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답사기: 수락산 #2

본인은 올해 가을엔 어쩌다 보니 등산 야영을 시리즈로 계속하게 됐다. (1) 예빈산(남양주), (2) 청계산 국사봉+발화산(의왕+성남) 다음으로는 (3) 수락산을 다시 찾아갔다. 한강 근처의 예빈산· 예봉산 일대도 남양주이고 서울 북동부의 수락산 근처도 남양주라니.. 실감이 잘 가지 않았다. 세부 행정구역이 별내면과 와부읍으로 서로 다르긴 하다만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쯤 전, 겨울에 장암 역 근처에서 수락산을 올라서 주봉 정상에 도달한 뒤, 남양주의 청학리 수락산 유원지 방면으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산을 서에서 동으로 횡단한 것이다. 이번에는 차를 가져가서 수락산 유원지에서 등산을 시작한 뒤, 하산도 동일 지점으로 했다.

그러니 등산 경로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산행은 새로운 산이나 등산로를 개척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3년에 가깝게 지나니 기존 경로도 충분히 새롭게 느껴졌으며, 수락산은 재방문만으로도 예빈산이나 청계산과는 사뭇 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암반이 많은 돌산이며,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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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등산로는 꽤 높은 곳까지 자동차 접근성이 좋았으며, 이렇게 차를 댈 만한 곳도 곳곳에 있었다. 내가 굳이 이 경로를 택한 주 이유 중 하나 역시 이것이었다.

경치 좋은 계곡의 주변 공간을 어디선가 무단 점유하고는 방문객에게 바가지 요금을 물리는 식당들의 불법 영업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랬는데 올해는 이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경기도에서 주도적으로 칼을 뽑고 나섰다. 언제까지나 생계형 범죄랍시고 오냐 오냐 봐 주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도 식당들이 상당수 박살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한강 공원들만 해도 텐트와 야식 광고 찌라시, 쓰레기 때문에 몸살을 앓다가 지금은 질서를 많이 되찾았듯이.. 저것도 공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금방 바로잡을 수 있었던 일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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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올라간 뒤에야 드디어 차도가 끝나고 사람만이 접근 가능한 돌계단과 비좁은 등산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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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금류 폭포'이며, 요런 게 바로 여느 흙산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흙바닥이 아닌 바위 위로 물이 줄줄..
이렇게 높은 곳에서도 아주 가늘게나마 물이 흐르는 산은 본인은 지금까지 수락산밖에 못 봤다. 이 정도면 물을 그냥 인위로 끌어올리기라도 한 건가 궁금해진다. 수락산 계곡에서 발원한 이 물은 평지에서 청학천으로 이어진다.

금류 폭포의 바로 옆엔 산장이라고 해야 하나 휴게소라고 해야 하나 자그마한 간이 식당까지 있었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지만, 여기는 국립공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민간 산장이 들어서는 게 가능하다. 북한산 같은 곳이라면 등산로를 벗어난 계곡 근처는 몽땅 울타리가 쳐지고, 무단 침입 시 과태료가 부과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정상을 향해 더 올라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원암'이라는 바위와 함께 절인지 암자인지가 있다. 차량이 들어올 수 없는 높고 험한 곳치고는 건물과 마당을 포함한 부지가 꽤 넓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해우소'라고 불리는 공중 화장실도 있었다. 실제로 이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생긴 형태는 마치 수돗물이 여기까지 들어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세식이었다.

하긴, 나중에 집에서 지도를 확인해 보니 금류 폭포와 내원암 정도는 해발 고도가 아직 300~350m밖에 안 되었다.
지금까지 올랐던 200여 m 고도는 경사가 여전히 굉장히 완만한 편이었고, 내원함 이후부터가 급격히 가팔라졌다. 실제로 빽빽한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 곳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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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정상이 보일 기미가 안 보이는데 날은 계속해서 어두워져 갔다. 하긴, 오늘은 등산 자체를 오후 5시가 돼서야 시작했다.
정상에 거의 다 와서야 그 이름도 유명한 '수락 산장'과 함께 약수터도 등장했다. 1리터짜리 통을 다 채우는 데 내 기억으로 거의 1분 가까이 걸릴 정도로 수압이 낮았지만, 그래도 이 높이에서 맑은 물이 나오는 것만으로 어디냐.. 마시는 용도와 씻는 용도로 모두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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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가 다 떨어진 뒤에야 주봉 정상에 도착했다. 1시간 반쯤 걸렸다.
수락산엔 여기 말고도 능선에 온갖 이름의 기암괴석 봉우리들이 더 있고 다른 등산로도 있는데, 거기는 아직 가 보지 못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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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반석 위에 지은 집'에서 착안하여 '반석 위에 친 텐트' 정도 되겠다. ㄲㄲㄲㄲㄲ
따뜻한 간이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도시락을 먹었다.
산을 오를 때까지만 해도 힘들어서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고 물을 다 마실 정도였지만, 날씨는 이내 급격히 추워지고 땀이 식었으며, 바람도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전에 예영을 했던 산들은 한밤중에 정말 아무도 없었지만 이 산은 달랐다. 새벽 1시쯤에 야간 산행을 하는 일행이 수락산 정상에 왔다가 갔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산 정상 근처 바위에 텐트가 덩그러니 놓여 있으니 그 사람들도 좀 놀랐을 것 같다. =_=;;
"웬 텐트? 허걱~" 하는 소리를 본인도 듣긴 했지만.. 서로 마주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실은 아까 전에 저녁을 먹고 있던 중에 텐트 문을 열었을 때는 근처에 웬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치기도 했다.
옛날에 인왕산 정상 부근과 북한산 정상에서도 고양이를 봤던 기억이 있다. 야생일 텐데 어디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시끄러워서 결국은 숙소를 정상 아래의 숲 속 공터로 옮겼다. 여기가 훨씬 더 조용하고 자기 편했다.
달빛이 밝았던 덕분에 주변도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암흑천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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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감았다 뜨니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처음에 텐트를 쳤던 곳의 낮과 밤 풍경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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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정상 주변 풍경은 몹시 멋졌다. 근처의 불암산도 수락산보다 약간 더 낮고 작은 축소판일 뿐, 내부 제원(?)은 수락산의 판박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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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깜깜할 때 지나갔던 길이 낮에는 이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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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고 차가 세워진 공터로 돌아오니, 이제야 여기에 차를 몰고 와서 주차 자리를 찾는 등산객들 일행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본인은 여기 올 때는 용마 터널과 구리-포천 고속도로(29) 같은 유료 도로를 적극 활용해서 갔지만, 귀가할 때는 그냥 순화궁로, 덕릉로, 동부 간선 도로 등의 기존 종축 도로만 타고 갔다. 글쎄, 서울 동쪽의 구리와 남양주 쪽으로는 유료 도로와 관련 진출입로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것 같다.

  • 산을 관통하는 유료 터널: 용마(아차산), 별내(불암산)
  • 서울-양양 고속도로(60): 남양주*, 덕소삼패
  • 외곽순환 고속도로(100): 구리남양주, 불암산, 토평
  • 구리(세종)-포천 고속도로(29): 갈매동구릉*, 남별내
  • 수석-호평 도시고속화도로: 이패

서울의 남쪽이야 서해안(서서울), 경부(서울), 중부(동서울)라는 3대 '종축' 간선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요금소가 있으며, 좀 더 생각하면 관악산 아래를 지나는 유료 도로인 남부순환로, 그리고 유료 터널인 우면산 터널 정도가 떠오른다.

그런데 서울의 동쪽에는 서울-춘천-양양이라는 '횡축' 간선 고속도로가 시작된다. 남양주는 마치 경부의 서울, 서해안의 서서울처럼 폐쇄식과 개방식을 전환하는 톨게이트이다. 그리고 덕소삼패는 남양주보다 전인 개방식 구간에 있지만 경부의 판교 톨게이트처럼 고정된 요금을 징수하는 톨게이트이다.

그리고 서울의 북동쪽으로는 구리(세종)-포천이라는 '종축' 간선 고속도로가 시작된다. 공식 명칭은 세종이지만 과연 그 길고 먼 구간이 모두 개통하는 때는 과연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얘는 갈매동구릉 톨게이트가 폐쇄식과 개방식이 전환되는 곳이며, 여기 근처에서는 북중랑 톨게이트를 통해 고속도로를 드나들 수 있다.
폐쇄식 요금소와 개방식 요금소가 뒤섞여 있으니 구조가 더욱 복잡하게 느껴진다. 폐쇄식과 개방식 요금제는 열차로 치면 지정석과 자유석의 관계와도 비슷해 보인다.

서울 북쪽 외곽의 노고산,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은 모두 터널이 뚫려 있다. 그 중 수락산 아래를 지나는 덕릉 터널만이 무료이고, 나머지는 다들 유료 터널이거나 유료 도로인 외곽순환 고속도로 구간에 포함돼 있다.
이에 덧붙여 수석-호평 고속화도로는 고속도로도, 터널도 아닌 마치 제3 경인 고속화도로와 비슷한 급의 유료 도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11/04 08:32 2019/11/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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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의 예빈산과 더불어 본인이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등산 코스는 청계산에서 아직 미개척(?) 지역으로 남아 있는 남쪽 구간이었다. 거기는 상수도 보호 구역은 아니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온통 개발 제한 구역이다. 그래서 경치가 좋으며 뭔가 오지 탐험을 한다는 느낌이 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남양주와 성남 중 어디부터 먼저 갈지도 꽤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둘 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의식의 흐름에 따라 예빈산을 먼저 가게 됐고, 청계산은 그 다음 주에 찾아갔다.
처음에는 성남시 금토동에 있는 완만한 등산로(능안골)를 생각했다. 그러나 청계산을 갔다가 근처 길 건너편 남쪽의 발화산도 오랜만에 다시 가 보기 위해.. 계획을 변경했다.

