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먼 옛날 어린 시절에 TV던가 비디오던가 어쨌든 "영구와 땡칠이"에서 영구가 김 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대동! 난지도!"라고 틀리게 부르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이 아니라 웬 뜬금없이 서당 훈장의 질문에 대답할 때 말이다. 심 형래가 영화 만드느라 흑화하기 전, 20세기엔 저런 연기도 했었다.

검색을 해 보니.. 원래 매체는 영화였다. 198~90년대 그때는 만화영화가 아니면서 어린이용 특촬물 영화라는 장르가 있었다.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가 4편까지 있었고, 대동난지도 드립은 첫 작품인 1편의 중간쯤의 서당 씬에서 나오더라.
저 때는 강시, 홍콩 할매 귀신(...;;), 조폐공사 사장 딸 이야기 등 별별 희한한 공포 괴담들이 초딩 사이에 많이 나돌았었다. 추억 돋네~

그리고 영구뿐만 아니라 맹구도 있었다. =_=;;; 그건 심 형래 같은 전담 배우가 있는 게 아닌 그냥 보편적인(?) 개그 프로용 바보 캐릭터였던 것 같다.

1. 대동여지도

말이 나온 김에 먼저 심 형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지도 얘기부터 좀 꺼내도록 하겠다.
본인은 초딩 시절에 대동여지도도 알고 난지도도 알고 김 정호가 누구인지도 알았다.
옛날 학교 교과서와 계몽사 위인전을 읽으면서 '근근이'(어렵사리 겨우)라는 단어를 김 정호 편에서 처음이자 현재까지도 거의 마지막으로 접했다. 이 사람이 투잡을 뛰며 간신히 입에 풀칠 하면서 딸과 함께 지도 목판을 만들었댄다. 일제가 편찬한 조선어 독본에 저 단어가 쓰였나 본데, 후대의 문헌들도 토씨 하나 차이 없이 그대로 인용한 듯하다.

그리고 '주리틀기'라는 형벌도 저기서 처음으로 접했다.;; 김 정호는 그 계몽사 위인전에 등재된 40명의 인물 중에 항일 독립 운동가를 제외하면 가장 비참한 형벌을 당하고 옥사한 사람으로 독보적인 1위였다.
하지만 21세기에 와서는 김 정호 옥사설은 부정되고 있다. 위험물 이적표현물(?)이라고 나라에서 다 때려 부수고 폐기했다는 대동여지도는 멀쩡하게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고, 김 정호나 그 측근 인물들이 처벌 받았다는 기록은 그 어느 실록이나 야사 등지에도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이 유교 꼴통 이념에다 말기에 아무리 개망나니 막장으로 갔다 한들, 자국 지도를 근성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자국민을 무슨 반역죄인으로 취급하여 벌 주는 건..;; 좀 심하게 말이 안 되기도 한다. 단지, 양반들과 달리 자기 분야에서만 유명한 기술자· 덕후 계열 인물들은 정확한 출생이나 사망 일시가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이 점에서는 김 정호뿐만 아니라 장 영실도 마찬가지이지 않던가? 김 정호 옥사설은 이런 뿌연(불분명한 최후) 틈새를 파고들면서 생긴 오해와 낭설로 보인다.

대동여지도가 완성된 건 1861년으로,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남북 전쟁이 시작된 때이다. 김 정호는 인생일대의 과업을 완수한 뒤, 1860년대 언젠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1863년에 흥선 대원군이 집권했으며, 1866년에 병인박해라는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다. 사건의 순서가 저렇다.

김 정호가 평범하게 죽은 것만큼이나 그의 지도도 만능 절대무오 퀄리티까지는 아니었다. 훗날 일제가 조선 침략을 위해 더 발달된 기술로 오랫동안 한반도를 자체 측정한 자료는 대동여지도보다 훨씬 더 정확 정밀했다. 그렇게 한반도 지형을 다 꿰뚫고 있으니 청일 전쟁도 이기고 경부선· 경의선 같은 장거리 간선 철도도 뚝딱 놓을 수 있었다.

