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여름에 영화 인천 상륙 작전이 나왔는데, 이제는 그 스토리의 프리퀄 격인 장사 상륙 작전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져 나왔다. 이건 적을 혼동시키고 군사력을 분산시켜서 진짜 본론인 인천 상륙 작전이 차질 없이 수행되게 하기 위한 밑밥이었던 셈이다. 본인은 개봉 초기에 영화를 잘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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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팩트와 실존 인물을 표방한다는 것을 시작과 끝에서 명시하고 있다. 최소한 "대장 김 창수", "고산자 대동여지도", "자전차왕 엄 복동", "말모이" 같은 급으로.. 주 스토리 차원에서 말도 안 되는 왜곡, 주작, 창작, 각색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된다.
문산호가 좌초· 침몰한 것, 갑자기 통신이 끊겨서 상륙 후에 곧장 귀환을 못 하고 학도병 팀이 오랫동안 고립됐던 것 등등은.. 모두 팩트이다.

(2) 학생들이 보트 타고 상륙하고 총질하는 게.. 마치 배틀로얄 2 레퀴엠 장면 같았다..;; 학도병 주인공 둘은 "15소년 표류기"에 나오는 브리앙과 도니판 같아 보이기도 하고..

(3) 작중에 나오는 터널은 단면이 말발굽 모양인 게 명백하게 단선 철도 터널처럼 생겼는데..
일제 말기 때 만들다가 말았던 동해중부선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작전이 수행되었던 곳은 7번 국도 구간이라고 한다만..)
일제는 전쟁 중에 물자가 부족해서 금강산선, 경북선 같은 철도의 선로를 뜯어 가긴 했지만, 러시아 진출에 필요한 경원선은 복선화하고, 동해중부선은 오히려 새로 건설하고 있었다.

(4) "공산군 저놈도 알고 보면 한 부모의 아들이고 착한 놈이었어"라든가(북괴 기관총 사수를 죽이고 나서 보니 걍 앳된 학도병..), 오글거리는 어설픈 "태극기 휘날리며" 스타일의 신파극이 살짝 들어가 있다.
그리고 국군과 미군 수뇌부를 마냥 절대선이 아니라, 융통성 없고 학생들을 일회용품 총알받이로 쓰고 갖다버리려는 꼰대 집단 비스무리하게 묘사하긴 한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불순한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인천 상륙 작전과 달리, 적인 공산군 중에서 막 인상적인 활약을 하는 악역 주연이 딱히 없다. 그냥 떼거지로 몰려와서 아군에게 총질만 할 뿐이다.
그리고 아군도.. 스토리를 심하게 각색· 왜곡하지 않고서는 겨우 앳된 학도병이 일당백 용감무쌍 무공을 펼치는 식으로 묘사할 수도 없다. 걔네들은 일당백은커녕 총소리 듣고 혼비백산 겁 먹고 달아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너무 대단했던 10대 소년들이다. 이런 스토리 구조에서 굳이 대립· 갈등 비스무리한 걸 넣으려면 아군 수뇌부에게라도 그 역할을 약간 감당시켜야 했을 것이다.

요즘 시대에 197, 80년대 스타일의 일방적인 절대선 절대악 애국심 호소만 존재하는 반공 영화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저 영화가 오히려 더 현실적인 묘사를 한 면모도 있다.
미국도 결국은 위험을 무릅쓰고 조치원함을 보내 주고 애들을 구하려고 일말의 노력은 했다. 그리고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죽을 고생 하고 완수하고 살아 돌아온 이 명흠 대위를 국군에서는 전사자가 너무 많고 배(문산호)를 버리고 왔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하려고 했을 정도이니.. 실제로 융통성 없는 꼰대 집단인 것도 맞았다.. -_-;; (그래도 다행히 진짜 처형하지는 않음)

(5) 결말도.. 액자식 구성이 아닌 것으로 시작한 영화가 갑자기 저렇게 끝나는 건 대놓고 "태극기.."를 따라 한 억지 급조인 것 같다.
그래도 전체적인 결론은..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아무리 민족이니 뭐니 해도,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면 도저히 함께할 수 없으며, 서로 완벽하게 격리· 분리· 독립이 불가능하다면 최악의 경우 서로 죽고 죽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6) 이 영화의 모티브인 장사리 상륙 작전은 6·25 중의 여러 전투들처럼 단순히 오래되어서 인지도가 낮을 뿐이지, 무슨 실미도 급으로 존재가 부정되고 조직적으로 은폐된 작전은 결코 아니다.

이미 196, 70년대의 언론 보도와 매체에서도 버젓이 언급되어 왔다. 일반인들이나 잘 모르지 근현대사 전쟁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까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학도병들이 무슨 실미도 북파공작원이나 국정원 흑색요원 같은 존재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전투가 완전히 잊혀졌다가 뒤늦게 발굴되었네 어쩌네 유세를 떠는 것은 영화의 유니크함을 어필하기 위한 마케팅 과장이다. 걸러가며 들을 필요가 있다.

(7) 내가 이 영화 소개글을 블로그에다 올리려고 마음먹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저 실제 장사리 해변/해수욕장에 이미 철도로 접근할 수가 있게 됐다는 것을 본인도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도 7호선의 철도 버전으로 포항과 삼척을 잇는 동해중부선, 통합 동해선이 일단은 2022년에 전구간 개통을 목표로 공사 중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요즘 세상에 고속철이 아니고 광역전철도 아닌 생판 오지에 새로운 단선 비전철 철도가 새로 생긴다니 굉장히 이색적인데.. 포항-영덕 구간은 이미 작년 1월에 개통했다. 그 사이에 '장사'라는 역이 생겨서 여기서 내려서 몇백 m 걸어가면, 장사 해수욕장과 함께 그 이름도 장사 상륙 작전 전적지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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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정말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2018년 초 그 당시엔 평창 동계 올림픽과 함께 모든 관심이 경강선 KTX에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말에 서울-양양 고속도로(60) 춘천 동쪽 구간과 영천-상주 고속도로(301)가 거의 동시에 개통했지만, 전자의 인지도에 밀려서 후자는 묻혔던 것처럼 말이다.

장사리 영화를 안 봤으면 내가 일부러 거기 지형을 찾아보지 않았을 것이며, 세상에 "영덕 역이란 게 어딨어?"라는 무식한 소리를 2019년 가을까지도 늘어놓고 있었지 싶다.
나의 무지를 회개하며, 이를 일깨워 준 장사리 영화에 감사드리며 반성한다.
평창역에는 KTX만 서지만, 영덕역에서는 RDC 무궁화호만 탈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0/04 08:32 2019/10/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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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우리나라에는 윤 봉춘(1902-1975)이라는 영화 배우 겸 감독을 역임한 원로급 영화인이 있었다. 역시 영화인이었던 나 운규와 고향과 나이가 동일한 완전 단짝 친구였으며, 둘 다 변절 이력이 전무한 항일 성향이었다는 것도 같이 알면 좋다.

다만, 나 운규는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7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훨씬 먼저 요절했다. 역시 1937년에 결핵으로 사망한 소설가 이 상과 비슷하다. 그 시절엔 열악한 의료· 영양· 위생 여건으로 인해 결핵이 완전 불치병까지는 아니어도 난치병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윤 봉춘은 일제 시대에는 그나마 평범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다가 1940년대 초, 어용 영화 단체의 가입을 거절하고 낙향하여 지조를 지켰다. 대동아 전쟁을 미화하는 프로파간다 영화 따위에 기여하느니 차라리 메가폰을 내려놓고 잠적한 것이다. 훌륭하다.
그러다 나라가 독립을 되찾은 1940년대 말에는 그는 감격에 벅차서 그런지 독립 운동을 소재로 삼은 영화를 잔뜩 만들었다. <윤 봉길 의사>(1947), <애국자의 아들>(1949) 같은 것 말이다.

특히 그는 완전 유 관순 덕후였던 것 같다. 3·1 운동과 유 관순을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도 무려 세 편이나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기와 거의 동갑내기인 유 관순의 삶에 대해 뒤늦게 접하고는 큰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그가 만든 유 관순 영화는 1947년작, 1959년작, 1966년작이 있는데.. 유 관순 역을 맡은 주연 배우는 각각 순서대로 고 춘희, 도 금봉, 엄 앵란으로, 그 당시로서는 날고 기는 S급 A급 여배우들이었다.
또한 1966년은 <소령 강 재구> 영화가 나왔던 해이며, 엄 앵란은 그 영화에서 강 재구 역을 맡았던 미남 배우 신 성일과 1964년에 이미 결혼하기도 했다. 이 역시 당대 톱스타끼리의 결혼이기 때문에 큰 화젯거리였다고 한다.

이렇게 동일 감독이 만든 유 관순 영화가 세 편이나 있지만, 그 시절 여건상 필름이 소실되거나 딴 용도로 재사용되지 않아서 영상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건 1959년작이 유일하다. 지금으로서는 실감이 안 가겠지만, 옛날엔 물자가 워낙 귀하고 부족했던지라 TV 방송이나 영화를 방송사나 국가에서 책임지고 영구 보존하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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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작 영화에서 유 관순이 재판을 받는 장면)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유 관순은 무슨 안 중근· 윤 봉길처럼 혼자 개인플레이로 총 쏘거나 폭탄을 던져서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국제적으로 찬사를 받은 부류가 아니었다.

그녀는 민족 대표 33인도 아니고, 만세 시위 자체를 경성 시내 한복판에서 한 것도 아니었다. 외국인이 설립한 인서울 학교의 재학생이었고, 서울에 있는 형무소(서대문)에 갇혔을 뿐이다. 일제 시대 당대에는 무슨 3· 1 운동의 원탑 아이콘 수준이 아니었으며, 그냥 지방의 만세 시위 열성 참가자 정도의 인지도밖에 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수원의 유 관순이라 일컬어지는 이 선경 같은 여러 여학생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랬는데 나중에, 최하 1940년대 이후에 "자랑스러운 이화학당 동문", "항일· 반일의 아이콘", "위대한 크리스천 여성 독립 운동가" 컨셉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전 영택 목사 같은 분 등에 의해 뒤늦게 재조명되고 전국적으로 부각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유 관순의 유해가 소실되어서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도.. 그녀가 일제 당대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치 전국구 수준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제가 기를 쓰고 여론을 통제해서 유 관순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는 걸 막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수는 있다. 그건 별개로 생각할 문제다.

유 관순은 무슨 안 중근처럼 외국 타지에서 처형 당하고 아무렇게나 매장되는 바람에 유해가 소실된 게 아니다. 멀쩡히 접근성 좋은 인서울의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묘지 부지가 개발을 위해 불도저로 밀리는 과정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유해가 사라진 것이다.

3·1 운동 때 그녀의 집이 불타고 가족이 몽땅 죽거나 투옥되거나 고아 신세로 흩어지는(동생들) 풍비박산이 난 건 사실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녀가 정말 유명한 인물이라면 묘지가 어떻게든 관리는 되었을 것이며, 아무리 일제 치하라 해도 그런 사람이 딴 데로 이장되지도 못하고 유해가 허무하게 증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흉악범(?) 윤 봉길조차도 유해가 수습되었는데 유 관순이 왜 저리 되었겠는가? 내 짐작엔 공동묘지를 밀어버린 불도저 기사조차도 그가 조선인이었건 일본인이었건, 여기에 누구 묘지가 있는지 모르는 채로 그냥 밀었지 싶다.

뭐, 본인은 유 관순이 어떤 의도로 부각되고 칭송되었건 그녀의 행적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왜경에게 두들겨 맞고 손톱이 뽑히면서도 "주동자는 나다", "애국하는 것도 죄냐, 나는 왜놈들에게 재판받아야 할 아무 명분도 없다"라고 당당하게 외친 건 팩트이며, 그건 절대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 어린 나이에 말이다. 본인이 태어나서 '주동자', '주모자'라는 단어를 최초로 접한 곳이 유 관순 전기였다.

