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이나 단체에 대해서 잘잘못과 선악 구도를 평가할 때 어지간해서는 병크라도 그런 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정황이 감안되고 "그 상황에서는 너를 포함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얘도 사실 알고 보면 착한 놈이다 / 시대적인 한계였다" 같은 실드가 작용한다. 하지만 정말 도저히 실드가 안 쳐지고 절대적인 악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나쁜놈들도 드물게 있다.

과거 20세기 중반까지는 양대 추축국이던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 그리고 현재는 북한 정권과 IS가 이 정도의 악명을 떨치고 있다. 공산주의가 들어섰다고 해서 다 북한처럼 된 건 아니었는데 왜 저 동네만 저렇게 최악에 최악의 막장으로 곪았을까? 김 일성은 처음에는 소련의 꼭둑각시로 시작했다가 어떤 정치 수완을 발휘하여 다른 정치 라이벌들을 몽땅 숙청하고 김씨 왕조를 이뤄 냈을까? 북한 정권의 수립 과정을 잘 숙지해야 종북 좌빨들이 벌이는 역사 왜곡 싸움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은 처음에는 총통 같은 절대권력에 이를 수 있는 처지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야당들을 야금야금 몰아내고, 천부적인 웅변술로 대중들을 현혹시키고, 특히 국회 의사당 방화 사건을 빌미로 대중 공포심을 조장하여... 누구의 진술에 따르면 그야말로 합법적인 방법의 약점만 최대한 요리조리 파헤쳐서 결과적으로 비합법적인 꼼수만으로 권력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고 그런다.
북한과 나치에 비해 IS나 일제는 생성 과정이 상대적으로 덜 궁금한 편이다. 이 글에서는 나치 얘기를 주로 늘어놓도록 하겠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1차 세계 대전 때의 전쟁 영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히틀러를 키워 준 꼴이 되어 오늘날 독일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은 못 받는 지도자로 전락했다. 나치는 권력을 잡은 뒤 국민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야금야금 통제하고 학교와 유치원까지 작은 병영처럼 꾸며서 자라나는 애들을 히틀러의 홍위병 총알받이로 키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유대인 학살에 장애인 말살 등 끔찍한 반인륜 범죄를 저질렀다.

이런 짓의 원흉인 히틀러가 열성적인 동물 보호론자였다는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이다. 동물 학대를 처벌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동물 학대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에 반하며, 그걸 저지르는 사람은 사람까지도 학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동물 보호론자와 인간 백정 성질을 모두 지닌 캐릭터는 저런 통념(?)으로는 존재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마치 음란물과 폭력적인 게임을 많이 접한 사람이 실제로 유사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지 상관 관계만큼이나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라 여겨진다.

나치 당 + 히틀러의 재임 기간은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재임 기간과 거의 동일하다(1933-1945, 약 12년). 미국 대통령은 전쟁을 다 끝내 놓고 좋은 세상이 오기 직전에 히틀러보다 불과 몇 달 일찍 병사했다.
히틀러의 휘하에서 독일이 미쳐 가는 와중에, 나치의 지배를 받는 외국 국민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독일 자국민들은 그저 총칼 위협에 굴복하여 침묵만 했을까? 아니면 한 술 더 떠서 히틀러가 하는 광기 어린 인간 숙청과 정복 활동에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동조만 했던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았다. 일부 저항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백장미단'(White Rose)이라고 청년이 주축이 된 소규모 비정치 비폭력 저항 단체가 있었다.
백장미단은 백색 테러 같은 것과는 전혀 관계 없고 정말로 "펜은 칼보다 강하다" 스타일로 움직였다. 주된 활동 방식은 공공장소에서 몰래 '삐라'를 살포하는 것이었다. 히틀러를 비판하고 나치의 비인간적 만행을 폭로하고 "우리나라는 연합국을 상대로 전쟁을 결코 이길 수 없다. 나치는 얼마 못 가 패망한다. 정부의 선전선동에 속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 우리는 세계 인류 앞에, 역사 앞에서 죄인으로 기록되지 말자." 이런 메시지가 담긴 논리정연한 글을 배부했다.