남북으로는 청계산과 발화산 사이에, 그리고 동서로는 성남과 의왕 사이에는 외곽순환 고속도로,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제2경인 고속도로의 연장 구간(안양-성남 고속도로.. 터널로 지나니 밖에서는 보이지 않음), 지방도 57호선이 지난다. 이것들 말고 아마 가장 먼저 처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길은 '하오개로'라고 불리는 2차로짜리 꼬불꼬불 산길이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을 지나서 계속 서쪽으로 달리면 자연스럽게 이 길로 진입할 수 있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은 속세와 기막히게 단절된 곳에 자리잡은 것 같다. 여기서 더 동쪽으로 가면 학교 주변에 들어선 온갖 식당들과, 그리고 서판교의 으리으리한 고급 아파트 단지 때문에 전원적인 느낌은 없어진다.
본인이야 전공이 다르니 딱히 인연이 없지만, 한국학 중앙 연구원은 나름 인문계의 카이스트 같은 급의 국립 특성화 연구소 겸 대학원대학교이다. 학부 과정이 없고 석· 박사 대학원만 있는데, 카이스트도 1970년대에 처음 설립됐을 때는 학부 과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본인은 바로 저 길을 따라 '하오 고개'의 꼭대기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성남과 광주 사이에 이배재 고개가 있다면, 성남과 의왕 사이에는 하오 고개라는 게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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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중앙 연구원을 지나서 고개를 오르는 길이다. 단, 담장의 방향을 보면 알 수 있듯, 이건 고개 쪽이 아닌 연구원 쪽을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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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곧고 넓게 잘 뚫린 고속도로나 57번 지방도와는 너무 대조되는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그 대신 차량 통행이 매우 뜸하며, 종종 갓길 공터가 나오기 때문에 중간에 차를 세우는 것에도 여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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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 고개의 정상에는 이렇게 발화산과 청계산을 잇는 육교가 설치돼 있다. 이 육교를 통해 보행자는 하오개로와 지방도와 고속도로를 몽땅 횡단하여 두 산을 왕래할 수 있다.
이배재 고개의 정상에도 망덕산과 고불산(+영장산)을 잇는 육교가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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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를 올라서 청계산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금토동 등산로보다 수평 이동이 적기 때문에 등산로가 가파를 거라는 각오는 하고 있었다.

길은 좁은 편이지만 성남 누비길 구간이다 보니 울타리로 안내가 잘 돼 있었다. 여기는 안양 시민 묘지의 근처이기도 하기 때문에 무덤도 종종 보였다. 그리고 송전선 철탑과 두 번 마주쳤다.
산은 역시 잎이 초록색일 때 오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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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오른 끝에 현 산등성이의 능선에 도달했다. 약간 넓은 공터와 의자가 있었는데, 여기서 국사봉으로 가려면 약간 하강해서 산등성이를 옮겨야 했다. 하지만 수직 이동이 막 심한 삽질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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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이런 좁은 길 아니면 울타리 계단의 순으로 계속되었으며, 정상과 가까워지니까 바위도 슬슬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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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정상에 거의 다 오니 갈림길이 있었다. 그 갈림길에서 국사봉이 아닌 쪽의 바위를 오르니 이렇게 자그마한 바위 꼭대기가 나왔다.
여기는 아무 표지석이 없고 바깥 전망도 썩 좋지 않았지만.. 의외로 건너편 발화산의 능선 바깥이 어렴풋이 보였다. 나름 민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시설의 산 속 잔디밭 부지가 눈에 들어오니 놀랍고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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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사봉 정상에도 도달했다. 여기도 막 썩 경치 좋은 전망대가 있는 건 아니어서 고속도로 말고는 딱히 내려다볼 만한 게 없었다.
성남시 운중동 주변에는 보안 시설이 의외로 좀 있기 때문이다. 괜히 개발 제한 구역인 게 아니다. 아까 그 모종의 바위 꼭대기에서 봤던 것들은 이 정상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이로써 본인은 청계산의 망경대, 서울(성남?) 매봉, 과천 매봉, 이수봉에 이어서 국사봉까지 정상을 모두 올라 보게 됐다.

예봉산이야 주변의 예빈산, 운길산, 갑산 따위가 몽땅 깔끔하게 남양주 소속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청계산은 지역 파편화가 꽤 심한 산에 속한다. 시계에 걸친 산들도 기껏해야 서울-구리(아차산), 성남-광주 같은 둘 정도가 보통인 반면, 청계산은 뭐 각 사분면별로 서울-과천-성남-의왕 4개로 찢어졌으니까..
경부 고속도로가 관할 구간이 달라지고(양재 IC 이남 이북으로 도로 공사 vs 서울시), 지하철의 관할 구간(서울역-청량리 서울 메트로 vs 코레일)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개념이 산에도 존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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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후에는 운종 저수지 근처의 어느 경치 좋은 카페에서 음료와 전기 보급을 받으며 쉬고 컴퓨터 작업을 했다. 그 뒤, 오후에는 다시 육교로 돌아와서 발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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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에서는 이렇게 57번 지방도(왼쪽), 하오개로(오른쪽), 그리고 외곽순환 고속도로까지(저 앞쪽.. 청계 톨게이트 근처) 세 도로를 한데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매우 흥미로운 경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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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왔던 육교를 내려다 본 모습이다. 이제는 육교의 저쪽 건너편이 청계산이다.
이 발화산도 성남 누비길 구간이다. 하지만 표지판을 보니 발화산이 아닌 '태봉산' 구간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이 언덕은 사실 발화산 정상의 주봉이 아니며, 발화산 정상은 행정구역상 성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비길은 더 동남쪽으로 응달산을 거쳐서 태봉산 쪽으로 이어진다. 그쪽은 본인이 예전에 가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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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비좁고 가파르며 딱히 볼 것이 없었다. 다 이런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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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다 올라서 능선에 도달하니 드디어 재작년에 봤던 그 송신탑이 나왔다.
재작년에는 여기보다 더 서쪽인 청계 톨게이트 쪽에서 길 없는 곳에 잘못 들어가서 밀림을 헤치면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어째 이쪽으로 합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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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탑을 지나가면 약간의 내리막이 이런 식으로 펼쳐지며.. 길을 따라 더 진행하면 코렁탕 제조 시설, 응달산, 대장동 등으로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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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하오고개 쪽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한없이 더 진행하지는 않았다. 중간 길목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고 돌아왔다. 여기는 청계산보다는 덜 유명하고 교통 불편한 곳이다 보니 사람 한 명 얼씬하지 않아서 좋았다.

깜깜한 밤에 높은 산 깊은 숲 속에 혼자 있으면 일면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디라도 텐트를 치고 안에 들어가면.. 이 얇고 연약한 텐트가 나를 바깥과 격리시켜 주고 추위와 바람과 각종 야생 벌레들을 차단해 준다. 넓은 산 속에 나를 위한 호텔 방이 짠~ 생기는 듯한 느낌?

그냥 돗자리나 침낭만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이제는 텐트까지 들고 이동하는 수고를 감내하고라도 등산에다 야영을 겸하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9/10/21 08:35 2019/10/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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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예빈산 견우봉

지난 9월 중순엔 전반적으로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이렇게 날이 맑고 단풍도 들기 전에 꼭 등산을 가서 산 정상에서 야영도 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진작부터 했다. 지난 5월의 이성산 이후로 등산이란 걸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해 보게 됐다.

어느 산부터 갈지 고민하다가 남양주 예봉산 옆의 예빈산을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예봉산은 예전에 두 번이나 가 봤고, 요즘 양 예빈 선수가 우리나라 육상의 에이스로 뜨고 있기도 하니까.. 미리 봐 뒀던 예봉 산장 근처에다 차를 세우고, 팔당 유원지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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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장비를 추가로 들고 오르느라 안 그래도 힘든데 이 등산로는 웬걸, 굉장히 가파르고 험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온몸이 흠뻑 젖었다.
뭐 그렇다고 서울의 북한산, 관악산처럼 로프를 잡고 바위를 오른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고.. 내려갈 때 스틱이나 주변 나무를 붙잡아야 되는 정도.. 그냥 흙산인 것치고는 가파르다.

그런 데다 최소한의 좁은 길 흔적만 있지 울타리나 이정표 같은 안내 시설이 아무것도 없다시피했다. 종종 등장하는 벤치나 평상도 없고, 정말 일체의 인공물이란 게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얼마나 더 올라야 하는지 아무 기약이 없으니 심리적으로 힘든 정도를 더욱 가중시켰다. 온통 숲과 나무에 가려서 경치가 보이는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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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양 예빈 선수와 달리 저질 체력을 자랑하는 관계로..-_-;; 너무 덥고 숨 차고 힘들어서 몇 번씩 돗자리 깔고 한참을 쉬다 가야 했다. 오르는 동안 1리터에 가까운 음료수를 다 마셔 버렸으며 이걸로도 부족했다. 그래도 나뭇잎들이 아직 싱싱한 초록색이어서 자연의 정취가 살아 있고, 하늘도 맑고 적당히 더우니 이런 날이 등산 자체는 하기 아주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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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가까이 한참을 오르고 또 오른 뒤에야 견우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있는 것은 이렇게 아주 좁은 공터에다 돌무더기와 간단한 이정표가 전부였다.
예빈산은 주봉이 견우봉과 직녀봉 둘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직녀봉(588m)이 견우봉(581m)보다 미세하게 더 높고, 인터넷 사진으로 본 '예빈산 정상' 표지석도 직녀봉에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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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해서는 저 앞의 직녀봉도 가 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체력은 둘째치고 물이 고갈된 관계로.. 산을 한참 내려갔다가 또 오르면서 땀을 빼는 동작을 더 추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7미터만 더 오르면 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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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예봉산 정상에 건축된 기상 관측 레이더를 이렇게 멀리서 보게 될 줄이야.. 몇 년째 공사하던 게 드디어 다 완공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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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정상 자체에는 별로 볼 게 없었지만 주변을 조금만 살펴보니 팔당호.. 즉 한강과 남한강, 북한강, 경안천, 양평 두물머리와 남양주 다산 유원지가 다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정말 일품이었다. 힘들게 예빈산 견우봉 정상까지 올라간 것에 대한 보상을 이제야 받을 수 있었다. 예봉산에서는 이런 걸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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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각각 두물머리와 다산 유원지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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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검단산 기슭의 배알미 마을 쪽으로 확대한 모습이다. 수돗물 취수? 정수장이 있는 거기 말이다.
경치 좋기로 소문난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류 지점을 이렇게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예빈산 견우봉의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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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망대를 앞두고 바닥이 비교적 평평한 곳이 있어서 거기에다 텐트를 치고 밤을 보냈다.
5시가 넘어가니 슬슬 어두워지고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했으며, 7시쯤부터는 주변이 암흑천지가 됐다. 춥고 어둡고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는 산 정상에서 혼자 야영을 하니 아늑하고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밖은 추워도 텐트와 침낭 안은 따뜻했다. 새벽엔 텐트 안도 꽤 쌀쌀해졌지만 텐트 밖은 바람까지 불고 더 추웠다.

하산은 이튿날 아침 6시쯤부터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이었지만 어둠이 적당히 걷혀서 앞을 보고 길을 찾을 수는 있었다.
처음에는 추워서 침낭을 점퍼처럼 두른 채 산을 내려갔다. 하지만 이게 웬걸, 길이 험해서 그런지 하산도 생각보다 꽤 길고 힘들었으며, 덕분에 체감상의 추위도 금방 없어졌다. 기온이 20도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아침에도 여전히 더워서 땀을 잔뜩 흘렸다.

