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의 천체들 중에 (1) 인간이 지구 말고 직접 착륙하고 다녀온 적이 있는 천체는 2019년 현재 달이 유일하다. 그럼 사람 말고 (2) 탐사선이 사뿐히 착륙해서 활동이라도 한 적이 있는 천체는 더 먼 금성과 화성이 있다.
그런데 금성은 극심한 고온 고압 때문에 탐사선이 한두 시간 버틸까말까인 지경이다. 앞으로 정말 그럴싸한 명분과 떡밥이 생기지 않는 한, 금성 착륙 미션이 가까운 미래에 또 행해질 것 같지는 않다.

즉, 무인 탐사선이 성공적으로 착륙해서 며칠~몇 주 이상 동안 탐사 가능하고, 실제로 그런 내력이 있기도 한 천체는 태양계에서 화성이 유일하다.

그리고 착륙이 아니라 (3) 탐사선이 추락· 운지한 적이 있는 천체는 더 멀리 수성과 목성, 토성까지 간다. 수성은 메신저(2015. 4. 30.), 목성은 갈릴레오(2003. 9. 21.), 토성은 카시니-호이겐스(2017. 9. 15.) 딱 한 번씩이 유일하며, 그것도 시기가 다 21세기로 생각보다 최근이다!

물론 이것들은 10~20년씩 돌면서 해당 행성의 자료들을 왕창 보내 준 뒤, 추진체의 연료가 다 떨어져서 궤도 유지가 안 되는 지경이 되자, 통제불가 우주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최후의 연료를 사용하여 궤도 이탈과 소멸을 선택한 것이다.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포로로 잡히지 않기 위해 마지막 총알로 자기 머리를 쏘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메신저야 대기가 없는 수성의 표면에 떨어져서 박살나고 표면에 자그마한 크레이터라도 남겼겠지만, 목성과 토성으로 뛰어든 탐사선들은 짙은 대기 마찰로 인해 그냥 아무 흔적도 없이 불타고 짜부러져 사라졌을 것이다.

천왕성 이상부터는 보이저, 파이어니어, 뉴 호라이즌스 같은 외행성 탐사선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사진만 찍었지, 착륙이나 충돌 같은 방식으로 인간이 접근한 내력이 전무하다. 접근은커녕 관측부터가 너무 어려우며 드문 실정이다. 이미 토성에서 천왕성 사이가 태양에서 토성까지의 거리에 맞먹을 정도로 거리가 살인적으로 멀다는 것을 우주덕이라면 감을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2)에 속하는 천체, 다시 말해 무인 탐사선이 착륙한 천체가 태양계에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이다.
카시니-호이겐스 호는 1997년에 발사되어 7년에 달하는 비행과 스윙바이 끝에 2004년에 토성의 궤도에 진입했는데, 그 중 '호이겐스' 호에 속하는 부분은 분리되어서 2005년 1월 14일에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착륙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우주 탐사선이 화성과 목성까지 초월하여 가장 먼 천체에 착륙한 기록인 동시에, 행성이 아니라 달 외의 또 다른 행성 위성에 착륙한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럼 타이탄은 어떤 위성이며 과학자들은 왜 타이탄을 선택한 것일까?
타이탄은 토성에서 가장 큰 위성이며, 태양계 모든 행성들의 위성 중에는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에 이어 둘째로 큰 위성이다.
크기로만 따지면 얘는 행성인 수성보다도 약간 더 크다. (수성은 달보다 약간 더 크고..) 다만, 밀도는 수성보다 훨씬 더 작아서 전체 질량이 수성의 40% 남짓이라고 한다. 사실, 수성은 태양과 너무 가까운 관계로 딱딱하고 무거운 금속 핵 위주로만 남아서 밀도가 커진 편이다. 옛날에 원래는 수성이 지금보다 더 큰 행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타이탄은 토성에 딸린 수십 개의 위성 중 하나이지만, 땅이 있는 천체들 중에서 이례적으로 짙은 대기가 존재한다. 겨우 그 크기와 질량 주제에 표면 대기압은 1.41기압으로 지구보다도 더 높으니 놀랍기 그지없다. 대기의 98%는 질소라고 하는데, 나머지를 차지하는 메탄 가스, 그리고 -180~-170도대의 낮은 기온 때문인지 대기는 금성처럼 온통 누렇다.

