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초가을 근황 PART 1/4 -- 호박

요즘 날씨가 참 좋다.
일교차가 커서 심야와 아침에는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여전히 덥고 반팔 차림이 유효하다. 그래도 9월 말이 아니랄까 봐, 이제 낮기온이 30도를 넘어가지는 않고 밤 기온은 확실하게 20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해 여름은 심한 기복이 없이 무난히 잘 지난 것 같다.
덥긴 했지만 2018년 폭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초여름 장마가 너무 메롱이었던 게 아쉽지만, 그래도 잊을 법하면 비가 종종 내려 줘서 도저히 못 견딜 가뭄을 겪은 것도 아니었다.

또한, 장마건 태풍이건 작년 같은 정신나간 물난리도 전무했다. 이 정도면 올해는 날씨 하나는 확실하게 무난한 평타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올해는 신이 인간에게 전염병 재해와 날씨 재해를 동시에 한꺼번에 내리지는 않으신 것 같다.

추석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 가니, 앞으로는 몇 차례에 걸쳐 소소한 근황과 관심사 얘기, 그리고 추석 때 다녀온 곳 얘기를 늘어놓도록 하겠다. 호박이랑 돼지 얘기, 텐트 얘기 등이 나올 것이다. 특히 취미로 알음알음 시작한 호박 농사가 생각보다 재미있고 쏠쏠해서 이 얘기부터 먼저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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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로폼 상자에서 외로이 자라던 호박 덩굴을 모처의 텃밭에다 옮겨 심고, 물 주고 거름 주고 친구들도 더 붙여 줬다.
그랬더니 언제부턴가 잎과 줄기만 생기는 게 아니라 꽃이 쓱 피었다. 밤에는 펜촉 같은 꽃대가 삐죽 솟더니만 그게 아침엔 활짝 피는 게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아침마다 꿀벌도 날아와서 꽃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 뒤 암꽃이 진 자리에 호박 열매도 하나 둘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따서 요리를 만들어 먹은 것만 10여 개가 넘으며, 낙과는 그보다 더 많았다.
심지어 좀 서글픈 일이지만 서리· 절도로 잃은 것도 최소 대여섯 개는 된다. 이건 그래도 자연재해 내지 병충해로 식물 자체가 통째로 소실되거나 죽은 것보다는 나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냥 동그란 양파, 사과, 배 크기를 넘어 진짜 둥글동글하고 윗부분이 살짝 패인 호박 특유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게 신기하기 그지없다. 저 줄기는 무슨 전자 기기의 케이블도 아닌데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서 열매가 부풀어오르고 커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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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길이가 14cm 남짓하던 놈이 1kg을 좀 넘더니, 18cm 정도인 얘들은 2kg을 훌쩍 넘어서 2400g쯤 한다.
근래에는 최대 길이가 27cm에 달하고 무게가 4.7kg이나 되는 대박 월척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했다.
잘 자라 줘서 고맙다~! ^^ 호박이 채소 호박이 아니라 보석 호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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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본인이 딴 호박들의 길이(cm)-무게(g) 상관관계를 그래프로 그려 본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호박은 유전자 조작.. 없이도 지구상의 식물들 중 가장 거대한 열매가 맺히는 게 가능한 식물이기도 하다. 수백 kg에 달하는 슈퍼호박도 있으니까..

식물은 그저 물과 비료와 햇볕만 필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꽃가루도 묻혀 줘야 열매가 맺힌다는(충매화) 너무 당연한 원리를 비교적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꽃가루를 묻혀 주는 작업의 효율 면에서 곤충을 능가하는 존재는 이 지구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호박꽃에 암꽃과 수꽃이 차이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가 이제야 알게 됐다. 그리고 그냥 암수가 아니라, 뿌리가 다른 덩굴/그루 출신의 암꽃과 수꽃이 수정돼야 열매가 맺힌다는 것도..

9월이 되니 식물들이 날씨가 추워지고 자기 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끼고 더 열심히 열매를 맺어서 씨를 남기려는 것 같다. 한여름일 때보다 호박이 훨씬 더 많이 맺힌다.
단, 여름엔 좀체 볼 일이 없던 흰가루병 같은 병충해도 더 늘어난 것 같다. 밤에 날씨가 쌀쌀해져서 그런지, 잎들이 수명이 다하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평범한 누런색이 아니라 이상한 색깔과 형태로 말라죽는 잎이 심상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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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수박은 시뻘건 내부 중심 위주로 먹고, 껍질은 전혀 먹을 수 없어서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호박은 반대로 씨가 들어있는 중심은 못 먹고, 껍질을 포함한 가장자리 위주로 먹는다는 차이가 있다.

부모님이 요리를 하시는 걸 보니, 호박은 상태에 따라 요리해 먹는 형태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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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단호박은 노란 가장자리를 쪄서 고구마 먹듯이 먹는다.
  • 1kg 후반대 정도의 덩치는 돼야 중심부까지 살이 좀 차고, 썰어서 국이나 전처럼 초록색 과육이 보이는 형태로 요리 가능한가 보다.
  • 그러다가 누런 늙은 호박은 단맛이 나서 그런지, 그 이름도 유명한 호박죽이라는 노랗고 걸쭉한 즙을 만드는 데 즐겨 활용된다.

이런 바리에이션들이 전부 같은 품종인 채소의 상태 차이로부터 유래된다는 게 솔직히 지금까지 별로 실감이 안 갔었다. 그러고 보니 동그란 전통 호박도 있고, 가지처럼 생긴 길쭉한 서양 호박도 있는데 걔들은 식품으로서 어떤 차이가 있는 거지..??
뭐, 늙은 호박은 누런 주황색으로 바뀌니 색깔이 얼추 '호박색'과 비슷해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09/28 08:35 2021/09/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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