내가 어제는 이런 험한 길을 도대체 어떻게 올라왔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이 길이 정말 맞나 의문도 종종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길을 전혀 잃지 않았으며, 어제 올랐던 경로를 정확히 역순으로 거쳐서 차를 세워 뒀던 곳으로 잘 하산했다.
그리고 어제 산기슭에서 마주쳤던 계곡에서 세수를 하고 땀을 씻어내고, 물을 받아서 마시기까지 했다. 계곡물이 있으니 정말 좋았으며, 이렇게라도 하니 살 것 같았다.

예빈산에서 이렇게 좋은 추억을 하나 추가한 뒤, 집에는 딱 아침 8시 무렵에 잘 도착했다. 정작 이때는 선선하고 시원했는데 아까 산에 있을 때만 유난히 덥게 느껴졌다.

Posted by 사무엘

2019/10/18 08:34 2019/10/1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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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5년 동안 설 명절에 고향에 가서 이렇게 지냈다.

  • 2014년: 동방, 모량, 나원, 불국사, 건천 등 여기 일대의 간이역들을 일일이 답사했다.
  • 2016년: 오랜만에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분황사, 포석정 등을 (다시) 구경했다.
  • 2018년: 중앙선 구 선로 이설 흔적과, 옛 서경주 역 폐건물 주변을 답사했다.

참고로 2015년 설에는 동남아 여행을 갔다. 2017년에는 가족과 함께 강화도 정도만 다녀오고 막 멀리 나가지 않았다.
그 뒤 본인은 올해 설 연휴에는.. 고향에서 그야말로 산과 함께 보냈다! 2016~17년 사이에 서울· 수도권 근교의 산을 오르다가 활동이 좀 뜸해졌는데, 그 다음으로 오랜만에 고향의 산들을 답사했다.

서울-수도권에서는 북한산· 도봉산 일대만 국립공원인 반면, 이 동네는 영락없는 동네 뒷산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듣보잡 언덕도 온통 국립공원인 게 인상적이었다. 경주 둘레길.. 그런 브랜드 따위 없고, 그냥 간지 나는 '국립공원' 타이틀이 깡패다.

1. 경주 남산 (금오봉, 468m)

남산은 기슭에 삼릉과 포석정이 있고, 그 외에도 산 속 곳곳에 불상과 탑, 절터가 수십 군데 이상 놓여 있다. 막 높은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네 뒷산 언덕 급의 만만한 산도 아니다.

등산로가 사방으로 굉장히 많이 있다. 그러니 동서 횡단 정도는 해야 하겠지만 본인은 차를 가져온 관계로 그러지 못했다. 산의 서쪽 삼불사 방면에서 올라서 바둑바위를 거쳐 금오봉 정상까지 오른 뒤, 하산은 삼릉 방면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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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오른 뒤부터는 하늘과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나타났다. 남산은 불상과 탑의 재료를 조달하기에 충분할 정도인 돌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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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아래 주변은 교외이다 보니 온통 논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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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길을 계속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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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사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가족과 같이 올랐고 눈과 빙판도 있어서 진행이 더뎠던 것을 감안하고도 이 정도가 걸렸다.
정상은 그냥 공터였으며, 표지석과 길 안내 표지판 말고 다른 벤치나 헬리페드 같은 인공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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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 방면 등산로는 삼불사 방면 등산로보다 길이 더 넓고, 주변에 문화재들도 훨씬 더 많이 있었다. 여러 불상들이 있었으며 심지어 머리가 날아가고 없는 부처 좌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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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을 마치고 삼릉숲 구간에 들어오니 여기는 온통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라 왕릉은 후대의 조선 왕릉과 달리 무덤 주변에 무슨 기와집 건물이나 시뻘건 입구 문 같은 게 없다.

2. 큰갓산, 송화산 (옥녀봉, 276m)

다음으로 동국 대학교 경주 캠퍼스와 주변의 석장동을 ㄷ자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그 산'을 드디어 올랐다. 성남시 금곡동을 감싸고 있는 태봉산과 크기와 형태가 얼추 비슷하다.
동국대 부속 유치원 근처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는 등산과 하산 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차를 가져가지 않고 버스를 타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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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은 정말 바위라고는 없이 이런 흙길에다 가끔씩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 그리고 가파른 계단만이 쭈욱 이어졌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면 동국대 기숙사 쪽으로 내려가면서 산이 끝나 버린다. 그러지 말고 큰갓산 방면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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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운동 기구와 평상도 나타났는데, 평상 위에다 돗자리 깔고 텐트 치고 누워서 한숨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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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국립공원 '화랑 지구'라는 곳에 진입했다. 아마 큰갓산은 아니고 송화산만 국립공원인 듯했다.
여기 일대는 산의 높이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여러 산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리기를 반복해야 해서 움직이기 힘들었다. 다만, 능선으로 피해 가는 산책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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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 마을이라고 뭘 열심히 만들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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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은 끝에, 송화산의 정상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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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유신 장군 묘도 여기에서 굉장히 가까이 있다던데.. 본인은 여래사 방면으로 하산했다.
여기는 공교롭게도 작년에 중앙선 폐터널을 답사했던 곳과 동일한 지점이었다. 그때는 요런 등산로가 있다는 것을 발견까지는 했지만, 더 올라가면 뭐가 나오는지는 모르는 채로 돌아갔는데 그 의문을 드디어 풀게 됐다.

3. 선도산 (390m)

선도산은 송화산의 남쪽에 있는 산으로, 남동쪽 기슭에 무열왕릉을 비롯해 왕릉이 몇 개 더 있다. 다만, 무열왕릉만 뭔가 울타리가 쳐져 있으며, 나머지 왕릉은 단촐한 형태여서 등산로에서 쉽게 접근 가능하다.
왕릉 주변에는 서당 같은 한옥 건물들이 잔뜩 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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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지금까지 국사 시간에 말로만 들었던 진흥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는 진지왕의 무덤도 있다.
등산로는 처음에는 왕릉답게 소나무 숲길로 시작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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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내부에서 길을 잘못(?) 선택했는지 어쨌는지..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등산로 대신, 이렇게 하늘이 뻥 뚫려 있고 자동차나 ATV 정도는 지나갈 수 있을 법한 비포장 흙길이 나와 버렸다. 본인은 이 길을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인터넷 지도로 로드뷰를 보면, 초록색 선이 그어진 정규 등산로 말고, 오른쪽에 그래도 희미하게 길 같은 흰 선이 그어진 게 보일 것이다. 그 길을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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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길도 끝까지 가니까 다행히 정상으로 도달하긴 했다. 이건 정상 부근에 있는 '경주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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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을 지나서 정상 마지막 200m 동안은 길이 좁고 가파르고 험해졌는데, 거기를 오르니 이렇게 돌무더기가 두어 개 놓여 있고.. 공터라기보다는 그냥 길목에 가까운 산 정상이 나타났다.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번에도 차 때문에 산을 반대편까지 횡단하지는 못하고 왔던 길로 그대로 내려왔다.

4. 소금강산 (176m)

소금강산은 경주시에서 동해남부선 철길 건너편의 용강동에 있는 자그마한 산이다. 기슭에 근화여중· 여고가 있고, 백률사라는 절이 있다. 높이는 낮지만 세로로 길쭉한 편이며, 동쪽으로 더 크고 높은 산맥이 있다. 그 크고 높은 산맥이 북한산에다 비유한다면 저 소금강산은 북악산뻘 되는 것 같다.

소금강산을 제대로 경함하려면 산을 남북으로 끝까지 종단해야겠지만.. 시간 관계상 그리하지 못하고 일단 백률사에서 산 정상까지 오르는 걸로 마쳤다. 워낙 낮으니 이 산은 정상에도 산불 감시 초소와 운동 기구만 있을 뿐, 다른 거창한 표지석 같은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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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경주에서 등산을 할 일이 있으면 남산의 다른 등산로와 봉우리(특히 고위봉)부터 시작해 그 이름도 유명한 토함산, 그리고 현곡과 건천 방면의 구미산까지.. 갈 데가 많다.
이상이다. 설 연휴 동안 등산만 한 건 아니고 다른 경주 관광을 한 것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사진과 자료가 정리되면 소개하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13 08:36 2019/02/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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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초엔 하늘은 맑고 푸르고 산과 들은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게.. 혼자 집에 틀어박혀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씨였다.
그래서 9월에 중순에 갔던 남양주를 다시 찾아갔다. 먼저, 와부읍 월문리에 소재한 먹치고개 쪽을 돌아다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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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드니 경치가 몹시 아름다웠다. 딱 1년 남짓 전에 남한산을 갔을 때도 풍경이 이랬었다.
"나뭇잎도 다들 적화... 어?? 아, 내가 종북좌빨들 때문에 망해 가는 나라를 보며 심성이 어지간히도 피폐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일대는 한적한 시골답게 주차 걱정 없이 갑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울타리가 쳐지고 막혀 있었으며, 길이 아닌 곳엔 아예 전기 울타리가 둘러져 있기도 했다. 흐음..;;
그래서 그냥 경치 구경만 하다가 재작년에 올랐던 예봉산을 다시 올라 보기로 결심했다. 여기도 등산로 바로 코앞에다 차를 세워 놓을 수 있어서 차량 접근성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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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까지 가는 길에 이 정도로 하늘이 뚫린 공터가 나온 건 여기가 거의 유일한 듯했다.
그것 말고는 예봉산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볼 것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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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2년 전과 동일한 경로로 1시간 반쯤 걸렸는데.. 그 동안 운동을 게을리 해서 그런지 2년 전보다 더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공사 때문에 일부 등산로가 우회 경로로 바뀌기도 했다.

주변은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뭔가 공사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등산로를 새로 내거나 목재 데크라도 설치하는 게 아니었다.
여기 정상에도 마치 관악산 정상 근처처럼 동그란 관측 레이더가 설치될 거라고 한다..! 그때 만들던 길은 사람이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공사 자재를 실어나르기 위한 모노레일이었다.

하긴, 여기도 관악산과 비슷한 해발 650m대이고 얘가 관악산보다 더 높기까지 하다. 하지만 얘는 바위가 전혀 없는 흙산인 덕분에 등정 난이도는 관악산보다 훨씬 낮았다.

시간대가 시간대여서 그런지, 저 사진을 찍던 당시에 산 정상에는 본인 포함 총 여섯 명이나 있었다.
산에서 마주친 등산객 어르신들은 저 구조물 때문에 정상 경치가 많이 가려졌다며 아쉬워하셨다. 일행 중에는 아침 일찍 운길산부터 시작해서 하루 종일 산행을 진행하신 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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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상에서 올려다볼 때보다는 하늘이 마냥 맑지 않고 뿌연 게 보였다.

