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8월에 발사된 수성 탐사선 메신저 호가 그로부터 거의 11년 뒤인 2015년 5월 1일, 수성 표면에 충돌함으로써 장렬히 산화했다. 이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소식이다.
20세기 중반부터 인류의 우주 개발이 시작된 이래로 수성을 탐사한 우주선은 저 메신저,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무려 40여 년 전(1973-1974)에 발사된 마리너 10호 "단 두 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구와는 공전 주기나 궤도가 다른 행성이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워지고 탐사하기 좋아지는 시기가 언제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그 시기를 놓치고 나면 오랜 기간 동안 탐사선을 '안' 보내는 게 아니라 '못' 보내는 면모도 있음을 감안하도록 하자.

마리너와 메신저는 모두 미국 NASA의 작품이다. 소련은 지구로부터 비교적 가까운 천체인 달(최초로 뒷면 촬영)과 금성(수 차례 착륙!) 전문이었지만 그보다 더 안으로 가거나 더 밖으로 가는 일에서는 크게 재미를 못 봤다. 특히 화성은 숱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접근 도중 실패하거나 착륙 직후 통신이 두절되는 등 '화성의 저주'라는 징크스가 업계에서 나돌 정도로 악전고투를 면치 못했다. 물론 미국도 실패의 고배를 여러 번 마셨지만 말이다.

그렇게 화성으로 가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지만, 태양 쪽 내행성으로 가는 것도 만만찮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성은 반지름이 달보다 1.4배 남짓밖에 크지 않을 정도로 작은데 태양과는 또 너무 가깝다. 태양은 혼자서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를 넘게 점유하고 있는 깡패가 아니던가.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면 무슨 균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천지에 할 필요가 없으며 '기우'를 능가하는 쓸데없는 걱정임..;; )

수성을 제대로 관측하려면 탐사선이 수성의 궤도에 진입해서 수성을 뱅글뱅글 돌 수가 있어야 하는데, 저런 상황에서는 탐사선은 수성을 스치기만 한 후 수성보다 훨씬 더 무거운 태양의 중력에 끌려가기 십상이었다. 애초에 탐사선들이 긴 거리를 연료 없이 빠르게 가는 데는 다른 행성의 중력을 이용한 스윙바이 기법을 사용하는데, 중력의 끝판왕인 태양의 영향력를 어떻게 피하고 수성에만 곱게 진입을 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마리너 10호는 금방 도착한 대신에 수성과 금성 사이를 몇 차례 근접 비행만 하다가 곧 태양의 궤도로 끌려갔다. 수성의 모든 표면을 들여다보지는 못하고, 전체의 절반 남짓 정도밖에 촬영을 못 했다.

메신저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성과 금성 사이에서 오랫동안 스윙바이를 하며 감속을 했다. 스윙바이는 보이저나 파이어니어 같은 외행성 탐사선에서는 가속을 위해 사용하며, 특히 질량이 큰 목성 근처에서 가장 크게 가속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내행성 탐사선에서는 일종의 역추진 감속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속도를 줄이고 줄인 끝에, 메신저는 선배인 마리너 10호가 하지 못한 수성의 궤도에 사뿐히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수성을 4천(신문 기사를 보니 정확히는 4104회) 회가 넘게 돌면서 10만 장이 넘는 분량의 사진을 지구로 보냈다.

그 대신, 이런 속도 조절을 위해 메신저는 수성까지 가는 데, 아니 정확히는 수성의 궤도에 진입하는 데 발사 이후 무려 6년 반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지구에서 수성은 가장 가까워졌을 때의 거리가 0.6~0.7 천문단위 정도이다. 패스파인더 화성 탐사선(1996-1997)이 최단거리로 약 0.5 천문단위 정도 떨어진 화성까지 가는 데 약 7~8개월이 걸렸음을 감안하면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린 셈이다. 우주선을 수성의 궤도에 진입시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우주 탐사선들의 이런 묘기들은 다 연료 없이 활강이나 스윙바이만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필요해진 것이다.
가령, 지구 중력의 탈출 속도가 초속 11.2km라고 하는데 이건 현실의 대기권에서는 당연히 실현 불가능한 속도이다(엔진 성능의 한계, 공기 저항). 더구나 이건 한번 발사 후 추가적인 에너지 공급이 없는 스페이스 건 같은 걸 운운할 때에나 의미가 있다. 현실의 로켓들은 끊임없이 연료를 추진해 주기 때문에, 초속 11.2km와는 비교도 안 되는 느린 속도로도 지구 중력을 잘만 탈출하며 우주로 나간다.