단지, 그녀가 뒤늦게 유명해지고 교과서에 실리고 전기가 보급되고 영화가 나왔을 무렵엔 그녀의 유해가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뒤였다. 이것이 일면 안타까운 점이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오면..
유 관순 영화는 윤 봉춘 감독이 만든 것 세 편, 그리고 김 기덕 감독의 1974년작 컬러 영화가 하나 더 있다. 여기서는 유 관순 역이 문 지현이라는 배우인데, 지금 성우로 알려진 그 사람은 아닌 다른 사람이다. 이 영화 이후로 배우 커리어를 계속 이어 나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이거 이후로 유 관순 영화가 더 만들어졌다는 얘기는 난 못 들어 봤다. 그러다가 2019년이 되니 3·1 운동 100주년이랍시고 관련 영화가 <항거>, 그리고 <1919 유 관순>이라고 두 편이 더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서양에서 타이타닉 호 침몰을 소재로 한 영화만 해도 사건 직후와 20세기 중반, 그리고 1997년의 제임스 카메론 작까지 여러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해저에서 실제 잔해를 발견하기 전, 1986년 이전에 만들어진 옛날 흑백 영화에서는 배가 일체형으로 서서히 침몰한다. 그러나 후대의 영화는 최신 고증을 반영하여 배가 두 조각으로 쪼개진다.

그것처럼 유 관순 영화도 1980년대 이전의 옛날 영화는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유 관순에 대해 1902년이 아닌 1904년생, 징역 5년이 아닌 7년형처럼.. 현재는 기록의 발견으로 인해 업데이트되고 폐기된 옛날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더라. 기록이 발견되기 전에는 그녀에 대해서 그냥 동료 수감자의 부정확한 기억과 구전 증언만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유 관순의 최후는 만년 떡밥이었다. 겨우 고3 남짓한 나이밖에 안 되는 어린 소녀가 인간 백정 악마 일본 헌병 개xx에게 어떤 참혹한 고문과 능욕을 당하고 죽었을지 묘사하는 건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과 재량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가히 호러물 수준의 각색이 들어가곤 했다. 어린애들이 보면 트라우마 생길 정도로..;; 유튜브에서 1959년 영화와 1974년 영화를 직접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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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관순이 지하실로 끌려가고, 동료 죄수들은 그녀의 최후를 직감한 듯 다들 손을 뻗으며 울부짖는다. 지하실에서 간수들은 무슨 고문을 하려는지 그녀를 물이 든 통에다가 집어넣고 뚜껑을 닫으려 하며, 관순은 이를 맹렬히 저항하면서 뿌리친다. (왜 유 관순을 미리 결박하지 않고 저리도 힘들게 애쓰며 물통에다 집어넣는지는.. 묻지 말자.;; ㄲㄲㄲㄲ)
관순은 지하실을 뛰쳐나가 탈출하려 하지만 그때 간수가 그녀의 등에다 칼침을 놔 버린다..;;; 한눈에 봐도 현실성은 별로 없다만.. 벤허와 비슷한 1959년작 영화라는 걸 감안하자..

다음으로 1974년작 영화는 유튜브에 올라와 있긴 하지만 텔레비전을 카메라로 또 찍은 것이어서 화질이 대단히 좋지 않다. 그래서 여기에는 따로 소개하지 않겠다.
화면이 어둡고 불분명하지만.. 거기서는 유 관순이 열받은 간수들에 의해 바닥에 팽개쳐졌다가 상체가 일본도로 쓱싹.. 즉, 칼에 찔리는 게(stab) 아니라 베였다(slash). 어휴...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에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그녀의 사인은 그냥 간수들의 구타로 인한 '장살'이라고 기재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바락바락 악이 들어간 만세질(?)이 되풀이되니 간수들에게 얼마나 밉보였으면 총알에 맞거나 칼에 찔린 것도 아니고 둔기로 맞아 죽었나 싶다. 이것도 충분히 비참하게 죽은 것이지만 그래도 다른 생체 실험(!!)이나 사지절단 능지처참 급의 변태적인 짓을 당해 죽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생체 실험은 일제 말기에 윤 동주 같은 사람에게나 해당된다.

다만, 옛날에 독립 기념관에서 봤던 기억으로는 3· 1 운동 시기에 왜경에게 고문 당해서 코나 귀가 잘린 사람, 잡힌 독립군 중에 팔이 잘린 사람>_<도 있긴 했다. 기회가 된다면 일제의 잔인한 만행이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자행됐는지에 대해 기록· 증언의 진위 여부와 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해 볼 것이다.

끝으로... 유 관순이 방광 파열로 죽었다느니 하는 말부터 시작해, 심지어 그녀의 시신이 토막이 나 있었다는 얘기는 내가 알기로 객관적인 근거· 출처가 없다. 후대의 국내 위인전이나 영화에서 처음으로 던져진 떡밥 괴담 주작에 가깝다.
형무소의 동료 수감자가 그녀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을 리는 만무하고, 이화학당 담임 선생? 교장? 유 관순의 친지, 가족? 어디에도 그런 증언은 실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그들은 만에 하나 진짜로 토막 시신을 확인했더라도 고인의 명예를 생각해서 그런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더 현실적이다.

하다못해 반대편 왜놈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자. 죄수가 죽어 버렸으면 그냥 시신을 거적에다 싸서 쓰레기 버리듯이 빨랑 내보내야 하지 않았겠는가? 쟤들이 증거를 인멸해서 경찰의 추적을 피해야 하는 무슨 싸이코패스 살인마도 아닌데, 멀쩡한 시신을 굳이 토막 내고 각을 뜰 틈도 있을 정도로 그들의 근무 여건이 여유롭고 한가하지는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차라리, 아예 죄수들 다 보는 앞에서 "앞으로 또 만세질 하면서 소란 피우는 새x는 이렇게 된다!" 시범타로 공개 즉결처분이라도 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때 서대문 형무소는 유 관순만 갇혀 있던 광활한 공간이 아니며, 상황이 그와 정반대였다. 어느 영화에서나 묘사돼 있듯, 수용 가능 공간과 시설 대비 죄수들이 너무 많아서 바글바글 터져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굳이 시신을 훼손해서 피와 내장이 철철 쏟아져 나오면 걔네들 입장에서는 청소 같은 뒤치다꺼리만 더 늘어날 것이다. (형무소 지하실 고문실은 일본인 헌병과 간수 자기네들도 근무하는 공간이다!)

이상이다.
이런 얘기를 지난번에 항거 영화 감상평과 함께 늘어놨어야 했는데.. 그때는 더 옛날 영화는 미처 떠올리지 못하고 최 은희 선생 같은 다른 사람 얘기를 같이 늘어놓았다.
유 관순은.. 군인으로 치면 신라 화랑 중의 관창처럼.. 어린 나이에 너무 용맹스럽고 애국심 투철하고 존경스럽긴 하지만 좀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더 큰 일을 하지 못하고 너무 짧고 굵게 가 버린 것 같다는 아쉬운 느낌도 든다.

참고로, 옛날 유 관순 영화들에서는 일본인 배역조차(헌병, 간수, 판사, 검사..) 다 한국어만 쓴다. 최근 영화인 "항거"에서처럼 일본인은 일본어로 말하고 조선인 죄수 중의 일부가 일본어를 알아듣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없다. 이는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모든 배역을 한국인 배우가 연기했기 때문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저 때는 현실성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어 따위를 동원하는 게 국민 정서상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만 해도 SKY 중에 일어일문학과가 있는 학교는 K밖에 없으며, 그것도 한참 후대에 생긴 것이니 말이다. 그 이유는.. 본인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9/22 08:35 2019/09/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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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예전에 <소령 강 재구>(1966)라는 전기 영화를 소개한 바 있다. 군대 미화라는 프로파간다 홍보 성격도 강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옛날 영화인 것치고는 그럭저럭 수작이다.
이건 수십 년 전 과거를 일부러 회상하면서 만든 게 아니다. 가령, <상록수>(신 상옥, 1961)야 1930년대에 최 용신 선생의 활약을 다루고 있으니 그 시절의 관점에서도 과거이다. 그러나 <소령 강 재구>는 영화에서 다루는 시기(1959~65)와 영화가 제작된 시기(1965~66)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 그 시절의 모습을 고증 오류 걱정 따위 없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1. "새 마음의 샘터"

각색된 스토리이긴 하다만, 이 영화에서는 껄렁껄렁하고 사고 좀 치던 어떤 문제아 양아치 청년이 입대해서 강 재구가 통솔하는 소대의 부하 병사로 들어온다. (트위스트 김 분)
강 재구는 엄격하면서도 자상하게 얘를 최대한 챙겨 주지만.. 그는 군에서도 군용차를 훔쳐 몰다가 밖에서 교통사고를 내는 대형 사고를 친다. 그는 결국 영창에 수감된다. (그나마 상관인 강 재구가 많이 실드 친 덕분에 군법 회의 회부+군 교도소 대신, 영창 20일으로 감형)

그리고 강 재구는 영창을 찾아가서 자기 부하를 격려하고 선물까지 주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책이라는 선물을 처음 받아 봤습니다. 으흐흐흐흐흙 ㅠㅠㅠㅠ"
"몸조심해라. 그리고 석방되면 새 사람이 되는 거다. 알았지?"


이게 저 영화 중에 나오는 대사다. 역시 1966년작 영화답다.;;
군대는 쌩 양아치를 사람으로, 더 나아가 조국 근대화의 역군으로 개조시켜 주는 곳이라는 정말 개 오글거리는 메시지가 담긴 대목인데.. 훗날 삼청교육대가 괜히 나온 게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본인은 지금도 "삼청교육대 다시 세워가 싹 다 잡아 쳐넣어야 나라가 산다"에 80%쯤은 동의하는 사람이다.

자, 그 얘기는 됐고.. 그런데 영화 스크린에 실제 책이 버젓이 노출돼 있는 게 신기했다. "새 마음의 샘터"???
1960년대의 한국 영화에 벌써 간접광고라는 게 있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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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해 보니 동서양 각종 격언 명언 잠언들만 몇천 개를 엮은 책이고, 편저자가 '이 성수'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중고책 자료를 검색해 보니.. 영화에 등장한 바로 그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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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이 1963년 9월 20일. 강 재구 소령이 장교로 복무한 지 수 년 남짓 뒤에 새로 나온 책이다. ^_^
가격은 고작 400원.. 저 때는 우리나라에서 '환'에서 지금의 '원'으로 마지막 화폐 개혁을 한 지도 얼마 안 됐던 때다. 저 정도 두툼한 책은 요즘 물가로는 못해도 3만원 가까이는 하지 싶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 책은 종이가 온통 누렇게 바랬지만, 책이 처음 만들어졌던 시절에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종이의 색깔이 순 화이트라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이 세월의 격차이다. ㅎㅎ
뉴욕 자유의 여신상도 지금이야 녹슬어서 시퍼렇지만, 처음 만들어졌던 시절엔 갈색 구리색이었듯이 말이다.

2. 서울-인천 시외버스

그리고 다음으로.. 강 재구는 고향이 인천이었다. 그래서 생가가 있는 인천과 학교가 있는 서울을 드나들었는데.. 이때 무슨 교통수단을 이용했을까?
시기가 1950~60년대 사이이기 때문에 이때는 아직 수도권 전철이란 게 없었다. 경인선 철도가 단선 비전철이었다니! 전철은커녕 아직 증기 기관차가 현역이고, 경인선처럼 단거리 수요가 좀 많은 곳에서는 디젤 동차 정도나 다녔다.