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야 하니, 더 멀리 나가지 못하고 하산은 등산의 정확히 역순 경로로 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예봉산 근처의 예빈산, 운길산, 갑산, 적갑산 일대도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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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주일 남짓 뒤, 나라 전체가 웬 미세먼지 테러를 당했다가 하루 종일 여름 장마 같은 비가 내리면서 공기가 맑아졌다. 본인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야영을 했다. 다만, 멀리 나가지는 못하고 그냥 동네 뒷산의 정자에다가 텐트를 쳤다. 비 소리 듣고 풀 냄새 맡으면서 나만의 공간에서 밤을 보내다니, 정말 꿀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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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을 마친 뒤엔 오랜만에 성남으로 가서 예전에 올랐던 망덕산을 올라 봤다. 작년 봄이니 지금으로부터 1년 반쯤 전이다.
서울 303과 9403번 버스의 종점인 동성 교통 차고지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배재 고개를 버스 대신 도보로 올랐으며, 고개 정상에서부터 등산로에 진입했다. (이배재 고개를 내 자가용으로 통과한 적은 없음)

나무들은 다들 잎이 떨어져서 가지만 앙상했으며, 길바닥은 낙엽으로 뒤덮여 있었다. 온통 초록색이던 작년과는 분위기가 확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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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산 정상 표지판을 다시 지나쳐 갔다. 예봉산 등 여느 산과는 달리, 정상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등산로 길목에 정상 표지판이 있다.

본인은 예전에는 검단산과 망덕산을 쭉 일주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조금 더 가다가 사기막골 방면으로 하산했다.
여기는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등산로도 좁고 험한 편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비가 온 덕분인지 언제부턴가 골짜기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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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과 광주 사이의 산에서 물 흐르는 걸 구경하는 건 처음이었다.
하산을 계속할수록 물줄기는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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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는 대원사라는 절에 도착하는 걸로 산행이 끝났다.
사기막골은 성남시에서 손꼽히는 오지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막 시골 같지는 않았으며, 주변의 집들은 단독주택보다는 빌라 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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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를 벗어나니 '사기막골 근린공원'이 나왔다. 여기는 난생 처음 가 봤다.
'사기막'에서 '사기'는 도자기 그릇을 뜻한다. 여기가 옛날에는 도자기 굽는 제조업으로 유명했던가 보다.
그래서 공원에는 민속촌처럼 한옥 마을이 꾸며져 있으며, 도자기 체험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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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에 이어 성남에서는 이런 걸 구경하면서 추억을 남겼다.
성남 구시가지 쪽은 정말 경사가 급한 동네라는 게 거듭 느껴졌다.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에는 이런 언덕도 다 들판과 숲이었지 싶다. 그나마 성남대로가 지나는 분당과 판교 쪽이 평지... 아, 그것도 아니고 가천대-태평 사이는 지상이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남양주와 성남은 둘 다 면적이 넓고, 지형에 따라 생활권이 많이 찢어져 있긴 하다. 하나도 개발 안 된 산기슭 오지가 있는가 하면, 전철이 지나고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잔뜩 지어진 곳도 있다. 또한, 성남과 광주 사이의 산맥처럼 남양주 동쪽의 산맥도 탐험하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12/18 08:35 2018/12/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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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18년 9월은 본인에게 의미심장한 전환점에 속하는 시기였다. 거의 50일 동안 날 괴롭히던 지긋지긋한 무더위가 드디어 물러가고 계절이 바뀌었다.
그리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 파이널 9.5 버전을 완성했다. 홀가분하고 기뻤지만 그 뒤에도 사소하게나마 프로그램에 수정 작업이 야금야금 진행되었으며, 더 나아가 동시치기 기능도 이게 다가 아닌데 정확도를 더 개선할 수 없을까 고민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글 입력기 말고 글꼴 쪽 연구도 하면서 학위논문 쓸 걸 준비해야 하는데.. 뭔가 오랜 독재 정권이 갑자기 무너진 뒤에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러 밀린 숙제들 중 무엇부터 진행하는 게 좋을까?
아.. 그 와중에 재작년에 했던 것처럼 자그마한 발표 논문을 하나 준비해서 투고했다. 이것도 여러 모로 스트레스 받는 작업이었다.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는데 날씨는 너무 좋았다. 낮엔 하늘이 완전 파랗다가 밤에는 싸늘해지고... 도저히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추석을 열흘 남짓 남기고 논문 투고까지 마친 타이밍 때.. 본인은 이 억눌린 욕망을 발산하기 위해 남양주의 시골 마을로 차를 몰고 달려갔다. 짤막한 힐링 여행을 떠났다.

남양주는 생각보다 넓기 때문에 북쪽의 경춘선+북한강+가평 방면도 남양주이고, 남쪽의 중앙선+남한강+양평 방면도 남양주이다. 둘을 분리해서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본인이 주목한 곳은 남쪽인 와부읍 일대였다. 그래서 미사대교를 건너서 덕소삼패 IC로 진출했다.

남양주는 도농 복합 도시인 관계로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아주 전원적이고 강과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보안 시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군부대뿐만 아니라 상수도 취수· 정화 시설도 있다.
이런 것들 말고 또 남양주의 명물로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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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거의 세계 유일의 보잉 747 초기 퇴역분 기체가 곁들어진 건물이다. 월문교 사거리 근처에 있다.
열차나 선박을 개조한 건물과 달리 비행기를.. 그것도 그냥 전투기 같은 크기의 물건을 전시만 한 게 아니라 거대한 여객기를 건물 형태로 꾸며 놓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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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은 주날개와 엔진이 완전히 제거되었고, 총으로 치면 마치 sawed-off 샷건처럼 뒷부분도 짤려서 뭉툭해졌다는 점이다. 날개가 없으니 기체가 일면 선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긴, 옛날에는 기체가 더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긴 했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칠이 벗겨지고 온통 녹슬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관리에 부담 되는 부분이 짤려 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무려 그 육중한 747기가 깡그리 고철로 스크랩 되지 않고, 이렇게라도 형체가 남았다는 점에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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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가 기체 내부를 개조해서 뭔가 활용을 할 의향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안은 아직까지 굳게 잠겨 있고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었다.
위의 사진은 기체의 창문 안을 찍은 것이다. 내부가 어서 카페나 박물관으로 개방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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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답사를 마친 뒤, 본인은 거기보다 살짝 더 북쪽에 있는 보안 시설을 찾아가 봤다. 알고 보니 한쪽으로는 군부대가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서울 아리수 와부 정수장'의 진입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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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은 이런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그리고 군인 아파트는 전국 어딜 가나 이런 투박한 모양인 듯하다.

참고로 여기 말고 또 다른 정수장으로 추정되는 보안 시설도 여기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전자가 서울시 상수도 사업 본부 소속인 반면, 후자는 한국 수자원 공사 소속이다. 사진은 그냥 생략하고 넘어가지만, 담장의 쇠창살 모양이 팔당댐 근처의 정수장에서 본 것과 동일하긴 했다.

뭐, 이렇게 흥미로운 답사를 했다. 여기 주변은 온통 식당들이 널렸기 때문에 본인은 식사도 했다. 오늘의 마지막 끼니가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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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인은 시골 농로를 달려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향해 다가갔다.
지도와 내비상으로는 '어룡지'라고 저수지가 근처에 있는 듯했으나, 본인은 딱히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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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 30분마다 한 대씩 다닌다는 99-2라는 마을 버스가 서는 곳이 등산로의 입구이다. 하지만 이 등산로에는 차도도 있기 때문에 더 깊숙한 곳까지 차로 진입할 수 있었다.
포장 도로가 끝나고 차가 더 들어갈 수 없는 곳에는 차를 세 대 정도 세울 수 있는 주차 공간이 있었다. 이제 여기서부터 본인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등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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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한 주 내내 날씨가 왕창 좋다가 하필 본인이 여행을 떠난 날에만 하늘이 허옇고 잔뜩 흐려진 게 아쉬웠지만, 이런 날씨도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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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울타리와 깔개, 계단 같은 게 만들어져 있을 정도로 잘 정비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ATV나 산악 자전거가 지나갈 수는 있을 정도로 폭이 확보되어 있었다. 일부 구간은 의외로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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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지나서 산 속에서 하늘이 보이는 공터를 발견하면 뭔가 느낌이 굉장히 새롭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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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등산로도 무슨 누리길 누비길처럼 시에서 이름을 붙여 놓은 게 있었다. '큰사랑 산길'.
길은 꼬불꼬불 가팔라지기까지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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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능선에 도달했다. 주변엔 쉬어 가라고 벤치와 평상이 놓여 있었다.
알고 보니 여기는 '새재고개'라고 한다. 성남-광주 사이에는 '이배재, 태재고개'가 있더니만..
성남과 광주 사이에 산들이 잔뜩 늘어서 있듯, 남양주 동부와 양평 사이에도 갑산, 예봉산, 예빈산 같은 산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능선을 타는 길을 '천마지맥 누리길'이라고 부르더라.

본인은 그쪽으로 등산은 예봉산 한 번밖에 못 가 봤지만 여기도 기회가 되는 대로 차차 개척해 나가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산을 하나 골라서 꼭대기까지 오른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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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재고개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산등성이에서 혼자 단잠을 잤다. 바닷가와 강가에서 텐트를 치고 자 봤으니 언젠가 꼭 산에서 텐트를 치고 자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
마침 평상이 하나 있던 덕분에, 그 위에다 텐트를 치니 완전 딱이었다.

노트북 PC가 든 백팩뿐만 아니라 텐트와 돗자리까지 들고 산을 오르느라 몹시 힘들었다. 그러니 좁고 험한 길은 가지 못하고 처음부터 이런 큰길(?) 위주로, 그리고 산 중턱까지 최대한 차로 접근 가능한 등산로를 선택했던 것이다.
사실, 여기 주변의 샛길로 빠져서 적갑산이나 갑산의 정상으로 갈 수도 있지만 본인은 그러지 못했다. 짐 때문에 산에서의 이동성을 일부 희생한 대신, 산 속에서 극한의 주거성을 얻었다.

두어 시간 남짓 만에 해가 졌다. 인적이 완전히 끊기고 주변은 칠흑같은 어둠으로 뒤덮혔는데.. 텐트 안에만 있으면 비바람과 추위를 다 피할 수 있고 아늑하고 포근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다 침낭까지 뒤집어쓰면 밖이 영하의 혹한이어도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았다. 난 이런 상태에 있는 게 노무노무 좋았다.

산 속 야영과 관련해서 혹시 법적인 문제는 없냐고 문의하는 분이 계신다.
해가 지면 모두 나가야 하고 야영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은 국립공원, 아니면 청와대 뒷산 정도이다. 그리고 서울 시내의 한강· 청계천 공원 같은 곳도 공식적으로 야영 금지이다.
하지만 그냥 저런 평범한 산들은 (1) 쓰레기 안 버리고 (2) 불을 피우지만 않으면 산 속에 짱박혀서 뭘 하든 문제될 것 없다.