요컨대 대동여지도를 조선이 몰라보고 일제가 뒤늦게 인정한 게 아니다. 조선도 대동여지도를 인정했고, 일본의 후대 측량은 더 뛰어났을 뿐이다.
무슨 고조선이나 삼국/고려 시대 같은 먼 옛날도 아닌데, 비교적 가까운 조선 시대 역사도 이런 식으로 서술이 뒤바뀐 게 김 정호 얘기 말고 더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조선이 "십만 장병 양성설"을 씹고 당파 싸움만 일삼다가 임진왜란 때 허를 찔리고 쳐발렸다고들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도 나름 왜의 침략을 인지하고 대비했으며, 십만 장병 양성설은 출처와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반론이 나와 있다.

한편으로 1920년대 독립군의 청산리 대첩은 전과가 교차검증 가능 수준으로 확인되는 게 전혀 없다 보니.. 대첩이 아니라 그냥 '국지적 전투 승리' 수준으로 수정되었다.
우리한테 유리한 내용이건 불리한 내용이건 역사라는 건 절대적으로 팩트부터 추구해야 할 것이다. 성경도 내용이 인간에게 듣기 편한 것이건 아니건 일단 문자적인 의미부터 파악한 뒤에 적용을 더 넓게 비유적으로 하듯이 말이다.

몇 년 전에 "고산자, 대동여지도"라고 포스터의 풍경 사진만 멋진 영화가 나온 바 있다. 한물 간 통상적인 옥사설을 그대로 채택하는 병크는 다행히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엄연히 국가의 공인과 지지와 지원이 있었던 지도 제작 프로젝트를 김 정호 개인의 과업으로 왜곡한 건 여전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비극을 만들기 위해 다른 명분인 천주교를 끌어들였다.. =_=;;; 그리고 석방 조건이 니가 만든 지도를 국가에다 헌납하는 것이다. 지도를 만든 것 자체를 죄로 만드는 것만 피하고, 다른 황당한 왜곡과 각색을 집어넣어서 옥사설을 유지시킬 생각은 어째 했는지, 정말 기가 막혔다. 날짜가 얼추 비슷하다고 저 사람을 아무 접점이 없는 천주교인으로 만들다니.. ㅡ,.ㅡ;; ActiveX를 없앤답시고 아예 바이너리 설치 프로그램을 만든다거나(exe냐 ocx dll이냐의 차이뿐;;), 자전차왕 엄 복동에다가 무장 항일 투쟁을 억지로 연결시킨 것과 비슷한 짓이다.

2. 용

심 형래는 영구와 땡칠이 말고 우뢰메 시리즈에서도 주연으로 출연하여 TV 코미디언뿐만 아니라 아동 영화 배우로 크게 성공하고 억만장자가 됐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어설프게 메가폰 잡으면서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몰락했으며, 단순히 돈만 날린 게 아니라 경영자로서 부도덕한 인간성 논란까지 잔뜩 일으켰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그나마 다시 방송에나 알음알음 출연하면서 왕년의 코미디언 행세를 다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 사람은 "용가리", "D-war"처럼.. 어째 괴수물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용 덕후였다. 아동 영화 배우 출신이어서 그런지.. 공룡처럼 크고 아름답고, 힘세고 강한 걸 좋아하는 어린애들 취향을 늘 의식하며 살았던 듯하다.

사실, 그의 지론은 설득력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 이전 세상에서 1억 년이 넘는 중생대라는 기간 동안 공룡을 잔뜩 만들어서 굴리고, 흔적을 화석으로 미리 남겨 놓으신 가장 큰 이유는..
후대에 등장할 인간들의 "동심 형성"을 위해서임이 틀림없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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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눈에는 밤 하늘의 픽셀 하나로밖에 안 보일 별들을 위해서 수백~수만~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 태양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핵융합 가스 덩어리도 셀 수 없이 많이 박아 놓았거늘.. 하물며 공룡쯤이야 논리적으로 충분히 납득 가능한 추론이다.