그리고 경부/경인 고속도로도 없었다. 이 말인즉슨 고속버스 역시 없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 그레이하운드니 벤츠 같은 외제 고속버스가 등장한 건 1970년대 경부 고속도로의 개통 이후부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인천은 그 정도의 고급 고성능 버스까지 투입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짧기도 하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교통수단은 버스인데.. 1960년대답지 않게 '놀랍게도' 문이 앞바퀴의 앞쪽에만 달려 있어서 오늘날의 대형 버스와 비슷해 보인다. 최소한 그 시절의 하 동환 자동차 국산 버스는 아닌 것 같다.
이 차량은 정체가 무엇이며 어디서 운영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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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영화 장면에 잠깐 등장하는 "韓進(한진) 뻐스"라는 힌트를 통해 얼추 답을 얻게 되었다.
한진 그룹의 창업주인 조 중훈은 대한 항공을 인수하기 전, 1961년 8월에 '한진 관광'이라는 한진 고속의 전신급 회사를 세웠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좌석형 직행 시외버스를 서울-인천이라는 단일 노선에다 운행했다고 한다. 고속버스는 아니지만 그 시절 여건상으로는 고속버스에 준하는 꽤 참신한 고급 교통수단이었던 셈이다.

차량의 정체는.. 주한미군용 통근 버스와 동일한 차종이었다고 한다. 정확한 차종 모델은 잘 모르겠다.
다른 곳에서 우연히 구한 1965년도 주한 미군 기지 사진에 나온 저 버스와 일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면샷도 있으면 확실하게 비교 가능할 텐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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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다. 이런 식으로 옛날 영화를 통해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ㅎㅎ
하긴, 하 동환 버스도 수출용 에디션 중에는 요즘 버스처럼 앞바퀴 앞에 문이 달린 물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중문으로도 모자라서 후문까지 있다니.. 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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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훗날 1971년에 실미도 부대원들이 탈취한 버스는 신진(대우 자동차의 전신) FB100LK였고, 서울-인천이 아닌 "수원-인천" 시외버스였다. 얘는 희소성이 상대적으로 덜하니 이 자리에서 사진은 생략하겠다. 문은 중문 하나만 있다.

* 보너스: 옛날 영화의 사운드 효과

옛날에 컴퓨터그래픽이란 게 없던 시절에는 자막 하나 필름에다가 집어넣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물며 특수한 영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온갖 기상천외한 촬영 기법과 모형, 꼼수가 동원돼야 했다.
그러다가 세계 최초의 CG 접목 영화라고 일컬어지는 게 무려 1982년작 "트론"이며,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엔 애니메이션 영화나 TV CF에서도 CG가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영화계에서는 터미네이터 2와 쥬라기 공원 같은 걸출한 명작도 나왔다.

하지만 순수 CG는 분량이 생각보다 적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아날로그 촬영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컸다. 이족보행 로봇은 진짜 로봇 세트를 만들어서 근성으로 한 프레임씩 찍었고, 핵 폭발로 건물들이 날아가는 장면은 그냥 건물 모형을 부순 것이며, 한 장면에서 동일 인물이 두 명 나오는 건 실제 쌍둥이 배우를 동원한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영상뿐만 아니라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나 게임에서 나오는 총 소리는 현실의 총 소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 상황을 녹음한 게 아니라 그 분위기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효과음을 따로 만든 것이다. 말발굽 소리 같은 것도 실제로 비싼 말을 굴리지 않고 다른 물건으로 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 벌래 씨(1941-2018)라고 영상 음악이 아니라 음향 효과의 최고 권위자 전문가가 있었다. 이분은 왕년에 펩시 콜라 CF에 들어갈.. 아주 시원한 느낌이 드는 병 따는 소리를 좀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마치 에디슨이 전구 필라멘트로 쓰이기에 적당한 재료를 찾기 위해 수백, 수천 번의 실패를 반복했듯이, 숱한 실험을 하다가 결국 콘돔(...!)을 여러 개 겹쳐서 부풀렸다가 터뜨려서 '쓰뽁~~' 소리를 만들어 냈다. (☞ 들어 보기 24~25초)

펩시 본사에서는 이 결과물에 대단히 만족했는지.. 그에게 보수로 백지수표를 줬다고 한다. 그게 소령 강 재구와 비슷한 시기인 무려 1960년대의 일이다. 디지털 사운드 에디터 따위 없이 완전 아날로그 실물만 써서 저런 소리를 만들고, 결과물을 릴 테이프에다가 녹음을 해서 보내 줬었다. 뭐랄까.. 시발 자동차의 개발 주역 중 한 분이던 일명 '함경도 아바이' 김 영삼처럼 한 분야의 장인 달인 엔지니어인 것 같다. 존경스럽다.

하긴, 굳이 펩시 CF가 아니라 어지간한 맥주 CF에서 나오는 병 따는 소리도 현실에서 평범하게 딸 때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과장이 많이 섞인 소리이긴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29 08:36 2019/07/2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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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먼 옛날 어린 시절에 TV던가 비디오던가 어쨌든 "영구와 땡칠이"에서 영구가 김 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대동! 난지도!"라고 틀리게 부르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이 아니라 웬 뜬금없이 서당 훈장의 질문에 대답할 때 말이다. 심 형래가 영화 만드느라 흑화하기 전, 20세기엔 저런 연기도 했었다.

검색을 해 보니.. 원래 매체는 영화였다. 198~90년대 그때는 만화영화가 아니면서 어린이용 특촬물 영화라는 장르가 있었다.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가 4편까지 있었고, 대동난지도 드립은 첫 작품인 1편의 중간쯤의 서당 씬에서 나오더라.
저 때는 강시, 홍콩 할매 귀신(...;;), 조폐공사 사장 딸 이야기 등 별별 희한한 공포 괴담들이 초딩 사이에 많이 나돌았었다. 추억 돋네~

그리고 영구뿐만 아니라 맹구도 있었다. =_=;;; 그건 심 형래 같은 전담 배우가 있는 게 아닌 그냥 보편적인(?) 개그 프로용 바보 캐릭터였던 것 같다.

1. 대동여지도

말이 나온 김에 먼저 심 형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지도 얘기부터 좀 꺼내도록 하겠다.
본인은 초딩 시절에 대동여지도도 알고 난지도도 알고 김 정호가 누구인지도 알았다.
옛날 학교 교과서와 계몽사 위인전을 읽으면서 '근근이'(어렵사리 겨우)라는 단어를 김 정호 편에서 처음이자 현재까지도 거의 마지막으로 접했다. 이 사람이 투잡을 뛰며 간신히 입에 풀칠 하면서 딸과 함께 지도 목판을 만들었댄다. 일제가 편찬한 조선어 독본에 저 단어가 쓰였나 본데, 후대의 문헌들도 토씨 하나 차이 없이 그대로 인용한 듯하다.

그리고 '주리틀기'라는 형벌도 저기서 처음으로 접했다.;; 김 정호는 그 계몽사 위인전에 등재된 40명의 인물 중에 항일 독립 운동가를 제외하면 가장 비참한 형벌을 당하고 옥사한 사람으로 독보적인 1위였다.
하지만 21세기에 와서는 김 정호 옥사설은 부정되고 있다. 위험물 이적표현물(?)이라고 나라에서 다 때려 부수고 폐기했다는 대동여지도는 멀쩡하게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고, 김 정호나 그 측근 인물들이 처벌 받았다는 기록은 그 어느 실록이나 야사 등지에도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이 유교 꼴통 이념에다 말기에 아무리 개망나니 막장으로 갔다 한들, 자국 지도를 근성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자국민을 무슨 반역죄인으로 취급하여 벌 주는 건..;; 좀 심하게 말이 안 되기도 한다. 단지, 양반들과 달리 자기 분야에서만 유명한 기술자· 덕후 계열 인물들은 정확한 출생이나 사망 일시가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이 점에서는 김 정호뿐만 아니라 장 영실도 마찬가지이지 않던가? 김 정호 옥사설은 이런 뿌연(불분명한 최후) 틈새를 파고들면서 생긴 오해와 낭설로 보인다.

대동여지도가 완성된 건 1861년으로,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남북 전쟁이 시작된 때이다. 김 정호는 인생일대의 과업을 완수한 뒤, 1860년대 언젠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1863년에 흥선 대원군이 집권했으며, 1866년에 병인박해라는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다. 사건의 순서가 저렇다.

김 정호가 평범하게 죽은 것만큼이나 그의 지도도 만능 절대무오 퀄리티까지는 아니었다. 훗날 일제가 조선 침략을 위해 더 발달된 기술로 오랫동안 한반도를 자체 측정한 자료는 대동여지도보다 훨씬 더 정확 정밀했다. 그렇게 한반도 지형을 다 꿰뚫고 있으니 청일 전쟁도 이기고 경부선· 경의선 같은 장거리 간선 철도도 뚝딱 놓을 수 있었다.

요컨대 대동여지도를 조선이 몰라보고 일제가 뒤늦게 인정한 게 아니다. 조선도 대동여지도를 인정했고, 일본의 후대 측량은 더 뛰어났을 뿐이다.
무슨 고조선이나 삼국/고려 시대 같은 먼 옛날도 아닌데, 비교적 가까운 조선 시대 역사도 이런 식으로 서술이 뒤바뀐 게 김 정호 얘기 말고 더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조선이 "십만 장병 양성설"을 씹고 당파 싸움만 일삼다가 임진왜란 때 허를 찔리고 쳐발렸다고들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도 나름 왜의 침략을 인지하고 대비했으며, 십만 장병 양성설은 출처와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반론이 나와 있다.

한편으로 1920년대 독립군의 청산리 대첩은 전과가 교차검증 가능 수준으로 확인되는 게 전혀 없다 보니.. 대첩이 아니라 그냥 '국지적 전투 승리' 수준으로 수정되었다.
우리한테 유리한 내용이건 불리한 내용이건 역사라는 건 절대적으로 팩트부터 추구해야 할 것이다. 성경도 내용이 인간에게 듣기 편한 것이건 아니건 일단 문자적인 의미부터 파악한 뒤에 적용을 더 넓게 비유적으로 하듯이 말이다.

몇 년 전에 "고산자, 대동여지도"라고 포스터의 풍경 사진만 멋진 영화가 나온 바 있다. 한물 간 통상적인 옥사설을 그대로 채택하는 병크는 다행히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엄연히 국가의 공인과 지지와 지원이 있었던 지도 제작 프로젝트를 김 정호 개인의 과업으로 왜곡한 건 여전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비극을 만들기 위해 다른 명분인 천주교를 끌어들였다.. =_=;;; 그리고 석방 조건이 니가 만든 지도를 국가에다 헌납하는 것이다. 지도를 만든 것 자체를 죄로 만드는 것만 피하고, 다른 황당한 왜곡과 각색을 집어넣어서 옥사설을 유지시킬 생각은 어째 했는지, 정말 기가 막혔다. 날짜가 얼추 비슷하다고 저 사람을 아무 접점이 없는 천주교인으로 만들다니.. ㅡ,.ㅡ;; ActiveX를 없앤답시고 아예 바이너리 설치 프로그램을 만든다거나(exe냐 ocx dll이냐의 차이뿐;;), 자전차왕 엄 복동에다가 무장 항일 투쟁을 억지로 연결시킨 것과 비슷한 짓이다.

