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동아 출판사'는 다방면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국내의 출판 문화를 이끌었다.
1. 전과
초딩용 월간 학습지 '이달 학습'
교학사 '표준 전과'와 더불어 '동아 전과'..;;
'전과'라는 단어는 대학 시절에는 '전공을 바꿈'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고, 사회인이 된 뒤엔 중범죄 형사 처벌 내력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는데..
초딩 시절에는 이게 전과목 학교 공부 내용을 보충하는 참고서 내지 백과사전이라는 뜻이었다.
교과서에 대해서 교사한테 '교과과정 지침서'라는 매뉴얼이 존재한다면, 학생한테는 전과가 있는 셈이다.;;
초등이기 때문에 두꺼운 책 한 권으로 전과목 커버가 가능한 듯하다. 초등에서는 교사 한 명이 전과목을 가르치는 것처럼 말이다.
중등 정도만 돼도 공부할 거리가 너무 많고 어려워지고 세분화되고, 애들의 진로도 서서히 갈리기 때문에 교육 과정 전체에 대한 1인 1책 몰빵이 곤란하다.
사실은 그 전에 초딩 고학년부터도 내 기억이 맞다면 전과가 두세 권으로 나뉘곤 했다. '국산사자 / 예체능'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지금이야 정보의 바다 인터넷 검색에다 숙제까지 해 주는 네이버 지식인까지 있으니 '전과'라는 게 쌍팔년도 시절에 비해서는 훨~~씬 덜 필요해져 있다. 그래도 요즘도 초딩용 동아 전과가 출간되고는 있는가 보다.
2. 사전
동아 출판사의 설립자(故 김 상문)는 전과뿐만 아니라 사전 덕후였다~! 도서 출판에 뼈를 묻은 경영자로서 책 중의 책, 책들의 왕은 사전이라고 생각했는가 보다. 그래서 애들 학습지에만 만족하지 않고 한국의 브리태니커 같은 걸 만들고 싶어했다.
1980년대 초-중반에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은 정말 위대한 업적이었다. 무려 30권에 달하는 전집이었는데, 나중에 보유편도 두 차례나 만들어서 기존 구매자들에게 개별 전달했다. 1990년대 초까지 '애프터서비스'를 해 준 셈이다.
마지막 2차 보유편에는 그 당시 계획 중이던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수록돼 있었다.
하지만 종이 사전은 서서히 돈 안 되는 사양산업이 돼 갔고.. 동아는 경영난을 좀 겪었는가 보다.
내가 중학생이던 96~97년 사이에 사명이 '두산동아'로 바뀌었고, 이때쯤 설립자가 여전히 '파스칼 대백과 사전'이라는 걸 또 만들려고 투자를 호소하고 애를 많이 썼던 것 같다.
동아는 백과사전뿐만 아니라 어학사전의 편찬에도 관여했다. 기억하시는가? 프라임~!!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동아 프라임 영한사전은 명성과 인지도가 아주 높았고, 컨텐츠가 아래아한글 한컴 사전에 수록되기도 했다. 아래아한글 2.5부터 97까지는 영한사전이 프라임 제3판이다가 워디안/20xx 이후부터 엣센스로 바뀌었다.
ㄲㄲㄲ
(본인이 프라임 영한 사전 종이책을 직접 뒤적였던 3판 시절에는 PRIME이라는 글자가 마치 DOOM 게임 로고타입과 비슷한 서체였는데.. 나중에 4판에서는 좀 더 튀는 꼬부랑 서체로 바뀌었다.)
그리고 1999년엔가 국립 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 국어 대사전의 초판도 동아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그 당시 명칭으로는 국립 국어원이 아니라 '국립 국어 연구원'이고, 동아 출판사가 아니라 '두산동아')
허나, 국어사전은 수지가 맞지 않아 손해를 많이 봤다.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초판의 이후로 표준 국어 대사전은 종이책의 출간이 완전히 중단됐으며, 현재까지 웹을 통해 수시로 업데이트 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3. 글꼴
옛날에 동아 출판사 진영은 의외로 서체 개발에 관심이 있었다. 쌍팔년도까지만 해도 동아 출판사만의 본문용 서체가 있었다. 명조(바탕)이지만 ㅈ의 ㅅ획이 ㅡ의 우측이 아니라 고딕(돋움)체처럼 중앙에서 시작하는 그 엄근진한 서체.. 동아 출판사 본문체가 훗날 'SM 세명조'와 '문화바탕체'로 나뉘어 계승됐다.
내 기억이 맞다면 쟤들은 1990년대 초에 가서는 휴먼편지, 휴먼모음, 휴먼새내기처럼 당대엔 꽤 참신하던 휴먼 컴퓨터 서체를 즐겨 도입해 썼던 것 같다. 지금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영문-숫자에도 2의 좌측 하단 획을 동그랗게 말았던 특유의 필기체가 있어서 문제집과 학습지에다 사용했었다.
4. 멀티미디어 타이틀
그럼 쟤들이 오로지 종이책밖에 고집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고 시도도 했었다.
오 성식 생활 영어 SOS가 종이책은 1993년에 '고려원'에서 먼저 출간됐지만, 멀티미디어 CD 타이틀은 바로 동아 출판사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졌다.
그리고 1990년대 말에는 2번에서 언급했던 세계 대백과사전을 CD 타이틀로 제작하기도 했다.
본인은 Windows 3.x에서 돌아가던 저 CD 타이틀을 써 본 적 있다. 종이책에는 없는 동영상 화보가 있기도 한 건 신기했지만, 용량의 한계 때문인지 전반적인 컨텐츠는 종이책보다 간소화되고 부족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상이다.
계몽사, 국민서관, 교학사, 지학사는 지금도 살아 있기는 하다. 앞의 둘은 아동용 도서 전집, 뒤의 둘은 뭔가 초-중등용 학습지 문제집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민중서림은 사전 출판으로 유명했는데 지금 살아 있나? 종이책의 지위와 위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져 버렸으니, 이런 업체들도 사업 방식이 아무래도 쌍팔년도 시절과 같지는 못할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금성 출판사도 있구나. 본인의 기억에 얘는 학습지로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지만, 교과서와 사전을 만든 적이 있었다. (뉴에이스!!!) 사전은 마소 Office 한글판에서 맞춤법 검사기인지 뭔지 사전 DB로 쓰였다고 About 대화상자에 꼬박꼬박 언급되어 있었다.
금성은 전자 제품에서는 삼성과 경쟁하더니(지금의 LG), 서적에서는 동아와 경쟁했던가 보다.
이 와중에 동아 출판사는 아동용 도서, 초-중딩 학습서, 그리고 사전까지 모든 영역을 넘봤었다. 생각해 보니 대단하다.
아 그리고.. 하이탑!!! 영어에 성문, 수학에 정석이 있지만 과학은 뭔가 압도적인 개인 브랜드가 없는 듯한데.. 거기는 동아 출판사가 다시 '동아 출판'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접수하고 있었다.
옛날 오리지널 동아 출판사라고 하면 뭔가 옛날 대우 자동차 같은 생각이 든다. ^^ 참고로 동아일보 신문이나 과학동아 잡지는.. 동아 출판사와 무관하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