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일자산 탐방기

본인은 올해 초에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 역할을 하는 서울의 서쪽 병풍인 봉산· 앵봉산을 다녀왔다. 그 다음으로는 서울과 하남시의 경계 역할을 하는 동쪽 병풍인 일자산을 다녀오겠다고 진작부터 계획하고 있었는데, 서쪽 답사 이후 70여 일이 지난 뒤에야 계획을 실행하게 되었다. 둘 다 서울 둘레길에 포함되어 있다.

봉산· 앵봉산도 해발 200m대의 낮은 산이지만 일자산은 최고 높은 곳이 150m가 채 안 될 정도로 더욱 낮은 산이다. 그러니 등산 대상으로서의 의미는 별로 없고, 그냥 교외의 고지대에 자리잡은 공원 내지 산책로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름처럼 꼭대기 능선이 一자 모양으로 수 km에 걸쳐 있기 때문에 걷기에는 좋다.

일자산의 존재감은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선형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5호선은 잘 알다시피 강동 역을 끝으로 동쪽으로 더 직진하지 않고 상일동과 마천이라는 두 지선으로 갈라지는데, 일자산은 그 상일동· 마천 지선의 선형과 얼추 평행하게 동쪽 끝을 가로막고 있는 형태나 마찬가지이다.

천호대로를 타고 강동 역보다 더 동쪽으로 가면 서울 시가지가 끝나고 밭이나 화훼단지 농장 같은 거나 볼 수 있는 그린벨트 완충지대가 나타난다. 그리고 외곽순환 고속도로 진입로까지 지난 뒤부터는 행정구역이 서울에서 하남으로 바뀐다. 일자산은 서울과 하남의 경계 역할을 하다가 북쪽 끝에서 천호대로와 만난다.

본인은 이런 지리 정보를 염두에 두고, 5호선 마천 지선의 첫 정거장인 둔촌동 역에서 내려서 일자산으로 접근을 시작했다. 둔촌동 역 근처에는 지은 지 꽤 오래 된 듯한 주공 아파트 단지가 있었고, 전통 시장도 길 건너편 주변에 보였다.
그리고 여기 버스 정류장에는 서울 버스뿐만 아니라 하남시 내부로 들어가는 하남시 소속 마을버스도 일부 다녔다. 본인은 여기서 하남 마을버스 7번 또는 8번으로 환승해서 일자산 기슭에 자리잡은 보훈 병원 내지 대순진리회 방면으로 가려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버스는 평소에도 배차 간격이 20분을 넘고, 주말· 공휴일엔 45분까지 벌어지며 심지어 수틀리면 아예 운휴까지 하는 막장 버스였다. 아이고, 일자산 근처가 그렇게까지 오지는 아닌 것 같던데 이 무슨 낭패..
결국 산기슭까지 1.5km 정도 거리는 그냥 걸어서 갔다. 지하철 한두 정거장, 버스 서너 정거장 거리인데 어차피 도저히 못 걸을 거리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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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드문 서울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인 게 보였다. 서울 지하철 3호선의 동남쪽 말단 구간 중에는 경찰 병원도 있는데 보훈 병원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군인도 경찰도 아닌 다른 국가유공자를 위한 병원 같아 보이긴 하다)
5호선은 상일동 지선이 더 연장되어 검단산 기슭까지 갈 예정이라는데, 9호선이 동쪽 끝까지 연장되면 일자산을 찾아가기가 더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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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일자산 진입로를 발견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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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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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조금 걷자 어마어마한 규모의 묘지가 나왔다. 예전에 망우산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던 거 생각이 났다.
당시 현장에서 눈으로 본 광경은 꽃과 풀 색깔이 어우러져서 색감이 이 사진으로 찍힌 것보다 더 밝고 알록달록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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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를 지난 뒤에는 이렇게 잘 닦인 산책로가 이어졌다. 산악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도 될 법해 보이는데, 안전을 위해서 자제해 달라는 표지판도 곁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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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현대의 기준으로도 서울의 완전 끝자락인데 하물며 옛날에는 한양과 아무 관계 없는 깡촌일 뿐이었다. 일자산은 성곽 같은 역사 유물도 없고, 군사 시설도 없는 듣보잡 동네 뒷산 언덕에 불과하지만, 역사적인 에피소드가 딱 하나 있었다.
둔촌 '이 집'이라고 고려 말(1300년대, 신 돈과 동시대)의 재야학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말년에는 일자산 일대에서 속세를 떠나 살았다고 한다. 굉장히 옛날 인물이고 지금까지 본인이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인데 아무튼.. 젊은 시절에 많은 독서와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서 저런 격언을 남긴 모양이다. 참고로 무덤은 서울이 아닌 성남시에 있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이라는 지명은 바로 저 사람의 아호에서 비롯되었다. 村이라는 글자가 있지만 의외로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다. 강서구의 등촌동과는 전혀 관계 없으니 헷갈릴 일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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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길은 계속 이어졌다. 서울 쪽보다는 하남 쪽이 전망이 더 좋았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훨씬 더 시골 분위기였다. 그리고 워낙 낮은 산이니 딱히 전망을 볼 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단, 북쪽으로 가까워질수록 마주치는 등산객? 방문객이 갈수록 많아져서 아무도 없는 배경 사진을 찍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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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산의 정상처럼 생긴 공터에 도달했다. 등산이라고 할 것도 없는 언덕인데 시계와 온갖 운동 기구와 벤치가 비치되어 있고, 사진에 안 나왔지만 근처엔 컵라면과 음료수를 파는 산장(?) 천막도 있었다. 등산복 차림으로 벤치와 탁자에 앉아서 쉬거나 음식을 먹는 일행도 많이 보여서 이거 무슨 꽤 높은 산의 정상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자산의 산책로는 이것으로 끝이고, 그 다음으로는 내려가는 비탈길만 있었다. 하산은 그냥 5분이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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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오니 앞에는 뭔가 초원/정원처럼 꾸미려고 준비 중인 듯한 넓은 공터가 보였다. 모래 뻘밭에다 인위로 심어 놓은 나무가 듬성듬성 놓여 있으니 무슨 사막 같다. 차나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은 포장되고, 식물이 있는 곳에는 잔디가 어서 심겨야 할 것 같다.
일자산은 출발 지점이나 도착 지점 모두 주차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차를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편도 동선으로 인해 차마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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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둔촌동에서 출발해서 천호대로의 하남 초이동 근처 구간에서 일자산 산책을 마쳤다. 산에서 걸은 거리는 약 3km 정도 되고, 하산 후에 버스 정류장까지는 또 600m 정도 걸었다. 그러니 전부 합하면 최소한 5km 이상을 걸었다. 진짜 등산 매니아들은 이 정도는 약과고 10수 km 이상도 걷긴 하는데...

