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음, 지금까지 내가 블로그에 십계명 자체를 분석한 글을 올린 적이 없었구나.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법으로, 성경에서 출애굽기 20장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나중에 신명기 5장에서 재탕된다.
십계명은 곰곰이 뜯어 보면 굉장히 잘 만든 법 체계이다.
각각의 아이템들이 다 죄라는 vector space에서 서로 일차독립을 이루는 벡터를 구성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색깔)를 서로 독립된 분야(R, G, B??)별로 잘 망라했다는 뜻이다.
십계명의 속성을 쪼개 보면 이러하다.
I. 하나님 관련
1.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 형상: 하나님을 잘못된 방식으로, 혹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우기면서 섬기지 말라.
3.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일컫지 말라
신앙 정체성을 국가 정체성에다 비유하자면, 2와 1은 각각 내란죄-외환죄 정도에 대응하는 굉장한 중죄이다. 천주교의 십계명은 1과 2를 한데 뭉뚱그려서 '반역죄' 정도로 취급하는 듯한데, 본인의 입장에서는 신념상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금송아지 사건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이 대놓고 주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러 떨어져 나간 사건이 아니었다. 단지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간주하고 얘에게 경배했을 뿐이다.
3은 한국어는 딱히 그리 심한 게 없지만, 심심하면 Oh my God! Goddamn! Jesus! 이런 신성모독적인 감탄사를 남발하는 게 정확하게 해당한다. 성경이 말하는 그 심각하고 끔찍한 문자적인 지옥은 안 믿으면서, What the hell.. 이런 저주를 가벼이 입에 달고 다니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II. 약간 특이한 구석이 있는 중간 계명
4.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어떤 나쁜 짓을 하지 말라” 패턴이 아니라, “신이 정해 준 휴일엔 욕심 부리지 말고 조바심 내지 말고 반드시 쉬어라”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지금 쉬느라 생산성이 저하되는 것은 하나님이 유· 무형으로 나중에 다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이 계명을 지키려면 역시나 믿음이 필요하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닌 게, 딱 이 날을 노려서 적의 침략을 받기라도 하면 어떡할 참인가? (당장 우리나라의 6·25 전쟁만 해도 북한군이 일요일에 딱 맞춰 쳐들어왔었다!).
물론 안식일은 유대인의 표적이기 때문에 이 계명은 신약 크리스천에게 문자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 유일한 계명이다. 이걸 주일 지키는 것에다 적용하는 건, 마치 열역학 제2법칙을 들이대면서 진화론을 반박하는 것만큼이나 4계명을 굉장히 간접적으로 영적으로 적용한 귀결이다.
5. 부모를 공경하라: 사람 관련이긴 하되, 그냥 일반인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나님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특별한 사람에 대한 계명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패륜죄를 굉장히 싫어하신다. (출 21:15,17; 레 20:9; 특히 압권은 신 21:18-21)
안 지켰을 때 채찍만 가혹한 게 아니라, 지켰을 때 이 땅에서 장수할 거라는 당근까지 문맥에서 직접적으로 주어진 유일한 계명임.
III. 사람 관련
6. 살인하지 말라: 물리적인 폭력으로 지을 수 있는 죄 중에서 단연 1위. 하나님의 법은 “ '살인하지 말라'를 어기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살인은 흉계를 품고 남을 고의로 죽이는 것을 말한다. 고의성 없는 과실치사나 정당방위, 전쟁 등은 해당되지 않음.
7. 간음하지 말라: 꼭 물리적인 폭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사람 몸에다 쉽게 지을 수 있고 자기 자신의 몸까지 실질적으로 더럽힐 수 있는 심각한 죄이다. 간음은 성경에서 영적인 의미도 매우 크다.
8. 도둑질하지 말라: 남의 것을 속여 빼앗는 모든 행위에 대한 철퇴이다. 이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황금률 등 인생의 기본 원칙을 위반하는 죄이다.
9. 거짓 증언하지 말라: 거짓말에 대한 철퇴이긴 한데, 일단 이 문맥이 가장 좁은 범위에서 말하는 것은 판결을 굽게 하는 법적 위증을 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이건 그야말로 입만 뻥긋함으로써 지을 수 있는 죄이다.
10. 탐내지 말라: 이제는 입을 움직일 필요조차 없이 마음과 생각만으로 지을 수 있는 죄가 십계명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것은 인간을 다른 무수히 많은 죄들로 끌어들인 죄이며 스스로 완벽을 자처하던 사도 바울을 떡실신시킨 죄이기도 하다.
십계명은 신약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매우 유익하며, 제4를 제외하면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할 규범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행실을 하도 강조하다 보니, 십계명을 평생 지켜야 구원이 유지된다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율법주의 농간에는 속지 마시길 바란다.
이 자리에서 또 구약 율법과 신약 복음의 조화를 논하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매우 부족하니, 결론만 간단히 말하겠다. 구약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법은 “나 이렇게 외형적인 법을 딱 맞춰 지켰어요. 나 잘했죠? 이 정도면 내 힘으로 칭의와 구원이 가능하겠죠?”라고 으스대라고 있는 게 절대로 아니다.
성경은 십계명이, 아니 하나님의 법 전체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추상적인 계명에 그대로 요약되어 있다고 말한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롬 13:9)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