이튿날 아침에 개운하게 눈을 뜬 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집으로 귀환했다. 공공시설인 평상을 너무 오랫동안 혼자 전세 내면 안 되니까..
산에서 야영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밖에 안 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또 오지에 있는 다른 산에서 야영을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23 08:29 2018/09/2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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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나들이 2

특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그냥 본인의 일상· 근황에 가까운 가벼운 나들이를 요 근래에 했던 것들을 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솔직히 말해 요즘 개인 연구건 직장일이건 잘 안 풀리고 있다. ㅠㅠ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가는데 답이 딱 안 나오고 개발 방향이 갈팡질팡이고 버그는 안 잡힌다. 올여름 중으로 날개셋 9.5 최종판과 후속 논문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이 와중에 날씨가 점점 더 더워지는것도 개인적으로는 악재다.

이럴 때일수록 좀 쉬고 머릿속을 초기화한 뒤, 완전히 새로워진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접근하면 해결책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 노숙

내가 이런 걸 왜 지금까지 몰랐나 싶다.
비 내리는 날 새벽과 아침에 숲 속 나무 정자 아래에서 빗소리 듣고 풀 냄새 맡으며 뒹굴거리는 건.. 가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중독성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이런 걸 가리키는 '한뎃잠'이라는 훌륭한 순우리말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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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안 올 때는 그냥 집 근처 공원의 벤치에 누워서 자 보기도 했다.
이런 짓 하지 말라고 벤치의 중간에 일부러 칸막이나 손잡이를 만들어 넣는 것 같다만, 그래도 그게 없어서 한 사람이 쭉 누울 수 있는 벤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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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뎃잠을 여러 번 자 보면서 느낀 건데.. 사람이 자는 동안에는 (1) 체온이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고 중간에 잘 깨긴 하더라. 어지간히 더운 곳이 아닌 이상, 잘 때 덮는 이불이 괜히 필요한 게 아니다.
또한, 찬 공기뿐만 아니라 (2) 차가운 바닥으로 열을 빼앗기는 것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푹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온을 위해서 밑에 까는 이불이 필요하다.

본인은 몸에 열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탄다. 여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하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취향이다.
또한 불면증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체질이다. 피곤하면 어디서나 눈만 감으면 곧장 잠들며, 5~6시간이 워프된 후에 개운한 상태로 일어난다.
일부러 물을 1리터쯤 마시고 잠든 게 아니라면, 밤중에 오줌 마려워서 깨는 것조차도 거의 없다. 그 대신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부터 가지만..

그래서 본인은 나름 야영· 노숙에 최적화된 체질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데도 보온을 충분히 하지 않은 생태로 밖에서 잠들면 기대했던 것보다 이른 서너 시간 남짓 후에 깨 버리더라. 충분히 못 자고 수면 리듬이 깨졌으니 그 뒤로는 편안한 하루가 보장되지 못한다. 그래도 그대로 코나 목이 가 버리고 감기에 걸린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새벽 1~2시에 잠드는 순간까지도 밖이 춥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데, 5~6시 무렵에 눈을 뜨면 밖이 상당히 춥다. 그래서 다른 부위보다도 얼굴을 잘 감싸서 호흡할 때 찬 공기가 코로 대놓고 들어가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 했다.

물론 이것도 늦어도 5월 초 정도까지의 이야기이고, 계절이 여름으로 바뀐 뒤부터는 해당되지 않는다. 집에서 자듯이 대충 이불 덮고 자도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그 대신, 이제부터는 모기 때문에 밖에서 제대로 자기 어렵다. 모기를 피해서 몸을 감싸고 덮어 버리면 밖이 시원하다는 장점이 사라지니까..
방수· 방충이 되는 1인용 텐트를 장만해서 적극 활용하고 싶어진다.

2. 남한강 이남-남한산성-서울 동남부 깜짝 드라이빙

팔당 댐에서 동쪽으로 더 가면 강북은 국도 6호선을 따라 양평으로 가는데, 강남의 광주 방면으로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오래 전부터 궁금했다. 그래서 하루는 머리를 식히고 분위기를 전환할 겸 달려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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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더 경치 좋고 쉬기 좋은 곳만 찾자면 북한강(가평 방면)이나 남한강 이북(양평 방면) 쪽으로 가는 게 더 낫지만, 더 남쪽으로는 갈 일이 잘 없으니 희소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개발되지 않은 오지 탐험은 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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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으로의 합류가 얼마 남지 않은 경안천의 모습이다.

그리고 남한산성을 도보 등산과 시내버스(성남)에 이어, 동남쪽의 광주시 구간을 통해 드디어 자가용으로도 가 보게 됐다. 전에 서울 남산을 도보 등산과 케이블카에 이어 시내버스로도 간 것처럼 말이다.

서쪽 성남시 구간의 도로는 경사가 굉장히 급한 반면, 동쪽 광주시 구간의 도로는 길고 경사가 완만해 보였다. 꼭대기 근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산을 타고 오른다는 느낌 자체가 별로 안 들 정도였다.

3. 북악산 한양도성 구간 산책

본인은 지금까지 북악산을 세 번 정도 서로 다른 등산로로 종단· 횡단을 해 봤는데.. 나름 남쪽으로 청와대를 가장 가까이 지나고(직접 볼 수는 없지만) 산의 정상을 지나고, 유일하게 신분증을 까고 출입 신고를 해야 입장할 수 있는 한양도성 구간을 최근에 한번 더 답사했다. 재작년 봄에 최초로 답사한 뒤 2년 만의 일이다. 사실, 여기가 제일 북악산다운 곳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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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근처에 있는 최 규식 경무관 동상이 대대적으로 때 빼고 광 내서 밝은 구리색으로 싹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1· 21 사태 당시에 같이 순직했던 정 종수 경사에 대해서도.. 참 늦은 감이 있지만 흉상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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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덥긴 해도, 산은 잎이 초록색일 때 올라야 제일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위의 사진은 정상에서 청운대를 내려다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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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엔 정상 표지석만 찍었고 이렇게 내가 나온 모습을 촬영하지는 않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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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의 한양도성 등산로(혹은 산책로? 탐방로?)는 성 바깥쪽이 온통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다. 북악산의 다른 영역과 한양도성 등산로를 완전히 분리· 단절하여, 여기로 오려면 반드시 안내소를 거쳐서 번호표 목걸이를 받아야 하게 말이다.

이 등산로보다 더 안쪽으로 청와대를 둘러싸는 철조망도 당연히 있으며, 이건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를 이탈하여 풀숲을 헤치며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시도를 했다가는 당사자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는 단순한 동네 뒷산이나 공원이 아니라 무슨 전방 같은 군사 시설 주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조선 시대 유물과 한데 어우러졌다는 것이 북악산 등산의 묘미이다.

대부분의 산책로는 한양도성 안쪽으로 성을 따라 나 있지만, 잠깐 성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기도 한다.

4. 용마-망우산 구간 재답사

본인이 지금까지 아차· 용마· 망우산 일대를 올랐던 내력은 다음과 같다.

  • 가장 먼저 서쪽 중곡 역 방면에서 용마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정상을 찍었다. 다음으로 능선 겸 서울 둘레길을 따라서 북상하다가, 더 동쪽의 망우산 중심부로 이탈하여 망우산 정상 표지도 봤다. 하산은 북쪽의 시립 묘지(일명 망우리 공동묘지) 방면으로 했다. 당시 산에서 비를 철철 맞았던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 2차 답사 때는 동쪽의 아차산 입구에서 산을 올라서 산 정상을 찍었다. 그 뒤 용마산 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북상하다가 구리 아치울 마을 방면으로 하산했다. 날씨는 아주 좋았다.
  • 3차로는 아예 차를 가져가서 시립 묘지에서 들어갔다가 그리로 나왔다. 차도를 따라 시민 묘지만 한 바퀴 돌면서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각종 옛날 유명인사들의 묘소도 구경할 수 있었다. 답사 당일은 아주 흐렸으며 산에 안개가 자욱했다.

그리고 이번 4차 답사 때는..
이들 산의 종축 중앙이고, 용마 터널 근처이기도 한 사가정 공원에서 용마산을 올랐다. 여기서 용마산 능선에 도달하고 나니, 망우산 방면과 아치울 마을 방면이 갈리는 교차로도 거의 곧장 나왔다.

본인은 거기서 계속 북쪽으로 가서 예전처럼 시립 묘지 구간으로 들어갔다. 다만, 계속 길만 따라 간 건 아니며, 도중에 동쪽으로 진로를 바꿔서 백교(한다리) 마을에 도달함으로써 산의 횡단을 마쳤다. 이 정도면 여기 산들도 안 간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등산로를 밟아 보게 됐다.

'사가정'이란 이 일대에서 살았던 '서 거정'(1420-1488)이라는 조선 시대 문신의 호라고 한다. 개드립을 좀 치자면, 기왕 저렇게 호를 지을 거면 왜 '사가장'이라고 지을 생각은 안 했나 모르겠다.
사가정 공원은 생각보다 이른 2005년에야 생겼다. 일자산 근처에 온통 둔촌 둔촌 하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옛날에 이 산의 기슭에 살았던 유명한 학자 내지 관료를 홍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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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등산로가 시작되다 보니 처음에는 길이 돌계단처럼 나 있고 곳곳에 벤치와 오두막, 운동 기구가 있었다.
숲이 울창한 덕분에 온통 짙은 그늘이 져 있어서 직사광선 노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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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용마산 남북 능선에 진입했다. 아치울 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서 북쪽으로 쭉 가면, 망우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도 나온다. 거기도 지나치면 길이 포장된 도로로 바뀌고 망우산 묘지 구간으로 진입한다.
본인은 묘지 구간을 좀 지나다가 동원천 약수터 방면으로 이탈하여 숲 속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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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방황하던 끝에 용마-망우산을 횡단하는 덴 성공했다. 그리고 딱 한 번 하늘이 트인 공터가 나왔다. 누군가의 묘지..
여기만 나무 베어내고 숲을 잔디밭으로 바꿔 놓아 있었다. 망우산의 항공 사진을 보면, 이렇게 혼자 외딴 곳에 자리잡은 묘지가 몇 군데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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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다 그친 뒤에 산을 오르니 날씨 맑고 하늘 푸르고, 5월이어서 잎도 온통 짙은 초록색인 데다.. 계곡마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서울 방면과 구리 방면 어느 쪽으로든 말이다. 어떤 곳은 물이 등산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기도 했다.
비록 산 아래의 경치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산 속의 경치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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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내 차도와 함께 저수지와 마을이 나왔다. 아치울보다 더 북쪽에는 백교/한다리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늘 산기슭의 한적한 전원마을을 구경하면서 산행을 마치는 건 내 스타일 등산의 뻔한 클리셰가 돼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4 08:29 2018/06/0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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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이어 올해 봄, 모처럼 미세먼지가 걷히고 날씨도 적당히 맑고 포근하고 좋을 때에 맞춰 본인은 청계산을 다녀왔다.
가장 흔한 등산로인 신분당선 역 근처의 원터골 말고 작년에는 더 남쪽의 옛골과 망경대 쪽을 공략했는데, 이번에는 더 북쪽인 옥녀봉 쪽을 다녀왔다. 청계산은 서울, 성남, 과천, 의왕을 두루는 큰 산인지라, 아직 가 보지 못한 등산로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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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의 출발지인 서울 양곡 도매 시장의 주변 모습이다. 간선 버스로는 441번을 타면 도달할 수 있다.
청계산 기슭 아래로 지하차도와 터널이 둘 나 있다. 지하차도를 타면 표지판에서 보듯이 헌릉로 방면으로 갈 수 있으며, 그 위로 진입하면 산을 뚫은 터널을 지나서 서울 추모 공원으로 가게 된다.