아까 지도에서도 볼 수 있듯, 서울 강동구에는 일자산의 북쪽으로 명일 근린공원과 고덕산 같은 언덕 숲길이 더 있으며 이 역시 공식적으로 서울 둘레길의 일부이다. 한데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에 시내를 통과해야 하긴 하지만. 또한 둘레길은 아니지만 길동 생태 공원이 있고 일자산에도 산책로 말고 다른 공원이 더 있다. 인서울의 말석 외곽 위치여서 교통이 불편한 건 단점이겠지만 이런 거 하나는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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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꽃들이 굉장히 예뻐서 사진에다 몇 장 담았다. 여기는 경치 좋고 높고 유명한 산의 기슭이어서 등산용품 매점이나 식당· 유원지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법적으로 개발 제한 구역이다 보니 화훼단지나 주말농장 같은 것만 있다. 서울에서 이런 사진 찍을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도 야금야금 그린벨트가 풀리고 개발되고 곳곳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으니, 이런 광경을 보는 날도 얼마 안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 자연의 정취가 있는 곳은 많이 돌아다녀야겠다. 평지는 자동차로 다니고, 산은 운동을 겸하는 등산으로 다니면서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06 08:37 2017/07/0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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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앵봉산· 봉산

서울 북서쪽의 은평구에는 동쪽으로는 북한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 병풍 역할을 하는 길다란 언덕? 산?이 있다. 높이가 200여 m 남짓밖에 안 되니 등산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그냥 공원· 산책로에 가깝다.
정상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대놓고 횡단· 종단에 의의를 둬야 한다. 또한 산기슭은 온통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등산용품 매장이나 유원지 같은 걸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저기는 전형적인 동네 뒷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봉우리엔 북쪽에서부터 남쪽 순으로 앵봉산· 봉산· 수색산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다. 본인은 지난 한겨울에 저기를 다녀 왔다.
서울 시내 등산을 다니면서 본인은 한양도성, 북한산성 등 산과 관련된 여러 유물, 제도, 순환 관광 코스들에 대해 알게 됐다. 저기를 답사하면서 이번에는 '서울 둘레길'에 대해서 이제야 드디어 확실하게 감을 잡았다.