이 단체의 핵심 인물은 겨우 20대 초중반 나이인 '한스 숄'과 '소피 숄'(1921-1943)이라는 이름의 남매였다. 독일어에서는 음절 초의 s는 z로 발음되기 때문에 여동생의 이름은 '조피'가 더 정확한 표기이지만, 국내에서는 영어 스타일의 '소피'라는 표기가 더 유명한 듯하다. 이들은 그 어려운 시절에 남매가 모두 뮌헨 대학교에 진학했을 정도로 똑똑했고, 한편으로는 집안도 남매의 대학 학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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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 대학생인 게 얼마나 큰 특권이냐 하면, 대학교 재학생은 국가적인 엘리트이기 때문에 군대 징집이 면제되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 미친 군국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전시에 얼마나 큰 혜택을 줬는지 상상이 되는가? 대학은 개나 소나 다 가는 필수가 됐고 군대 휴학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지금의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저 남매도 어린 시절엔 남들이 다 그러는 것처럼 히틀러 유겐트에 열심히 동참했으며, 히 총통에게 충성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크면서 남과 다른 견해를 허용하지 않는 몰개성 세뇌 교육에 회의와 환멸을 느끼게 됐으며, 자기 나라 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침략 전쟁과 장애인과 유대인 학살까지 접하면서 저항하는 쪽으로 성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1941년, 오빠가 먼저 백장미단 활동을 시작했고 그 뒤에 동생도 동참하고 일부 대학 교수 등 동지가 조금씩 더 붙었다.

글로써 싸운다는 건 같은 나라에서 수백 년 전에 있었던 마틴 루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루터의 종교 개혁도 인쇄술의 대중화로 인한 성경과 여타 책, 유인물의 대량 보급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40년대는 아직 컴퓨터 시대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루터에게는 없었던 타자기와 등사기가 있는 덕분에 글로 싸우는 것이 좀 더 수월했다. 단, 전쟁 중이라 물자가 부족해서 종이가 지금만치 싸고 풍부하게 있지는 않았다는 점은 감안할 점이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방 정환의 경우 3· 1 운동 때에 <독립 신문>이라는 반일 성향의 소식지를 몰래 인쇄해서 배부했는데, 이게 발각되어 집이 형사들에게 몽땅 포위당했다. 그는 인쇄된 신문과 등사기를 몽땅 우물 속에다 던져 버리고 시치미 뚝 뗀 덕분에, 1주간 구금을 당하긴 했지만 혐의를 겨우 피했다. 오염된 우물의 뒷수습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겠지..;; 그에 비해 오늘날의 변기는 종이를 아주 잘게 쪼개서 버릴 수는 있지만 여전히 막히는 거 걱정을 해야 하며, 등사기까지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방 정환의 경우 등사기만 갖고 있었지 타자기는 그 시절에 존재하지 않았다. 원고를 그냥 손으로 써야 했으니 얼마나 불편할까? 그러니 동양 한자 문화권의 선각자들은 서양 사람들의 획기적인 문자 기계를 보고 좌절했으며, 자국 문자도 타자기로 만들 수 있는 형태로 과감하게 개조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으리라 여겨진다.

흠, 갑자기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만..
백장미단의 활동은 불행히도 오래 가지 못했다. 몇 차례 불온삐라가 발견되자 정부 역시 통제와 단속을 강화했다. 운명의 그 날, 그들은 낮에 과감하게 뮌헨 대학교 강의동에 들어가서 유인물을 몰래 뿌리고 오기로 했는데.. 한번 뿌리고 나왔다가, 아직 유인물이 더 남아 있는 걸 보고 또 건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상한 행적이 나치 끄나풀이던 건물 경비에게 눈에 띄고.. 이들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때가 1943년 2월 18일이었다.

남매는 서로 격리된 채로 "넌 정체가 뭐냐? 이 유인물 어디서 났냐? 누가 작성했냐? 누가 이 일을 시켰냐? 배후에 또 누가 있냐? 뭐, 우리가 전쟁에서 진다고라? 등등등등~~" 게슈타포로부터 끝없는 심문을 받았으며 결국은 혐의가 인정되어 구속됐다. 그리고 단심으로 진행된 형식적인 인민 재판에서 무려 내란· 반역· 이적행위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전원 사형이 선고됐다.