여기는 현대· 기아 쌍둥이 사옥과 경부 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와도 그리 멀지 않을 정도로 서울의 남쪽 외곽이다. 도매 시장 옆의 담벼락과, 지하 차도 위의 회전 교차로 주변에는 공간이 그럭저럭 있어서 주차도 가능했다. 단, 회전 교차로 쪽에는 웬 사고로 부서진 차가 방치된 것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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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가 시기인지라 나무들이 슬슬 다시 초록색 잎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파란 하늘 밑으로 노란색이 곁들어진 초록색, 그리고 종종 분홍색 꽃잎이 곁들어지니 색깔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작년 봄의 산행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동안 이런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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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는 울창한 침엽수림이 본인을 반겨 주었다.
청계산의 북쪽 구간은 길에 울타리나 깔개 같은 인공물이 없이 흙길뿐이었다. 단, 쉬어 가라고 길다란 의자는 자주 나오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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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돌무더기가 세 개나 있었다.
성경의 창세기 31장에서 야곱과 라반이 돌무더기를 쌓아서 언약을 맺는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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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옥녀봉 정상에 도착했다. 높이는 400m가 채 안 된다는데 등산을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힘들었다.
산이 도대체 무슨 구석이 여인의 모습과 닮았다고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상에는 전망대와 헬리패드만 있을 뿐, 표지석 같은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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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산 바깥 경치를 구경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는데, 드디어 관악산과 과천(서울) 경마장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여기는 관할 행정 구역이 서울과 과천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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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에서 매봉으로 가는 길에는 울타리와 계단 같은 인공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옆의 철망은 아마 서울 대공원 때문에 둘러진 것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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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도중에 이런 오솔길도 잠시 나타났다.
햇볕만 쬐고 있으면 덥지만, 습도가 20%가 채 안 되는 건조한 상태여서 그런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날씨가 굉장히 시원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땀 말고 헉헉대는 것만으로도 금방 혀와 목이 마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등산을 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이긴 했다. 준비해 간 물이 벌써 다 바닥났지만 참고 매봉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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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비탈길을 한참 오르고 나니, 옥녀봉 정상 같은 분위기의 공터와 헬리패드가 나타났다. 단, 전망대가 조성돼 있지는 않았다. 바깥 경치는 나무들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행정구역이 서울에서 성남으로 바뀌는 지점이기도 했다. 성남시 관할 구간은 '성남 누비길'인데, 옛골· 청계골 방면으로 하산할 수 있으며, 아니면 매봉 정상으로 갈 수도 있었다. 매봉 정상에서 계속 누비길을 따라 진행하면 작년에 본인이 갔던 혈읍재와 망경대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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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은 바위를 좀체 찾을 수 없는 흙산이라는 점에서 강북에 있는 산들이나 심지어 자기 곁의 관악산과도 형태가 많이 다르다. 그 반면, 성남은 고지대이고 비탈이 심하지만 도시를 둘러싸는 산들이 전반적으로 바위가 없고 흙산이다.
청계산도 매봉 정상 부근에 가니까 이런 바위가 나타났다. (1) 돌문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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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불과 몇백 m 앞두고 (2) 특전용사 충혼비가 나타났다. 등산로에서 정말 가까이 있으니 부담 없이 보고 올 수 있다.

1982년 6월 1일, 특전사 장병 53명(일부 소수의 공군 장병도 포함)이 지상 훈련을 마친 뒤, 수송기를 타고 그 당시 자대가 있던 서울 거여동 훈련장 상공에서 강하 훈련을 이어서 실시할 예정이었다. 그랬는데 병력이 탑승했던 C-123 수송기는 짙은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했고, 어째어째 하다가 청계산 중턱에 추락해 버렸다. 결과는 전원 사망..

게다가 이보다 전에 같은 해 2월 5일에는 동일한 기종인 C-123이 한라산에서도 추락해서 똑같이 53명의 특전사 장병이 순직하기도 했다. 그나마 청계산 추락 사고는 진짜 군사 훈련 중에 조종사의 과실이나 기체 상태 불량으로 인해 추락한 것이어서 정당한 명분이 있지만, 한라산 추락 사고는 단순히 전땅크의 제주 공항 활주로 공사 시찰 행사를 경호하기 위한 이동이었기 때문에 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물론 대통령 경호도 나름 정당한 공무 수행으로 볼 수 있다. 옛날에 올림픽대교의 건설 중에 횃불 조형물을 설치하다가 헬기 추락 사고가 났던 것처럼, 군인들이 더 어이없는 일이 동원됐다가 순직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전땅크는 출발지와 도착지 모두 눈이 내린 악천후 속에서 굳이 출발을 강행시켰으며, 나중에 사고가 터지자 민망했는지 이 사람들이 난데없이 간첩 잡는 '봉황새 작전'에 투입됐다가 순직한 거라고 슬쩍 둘러대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가 보다.

한라산에도 추락 현장 근처의 등산로(관음사 부근?)에는 비슷한 모양의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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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비를 지나서 언덕을 계속 오르니 돌문바위에 이어 (3) 매바위가 나타났다. 여기에서 서서 건너편 인릉산과 경부 고속도로, 그리고 인접한 청계산 봉우리 등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매바위, 그리고 매봉 정상에 있는 고깔 모양의 표지석은 다 1996년에 국민 은행에서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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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바위에서 청계산의 최고봉인 망경대를 본 모습이다. 청계산의 진짜 정상에는 저렇게 군사 시설이 설치돼 있어서 민간인이 곧장 접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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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4) 매봉 정상에 도착했다. 오후 늦은 시간대여서 역광 때문에 표지석의 정면 사진을 남기기가 난감했다.
표지석의 뒷면에는 무슨 시 같은 게 적혀 있었다. 옥녀봉 정상과는 달리, 매봉 정상은 공터가 좁고 따로 헬리패드 같은 게 마련돼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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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헬리패드 광장으로 돌아와서는 옛골 및 청계골 방면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사실, 옥녀봉에서 매봉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청계산입구 역 근처의 원터골 방면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이 진작부터 나오긴 했다. 하지만 원터골도 옛골도 아닌 다른 착륙(하산) 지점도 있다고 하니 본인은 청계골 방면을 선택했다.

이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그리 인기 있는 등산로가 아니어서 그런지 길이 잘 닦여 있지도 않고 인적이 뜸하며 좁고 험했다. 심지어 나무들도 가지만 앙상한 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참호 등의 군사 시설도 종종 나타났다.
그래도 지상과 가까워지자 풀숲과 돌계단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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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내려간 뒤에야 드디어 산행이 이렇게 끝나게 되었다. 봄을 만끽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원터골, 옛골뿐만 아니라 청계골 역시 어김없이 옆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산에서 약수터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청계골의 주변에는 의외로 민가나 식당, 가게 따위가 전혀 없고, 온통 주말 농장들만 있었다. 원터골과는 정반대 분위기이다. 그래도 등산객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 차원에서 먼지털이용 에어건과 공중 화장실 정도만 어귀에 마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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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길목에서 지하도를 타고 위의 경부 고속도로를 횡단한 뒤, 청계산 셔틀인 4432번 버스를 타고(관현사입구 정류장) 귀가하면 됐다. 그래도 여기는 워낙 한적하니까 출발 지점과 마찬가지로 주차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보였다.

Posted by 사무엘

2018/04/30 08:33 2018/04/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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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2년 전에 용마산과 망우산을 오른 적이 있다. 용마산의 정상에 먼저 도달한 뒤, 계속 북쪽으로 진행하여 망우산의 정상에도 도달하고, 일명 망우리 공동묘지라고 불리는 서울 시립 묘지 공원 방면으로 하산했다. 서울 시내에 가까이 있는 산을 산책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 뒤 본인은 올해 봄에 망우산을 다시 찾아갔다. 2년 전에 하산했던 곳에서 등산을 시작한 셈이다. 그 뒤, 묘지 공원 내부에 있는 포장된 순환 도로만 한 바퀴 빙 돌고 나서 출발지로 되돌아왔다. 이 정도의 낮은 경사와 등정 난이도는 전문 산악인이 보기에는 등산이라기보다 산책에 불과한 수준이겠으나, 그래도 엄연히 산이기 때문에 오르막이 없는 건 아니다.

2년 전에는 좁고 험한 흙길 위주로 다니면서 망우산의 중심부를 종단했지만,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는 여러 유명인사들의 묘지는 단 하나도 마주치지 못했다. 이번 답사는 그 부족했던 점을 정확하게 보완해 주었다.
본인이 지금까지 묘지가 있는 산을 오른 건 일자산(서울-하남), 영장산(성남-광주)에 이어 여기(서울-구리) 이렇게 세 곳이다.

등산로 입구까지는 가뿐하게 자가용으로 갔다. 무료 주차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평일에 가니 자리도 넉넉하고 안성맞춤이었다.
뭐, 차를 가져가지 않았으면 여기로 되돌아오지 않고 동쪽의 구리 시내나 서쪽의 서일 대학교 방면으로 하산할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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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 산책로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주차장 방면으로 뒤를 돌아보며 찍은 풍경이다.
2년 전에 여기를 갔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마침 이 날도 봄비가 땅을 촉촉하게 적신 상태였다. 그리고 산 속은 자욱한 안개로 뒤덮혔다. 좋게 말하면 운치 있고 나쁘게 말하면 안 그래도 묘지 공원인데 분위기가 더욱 스산해졌다.
그래도 미세먼지가 아니라 순수하게 수증기· 미세 물방울로 이뤄진 안개 속에 둘러싸여 있는건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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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 산책로는 이런 형태로 쭉 이어졌다. 이게 나름 큰길이다.
자동차가 다닐 수도 있지만 작업· 관리 차량 전용이며, 일반 방문객· 등산객이 여기까지 차를 끌고 다닐 수는 없다. 산악 자전거 정도만이 허용될 뿐이다.

