 돈이 없어서 밖으로 못 뜨는 게 아니었다.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없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옛날에는 외교관의 관용 여권 내지 무역 회사 간부의 상용 여권 정도만이 있었다. 그런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일반인이 합법적으로 외국으로 나가려면 유학이나 해외 취업 같은 정말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만 했다.
그때는 여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완전 엘리트 똘똘이 내지 심지어 정부와 커넥션이 있다는 보증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다가 1983년에는 50세 이상 중장년층만 그 당시 물가로 100~20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예치금을 낸 뒤에야 관광 해외 여행이 허가되었다. 그때는 미국 비자 받기도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테고 물가 대비 비행기 운임도 더욱 비쌌을 테니 해외여행은 가히 세상 살 만치 다 살고 아주 풍족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나 국제선 비행기를 탈 수 없던 시절에 대한 항공 007편, 902편, 858편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참 억울하긴 했을 것 같다)

그 연령이 1987년경에 40대를 거쳐 30대까지로 낮아진 뒤, 서울 올림픽까지 끝난 1989년부터 장벽이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때는 우리나라가 소련과 수교하고 차우세스쿠 정권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격변기이긴 했다. 아 참, 대한 항공에 이어 아시아나 항공이 취항한 것도 딱 이 시기이고.

그런데 생각해 보자.
하다못해 그 전의 일제 강점기 때에도 조선인들은 '황국 신민' 자격으로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대만까지 별다른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었으며 일부 용자는 미국도 갔다 왔다.

그와 대조적으로 대한민국은 자유를 표방하면서도 왜 그토록 오랫동안 국민의 해외 여행을 통제할 수밖에 없었을까?
나라에서 자국민의 외국 방문을 너무 엄하게 통제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외국으로 유학 갔다가 귀국 안 하고 거기서 정착해 버린 고학력자 엘리트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과 같은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1. 냉전으로 인한 불온사상 통제

옛날에는 냉전 때문에 국제 정세가 지금보다 매우 험악했다. 그 시절에 동북아시아에 공산화가 되지 않은 나라는 별로 없었다는 걸 명심하시라. 북한, 중국, 소련 같은 사상적으로 위험한 나라와 방문 금지 국가가 이웃에 즐비했다. 국민들을 호락호락 외국으로 보내 줬다간, 누가 밖에서 공산주의 물 몰래 먹고 와서 뻘짓을 할지 어떻게 아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은 초대 대통령을 칭송하는 사람들이 주로 제시하는 그림이긴 한데..)

그래서 1980년대에는 여권을 만들려면 예치금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나라에서 시키는 반공 교육도 잔뜩 받아야 했다. 거액의 예치금을 낼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안정된 사회 기반이 있으며, 나이도 충분히 먹어서 알 거 다 알고 용공사상에 낚일 우려가 없는 사람에게만 여권 발행을 허락했는데도... 그걸로도 안심이 안 돼서 반공 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하긴, 일제 강점기 때에 한반도에 공산주의 사상이 전래되었던 것도 비교적 자유로웠던 국제 왕래 덕분이니 저러는 사정을 이해는 한다.

2. 여행을 빌미로 한 원정출산 내지 병역기피 방지

미국으로 날아가서 자기 배 속의 자식 새끼를 미국 시민으로 만들고 군대에서 빼는 약삭빠른 부유층 집안 얘기를 들으면 누구라도 열받지 않겠는가?

더구나 주민등록 전산 시스템도 없고 정부의 행정력이 지금보다 빈약하던 시절에 부유층 자제가 저런 꼼수를 써서 외국에서 잠적해 버리면... 징병제를 하는 나라에서 병역기피자를 잡아낼 길이 없었다. 부자들에 대한 서민들의 반감과 증오심은 더욱 커질 것이고.
게다가 옛날엔 지금보다 우리나라의 군사 안보가 더욱 위태로웠었다.

3. 과소비 + 외화유출 방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나라 분위기가 어땠던가? 외화 벌이에 목숨 걸고 완전 국산품 애용 + 양담배 추방 이러던 시절이었다. WTO(세계 무역 기구) 가입, 세계화, 개방 같은 풍조 따위는 없었다. 그러니 단순 관광 목적 해외 여행은 사치를 넘어 죄악· 금기시되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하다못해 1970년대 박 정희 시절엔 기술적으로는 이미 다 가능해졌는데도 빈부 계층간에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이유로 텔레비전조차도 컬러를 도입하지 않고 흑백 시스템을 일부러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외국 여행도 통제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런 여러 이유가 있으니, 과거에 있었던 이 나라의 외국 여행 통제에 대해서도 무슨 군사 정권의 산물이네 어쩌네 하면서 부정적인 면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1970년대에 20대 나이를 보낸 본인의 부모님께 그 시절의 분위기에 대해 여쭤 봤다. 사실 그 시절엔 대다수 서민들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더 궁핍했고, 먹고 사느라 바쁘지 해외 여행 따위는 어차피 꿈에도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었다고 한다. 신혼여행도 당연히 강원도나 부산 정도에, 돈 좀 보태면 제주도인 게 당연시되었고 말이다. 그러니, 나라에서 해외 여행을 막든 안 막든 그딴 거 관심 없고, 어차피 그건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니 딱히 제약이나 억압이라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1989년에 봉인이 풀리자마자 중산층 이상 서민들은 휴가철에 앞다퉈 해외로 나갔다. 각종 여행사 산업이 흥왕하기 시작했다. 1988년까지 흑자이던 관광 수지가 곧바로 적자로 떨어졌다. 그리고 해외 관광을 처음 하는 사람들 중에 일부 몰지각한 부류들이 벌이는 '어글리 코리안' 추태도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들에겐 국제 매너라는 개념 자체가 지금까지 없었을 테니.. 쩝~

요즘 경제가 어렵고 서민들 살기가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대는 말이 많다. 하지만 휴가철만 되면 공항은 외국 여행 가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성수기에 유명 관광지로 가는 비행기 표는 없어서 못 구한다. 솔직히 우리나라 정도면 서민들이 평균적으로는 정말 잘 살고 세계 상위급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옛날과 비교했을 때는 더욱 말이다.

우리 이전 세대가 마음대로 해외 여행도 못 가고 꾹 참고 일하여 국력을 일으키고 국위를 세계에 선양한 덕분에 다음 세대들은 마음껏 지구촌을 누비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대한민국 여권 정도면, 극소수 최상위 선진국을 제외하면 무비자로도 못 가는 나라가 없지 않던가.

“밤이 피는 김포 공항 비가 내리고 시간은 자꾸 가는데..”라고 바니걸스의 <김포 공항>이라는 가요가 있다. 이건 해외 여행 자유화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1977년에 발표된 곡이다. 그때는 국제선은 정말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 탈 수 있었을 테고 지금보다 국내 도로 인프라가 열악했을 테니, 오히려 국내선의 운영 비중이 더 높지 않았나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4/02/18 08:31 2014/02/1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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