2. 용

심 형래는 영구와 땡칠이 말고 우뢰메 시리즈에서도 주연으로 출연하여 TV 코미디언뿐만 아니라 아동 영화 배우로 크게 성공하고 억만장자가 됐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어설프게 메가폰 잡으면서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몰락했으며, 단순히 돈만 날린 게 아니라 경영자로서 부도덕한 인간성 논란까지 잔뜩 일으켰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그나마 다시 방송에나 알음알음 출연하면서 왕년의 코미디언 행세를 다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 사람은 "용가리", "D-war"처럼.. 어째 괴수물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용 덕후였다. 아동 영화 배우 출신이어서 그런지.. 공룡처럼 크고 아름답고, 힘세고 강한 걸 좋아하는 어린애들 취향을 늘 의식하며 살았던 듯하다.

사실, 그의 지론은 설득력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 이전 세상에서 1억 년이 넘는 중생대라는 기간 동안 공룡을 잔뜩 만들어서 굴리고, 흔적을 화석으로 미리 남겨 놓으신 가장 큰 이유는..
후대에 등장할 인간들의 "동심 형성"을 위해서임이 틀림없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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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눈에는 밤 하늘의 픽셀 하나로밖에 안 보일 별들을 위해서 수백~수만~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 태양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운 핵융합 가스 덩어리도 셀 수 없이 많이 박아 놓았거늘.. 하물며 공룡쯤이야 논리적으로 충분히 납득 가능한 추론이다.

내 이름에도 '용'자가 있기도 하고, 성경에도 '용'이 나온다. 호기심에 D-war 주요 장면을 보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동양에서의 용과 서양에서의 용은 심상이 서로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성 castle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긴 성벽 vs 그냥 저택) 달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듯이 말이다(긍정적 vs lunatic한 광기 등 부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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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용은 날아다니고 입에서 불을 뿜을 수 있는 상상 속의 동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색깔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듯. 그러나 나머지 외형은 동양과 서양이 서로 다르다.

동양의 용은 뱀/도마뱀처럼 길쭉하고 얼굴에 긴 수염이 반드시 있으며 날개가 없이 꾸불텅꾸불텅 비행한다.
서양의 용은 날개가 반드시 있으며 몸이 동양 버전만치 길쭉하지 않아서 뱀 같다는 느낌은 훨씬 덜하다. 애초에 동양처럼 이무기가 용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여의주 물고 비행한다는 설정 자체가 전혀 없다. 지질 시대 생물인 공룡에 더 직관적으로 대응한다.

동양의 용은 영험하고 신성한 좋은 동물, 긍정적인 동물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 개룡남"이라는 속담과 단어가 있을 정도로 사람도 용처럼 되고 싶어할 정도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용은 그냥 처치해야 할 악당 몬스터 중 하나일 뿐이며, 개천에서 용 났다가는 큰일난다. 용처럼 된 사람이 아니라 용을 때려잡은 사람이 영웅이 된다.
영어에서 잠자리를 용파리라고 부르고, 화승총 쏘는 기병을 '드라군'이라고 부른 건 용을 전혀 신성시하지 않는 문화권에 있기 때문에 그랬다.

성경에 나오는 용도 응당 동양이 아니라 서양의 용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될 것이다. 계시록에서 용이 워낙 부정적으로 나쁘게 나오니(계 12:9, 20:2) 한때는 본인도 내 이름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낄 정도였다. 뭐 그렇게까지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용에 대한 인식이 동양과 서양이 어쩌다가 서로 달라졌는지 답을 구하고 싶기는 하다.

D-war는 나름 미국에 진출해서 그 바닥에서 서양 드래곤이 아닌 동양 용을 나쁘지 않은 CG로 그려서 널리 알렸다는 최소한의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느라 돈을 얼마나 꼬라박고 손해를 입었는지는 이 자리에서 굳이 따지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3. 연기자 출신의 영화 감독

D-war는 희대의 망작 급으로 쫄딱 망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어마어마하게 든 제작비의 절반 남짓밖에 못 벌면서 심 형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21세기 들어서 우리나라에 괴수물 자체가 "괴물"(2006) 말고는 별 재미를 못 봤으며, 얘도 괴수 자체의 묘사가 우수해서 흥행한 건 아니다. "7광구"는 IMAX 형태로 만들어지고도 쫄딱 망했고..

심 형래도 그렇고 서 세원도 그렇고.. 방송인· 연기자로 잘 나가다가 영화 만들고서 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방송인· 연기자들이 그 바닥에서 짬이 차고 나면.. 맨날 남이 짜 준 각본대로만 연기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직접 감독하고 연출해서 만들고 싶어질 것이다. 그 심정은 본인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은 늙어서까지 남 밑에서 고용되어 특히 현장에서 발로 뛰며 일하는 걸 꺼리는 정서가 강하다. 그래서 자본만 있다면 가능한 한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한다.
굳이 그 정도의 야망까지 있지는 않더라도, 중· 장년 나이에 명퇴 당해서 퇴직금을 밑천으로 강제로 창업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업종을 바꿀 거면 새 업종에 대해서 기본기를 닦고 충분히 공부를 해야 된다. 성악만 몇십 년 한 사람이 갑자기 작사· 작곡을 하겠다고 하면 제대로 된 노래가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또한, 영화를 만드는 건 일종의 사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별히 순수 예술만 추구하는 독립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 남의 투자금까지 끌어들여서 밑천의 몇 배를 뽑을 상업 영화를 만들려 한다면... 자기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면에 대해 남들이 다 똑같이 자기처럼 생각할 거라고 추측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온갖 역대급 망작 영화들은.. 감독이 그런 안목 없이 무식한 신념을 고집스레 밀어붙인 덕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5/15 08:39 2019/05/1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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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항거 외

1. 영화

올해는 3· 1 운동 발발 100주년인 해답게 이 타이밍에 맞춰 유 관순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적절하게 개봉했다. 말모이에 이어 또 일제 시대 배경 영화이긴 하다만, 이것도 명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본인은 관람을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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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안 그래도 3· 1 운동 자체가 아니라 유 관순의 투옥 이후 시점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실제로 구경하고 나면 영화의 공간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점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그러니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분은 사전에 저기부터 가 보시기 바란다.

본인은 9년 전, 이 블로그가 처음 생겼던 2010년 초에 가 봤다. 일반 감방뿐만 아니라 유 관순이 말년에 실제로 격리 수용됐던 지하 독방까지 직접 볼 수 있다.

  • 유 관순은 서대문(경성) 형무소에서 옥사
  • 강 우규 의사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 (유 관순이 투옥된 시기에 서울 역 광장에서 사이토 총독의 암살을 시도했던 노인)
  • 훗날 조선어 학회 사건 연루자 두 분은 함흥 형무소에서 옥사
  • 주 기철 목사는 평양 형무소에서 옥사

지역이 이렇게 대응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흔치 않은 흑백 영화라는 것도 미리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킬 빌처럼 일부 주요 장면만 흑백인 것도 아니다(녹엽정 전투..).
현실의 형무소 장면은 죄다 흑백이고, 일부 과거 회상 장면이 컬러이다. 보통은 그 반대인 것 같은데 이례적이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항일 운동을 소재로 한 "자전차왕 엄 복동"도 개봉했다.
하지만 스포츠로 한국이 일본을 이긴 얘기를 극화하고 싶으면 차라리 손 기정 내지 홍 덕영 골키퍼 (해방 이후 월드컵 예선 한일전!)같은 사람이나 재조명할 것이지, 참신한 소재를 찾는답시고 자전거 도둑질도 전문이었던 사람을 소재로 삼은 게 논란이 됐다. 그 사람이 하다못해 친일파· 일본놈들만 상대로 의적(?)질을 한 것도 아니다.

소재부터가 삐걱거리는데 영화 자체도 그리 잘 만든 게 아니었고, 더 고퀄인 "항거"에게 팀킬 당하니 엄 복동 얘기는 예전의 "대장 김 창수"의 말로를 가면서 대차게 망했다. 뭐, 자전거 도벽은 아예 친일 변절이나 강도살인보다는 죄질이 상대적으로 가볍긴 하다만, 저 양반이 훔친 액수도 단순 생계형으로 실드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2. 3· 1 운동

그럼, 영화를 벗어나 3· 1운동 자체에 대해서도 얘기를 좀 해 보자.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솔직히 그까짓 만세 부른다고 해서 일제가 "아 그러셨어요~? ^^"물러가고 독립이 찾아올 리는 만무하다. 더구나 3· 1 운동은 주요 배경, 명분, 동기에 핀트가 근본적으로 안 맞는 게 있었다.

(1) 1910년대 일제 무단 통치에 대한 반감과 민생고(흉년, 물가 상승)는 그렇다 치지만 (2) 고종 독살 의혹은.. 글쎄, 고종이 무슨 세종대왕 급으로 추모 받을 성군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3) 민족 자결주의는 1차 대전 승전국인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었다.

유 관순도 그 기백이 정말 대단하긴 하지만, 너무 무모하게 매를 벌지 말고, 1년 반 정도만 빵에서 살다가 나와서 공부 더 하고 더 오래 살았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만세 시위 때 자기 부모를 왜놈들한테 잃고 완전히 꼭지가 돌아 버렸을 테니, 그 뒤로 왜놈을 가족과 민족의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저놈들한테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고집 부린 그 악바리와 깡과 근성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영화에서 유 관순의 감방 동료로 나오는 권 애라와 김 향화(배우 이름이 아닌 배역 이름)는 실존 인물이다. 특히 김 향화는 수원에서 활동한 기생이다. 이 시절에 기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야시꾸리한 직업 종사자가 아니라, 요즘으로 치면 스튜어디스 급은 되는.. 단순 서비스 접대 이상으로 지와 미와 예능을 갖춘 사람이었다.

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선에서는 미국이 일본놈들한테 학을 떼면서 뭐 저런 상또라이들이 있나(반자이 어택, 카미카제..) 경악했었다. 하지만 더 옛날에는 일본도 조센징들을 보곤 뭐 저렇게 지독하게 말을 안 듣는 독종 또라이들이 있나 멘탈 대미지(반자이 트라우마..)를 입고 충격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1920년대에는 문화 통치 유화책이 나오게 되었다.

흔히 호남 지역을 비하하면서 저기가 3· 1 운동 참가자 내지 투옥자가 제일 적었다는 통계를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거기는 3· 1 운동 이전에 1890년대의 동학 운동과 1900년대의 의병 때문에 항일 인사들이 몽땅 토벌되고 씨가 마른 상태이기도 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통계 자체에 대한 조작과 왜곡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았을 때 말이다.

3.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이 영화와 배경 내용에 대해서 말할 거리는 이 외에도 더 있지만, 일단 기독교 신앙이 의외로 꽤 자주 언급되는 게 인상적이고 좋았다. 유 관순은 실제로 교인이기도 했으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시험을 면하게는 하지 않아도 이길 힘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음", "예수님은 바보여서 저렇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줄 아냐" 무려 이 정도 분량이 대사에 포함돼 있다.

신앙 쪽으로 왜곡 없는 중립· 긍정적인 묘사 덕분에 본인은 처음엔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슬슬 올라갔다. 그러나 결말부를 보고는 기분이 완전히 잡쳐 버렸다.
정작 유 관순이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은 너무 얼렁뚱땅 대충 자막으로 때워 버리고는, 그 뒤에 어설프게 또 이상한 친일파 드립과 반일 프레임 엮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군.. ㅉㅉ" 싶었다.

정 춘영인지 누군지 출신과 생몰 시기도 모르는 웬 듣보잡 조선인 헌병이 있어서 유 관순을 내내 괴롭혔다고 한다.
이놈은 친일 부역 행적이 탄로나서 해방 후 반민특위에 의해 기소되었으나, 그 이름도 찬란한 모 할배의 특별 배려(!)로 사면되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걸 말이라고 자막을 떡 걸어 놨으니 나도 꼭지가 돌아 버리겠다. 하지만 실상은 유 관순이 교인이었던 것만큼이나 할배도 교파까지 같은(감리교) 교인이었으며, 유 관순이 독립 운동가인 것만큼이나 반민특위를 불가피하게 해체한 배후 인물(애산 이 인)도 똑같이 항일 독립 운동가였다.