예전에 북한산이나 아차산을 오를 때도,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아니라 능선이나 중턱에 이상한 길이 나 있는 건 지도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다 한데 이어져 있고 서울시에서 비교적 최근에 작정하고 일관된 시스템으로 '둘레길'이라는 걸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는 건 처음으로 알게 됐다. 공식 홈페이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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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나름 지리 공부도 되고 나쁘지 않은 발상인 것 같다. 높은 산들은 그냥 중턱에만 길이 나 있고, 앵봉산· 봉산처럼 낮고 긴 산은 정상 능선이 경로이다.
서남부는 산이 없는 관계로 예외적으로 안양천을 따라 길이 나 있다. 그러니 옛날에는 산을 피하느라 경부선 철도도 영등포로 우회하는 형태로 놓인 것이지 싶다.

이런 의미를 두고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 역에서 내려서 먼저 앵봉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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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와 정자, 체력 단련 시설이 나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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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참호 같은 군사 시설도 등장했다.
안 그래도 답사 당시 날씨가 몹시 추웠는데 저 참호 안에 들어가서 한숨 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기 안은 왠지 따뜻할 것 같았다.
한겨울엔 땀이 안 나는 대신 콧물이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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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산의 건너편은 초록색 펜스로 가려졌다. 군사 시설 때문은 아니고, 건너편에 서오릉이 있어서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이다. 이 점에서는 의릉 때문에 펜스가 쳐진 서울 천장산과 사정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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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딱 한 군데 전망대가 있기도 해서 풍경 사진을 남길 수도 있었다. 여기 말고 다른 곳은 온통 나무가 우거져서 산 아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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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는 이렇게 텔레비전 송신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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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펜스의 색깔이 잠시 검정으로 바뀌기도 하다가 다시 초록으로 복귀하면서 내리막이 이어졌다.
나중엔 울타리와 산책로도 없어지고 흙길이 나오다가 서오릉로와 합류하는 걸로 앵봉산 구간이 끝났다. 여기까지 3km가 넘게 좀 걸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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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이 다니는 서오릉로를 횡단하면 봉산 구간이 곧장 나온다.
이 공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차를 세워 놓기에 안성맞춤인데 여기는 딱히 차 끌고 방문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게 딜레마이다.
참고로, 답사 당시에 저기는 길이 온통 빙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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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도 정상(?)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정말 금방 도달할 수 있다. 꽤 넓은 공터가 닦여 있으며, 전망대와 정자, 그리고 봉수대 모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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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건너편에는 비슷한 높이의 언덕인 망월산이 있고, 망월산과 봉산 사이에 '고양 향동 공공주택 지구'라는 이름으로 한창 공사판이 벌어진 게 보였다. 몇 년 뒤면 저기도 온통 아파트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게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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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높이가 대략 어떻고 산기슭이 어떤 분위기인지는 위의 사진 한 장으로 대략 설명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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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난 뒤에도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런 식으로 길이 계속 이어졌다.
산이 자연스럽게 끝날 때까지 증산· 수색 방면으로 계속 가고 싶었지만, 시간과 보급의 한계로 인해 서울 시립 서북 병원쯤에서 하산을 결정했다. 내려가는 길이 온통 미끄러운 빙판이 돼 있어서 다니기가 몹시 힘들었다.

최종 하산 지점은 봉산을 정면으로 관통하여 서울과 고양시를 잇는 터널 근처였다. 이건 작년 여름 시점의 로드뷰를 봐도 아직 미개통 상태였을 정도로 정말 최근에 뚫린 터널인 것 같았다.
국도 1호선 증산로 방면으로 한참을 걸은 뒤, 최종적으로는 새절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비록 산의 절대적인 높이는 낮은 편이지만 여느 산을 오를 때와 비슷한 시간 동안 총 7km가 넘게 걸은 것 같다.

산 너머로 그린벨트 마을 같은 게 있었으면 고양시 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쪽은 공사판이고 볼 게 없어서 도로 서울 시내 방면으로 하산하게 됐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본격적으로 '서울 둘레길'이라는 컨셉으로 북한산 쪽도 돌아다녀 보고 이곳의 완전 반대편인 동부의 일자산 쪽도 가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7/04/19 08:34 2017/04/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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