그리고 관측 결과에 따르면, 타이탄의 내부에는 대기뿐만 아니라 액화(= 액체) 탄화수소가 강, 바다, 호수의 형태로 흐르고 구름을 형성하고 비가 내리는 등 나름 순환까지 한다고 한다.
저기는 태양으로부터 너무 멀어서 끔찍하게 춥고, 물과 산소가 아니라 온통 메탄밖에 없는 불모지이지만, 그 먼 곳에 액체와 대기가 있는 천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과학자들을 흥분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태양으로부터 엄청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런 대기 같은 물질도 달라붙어 있는 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오.. 호이겐스가 착륙한 타이탄 표면은 금성이나 화성 같은 행성과 마찬가지로 온통 돌밭 뻘밭이었다. 하강하는 동안에는 타이탄의 상공에서 내려다본 표면 사진도 보내 줬는데.. 무슨 산맥 같은 지형이 보였다.
참고로, '호이겐스'(현지 발음으로는 하위헌스)라는 이름부터가 타이탄을 최초로 발견한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겸 천문학자 이름에서 딴 것이다.

착륙하는 지점이 혹시 액체 바다는 아닌가 우려되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옛날에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할 때도 혹시 흙먼지에 파묻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다행히 그렇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대기가 너무 짙어서 하늘에 모성인 토성이 뜨고 지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나 모르겠다. 그리고 태양에서 그렇게도 먼 곳인데 깜깜한 암흑 천지는 아닌지, 저 정도의 풍경 사진 촬영이 가능한 광원이 주변에 있는지 궁금하다.

호이겐스는 착륙 후에 각종 데이터들을 지구로 직통으로 보낸 게 아니라 모선인 카시니에게로 보냈으며, 카시니는 그걸 지구로 보내 줬다.
허나, 호이겐스와의 교신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교신은 착륙 후 약 90분 남짓 지속되다가 두절되었으며, 그 뒤로 호이겐스는 연락이 영원히 끊어졌다. 공식적인 사유는 호이겐스 쪽의 통신 장치가 극저온에 오래 노출되면서 고장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이탄이 무슨 금성 같은 고온 고압 불지옥도 아닌데 왜 탐사선이 2시간을 채 버티지 못했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광활한 우주 공간도 어차피 극저온이긴 마찬가지인데?
다만, 진공에서의 저온과 지구 같은 대기가 있는 곳에서의 저온은 여파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마치 뜨거운 공기와 뜨거운 물의 열전달 여파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또한 스마트폰과 자동차만 해도 날씨가 영하 수십 도 이하로 추워지면 배터리가 방전되고 난리가 나는데.. 하물며 훨씬 더 저온에서는 정교한 전자 기기가 분명 탈이 나긴 할 것이다.

타이탄이 금성 같은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화성처럼 착륙한 탐사선이 수 개월 동안 안정적으로 활동 가능한 곳도 아니었나 보다.

이렇듯, 카시니-호이겐스 탐사선은 인류에게 토성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줬다. 결말만 얘기하자면 호이겐스는 2005년에 위성 타이탄에 착륙했고, 카시니는 2017년에 토성으로 떨어져서 각자 자기 임무를 마치고 산화했다. 얘는 상당수의 비용은 미국 NASA에서 부담했지만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유럽과 공동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 매끈한 아름다운 토성 사진도 카시니-호이겐스 호가 찍은 것이다. 물론 그 전의 보이저 탐사선도 토성 사진을 찍긴 했다만..
목성은 고리가 딱히 보이지 않고 온갖 울퉁불퉁 나뭇결무늬로 가득한 반면, 토성은 표면이 아주 매끈하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외행성 탐사선들은 어째 태양계 공전면의 위· 아래로 잘도 드나드는 것 같다. 토성을 올려다보며 찍은 사진과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이다(상하가 일부러 뒤바뀐 건 아니라고 가정하면..). 자세한 이론 배경은 잘 모르지만, 스윙바이만으로 공전면의 위나 아래로 진행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9/08/16 08:37 2019/08/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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