어디 '정춘영 유관순 고문'이라고 검색을 해 보아라. 정확한 기록 같은 건 없고, 같이 걸려 나오는 건 유 관순이 무슨 미꾸라지 고문을 당하고 코가 잘리고 머리 가죽이 벗겨졌다는 얘기, 아니 도시전설 괴담밖에 없다.
그렇게도 친일 부역자 조선인 헌병을 개새끼로 만들고 싶으면 영화에다가도 미꾸라지 고문 씬을 넣지 그랬냐? 일본 제국주의 악마들이 겨우 손톱 뽑기 내지 캐비닛 안에 선 채로 며칠 감금 정도만 했을 것 같은가?

그리고 크레딧 롤이 올라가는 동안이나 작품 결말부에서 주인공이 죽기 전에.. 그 이름도 유명한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출처불명의 비장한 유언도 좀 나왔어야지? 안 그런가?

삼일 운동 그 자체가 조국의 독립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이 항거는 외국에까지 소개되어서 조선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됐다는둥, 그 정신이 지금 우리나라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는둥, 유 관순 말고 다른 여학생· 기생의 의거도 많이 벌어졌다는둥.. 클로징 멘트로 다른 좋은 말을 얼마든지 골라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마무리를 의도적으로 저 따구로 지은 저의가 뭐냐!? 매우 유감스럽고 씁쓸했다.

4. 3· 1 운동 때 투옥된 뒤에도 천수를 누린 다른 여성

옛날에 우리나라엔 '추계 최 은희(1904-1984)'라고 무려 1920년대에 조선일보에 입사해서 여성으로서는 거의 국내 최초로 기자라는 직업에 종사한 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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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유 관순보다 약간 어릴 뿐 거의 같은 연배이다. 3· 1 운동에 가담하다가 붙잡혀서 세 주 남짓 옥고를 치르면서 험한 꼴을 봤지만, 그 뒤엔 풀려나서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기자도 됐다. 덕분에 방송을 타고 비행기도 타 보는 등, 일제 시대 조선 여자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진귀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참고로 3· 1 운동 당시의 소속이 유 관순은 이화학당, 저분은 경성여고보)

이분의 호인 '추계'는 추계 예술 대학교의 설립자하고는 관계 없다. 그 추계는 황 신덕(1898-1983)이라는 다른 사람의 아호인데, 저분 역시 최 은희와 동시대를 살았던 신여성이며, 3· 1 운동에 가담했고 기자 커리어까지 있는 것이 서로 굉장히 비슷하긴 하다. 아마 서로 아는 사이였지 않을까?

호 다음으로 '최 은희'라는 이름은 국내에서는 영화 배우의 이름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두 단어를 합친 '추계 최 은희'라는 사람은 인지도가 낮으며, 언론 쪽 종사자가 아니면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언론인 출신 최 은희가 영화 배우 최 은희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인물이다. 추계 최 은희는 대학을 설립한 게 아니라 자기 이름을 딴 '최은희 여기자상'이라는 것을 제정했다.

저분은 결혼 후에는 기자 커리어가 중단되었다. 허나, 1남 2녀를 낳아서 세 명 모두 박사까지 공부 시키고 유학도 보내고 전부 대학 교수로 키웠다.;; 그 중 막내딸은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한 이 혜순으로, 2000년대 중반에 정년 퇴임했다.

본인은 먼 옛날에 "유쾌한 구두쇠들"(1994)이라는 책을 통해 저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공 병우 박사, 남 기심 교수, 이 혜순 교수(두 교수 다 국문과이구나.. 세부 전공은 다르지만) 등 17명의 유명인사가 공동 집필한 책인데, 다들 비범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도 엄청 많이 번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일상생활은 서민들 이상으로 정말 둘도 없이 검소하게 효율적으로 하면서, 옳은 일 큰 일에 아낌없이 돈을 쾌척한 얘기들이 실려 있다. 지금은 시대에 맞게 저 책 내용이 웹툰으로 각색되어서 연재되면 어떨까 싶다.
다만, 저자 중에 지금은 완전히 몰락한 방송인 서 세원 씨까지 포함돼 있는 게 참 묘하다.

이 혜순 교수는 저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게 지나고 나이 70을 바라보는 명예교수가 된 뒤에도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변함없이 자기 어머니라고 회고했다. (☞ 관련 링크)
뭐, 인생 한번 짧고 굵게 살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유 관순 같은 인물이 형무소를 살아서 출소해서 공부 더 하고 후세도 남겼으면 인생이 최 은희와 비슷해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11 08:36 2019/03/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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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

1. 말모이

독자 여러분은 '말모이'라는 단어를 혹시 들어 보셨는가?
이건 word + collection을 직역한 합성어로, 구한말-일제 시대 급의 과거에 일부 국어학자들이 사전(dictionary)을 순우리말로 옮겨서 표현했던 단어이다.

코퍼스를 뜻하는 '말뭉치'도 어쩌면 ‘말모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연세대인지 고려대인지 어디 교수가 처음으로 만들어 쓰기 시작한 용어이다. 그 최초 제안자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건 물론 현대에 만들어졌으며 오늘날까지도 업계에서 활발히 쓰이는 용어이다.

다만, 명사로만 이뤄진 합성어인 말뭉치와 달리, 말모이에서 '모이'는 '먹다'(eat)로부터 '먹이'(food)를 만들듯이 '모으다'의 어간에다가 명사화 접미사 '-이'를 붙인 파생어이다.
결합 과정에서 모음 음운이 하나 탈락하긴 했지만(모으다 ≠ 모다) 그건 별로 어색하지 않으며, 저건 ‘해돋이’, ‘한살이’만큼이나 아무 문제 없는 조어이다. 하지만 어감이 이상하다고 까는 사람도 있다. horse + food (for birds to peck up)가 떠오른다고 말이다. =_=;;

뭐, 그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동음이의어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옛날에는 ‘시발’이라는 자동차도 있었다. 어감이라는 걸 판단하는 기준이 옛날과 지금이 서로 같지 않다는 걸 감안해야 할 것이다.

2. 동명의 최근 영화

세월이 흘러서 조선어 학회가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고 ‘말모이’라는 단어가 영화 제목이 되는 날이 왔다. 그놈의 좌편향 반일 프레임이 지긋지긋하다고 싫어하는 분들의 심정을 본인 역시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나, 언어와 신앙 분야(과거에 일사각오..)는 내가 특별 관리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요런 영화는 찾아서.. ‘혼영’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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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얘는 여느 전쟁 영화 같은 본격적인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일제 말기에 저런 단체가 있어서 국어사전을 만들려고 했고, 그러다가 왜놈들에게 잡혀서 회원들이 고초를 겪었다. 원고를 빼앗기기까지 했지만 다행히 해방 후에 서울역 창고에서 되찾았고, 사전은 마침내 성공적으로 출간돼 나왔다.”
라는 기본 배경만이 팩트이다. 아, 그 당시에 저기서 ‘한글’이라는 제목의 기관지를 발간했다는 것도 추가적인 팩트이고..

허나, 그것 이후로 세부적인 주인공, 조선어 학회 구성원, 중간에 일어난 사건 등등등은 순도 99%에 가까운 허구 창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도록 하자. 세상에, 조선어 학회의 대표가 친일파로 변절한 중학교 이사장의 아들 부잣집 도련님이라니, 완전 충격이다. ㅡ,.ㅡ;; ㅠ_ㅠ

더구나 영화에는 어설픈 첩보전까지 나온다. 조선어 학회가 일제의 어용 학술단체로 변절한 듯이 간판을 바꿔 달고, 조선총독부가 허가해 준 합법 집회에서는 대표가 일제 부역 독려 연설까지 하며 페이크를 친다. 그 뒤 그들은 야밤에 극장에서 진짜 동지들을 몰래 모아서 지방 방언을 수집한다.;;;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런 건 그냥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려고 일부러 만든 설정이다. 이 영화의 등장 인물 중에는 조선어 학회 대표는 물론이고 일반 회원 중에서도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딴 인물이 없다. 그러니 <말모이>는 어찌 보면 과거의 <밀정>이나 <암살> 같은 부류보다도 현실성이 더 떨어진다.

3. 실제 조선어 학회의 대표

그 당시에 조선어 학회 ‘대표’의 직함명은 ‘간사장(간사+장)’이었다. 193, 40년대에 조선어 학회의 간사장을 역임한 핵심 간부로는 이 극로, 신 명균 같은 사람이 있다.
이 극로는 이 미륵(압록강은 흐른다)처럼 그 시절에 극소수이던 독일 유학 박사이고, 독일의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걸출한 학자로서 조선어 학회에서는 최 현배보다도 중요도가 더 높은 인물이었다.

이 사람이 남긴 매우 긍정적인 행적이 하나 전해진다. 근무 중에 눈병을 앓아서 근처 병원을 찾아갔는데(1938년경) 거기가 바로 개업한 지 얼마 안 됐던 공안과였다. 그는 거기서 자기를 치료해 준 원장 선생에게 대뜸 한글뽕(?)을 주입시켰다. 그리고 그 의사양반은 거기서 큰 감화를 받은 나머지, 훗날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발명하게 되었다!
뭐, 말모이 같은 영화에는 들어갈 만한 문맥이 없었겠지만, 이런 일화가 영화 같은 매체에서 소개될 기회가 없는 건 아쉬운 점이다.

다만, 이 극로는 해방 후에는 월북을 하는 바람에 남한에서 존재감이 묻혀 버렸다. (사후에 평양 애국렬사릉에 안장됨) 오죽했으면 해방 후에 조선어 학회가 한글 학회로 이름을 바꾼 이유(1949) 중 하나도.. 대표의 월북으로 인한 빨갱이 누명을 조금이라도 벗기 위해서였다.

다음으로 신 명균은 나도 대학 시절 내내 전혀 몰랐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인물인데.. 1941년쯤에 일제의 한국어 탄압과 민족 말살 정책에 항의하여 ‘자결’을 해 버렸다. 그러니, 조선어 학회 사건에 연루되지도 않았고 투옥 기록도 없고.. 존재도 한참 뒤에야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이런 분들과 달리, 해방 이후 남한에서 그럭저럭 오래 살았던 최 현배 선생은 조선어 학회 간사이긴 했지만 간사장까지 맡은 적은 없었다.

4. 조선어 학회 사건이 발생한 진짜 이유

사실, 조선어 학회는 조선어 국어사전 편찬과 출간 자체는 조선총독부로부터 1940년에 허가를 받았다. 총칼 무장 독립 운동이 아닌 학술 활동일 뿐인데, 일제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탄압할 정도로 야박하지는 않았다.
뭐 그래도, 국어사전의 편찬에 관심을 가질 정도의 인물이라면 항일 성향도 강하다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으니, 놈들이 예의주시하고 감시를 하긴 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선어 학회가 1942년에 뒤늦게 조선 시대 사화를 당하듯이 화를 입은 이유는.. 잘 알다시피 여학생 일기장 사건 때문이다. “국어(=일본어)를 사용하는 학생을 선생이 혼내 줬다” → 어라? 국가 정책을 무시하고 왜 일본어 쓰는 애를 혼내지? → 그 교사를 뒷조사 해 보니 전교조.. 아니 조선어 학회 소속 → 이거 알고 보니 골수 불령선인 악질 반동이구만? → 안 그래도 요주의 인물이었는데 그럼 그렇지, 요놈 잘 걸렸다.