그 대신 9.8m/s^2에 달하는 지구의 중력을 탈출하는 게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에, 지구만 빠져나가고 난 뒤부터는 우주 발사체들은 연료 부족에 시달린다. 달에 갔다가 지구로 재진입할 때도, 연료 걱정만 없다면야 역추진 감속을 해서 공기와의 마찰열을 줄이면 되며 착륙도 비행기처럼 우아하게 하거나(우주 왕복선), 아예 로켓 발사의 역순마냥 슬금슬금 수직 강하를 해도 된다. 연료가 없이 글라이더 활강만 해야 하기 때문에 진입 각도 걱정을 해야 하고 공기와의 마찰열 걱정을 하는 등, 재진입이 어렵고 위험천만한 묘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 것처럼 내행성 탐사선도 자체적으로 가속을 할 수 있는 연료만 충분하다면 저런 6년 반짜리 삽질을 안 해도 된다. 태양 근처까지 갔다가 자체적으로 속도와 방향을 바꿔서 태양 대신 수성의 궤도에 쏙 들어가도 됐을 것이다. 그 가속 제어를 안 하면 헬리오스 탐사선(1974년 1호, 1976년 2호)처럼 된다.

얘는 이름도 그리스어로 태양이라는 뜻이고, 처음부터 내행성이 아닌 태양의 탐사를 목표로 NASA+서독 합작으로 발사된 탐사선이다. 그러니 스윙바이 감속 같은 거 필요 없고, 수성보다도 태양에 더 가까이 접근하여 가속을 받은 끝에.. 공전하는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져서 초속 무려 70.2km, 시속으로는 25만 2천 km를 넘어갔다. 이것은 외행성 탐사선 중에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보이저 1호의 진행 속도의 4배를 넘는 수치이다. 메신저 호의 입장에서는 자체 동력 없이 이걸 막아야만 수성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메신저는 발사체 말고 자체적으로는 엔진 같은 게 전혀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지구의 인공위성에도 궤도 수정을 위한 최소한의 연료 분사 엔진은 달려 있으며 이는 메신저 역시 마찬가지였다.
궤도에 진입하더라도 그 궤도가 언제까지나 평행하게 유지되지는 않는다. 태양으로 끌려가지는 않는 대신 조금씩 수성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이를 보정하기 위한 연료 분사가 필요했다. 구체적인 역학 원리는 본인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이것 때문에 수성을 반영구적으로 도는 건 기술적으로 안 되는 듯. 메신저 역시 그 연료가 떨어지면서 수성의 지표면에 충돌하게 됐다. 천지창조 이래로 내행성 수성에 인공 구조물이 최초의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충돌은 수성의 표면 중 지구 쪽이 아니라 반대편 태양 쪽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지구에서 관측할 수 없었다.

인간이 만든 우주 탐사선이 (1) 사뿐히 착륙 또는 (2) 불의의 사고로 추락이 아니라 고의로 충돌한 적이 있는 천체는 달(소련 루나 2호, 1959 이래로 여럿 있음), 목성(NASA 갈릴레오, 1989-2003)에 이어 수성이 하나 추가됐다. 임무가 다 끝나서 충돌시키거나 충돌 그 자체가 목표인 것 둘 중 하나이다. 금성은 마젤란 호가 연료 고갈 후 1994년 10월에 금성의 대기권 안으로 추락하면서 최후를 맞이한 적이 있다. 내 생각엔 잔해가 땅에 닿지도 못했을 것 같다. (금성의 대기압은 90기압이 넘음!)

끝으로, 우주 탐사선의 외형의 차이에 대해 생각할 점이 있다. 외행성 탐사선은 닥치고 태양으로부터 멀어지니 그냥 원자력 발전기가 달렸고 지구의 인공위성은 태양광 발전판이 달렸다면, 내행성 탐사선은 뜨거운 태양열로부터 전자 기기들을 보호하는 커다란 방열판이 탑재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뭐, 지구 인공위성도 모든 부위가 고르게 태양에 노출되도록 자신을 뱅글뱅글 돌려 주는 장치 정도는 들어가 있다. 한쪽만 너무 열받아서 배터리가 폭발이라도 하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5/07 08:27 2015/05/0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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