그리고 자동차의 경우, 길이 일방통행 형태로 돼 있다. 우측통행이라는 특성상 서울 방면 서쪽으로 진행해서 한 바퀴 돈 뒤, 구리 방면 동쪽 경로를 타고 되돌아온다.
물론 도보 등산객은 아무 쪽이나 골라도 된다. 동쪽이 묘지 구경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본인은 자동차의 통행 방향과 반대인 경로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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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의 좌우에는 이렇게 무덤들 쪽으로 가는 샛길이 곳곳에 나 있었다. 위의 사진처럼 더 밑으로 내려가는 쪽으로도 있고, 산 정상 쪽으로 올라가는 쪽으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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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최초로 마주친 유명인사 묘소의 주인공은 바로 한반도에 최초로 종두법을 보급한 지 석영이었다.
천연두가 지금이야 지구 전체를 통틀어 박멸됐다고 공식적으로 선언된 지 어언 40년이 돼 가지만,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얘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곰보로 만들었으며, 걸렸다 하면 답이 없으니 그냥 '신'으로 취급받던 끔찍하고 무서운 질병이었다.

옛날 어린이들의 3대 재앙이라 일컬어지던 "호환, 마마, 전쟁" 중 하나이며, 지금으로 치면 에이즈나 어지간한 말기 암에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옛날이 아니라 지금도.. 천연두는 예방접종 덕분에 박멸만 됐을 뿐이지, 일단 병에 걸려 버린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법이 개발된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1880년대에 한반도에 이제 막 종두법이 보급되고 있던 동안, 서양에서는 더 나아가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 백신까지 개발해 냈다. 1885년에는 그게 최초로 인간 환자에게(7월 6일, '조세프 메스테르'라는 9세 소년) 시범타로 투입됐는데, 결과는 당대 의사들의 냉소를 정면으로 뒤집으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런 선각자들은 질병이나 부패의 배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라는 것이 있다는 과학적 사실 하나를 규명함으로써, 수많은 엉뚱한 민간요법과 미신을 타파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다. (세균보다도 더 작은 바이러스는 20세기에 와서야 존재가 확인되었고..) 이런 식으로 인류의 위생과 복지는 향상돼 왔다.

한편, 지 석영은 의학을 본업으로 삼다가 뒤늦게 자국어와 한글 쪽으로도 눈을 떴다는 점에서 공 병우와 비슷한 면모가 있어 보인다. 공 박사가 이 극로의 영향을 받았다면, 지 석영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주 시경이었다. 그는 학술 서적들의 번역, 한자어의 국어 풀이,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쪽으로도 여러 주장과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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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묘지 공원에는 표지판에 안내까지 된 일본인의 무덤이 딱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아사카와 다쿠미'라고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서 살았던 일본인이다. 조선 총독부 산림과 소속의 관료로서 조선 땅을 밟게 됐지만 한반도의 산림 녹화에 실제로 기여했다고 한다. 산림 녹화라 하면 해방 후의 박 정희 때의 과업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이 사람은 한국의 풍토· 문화를 깊이 연구하면서 거의 호머 헐버트 급으로 한국 문화에 호의적으로 동화되었으며, 옷도 조선식으로 입고 일상적으로 한국어를 쓰기까지 했다고 한다. <조선의 소반(小盤)>이라는 책을 썼다.
그의 묘비에는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 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고 쓰여 있는데, 보다시피 글자에 흰색 칠이 좀 벗겨졌다.

아사카와 다쿠미 말고 묻혀 있는 다른 일본인은 '사이토 오토사쿠'이다. 역시 조선 총독부 산림과 소속이면서 직급은 아사카와보다 더 높고, 막 한국 스타일로 살았던 사람은 아닌 듯하다. 무덤도 봉분 없는 일본 스타일로 조성돼 있어서 전자의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

뭐, 망우리 공동묘지는 애초에 무슨 현충원 같은 묘지가 아니다. 무명의 일반인들도 엄청 많이 묻혀 있는 와중에 극소수의 주목할 만한 위인이나 유명인사들의 묘만 이렇게 안내가 돼 있을 뿐이다.
일제 시대의 일본인이라도 정치적으로 막 조선인들을 괴롭히고 수탈했거나 전쟁 범죄를 저지른 악질이 아닌 이상, 한국 땅에서 죽었으니 저 정도 매장과 예우는 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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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그 이름도 유명한 소파 방 정환의 묘지 근처에 다다랐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 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에게 책을 늘 읽히십시오.."
그 꿈도 희망도 없던 시절에 사상적으로 무슨 영향을 받아서 이런 진보적인(?) 주장을 한 운동가 겸 아동 문학가가 한반도에서 배출되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담배 골초였고, 최종적으로는 극도의 성인병(비만· 고혈압, 그리고 아마 당뇨도?)에 시달리다 요절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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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 가는 차원에서 주변 풍경을 또 투척한다. 봄· 여름 사이에 산이 완전히 초록색으로 변했을 때 찾아왔으면 더 좋은 경치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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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정환 만만찮게 유명한 만해 한 용운의 묘이다. 지금까지 책으로만 접하던 인물의 묘지를 이렇게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한 용운은 불교 승려이지만 결혼을 했으며, 죽어서도 부인과 함께 저렇게 나란히 묻혀 있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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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중에는 죽산 조 봉암의 묘도 나왔다. 한때는 좌파· 사회주의 계열로 항일 독립 운동을 하다가 해방 후 초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농지 개혁에 큰 기여를 한 분이다. 농민들이 만년 소작농 신세를 벗어나 자기 땅이 생기자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생겼으며, 그 덕분에 6· 25가 터졌을 때도 북괴 인민군의 무상 분배 지상락원 선전 선동에 속지 않았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이다.

다만, 아무리 전향했다 해도 그는 박 정희의 남로당 경력만큼이나 과거 커리어가 영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며, 나중에는 이 승만의 독재를 너무 견제하다가 눈 밖에 나고 빨갱이로 몰려서 사법 살인을 당했다. 6· 25가 끝난 지 10년이 채 안 지났고 남북간의 적개심이 극악으로 치달았던 1950년대에 벌써 '평화 통일' 운운은 너무 급진적이며, 정치 정적들에게 저의를 의심받고 꼬투리를 잡힐 주장이긴 했다. 비극적인 일이다.

비석에 새겨진 어록 하나는 정말 고퀄이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난 저분 무덤이 북한산 기슭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신 익희와 혼동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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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묘지 공원 순환로는 한 바퀴 빙 돌아서 북쪽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순환로를 따르지 않고 계속 직진하면 이제 서울 둘레길을 따라 남쪽의 용마산이나 아차산으로 가게 된다. 묘지 공원 구간에서는 벗어나지만 그래도 포장된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서쪽 순환로는 동쪽 구간보다 유명인사의 무덤이 훨씬 적었다. 소설가 계 용묵, 화가 이 중섭의 무덤이 있다는 안내판 정도나 봤다.
그 밖에 중간 중간 '사잇길'이라고 양쪽의 순환로를 잇는 산길이 몇 군데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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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쪽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하나 있었다. 허나, 날씨가 날씨인 관계로 바로 근처의 무덤들 말고는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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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강녕탑'이라는 이름의 돌무더기가 있어서 이건 도대체 뭔가 싶었다.
'최 고학'이라는 이름의 어떤 할아버지가 매일 산에서 쓰레기를 줍고,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근성으로 돌탑을 쌓은 거라고 한다.
검색을 더 해 봤더니 2012년도 기준으로 이런 글이 있다. 2012년에 86세이시니 6년이 더 지난 2018년 현재는 춘추가 아흔을 넘으셨겠지만.. 80대 중반에도 워낙 팔팔하고 건강한 상태이시니 아마 지금도 살아 계시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면 자살하는 국민도, 이혼하는 국민도, 결혼을 못 하고 늙어 가는 처녀 총각도 없을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맞으면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저분은 이런 덕담을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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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길을 4km가 좀 넘게 한 바퀴 빙 돌고 돌아왔다. 여기가 괜히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보고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온통 20세기 인물 일색인 이곳에 생뚱맞게도 조선 순조의 딸인 명온공주의 무덤이 있다. 원래 미아리 쪽에 묻혔다가 이곳으로 이장되었는데, 본인이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관리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반대로 도산 안 창호는 원래 이곳에 묻혔지만 1970년대에 서울 강남에 도산 공원이 생기면서 거기로 이장되었다. 박 정희 정권이 이 순신 장군을 아주 띄워 줬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갑자기 안 창호에도 필이 확 꽂혔던 것 같다.

서울과 구리시에서는 '인문학길'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이면서 이곳을 더 친숙하고 접근하기 쉬운 테마 공원으로 조성을 의향이 있어 보이던데.. 차라리 주차장을 유료화해서 관리인을 두고, 그 대신 상봉· 망우 같은 인근 전철역에서 셔틀버스라도 굴리면 자가용 수요를 억제하면서 더 많은 등산객과 성묘객이 이곳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4/19 08:36 2018/04/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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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이 지나고 2018년의 봄이 찾아왔다.
낮 기온은 영상 한 자릿수 정도이다. 한겨울 중무장 급의 두꺼운 옷은 이제 필요 없어졌으며, 낮에 격렬하게 활동하면 땀도 날 정도이다. 하지만 아침과 저녁에는 여전히 외투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딱 이런 날씨가 정말 좋다. 이보다 더 더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봄과 가을처럼 날씨가 좋을 때 등산을 자주 가려 한다.

서울 근거리에서 새로 개척할 만한 산은 거의 남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가까운 시간 간격으로 서울의 북쪽 근교에 있는 명산 세 곳.. 북한-북악-인왕산을 예전과 살짝 다른 경로로 예전에 들르지 못했던 곳을 보충하는 형태로 다녀왔다.
한번 다녀오고서 기억이 희미해져 가던 곳을 다시 다녀오니, 이제는 각각의 산 속 지리와 등산로 구조가 더 분명하게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저 세 산을 또 찾아갈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1. 북한산 -- 북한산성 탐방 지원 센터, 대서문, 원효봉

예전에 하산 지점이었던 진관사는 은평구의 거의 끝자락이기라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서울이었다. 이번에는 서울을 확실하게 벗어나서 북한산 초등학교 근처의 '북한산성 탐방 지원 센터'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그래서 북한산성 대서문을 지나고 원효봉까지 오르고 돌아왔다.