일제의 고등 경찰인지 특별 고등 경찰인지 거기서 실적 껀수 하나 올리려고 요렇게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학자들을 잡아들이고 투옥시킨 것이다. 그리고 만들던 사전 원고도 빼앗겼다. 다만, 이건 피의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참고하려고 증거물 차원에서 압수한 것이지, 그게 무슨 일제의 입장에서 나쁜.. 이를테면 일본의 국가기밀 누설, 조선총독부 폭파 음모, 총독 내지 덴노 암살 음모, 본토 테러 지령 같은 것이어서 압수당한 건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 조선어의 사용이 금지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선어 사전 원고를 작성한 것 자체까지 법적으로 죄는 아니었다. 애초에 조선어 학회도 무슨 광복군 의열단 같은 단체가 아니니까 말이다. 굳이 그 사전 편찬자들을 해코지 하려면 명목상으로 다른 정치적이고 더 큰 죄를 뒤집어씌워야 했다.

애매한 학자들을 골수 반동분자로 조작하기 위해 잔인한 고문에 의한 자백 강요가 되풀이되었으며, 거기에다 춥고 비위생적인 형무소 수감이 장기화되면서 이 윤재, 한 징 선생 두 분이 결국 옥사했다.
그때 그 일기를 썼던 여학생은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를 졸업했는데, 자기 일기로 인해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을 뒤늦게 전해 듣고는 큰 충격을 받고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을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일생을 보냈다.

그러다가 저분은 1982년 여름, 일본의 역사 왜곡 때문에 전국적인 반일 정서가 강해졌던 시절에 환갑을 앞둔 나이가 돼서야 “내가 그때의 영생여고보 학생 박 영희였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중앙일보 인터뷰를 했다. “그때 일기장을 빼앗기고 은사가 지금 어디 있는지 대라는 협박과 함께 온갖 불법 감금과 폭행을 당했던 피해자가 바로 본인이고 아직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자기들이 저지른 죄악을 오리발 내밀고 발뺌하고 부정한다니, 왜놈들은 정말 인간도 아닙니다!”라고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인터뷰 내용은 한국일보에도 실렸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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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쯤 전에 옛날엔 “내가 소설과 영화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이고 최 용신의 옛 약혼자인 김 학준이오!” 커밍아웃이 나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쯤 뒤 1990년대 초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으니.. 이런 식으로 옛날 역사의 증인들이 하나 둘 나타난 듯하다.

그러니 <말모이> 같은 소재의 영화가 좀 더 진지하게 역사 고증과 사실성을 추구한다면, 저런 사람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액자식 구성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그 대신, 그랬으면 또 월북한 빨갱이 학자를 미화한다는 색깔 논란에 휩싸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극로는 깨끗이 잊고 최 현배를 대신 부각시키거나..

5. 그들은 왜 그렇게 사전 편찬에 목숨을 걸었는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한국어에 이런 단어가 있었나 싶은 듣보잡 어휘가 의외로 많이 잠들어 있다. 가령, 미혼 해녀를 '비바리'라고 하고, 돌싱 여성을 '되모시'라고 한다.
한자어 합성이긴 하지만, 1/n 더치페이를 나타내는 '각추렴'이라는 말도 있다.

호칭과 높임법이 너무 불편해서 영어로 대화하는 거, 정말 어휘가 없어서 외래어 쓰는 것을 뭐라할 수는 없다. 그런 걸 어설프게 순화어 만드는 건 별 영양가가 없는 짓이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당장 멀쩡하게 이미 있는 말부터 제대로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 쓰여서 사어가 됐다면 그걸 고유명사화해서 브랜드명으로 써먹는 방법도 있을 테고 말이다.

더구나 한국어는 체언보다 용언을, 형용사보다 부사를 훨씬 더 좋아하는 언어이지 않던가. 순우리말도 저런 지엽적인 명사보다는 동사 같은 용언을 더 많이 찾아서 살려 써야 된다.
본인의 오래된 생각이긴 하다만.. 영어로는 reliable이라고 한 단어로 간단하게 표현하는 걸 우리는 맨날 '믿을 만한, 신뢰할 수 있는'이라고 길게 풀어서 번역해야 한다면 몹시 불편하고 비경제적이다. 이런 예가 한두 개가 아니라 수백 수천 개로 늘어난다면 한국어의 사고 체계는 영어의 사고 체계와 비교했을 때 결코 편리하다고 볼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그걸 '미덥다'라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믿음직하다'보다도 더 짧다. 한국어에 원래 그런 어휘가 있다는 증언을 바로 국어사전이 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faithful에는 '신실하다'뿐만 아니라 '미쁘다'도 들어가 있어야 한다. throw는 그냥 '던지다'이지만, hurl에는 '내박치다'라는 뜻풀이가 실려 있어야 한다.

영일 사전을 그대로 베끼기만 해서는 진짜 우리말다운 표현이 반영된 영한 사전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국어 사전과의 적절한 연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어 최초의 사전이라 일컬어지는 조선어 학회 큰사전의 존재 의의였다.

6. Aftermath

이렇듯, 조선어 학회는 일제 시대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내놓고 사전 편찬 작업을 했다. 영화에서는 맞춤법이라기보다는 방언 수집· 분류와 표준어 제정처럼 묘사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사전을 편찬하려면 실제로 저런 식으로 온갖 어휘들을 수집하기도 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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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에는 이 학회 출신의 학자들이 미군정 하에서 거의 즉시 한국어 교과서를 편찬하고 사전을 실제로 출간하는 과업까지 이뤘다.
한글 학회 큰사전 이후로 나중에는 신 기철· 신 용철이 편찬한 '새우리말 큰사전'도 민간 국어사전의 양대 산맥을 구성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부터는 국립 국어원의 '표준 국어 대사전'이 나오면서 민간에서 국어사전을 또 편찬할 일은 사실상 없어졌다.

그런데 이때는 대세가 이미 인터넷으로 기울고 있었던지라, 국가 기관에서 편찬한 국어사전조차도 초판 종이책이 많이 팔리지 않아 출판사가 적자를 봤다고 한다. 그 뒤로 사전이 수차례 개정되고 증보되었지만 종이책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참 격세지감이다.

이상이다.
영화가 배경 말고 이야기의 주 뼈대가 거의 다 허구인 것은 아쉬운 점이다. 햄· 소시지 같은 가공육인 것을 처음부터 감안하고 먹긴 했지만, 성분 분포를 보니 싸구려 잡육과 밀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그래도 맨날 뻔한 무장 항일 투쟁 말고 조선어 학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나온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아저씨>의 오 명규 사장과 <범죄도시>의 장 첸을 한데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국내에 있는 영화 소품용 1930년대 올드카 대여 업체들은 다 좌핸들 차량만 보유 중인가 보다. 그 시절 배경 드라마나 영화들을 봐도 다 그런 것 같다. 진짜 일제 시대에는 일본을 따라 다 좌측통행 우핸들이었을 텐데 말이다.

* 이 글은 한글 학회 홈페이지에 공식 기재된 학회 연혁을 상당수 참고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 기억에만 의지해서 쓴 게 아니다.
아울러, 관심 있으신 분은 조선어 학회 사건의 전말에 대해 잘 소개해 놓은 다음 사이트의 자료도 추가로 참고하시기 바란다. #1 / #2

Posted by 사무엘

2019/01/19 08:33 2019/01/1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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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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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실제 모델 인물인 오 길남은 월북한 뒤 재독 한인을 포섭하는 공작원 명목으로 독일로 파견됐는데.. 북한 정권의 실체를 깨달은 뒤엔 거기서 자수하고 남한으로 귀순했다.

어색한 억지 감동 유도라든가, 좀 식상하고 허무한 듯한 결말이 아쉬운 점으로 남지만, 중간 전개는 역시 찢어 죽일 종북좌빨들이 충분히 불편해하고 싫어할 만한 팩트 위주이다.
그러니 북괴의 정체와 흉악한 수작이 까발려지는 걸 원치 않는 놈들은 블랙리스트니 화이트리스트니 나발이니 딴 거 갖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영화계 전체 그림을 객관적으로 보자면 지금 솔직히 우보다는 좌편향이 훨씬 더 심하지 않은가?

북괴가 역사적으로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악 중 하나는.. 단순히 사람을 죽인 걸 넘어서 가족을 저렇게 하루아침에 산 채로 찢어 놓은 것이다.
6·25 이산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먼 옛날엔 여객기 납치로도 단란하던 가정을 많이 파탄냈다.

또한, 저런 젊은 학자들을 속여서 북한으로 보내서 그 가족들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 악마가 지금 청와대 수장에게는 민족을 사랑하는 평화통일 운동가로 보이는가 보다. 정말 같은 부류의 악마이며, 쳐죽일 반민족 반역자임이 틀림없다. 한 번 속는 건 실수이지만 두 번 속는 건 공범이다.
이런 영화가 많이 알려지고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2.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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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사각오, God’s not dead, 신이 보낸 사람 등 국내외의 다양한 장르의 기독교 영화를 봤지만.. 얘가 성경 고증과 작품성, 비주얼 등을 고려했을 때 제일 뛰어난 작품인 것 같다. 정말 잘 보고 왔다.
북미에서는 이스터(..)에 맞춰서 지난 봄에 개봉했지만, 국내에서는 종교 개혁 기념일에 맞춰서 10월 말에 개봉했다.

14년 전의 Passion of Christ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음침 암울하고 오로지 예수님이 잔혹하게 채찍질 당하는 장면 말고는 남는 게 별로 없어서 인상이 안 좋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 특유의 교묘한 심상 왜곡이랄까, 그런 게 별로 없었다. 내가 느끼기엔 말이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 사울의 회심 등 주요 장면들 다 나온다. 대사 중에 성경 말씀 인용이 굉장히 자주 나와서 아주 마음에 든다.
사울이 회심 후에 무슨 물고문 당하듯이 물에 얼굴까지 첨벙 잠겼다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게 침례를 의도한 장면이었다면, 난 평가 점수를 더욱 올려 줄 생각이다. 물 뿌리는 세례는 고증 오류이다.

그리고 촛불과 온갖 신들 형상(마리아 형상도 포함) 앞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긍정적인 심상으로 그려지지만 여기서는 로마인들의 잡신이라는 부정적인 심상으로 그려진다. 이것도 구도를 아주 잘 잡았다.

그러면서 허구 각색도 어색하지 않게 가미된다. 사랑하는 교회 동지가 어이없게 억울하게 살해당하자, 남자 청년들 일부가 극도로 흥분하고 분노해서 우리도 칼 들고 쳐들어가서 로마를 상대로 보복하자고 날뛴다.
바울은 회심 전에 자기가 죽이면서 눈 마주쳤던 크리스천들이 때때로 꿈에 나와서 트라우마를 안긴다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호소하기도 한다.

누가는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교도소장인 로마 군인의 딸의 병을 극적으로 고쳐 준다. 무슨 오글거리는 기도 한 방으로 신앙 치료를 성공한 게 아니라, 자기 의술로 해낸다. 바울 역시 “자기는 소문과는 달리 아무 능력 없으며, 자기가 약함을 보일수록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셨다”라고 증언한다. 요런 식의 개연성 있고 자연스러운 허구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 횃불 될 사람은 되고, 사자밥이 될 사람은 그렇게 되면서 순교 행렬이 이어진다. 네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바울은 딤후 4:6-8의 유언을 남긴 뒤 예정대로 참수당한다. 그래도 교도소장은 바울과 누가의 인품에 충분히 감화됐기 때문에, 마치 옛날에 안 중근 의사를 존경하게 된 뤼순 감옥 간수처럼..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바울을 "잘 가시오" 이렇게 공손하게 댄디하게 대해 준다.