이 재판은 북한의 인민 재판과 별 다를 바 없는 쇼에 지나지 않았다. 답은, 아니 판결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백장미단을 재판한 사람은 '롤란트 프라이슬러'라는 악질 판사였는데... "대학까지 간 애들은 국가에서 특별히 배려해서 군대에도 안 보내고 공부를 더 시켜 줬더니만 이노무 자슥들이 은혜를 모르고 이딴 짓거리나 해? 대가리에 똥만 가득한 새퀴들 같으니!" 식으로 판사가 검사보다도 더 피고를 더 몰아세우면서 고래고래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는 사법 권한을 이용하여 흉악범이나 간첩뿐만 아니라 반나치 인사들도 대거 사형으로 숙청했기 때문에 엄연한 나치 전범이다. 전후에는 판사복이 아니라 죄수복을 입은 피고인으로 법정에 다시 섰어야 할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나치가 패망하기 얼마 전, 길 잃은 포탄의 포격을 받고 죽어 버리는 바람에 험한 꼴을 용케 피해 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숄 남매와 유인물 가담자에게는 사형이 집행되었다. 체포에서 사형 집행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나흘(2월 22일!)에 불과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방식은 총살도, 교수형도 아니고 무려 단두대 참수였다. 자기 정책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뿌렸다는 이유로 여자까지 낀 20대 대학생을 반역죄로 몰아 목을 베어서 죽인 것이다. 그것도 1940년대에, 피지배 식민지 주민도 아니고 자국민을 상대로..;; 나치가 얼마나 잔혹한 집단인지를 알 수 있다. 단두대는 프랑스 대혁명 때에만 쓰인 물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행 중에서는 여자인 소피가 가장 먼저 집행되었다. 이거 집행 순서도 은근히 중요하다. 남이 죽는 걸 다 보고서야 제일 나중에 집행되는 게 사형수의 입장에서는 제일 무섭고 끔찍하니까. 사형과 정반대인 시상식에서도 1등상을 제일 나중에 주는 것처럼 말이다.
참고로 나치는 악질적인 죄인을 단두대로 처형할 때는 죄수를 엎드리게 한 게 아니라, 눕혀서 칼날이 떨어지는 걸 보게 하기도 했다. (그래 봤자 눈을 감으면 안 볼 수 있겠지..) 조선 시대에 정 약용의 형 정 약종도 천주교를 믿다 순교할 때, 하늘을 보면서 죽겠다고 하면서 비슷한 자세를 자처하며 참수를 당했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분위기가 영 딴판이다.

숄 남매를 비롯해 백장미단은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의 의로운 행적은 잊혀지지 않았다. 나치가 패망한 뒤 그들은 독일 내부에서 추모와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의 고향에는 동상이 세워졌으며, 각종 길거리의 명칭에 그들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들의 일대기는 책과 영화로도 응당 나왔다. 영화로는 <백장미>(1982)와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2006). 전자는 활동 중심이고 후자는 활동보다는 체포 후의 길고 지린 심문과 재판 과정을 더 중점적으로 다뤘다.

그 당시에 단두대를 가동한 사형 집행관들은 흔한 제복이나 작업복이 아니라, 무슨 마술사처럼 검은 연미복에 실크햇, 나비넥타이 정장 차림이었던 게 인상적이다. 나름 자신들의 직업 의식을 표현하고 사형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영화에도 잘 묘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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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나치 시절까지 단두대 처형(백장단 단원까지 포함해)을 전문으로 맡았던 실존 인물인 '요한 라이히하르트(1893-1972)'의 근무 복장이다. 영화가 정말로 사실 고증을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이야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사형 집행을 한 죄밖에 없으니 딱히 전범으로 처벌받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연합국 측에 재고용되어서 사형 선고를 받은 다른 나치 전범들을 교수대에 매다는-_-;;; 일에도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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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실전 참전 용사들이 전쟁 영화를 싫어하듯, 사형 집행관들은 사람을 죽이는 게 직업이다 보니 그쪽 방면으로 극도의 트라우마와 거부 반응이 있다. 옛날에 성 바돌로매 대학살(1572) 때도 다른 시민들은 광기에 휩쓸려서 크리스천들을 마구 죽였지만, 이때 오히려 사형 집행관 망나니들은 그 일에 전혀 가담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형 집행 이야기는 됐고... 백장미단의 일대기를 다룬 책은 유족들에 의해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1978년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이거 한때는 운동권에서의 필독서이기도 했다.

아시다시피 본인은 국내 정치에 한해서는 종북 좌경화 역사 날조라는 변수 때문에 소위 말하는 '보수 우파' 성향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변수만 없으면 난 얼마든지 성장과 분배, 진보와 보수의 장단점을 골고루 인정하고 중도를 갈 의향이 있다.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 자체를 좌파 빨갱이 식으로 몰아갈 생각은 물론 전혀 없다. 북한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관점과, 비정치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관점 정도는 서로 구분할 줄 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과거 군사 독재 정권이 무슨 북한 정권이나 나치와 똑같다는 식의 매도에도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부 비판이나 북한 관련 병크만 빼면 나머지 국민의 자유는 별로 침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거나 인종 학살을 저지른 건 더욱 아니고. 차라리 '진보 좌파'들이 반정부 투쟁을 안 벌이고 염전 노예라든가 형제 복지원처럼 그 당시 사회의 구석에서 벌어지는 비정치 분야의 인권 유린 같은 것만 폭로하고 비판했으면 그런 건 본인도 얼마든지 인정하고 공감했을 것이다.

글이 길어지니 백장미단 인물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만한 인물들 열전은 다음 시간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03/01 08:35 2016/03/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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