똑같이 북한산 등산로여도 정릉이나 우이 탐방 지원 센터 근처는 공영 주차장도 있고 등산용품 매장, 식당, 카페들이 즐비해서 반쯤 유원지 같다. 옆으로 계곡이 있어서 시냇물이라도 흐르고 있으면 경치가 좋으니 그런 시설들이 더욱 많아진다.
하지만 국민대 근처의 북악 공원 지킴터라든가 평창동 내부의 평창 공원 지킴터, 구기 탐방 지원 센터 같은 곳은 산기슭에도 그냥 평범한 주택 건물밖에 없는 마이너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북한산성 탐방 지원 센터는 메이저 중의 메이저 등산로인 듯하다. 주차장도 두 곳이나 있고 등산객들로 정말 북적거렸다.
여기는 집에서 꽤 먼 관계로 본인도 차를 가져갔기 때문에, 등산을 막 멀리까지 하지는 못하고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차를 세워 놓기 위해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지는 않았으며, 그렇다고 불안하게 불법 주차를 하지도 않았다. 기왕 주차비가 들 거면 카페를 하나 이용하고서 고객 전용 주차장에다 차를 세우고 등산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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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의 대동문과 보국문, 대남문은 한참을 낑낑대며 산을 중턱까지 올라야 도달할 수 있는 반면, 대서문은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달할 수 있었다.
북한산의 서쪽 기슭에는 절(사찰)이 정말 많았다. 상운사, 대동사, 국녕사, 중흥사 등.. 이 때문에 제법 높은 고도까지가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게 닦여 있었으며, 대서문은 그 길목에 있었다. 북한산에서 아마 가장 깊숙하게 차도가 닦인 구간이 여기가 아닐까 한다.

물론 여기까지 실제로 차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공무원이나 사찰 관계자나 방문객 불자로서 허가를 받은 사람뿐이다. 아무나 등산로에서 차를 굴리고 다닐 수는 없으며, 부득이하게 운전을 하더라도 타 등산객과 사고를 내지 않게 비상등을 켜면서 아주 천천히 달려야 한다.

산에서 차도를 필요하게 만드는 존재는 군부대와 사찰 이렇게 둘로 나뉘는 것 같다. 그나마 사찰은 산중턱에 있는 게 대부분이지만 군부대는 공군 방공부대 같은 건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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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비봉에서 북한산을 올랐을 때는 북한 무장공비의 동선에 대한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이번 등산로에서는 과거에 여기 주변에 조성돼 있었던 '북한동 마을'에 대한 역사 공부를 하게 됐다.
원래 여기 주변에도 다 민간인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가 2000년대 초에 국가에서 북한산의 생태 복원과 환경 보전을 위해 주민들을 보상과 함께 타지로 이주시켰으며, 마을을 철거했다고 한다.

아무리 보상을 해 준다 해도 대대로 여기서 살던 사람들을 갑자기 이주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경치 좋은 관광지에서 요식업에만 종사하며 살면 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타지로 쫓겨나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사진은 지독한 역광 구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런 모양으로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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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드디어 넓은 차도가 끝나고 가파른 계단식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길을 계속 가면 원효봉에 도달할 수 있다.
단, 돌로 된 북한산의 봉우리들은 마지막 300~500m를 남겨두고 더욱 가팔라지면서 등정 난이도가 상승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여기는 백운대 정상 같은 급의 막장 난이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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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등산로 시작점에서 1km를 조금 넘는 구간은 대서문을 지나는 차도만 있는 게 아니라 계곡을 구경하면서 더 짧고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등산로도 있었다. 본인은 하산할 때는 이쪽 경로를 선택했다.
옛날에는 저 사진의 공터에 다 집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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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은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으며, 아직 눈과 얼음이 녹지 않은 곳도 많이 보였다. 나중에 곧 방문한 인왕산 수성 계곡도 딱 이런 분위기였다.

2. 북악산 -- 삼청각, 팔각정

본인은 2016년에 북악산을 1차로 올랐을 때는 한양도성을 따라 철저하게 남쪽 봉우리만 지났다. 그 뒤 2차로는 북쪽 봉우리로 가되, 김 신조 루트를 따라 북동쪽으로 가서 국민 대학교 방면으로 하산했다. 둘 다 시작은 종로구였다(각각 창의문 안내소와 삼청 공원),

그 뒤 이번 3차 산행에서는 1차 등산의 하산 지점과 얼추 비슷한 성북구의 삼청각 근처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2차 산행과 비슷한 경로로 북쪽 봉우리로 건너갔는데, 김 신조 루트 대신 꾸준히 봉우리만 올라서 북악 팔각정을 최단거리로 찍었다. 그 뒤 북서쪽의 평창동 방면으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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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북악산 등산로를 찾아가기 위해 2112 녹색 버스의 종점에서 내렸다. 그 뒤 산을 향하여 비탈길을 계속해서 쭉 올라갔다.
위의 사진에 나온 집은 1차 등산 때 내려다봤던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2년 전 블로그 포스트의 마지막 사진을 보시길..). 아파트인지 빌라인지 사무실인지, 아니면 갑부들 저택인지 모를 특이한 건물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 건물을 드디어 가까이에서 보게 됐다. (검색을 해 보니.. 분양가가 수십억 원에 달하는 갑부용 단독주택이라고 한다..)

이 산책로의 옆에는 계곡이 있어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이건 근처의 북악산에서 발원한 성북천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 주변엔 공터가 생각보다 있는 덕분에 주차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본인은 여기는 북한산을 갈 때와는 달리 어차피 버스를 타고 갔지, 차를 가져가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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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올라가니까 자동차 도로(도로명: 대사관로)가 나오고, 근처엔 지금까지 말로만 들어 온 '삼청각'이라는 한옥 단지(?)의 입구가 나타났다.
무슨 역사적 유래가 있는 옛날 문화재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더라. 의외로 1972년에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북악산 동쪽 기슭에 일부러 전통 한옥 스타일로 만든 '요정(料亭)'이라고 한다. 단체 손님들이 자기만의 방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고급 한식당이라는 뜻이다. 여종업원이 서빙을 하는 건 덤이고..

삼청각은 높으신 분들의 회식· 회의, 거래 미팅, 친교 공간으로 쓰였으며, 실제로 만들어지자마자 남북 적십자 회담과 한일 회담의 협상이 거기서 이뤄졌다. 그때는 1. 21 사태의 트라우마가 쩔었었기 때문에 일반 양민들은 삼청각이 위치해 있는 북악산 쪽으로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삼청각은 1970년대 요정 정치의 산실로서 그야말로 정· 재계 VIP들이 역사를 만들어 내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궁정동 안가(安家)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군사 정권이 끝나면서 삼청각은 예전 같은 넘사벽급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부유층 민간인을 상대로 고급 레스토랑· 카페 겸, 돈지랄 좀 한 결혼식과 돌잔치 장소로 쓰이게 됐다. 지금은 2001년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서 문화 행사 공연 장소로도 쓰이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저기는 돌아가는 방식이 공영인지 민영인지가 좀 궁금해진다.

말이 좀 길어졌다만, 우리나라에 이런 시설도 있다는 걸 본인은 이번 기회에 난생 처음으로 알게 됐다.
다만, 2018년 1월부터 3월까지는 삼청각이 무려 17년 만의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그래서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이곳이 영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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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온 김에 삼청각 안으로 들어가 봤다. 내부 수리 상태이지만 각각의 건물만이 폐쇄되었지,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는 여전히 가능했다.
삼청각을 구성하는 각각의 한옥 건물들은 누가 지었는지 모를 한자어 이름이 붙어 있었으며, 북쪽 끝에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편운정'(片雲亭), '떠다니는 구름 한 조각'이라는 뜻의 정자가 놓여 있었다.

삼청각은 산 쪽으로 울타리가 아주 빡세게 둘러져 있지는 않았으며, 그 안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을 억지로 찾아서 북악산 등산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쪽으로 가면 동쪽의 군부대로 가는 계단으로 합류하여 국민 대학교와 북한산 방면으로만 진행 가능하지, 팔각정으로 갈 수는 없었다. 팔각정으로 가려면 삼청각의 서쪽에 따로 나 있는 등산로를 이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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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각의 편운정 근처에서 전방의 정식 등산로를 보고 찍은 사진이다. 저 등산로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성북천 발원지와 김 신조 루트 갈림길은 2년 전에 봤던 기억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사진 첨부는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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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남짓 근성으로 계단을 오른 끝에 드디어 북악산 팔각정에 도달했다. 차를 몰고 가던 곳을 처음으로 도보로 완주하게 됐다.
북악 스카이웨이의 길 좌우에는 보안상의 이유로 인해 살벌한 철조망까지는 아니어도 다들 담장이 둘러져 있는 편인데, 그래도 등산로와 연결되는 곳은 담장이 개방돼 있다.
본인은 그 등산로를 통해서 북악 스카이웨이 구간으로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에 했다. 그리고 그 바람을 이렇게 이뤘다.

팔각정에서 차도를 따라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커브와 함께 평창동 방면으로 내려가는 도보 등산로가 나왔다. 본인은 이 경로를 이용하여 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악산 북쪽 봉우리를 종단하며 하산했다.
이 등산로에는 최소한의 오솔길 말고는 아무런 표지판도, 계단도, 보안 시설도 없었다. 북악산도 남쪽으로 청와대 부근만이 요새화돼 있고 등산객에게 목걸이를 배부할 뿐이지, 반대편의 평창동 주민에게는 그냥 평범한 동네 뒷산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듯하다.

3. 인왕산 -- 수성동 계곡, 석굴암

끝으로 인왕산이다. 얘는 그렇게 높고 큰 산이 아니고 등산로가 딱히 많이 존재하지 않으며, 바로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오른 적도 있는 산이다. 하지만 굳이 또 찾아간 이유는, 본인이 답사한 적이 없는 곳에 있는 수성동 계곡이 그렇게도 경치가 좋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수성동 계곡 바로 앞까지 가는 유일한 대중교통으로는 종로 09 마을 버스가 있었다. 저기가 버스의 종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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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실제로 보니 장관이 꽤 미려했다. 아차산 생태 공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원래 아파트(옥인동 시범 아파트)까지 지어져 있던 걸 다 철거하고, 옛날 조선 시대에 그려진 풍경화에 묘사된 대로 나무를 심고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복원한 뒤에 2010년대에야 개방한 거라고 한다. 북한산 마을과 비슷한 사연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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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동 계곡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북악 스카이웨이의 인왕산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인왕산로라는 찻길이 나타나고, 길 건너편으로 등산을 계속해서 몇몇 약수터와 석굴암(?)으로 갈 수 있었다. 거기서도 계속 산을 오르면 결국 한양도성과 합류하고 기존 정규 등산로를 따라 결국 정상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래도 한양도성이 아닌 좁은 오솔길을 따라, 감시 요원도 없는 경로로 인왕산을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산을 오르고 나니 본인이 등산을 시작했던 지점인 수성동 계곡 방면을 이렇게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보니까 수성동 계곡이 전혀 별것 아니어 보인다..;;
아무튼, 이렇게 산행을 마쳤다.

Posted by 사무엘

2018/04/16 08:29 2018/04/1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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