내 이름에도 '용'자가 있기도 하고, 성경에도 '용'이 나온다. 호기심에 D-war 주요 장면을 보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동양에서의 용과 서양에서의 용은 심상이 서로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성 castle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긴 성벽 vs 그냥 저택) 달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듯이 말이다(긍정적 vs lunatic한 광기 등 부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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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용은 날아다니고 입에서 불을 뿜을 수 있는 상상 속의 동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색깔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듯. 그러나 나머지 외형은 동양과 서양이 서로 다르다.

동양의 용은 뱀/도마뱀처럼 길쭉하고 얼굴에 긴 수염이 반드시 있으며 날개가 없이 꾸불텅꾸불텅 비행한다.
서양의 용은 날개가 반드시 있으며 몸이 동양 버전만치 길쭉하지 않아서 뱀 같다는 느낌은 훨씬 덜하다. 애초에 동양처럼 이무기가 용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여의주 물고 비행한다는 설정 자체가 전혀 없다. 지질 시대 생물인 공룡에 더 직관적으로 대응한다.

동양의 용은 영험하고 신성한 좋은 동물, 긍정적인 동물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 개룡남"이라는 속담과 단어가 있을 정도로 사람도 용처럼 되고 싶어할 정도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용은 그냥 처치해야 할 악당 몬스터 중 하나일 뿐이며, 개천에서 용 났다가는 큰일난다. 용처럼 된 사람이 아니라 용을 때려잡은 사람이 영웅이 된다.
영어에서 잠자리를 용파리라고 부르고, 화승총 쏘는 기병을 '드라군'이라고 부른 건 용을 전혀 신성시하지 않는 문화권에 있기 때문에 그랬다.

성경에 나오는 용도 응당 동양이 아니라 서양의 용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될 것이다. 계시록에서 용이 워낙 부정적으로 나쁘게 나오니(계 12:9, 20:2) 한때는 본인도 내 이름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낄 정도였다. 뭐 그렇게까지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용에 대한 인식이 동양과 서양이 어쩌다가 서로 달라졌는지 답을 구하고 싶기는 하다.

D-war는 나름 미국에 진출해서 그 바닥에서 서양 드래곤이 아닌 동양 용을 나쁘지 않은 CG로 그려서 널리 알렸다는 최소한의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느라 돈을 얼마나 꼬라박고 손해를 입었는지는 이 자리에서 굳이 따지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3. 연기자 출신의 영화 감독

D-war는 희대의 망작 급으로 쫄딱 망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어마어마하게 든 제작비의 절반 남짓밖에 못 벌면서 심 형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21세기 들어서 우리나라에 괴수물 자체가 "괴물"(2006) 말고는 별 재미를 못 봤으며, 얘도 괴수 자체의 묘사가 우수해서 흥행한 건 아니다. "7광구"는 IMAX 형태로 만들어지고도 쫄딱 망했고..

심 형래도 그렇고 서 세원도 그렇고.. 방송인· 연기자로 잘 나가다가 영화 만들고서 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방송인· 연기자들이 그 바닥에서 짬이 차고 나면.. 맨날 남이 짜 준 각본대로만 연기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직접 감독하고 연출해서 만들고 싶어질 것이다. 그 심정은 본인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은 늙어서까지 남 밑에서 고용되어 특히 현장에서 발로 뛰며 일하는 걸 꺼리는 정서가 강하다. 그래서 자본만 있다면 가능한 한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한다.
굳이 그 정도의 야망까지 있지는 않더라도, 중· 장년 나이에 명퇴 당해서 퇴직금을 밑천으로 강제로 창업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업종을 바꿀 거면 새 업종에 대해서 기본기를 닦고 충분히 공부를 해야 된다. 성악만 몇십 년 한 사람이 갑자기 작사· 작곡을 하겠다고 하면 제대로 된 노래가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또한, 영화를 만드는 건 일종의 사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별히 순수 예술만 추구하는 독립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 남의 투자금까지 끌어들여서 밑천의 몇 배를 뽑을 상업 영화를 만들려 한다면... 자기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면에 대해 남들이 다 똑같이 자기처럼 생각할 거라고 추측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온갖 역대급 망작 영화들은.. 감독이 그런 안목 없이 무식한 신념을 고집스레 밀어붙인 덕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5/15 08:39 2019/05/1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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