바울은 그나마 로마 시민인 덕분에 화형 같은 더 끔찍한 방법으로 죽지는 않고 저렇게 일반적인(?) 방법으로 처형된 거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바울과 네로는 모두 AD 60년대 중후반에 죽은 꽤 옛날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때는 로마 제국에 콜로세움 경기장이란 건 아직 없던 시절이었다. (약간 뒤인 AD 70년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부터 등장)

네로 시절에 크리스천들이 로마 대화재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박해받고 처형당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원형 경기장에 우루루 풀려나가서 사자밥이 되어 순교하는 것과 "네로 황제"하고는 엄밀히 말해서 시기적인 연결 고리가 없다.
그러니 영화의 묘사는 엄밀히 말하면 고증 오류이다. 하지만 뭐 심각한 오류는 아니다. 60년대건 70년대건 시기가 그렇게 심하게 차이가 나지는 않으며, 콜로세움 안이건 아니건 크리스천들이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 건 변함없으니 말이다.

신약 기독교라는 게 생겼던 당시에, 예수쟁이들은 불신자들이 보기에 도저히.. 뭐라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고 정체를 알 수 없고,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도대체 무슨 이익을 노리고 왜 저런 식으로 사는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이상한 집단이었다.
남들이 다같이 믿는 신을 안 믿고, 황제를 반신반인으로 숭배하지 않으며, '예수'라는 웬 듣보잡 목수 출신 유대인이 죽었다가 뿅 부활했다는 황당한 악성 루머를 퍼뜨린다는 점에서는 분명 미친놈 왕따 아싸 반동분자 그 자체였다.

그런데 대놓고 국가 권력에 반역하고 싸우려 드는 여느 독립투사나 정치범 사상범 같지는 않고, 이웃으로서 개인 단위로 만나 보면 행실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무슨 마술사 초능력자도 아닌데.. 자기들의 세속적인 통념과 계산으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 11:38이 말하는 것처럼 서로가 상대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자들은 지금처럼 아무나 “우리 교회로 오세요,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는 개뿔.. 언제 잡혀가서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 같은 처지였다.
모르는 사람이 교회 회원으로 가입하겠다고 하면 얘가 진짜 동지 형제인지, 아니면 우리를 밀고할 가짜 끄나풀 첩자인지 판별하는 게 급선무였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능력이 없으니.. 이럴 때 판별을 빨리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믿을 만한 이웃 교회 지도자의 ‘추천서, 보증서’였다. “우리가 보내는 이 형제는 스파이가 아니고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잘 대해 주세요~”
우리나라에서 옛날 건군 초기에 숙군 작업을 할 때도 “이 사람은 빨갱이가 아님을 내가 보증합니다”가 아주 유효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쪼록 이 영화를 보면 신약 교회가 이렇게 시작됐고 신약 성경의 대부분은 저런 여건 속에서 기록되고 필사됐다는 것을 얼추 실감할 수 있다. 복음은 뭔가 GPL 라이선스 오픈소스 같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종이와 펜이 귀하던 시절에 감옥에 갇힌 채로 찬송가를 부르려면 가사를 평소에 다 외운 상태여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클래식 교과서적인 명작 영화는 옛날에 벤허 같은 것 말고는 이제 자본주의 논리 앞에서 완전히 멸종하지 않았나 싶은데, 아직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긴 한다. 생각을 바꿔도 될 것 같다.
그리스도 안의 지체로서 바울은 꼭 볼 가치가 있음을 추천하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12/04 08:36 2018/12/0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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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수학에서의 패턴

1998년에 개봉한 <파이>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은 음식 파이가 아니라 원주율 파이를 가리킨다. 구체적인 내용은 본인도 기억이 안 난다만 배경은 아마 20세기 중반 정도의 가까운 과거이고, 수학 덕후 주인공과 유대교 랍비가 나오고 '쿵쿵따다 쿵쿵따다 쿵쿵따다 쿵따~' 이런 인상적인 BGM이 나오고, 이례적으로 흑백으로 만들어진 좀 마이너 매니악한 취향의 영화이다.

벤허처럼 1950년대에도 컬러로 만들어진 영화가 있는 반면, 1990년대에 일부러 흑백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소수나마 있다. 내가 아는 건 쉰들러 리스트와 저것밖에 없다.
뭐, 킬 빌은 녹엽정 격투 장면이 수위 조절(사지가 날아다니고 피가 철철 튀고..)을 위해서 일부 흑백으로 촬영됐다고는 하는데.. 그런 일부 장면 말고 작품 전체가 흑백인 것 말이다.

과거에 텔레비전의 화질이 디지털 HD로 한층 업그레이드 되자, 출연자들의 피부 표면이 예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분장· 화장을 맡은 방송 스탭들의 수고가 더 커졌다고 한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흑백으로 컬러로 바뀌었을 때에도 예전에 대충 하면 되던 각종 보정이나 특수효과들이 이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동안 난리가 났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없는 눈을 만들어서 눈 내리는 장면을 만들기가 흑백 시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도 그저 만만하지는 않다. 컬러 찍듯이 평범하게 세팅을 한 뒤에 영상에서 채색을 제거하고 명도만 남긴다고 해서, 보기 좋은 흑백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 물론 아니라고 한다. 흑백으로 찍었을 때 배경과 인물 분간이 잘 되게 별도의 방법론을 동원해야 한다.
얘기가 좀 옆길로 새었다만 아무튼.. 저 pi 영화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인공의 신념(가설)이 담긴 독백 대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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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학은 자연의 언어이다.
2. 우리 주변의 만물들은 수를 통해 표현되고 이해될 수 있다.
3. 그 수들을 그래프로 표현해 보면 패턴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자연에는 패턴이 어디에나 존재한다.


1번을 반영하여 <컨택트>(1997)라는 영화에서는 외계인이 무슨 심장 박동 같은 신호를 2 3 5 7 11... 소수 간격으로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수학은 지구인이나 외계인이나 다같이 공감할 자연의 언어이니까 말이다.
2번은.. 오늘날 디지털 컴퓨터에서 맨날 하는 짓이 바로 이것이다. 양자화, 전산화, DB화... 인간이 접하고 취급하는 사물의 모든 현상과 정보를 숫자로 표현했기 때문에 컴퓨터가 글과 그림, 소리를 출력할 수 있다.

그리고 3번과 그 이후는 정말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런 패턴을 발견해서 깔끔한 수식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세상 모든 수학자들의 로망인 건 사실이며, 영화에서는 이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그런데 패턴이라...;; 이 시점에서 본인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대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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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로그 2에 4를 푼다. 우선 2로그에서 앞에 있는 2를 뒤로 쭉 빼. 그리고 4 위에 살짝 올려. 왜? 패턴이니까. 수학은 논리가 아니고 뭐다?"


로그값 계산을 저렇게 거창하게.. 무슨 집 맞은편 편의점까지 모험을 떠나고, 동네 뒷산으로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듯이 하는 풀이는 처음 본다. ㅠㅠ

당연히,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전자의 영화에서 말하는 그 심오한 패턴이랑, 후자의 영화에서 말하는 그냥 시험 문제 풀이 테크닉에 가까운 패턴은.. 격이 완전히, 달라도 너무 다른 용어이다.
(뭐, 안 내상 씨도 혹시 진짜 현업 수학 교사를 불러다가 연기 시킨 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연기를 잘하긴 했다.;; ㄲㄲ)

말죽거리 잔혹사는 영어 명사의 종류 고추X집물뿐만 아니라 수학에서도 그 당시의 참 비효율적인 입시 위주 암기 위주 교육을 그럭저럭 풍자했다.
하지만 뭐든지 다 잘하는 천재 괴수들은 그런 교육 체제에서도 다 100점 받고 할 거 다 하긴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03 08:36 2018/11/0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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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텔레비전 수상기

자동차, 컴퓨터, 전화기만큼이나 텔레비전이 기술적으로 무섭게 발전한 것도 보면 굉장히 경이롭다.

  • 디지털: 노이즈라는 게 없어졌다는 게 솔직히 아직도 잘 안 믿긴다. 옛날 아날로그 특유의 무신호 치지직 화면(white noise)도 없어지고 화면조정용 색깔막대 영상도 볼 일이 없어졌다. 같은 전파를 주고받는 방법을 도대체 어떻게 바꿔서 이런 게 실현된 걸까? 디지털에서는 오류가 너무 심해서 화면이 아예 안 나오면 안 나왔지, 치직거리면서 나오지는 않는다.
  • 고화질: 두 말하면 잔소리. 화질이 정말 엄청나게 좋아졌다. 단, 디지털과 고화질이 동치 개념은 아니기 때문에 과거엔 아날로그 기반으로 HD 규격이 나온 게 있기도 하다.
  • 왕창 크고 평평하고 납작한 수상기: 과거의 브라운관 TV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브라운관은 화면 크기에 정비례해서 두께까지 왕창 두꺼워지기 때문에(공간 복잡도 O(n^3)!) 일정 수준 이상으로 대형화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리고 어차피 영상 신호의 화질도 요즘 같은 대화면을 받쳐줄 만치 좋지 않았다.

TV를 흔히 '바보 상자'라고 부르는데.. 요즘 텔레비전은 차라리 패널(panel)에 가깝지 이제 상자 모양이 아니다. 옛날에(2006년) 한국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서 텔레비전에 중독된 현대인을 풍자하는 black box라는 이름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오타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입상한 바 있다. 텔레비전 안에 온갖 희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 허나, 요즘 텔레비전의 모양으로는 그런 소재를 설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보 상자'라는 개념은 영어권에도 있어서 fool's tube라고 하는데.. 튜브 역시 브라운관의 잔재가 담긴 별명인 건 동일하다. 그래도 '유튜브'가 이 별명을 잘 활용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또한 요즘 텔레비전은 무슨 형광등 켜지듯이 켠 직후에 서서히 밝아지면서 화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밝기와 색감 등 잡다한 요소들을 조절하는 다이얼 같은 것도 다 사라졌으며, 정 조절이 필요하면 모니터 자체에 내장된 프로그램 UI를 통해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조절한다. 그래서 모니터에 다이얼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상하좌우 화살표와 Enter, ESC에 해당하는 key가 있으며, 화살표 key가 트랙패드 같은 걸로 대체된 물건도 있다.

한때 TV는 평범한 월급쟁이 가정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고가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잣집이나 공공장소에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시청해야 했다. 그리고 잠금 장치가 달린 TV 전용 케이스도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뭐 개인용 스마트폰으로 TV 방송을 시청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이다. 그러니 텔레비전 케이스도 '컴퓨터 책상'만큼이나 아련한 옛날 추억이 돼 간다. 하지만 지금 당연한 것이 생각보다 가까운 과거에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2. 대한뉴스

요 근래부터 옛날 대한뉴스 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라오고 있어서 재미있게 본다. 경부 고속도로 개통이나 국민 교육 헌장 선포 같은 유명한 사건도 있지만 본인의 주 관심 분야는 철도 개통 쪽이다. 화면 중앙에 태극 마크 워터마크가 엷게 첨가됐지만 전반적인 화질은 괜찮다.

대한뉴스는 무려 1953년부터 1994년 말까지 국립 영화 제작소에서 만들었던 '나라 안팎 사정 기록 영상'이다. 만드는 곳의 특성상 뭔가 국방일보스럽고 정책 및 프로파간다 홍보(긍정적인 것만)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잘 보존된 역사 기록이며 영상 실록 역할을 한다.
그 시절엔 이게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에 의무적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레퍼토리는 두 주 간격으로 교체되었다고. 국산 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강제로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 쿼터라든가.. 과거에 음반에 의무적으로 건전가요를 한 곡 넣어야 했던 것과 비슷한 관행이다.

하지만 대한뉴스가 그저 정권의 나팔수 이상으로 오늘날 귀중한 영상 자료인 이유는 이것 말고 딱히 대안이 없는 시기도 있기 때문이다.
1950~60년대에도 텔레비전 방송 자체는 물론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 중에 박통 말고 이 승만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온 걸 기억하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 본 분 계시는가? 없을 거다. 그 시절에 방송되었다 하더라도 지금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때는 TV를 갖고 있는 집이 극소수였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시청자 말고 방송국의 입장에서도 물자 사정이 열악했기 때문에 영상 기록을 지금처럼 몽땅 저장(아카이빙)할 여건이 못 됐다. 하물며 그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방송 장비나 저장 매체는 얼마나 비쌌겠는가? 게다가 외제 수입 일색이기까지 했지 않겠는가?

녹화라는 건 꼭 필요한 것만 아주 신중하게 골라서 해야 했으며, 또한 한 테이프를 계속해서 덮어써서 녹화하면서 우려먹어야 했다. 그러니 그 시절의 방송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 시절의 영상 기록은 외국인 선교사나 종군기자의 촬영분이 아니라면 그냥 닥치고 국가가 알아서 고이 보관해 놓은 대한뉴스로 가야 한다. "새로운 특급열차는 우리 이 대통령 각하께서 무궁화호라고 명명해 주셨는데.."(1960년 2월) 이렇게 전해지는 보도 자료는 출처가 무슨 KBS 같은 전파 타는 뉴스 방송이 아니라 대한뉴스라는 영화라는 것이다. 하긴, 저 때는 아직 "KBS"라는 이름의 방송사조차 존재하지 않았었다.

대한뉴스를 아무 거나 골라서 틀어 보면 건전가요나 행진곡 풍의 촌티 풀풀 나는 BGM에, 감정이라고는 싹 빠진 국어책 읽기 같은 건조한 남자 목소리가 참 인상적이다.
그리고 단순히 정책 홍보가 아니라 뭔가 초등학생 선생님이 애들 가르치는 듯한 설명충 스타일이다. "그럼 태백선 열차를 타고 우리나라 최고의 시멘트 생산지인 어디어디로 가 보시겠습니다." 같은 식. 무지한 백성들을 선진조국 창조 건설의 역군으로 계몽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_=;;

정말 격세지감 그 자체이다만, 196, 70년대에 농촌 깡촌 오지에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저런 거라도 필요했다. 옛날에는 깜깜한 방에서 무성 영화를 틀어 놓고 "우리나라 바깥에는 이런 곳도 있고 이런 일도 벌어지고 있답니다"라고 변사가 따로 설명해 주면 사람들이 입 헤 벌리고 구경했으며, 소파 방 정환은 영사기도 아니고 영사기 내지 프로젝터의 전신인 환등기만 갖고도 온갖 덕질을 했지 않던가. 게다가 국내에서 영화는 텔레비전보다 더 일찍부터 컬러로 바뀌기도 했다.

개나 소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 그게 순식간에 인터넷 상으로 퍼져나가고 1인 방송 미디어까지 등장한 오늘날의 잣대로 그 시절을 그저 꼬질꼬질하다고 판단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 당시의 최첨단을 달리던 영화· 방송의 분위기가 저렇게 꼬질꼬질할 정도였으면 오프라인 사회 분위기는 훨씬 더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이거 기억 나시지 않는가?

허나, 집집마다 전화와 신문, 올컬러 TV가 싸게 보급되고 지식과 소식의 소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한뉴스는 존재 의의와 가성비가 급격히 떨어졌다. TV 뉴스로 진작부터 접한 나라 안팎 소식을 한참 뒤에 극장에서 대한뉴스로 뒷북으로 접하는 지경이 됐다. 그러니 대한뉴스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진작부터 거론되었으며, 얘는 그래도 1994년 말까지 꿋꿋이 만들어지고 상영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건 어찌 보면 PC 통신이 인터넷에 밀려 사라진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시기를 따지자면 방위병이 폐지된 때와 동일하며, 수인선 협궤 철도가 없어지기 딱 1년 전의 일이다.

옛날에는 텔레비전은 방송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24시간 방송이 시작된 것 자체가 21세기부터..). 그리고 기술과 자재의 부족으로 인해 생방송이 많았고, 영화는 후시녹음이 많았다. 아니면 똑같이 후시녹음을 하더라도 후시녹음을 한 어설픈 티가 요즘 영상물보다 훨씬 더 났다. 배경은 너무 조용하고 배우 목소리는 울리고 입 모양 씽크가 안 맞는 등.

철도 분야의 대한뉴스를 몇 편 보니, 열차 달리는 장면에 같이 삽입된 열차 소리는 십중팔구 화면 속의 그 열차가 실제로 달리는 소리가 아니다. 화면엔 디젤 기관차 내지 지하철 전동차가 달리는데 소리는 증기 기관차 달리는 '쉭 씩'인 식이다. 이런 것도 당연히 화면 따로 소리 따로인 후시녹음이다.
베테랑 기관사가 역을 저속으로 통과하면서 통표를 확 낚아채거나 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리고 끝으로.. 옛날에 영상물에다 자막은 어떻게 만들어 넣었을지가 궁금해진다. 텔레비전 화면에 넣는 방법과 영화 화면에 넣는 방법이 서로 달랐을 텐데.
옛날에는 그냥 닥치고 어설픈 흰색 손글씨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체는 활자로 바뀌고 흰 글씨 주변에 검은 테두리가 추가되었다.

요즘은 자막도 흰 별도의 배경에다가 검은 글씨 형태로 넣는 추세이다. 그래서 배경이 없이 고딕· 둥근고딕· 엑스포체 같은 옛날 서체로 자막이 들어간 영상을 딱 보면 1990년대 영상인 게 느껴진다. 아래의 자막들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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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7/03/16 08:35 2017/03/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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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영화)

<부산행> 재미있게 잘 봤다.
새마을호가 나온 <라이터를 켜라>, 서울 지하철이 나온 <튜브>에 이어 KTX가 주 배경인 영화가 나왔다. 영화 스크린에서 서울 역, KTX, 무궁화호, 디젤 기관차 등등을 보니까 참 사랑스럽고 정겹고 훈훈했다.
난 좀비나 출연 배우나 심지어 스토리까지도 하나도 관심이 없다시피하고, 오로지 철도 구경하러 <부산행>을 봤다. 전국에 나처럼 생각한 철덕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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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의 운행 번호(406. 짝수는 하행이 아니라 서울 방면 상행 번호임. 400대는 경부선 부산행이 아니라 경전선 경유 마산행!)라든가 실물과는 다른 차량 외부 행선지 LED 같은 건 너무 사소한 아이템이니 따로 거론하지 않겠다.
꼭 남기고 싶은 소감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촬영의 편의를 위해 그냥 깜깜한 밤을 설정하고 만들었던 <라이터를 켜라>와는 달리,
배경이 낮이고 긴 터널 통과라는 설정으로 명암 조절을 한 것은 굉장히 훌륭한 점이다. 높게 평가한다.
대전-동대구 사이는 실제로도 긴 터널이 많은 구간인데, 그때 남자 주인공들의 객차 이동과 좀비 격투가 등장하는 건 각본을 탄탄하게 잘 짰다고 볼 수 있다.

한 터널이 통과 시간이 2분인가 3분이었는데, 열차가 시속 300km로 정상적으로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대전-대구 구간에 통과하는 데 3분씩이나 걸리는 긴 터널이 있지는 않다. 그래도 황학 터널이 거의 10km에 달하며, 비상 상황에서 열차가 약간만 감속을 했다는 걸 감안하면 저런 설정은 설득력을 충분히 얻는다.

2.
철도 차량의 진행 방향과 등화의 색깔을 헷갈리는 건 철도 등장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고증 오류이다. <튜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부산행>도 초반에 그런 옥에티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철도 차량은 그 특성상 자동차로 치면 깜빡이(방향지시등)에 해당하는 등화는 없다. 그 대신 전방으로는 백색등, 후방으로는 적색등을 켠다. 국정원 연재 추리 퀴즈 중에 이 특성을 이용해서 용의자의 논리 오류를 논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전기 철도 차량과 관련하여 나올 만한 고증 오류는 팬터그래프의 배치 방향이다. 팬터그래프는 진행 방향 기준 최대한 후방에 있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부산행>의 경우, 열차가 달리는 모습을 외부에서 클로즈업 한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팬터그래프 같은 건 확인할 수 없었다.
<라이터를 켜라>는 장면이 바뀔 때 열차의 외부 클로즈업이 종종 나오기도 했는데 이와 대조적이다. 애초에 쟤는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배경이어서 전철과는 무관한 설정이기도 했다만..(그래서 주인공이 천장 위를 기어가는 스턴트를 하는 것도 가능했고!)

3.
동대구에서 디젤 기관차에 수십 명의 좀비가 달라붙자 기관차 바퀴에 불꽃이 튀고 힘이 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나온다. 이건 두 말할 나위 없이 연출이며 과장이다.
7000호대 디젤 (전기) 기관차는 무려 수천 마력에 달하는 출력을 자랑하며, 몇십 톤짜리 객차를 몇 개씩 견인하는 차력사이다. 얘 혼자 무게만 120톤을 넘으니, 지상의 도로를 달리는 대형 트레일러의 트랙터조차도 기관차 앞에서는 어설픈 풋 사과로 전락한다.

속도만 느리지 토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그깟 좀비들이 좀 달라붙어 봤자 차량의 주행에는 아무 영향 없다.

4.
저런 것들을 제치고 내 눈에 제일 확실하게 들어온 비현실적 고증 오류는 바로..
대전 역에서 수십 명의 군인 좀비들이 유리창을 깨고 아래의 선로로, KTX 열차 위로 후두둑 떨어졌는데 어떻게 전차선에 닿아서 감전돼서 타 버린 좀비가 한 놈도 없느냐는 것이다. 요거 간파한 분이 계신가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차선에서 펑~펑! 불꽃이 튀고 일부 좀비는 시꺼먼 통구이가 돼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면 관객과 주인공들을 더 멘붕시키고 더 공포감을 조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당장 제작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고, 또 끈질긴 불사신으로 묘사되는 좀비의 이미지와도 맞지 않는 연출이 될 테니 그런 고증까지는 제낀 듯하다.

이 영화는 좀비로 변한 주인공을 제외하면 좀비가 죽는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끝날 때가 다 돼서 그나마 안전한 부산에 주둔한 군인을 제외하면, 군인들도 소총 하나 없이 중대급 병력이 몽땅 좀비에게 무기력하게 쳐발려서 죽거나 자기도 좀비가 되는 모습으로 나온다.
특히 대전은.. 차라리 경비 인력을 처음부터 전경으로만 설정하지 왜 군인을 집어넣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나중에 상화(마 동석)가 승강장에서 사용한 도구도 전경 방패와 방망이이고 말이다.

위험물 관리를 잘못해서 수많은 국민들을 좀비로 전락시키고 나라를 내전 급의 파탄으로 몰아넣은 바이오 기업이 실제로 있다면, 저건 뭐 삼풍 백화점이나 세월호 따위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큰 사고를 친 것이다. 혼란이 다 수습된 뒤엔 그 기업은 공중분해돼야 할 것이고 대표와 핵심 간부들은 사형· 무기징역급의 중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_=;;
그리고 승객 중에서 악역이라면 악역인 영석(김 의성)은 정말 <라이터를 켜라>에서 국회의원 박 용갑, 그리고 <테이큰>에서 장 끌로드, <13구역>에서 국방부 장관 크루거(13구역 몰살 계획이 탄로나서 짤리는..), <타이타닉>에서 '칼' 같은 비열한 캐릭터라 여겨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01 08:37 2016/10/0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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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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