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덕 장사 해수욕장, 장사 상륙 작전 기념관, 동해선 장사 역

이렇게 충주 동락 전투 관련 유적을 구경한 뒤, 본인은 곧장 영덕으로 떠났다.
작년에 영양· 봉화로 가기 위해서 이용했던 30번 고속도로(당진-영덕)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본인이 차를 타고 이동을 시작하자 이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차가 없고 길고 곧게 뻗은 터널 안에서 순간 최고 속도를 193km/h까지 내는 과업을 달성했다. 2년 전의 185km/h를 갱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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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나온 뒤 7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좀 내려가니, 장사 해수욕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장사 상륙 작전 기념관은 보다시피 문산호의 모양을 한 선박 같은 모양으로 지어졌다.
언제부턴가 계곡 옆에는 평상이, 해수욕장 바닷물 코앞엔 파라솔들이 점령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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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언제까지 내리지 않고 있으려나 의아했는데.. 결국은 비가 슬슬 내리기 시작했으며 빗줄기는 갈수록 굵어졌다. 그래도 본인은 비를 맞으면서도 개의치 않고 물놀이를 했다.
물은 적당히 차가우면서 맑고 파도도 잔잔한 편이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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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를 마친 뒤엔 비 내리는 해변과 캠핑장을 거닐다가 장사 상륙 작전 전적지와 기념관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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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변이 해수욕장이 아니라 전쟁터였던 고딩 나이의 학도병들을 생각하며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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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잔잔히 흘러가던 이 도랑은.. 본인이 기념관을 관람하고 돌아온 1시간쯤 뒤엔 흙탕물이 콸콸 넘쳐 흐르는 헬게이트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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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상륙 작전은 인천 상륙 작전의 바로 전날 행해져서 진짜 통수를 치는 인천 상륙에 대한 훼이크 역할을 했다. 게다가 훼이크가 얘 하나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훼이크일 뿐이니 막 정예 병력까지 투입할 필요는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소년병을 투입하다니.. -_-;;

문산호는 민간 선박이다가 군용으로 징집된 물건이다.
그런데 얘가 가던 중에 좌초해 버리고 구조선이 제때 못 온 바람이 애들의 희생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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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의 옥상(갑판)에도 올라가 볼 수 있다. 비가 철철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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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에서 볼일을 다 본 뒤엔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동해선 장사 역을 찾아가서 내부를 구경했다.
동해선은 일제가 1940년대에 한반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건설하고 있던 철도였는데 21세기가 돼서야 드디어 철도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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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상주하는 직원이 없는 무인역이고, 선로도 본선과 측선 두 가닥에 섬식 승강장 하나밖에 없는 아주 단순한 구조였다. 하루에 열차가 방향별로 7회밖에 정차하지 않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갔을 때 열차가 도착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뭐, 아직까지는 포항에서 영덕 사이를 오가는 3량짜리 RDC 무궁화호가 단선 선로를 오갈 뿐이다. 앞으로 더 발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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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오후 6시쯤에 오늘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집에서 싸 간 과일 말고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곧장 저녁을 먹으러 갔다. 휴가 가서 전통적으로 늘 하듯이 해수욕장 근처의 어느 식당에서 회를 배불리 먹었다. 여기서 컴퓨터와 폰을 충전도 잔뜩 할 수 있었다.

3. 포항 사방 기념 공원

이제 여행의 첫째 날이 저물고 숙소를 잡을 때가 됐다. 바닷가나 한가한 교외의 정자, 해수욕장 캠핑장 등 텐트를 칠 곳이야 많다만, 문제는 비가 밤에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머리 위의 비는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고민 끝에 다음 목적지인 사방 기념 공원에 미리 가서 거기 내부에 짱박혀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잖아도 다음 둘째 날의 일정은 오늘보다도 더욱, 매우 빡빡할 예정인데 이건 괜찮은 선택이었다.

장사 해수욕장은 영덕의 최남단에 있고 사방 기념 공원은 포항의 최북단에 있다. 그러니 차로 2~30분 거리인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는 경로에는 곧게 뻗은 국도를 벗어나서 온통 좁고 꼬불꼬불 굽은 산길과 해변길도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 이렇게 폭우가 내리는 중에도 해수욕장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비는 밤새도록 정말 시원스럽게 내렸다. 공원 내부의 어느 건물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비를 피하면서 한숨 잔 뒤, 아침 6시쯤 날이 밝아 오자 우산을 들고 공원 주변을 산책하고 언덕을 올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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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정원이 정말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저 멀리 바다까지 보였을 텐데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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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砂防)이란 높은 지대에서 모래가 비바람에 씻겨 무너져 내리는 것, 쉽게 말해 산사태를 예방하는 정비 과업을 말한다. 이게 박통 시절에 여기 포항 북부 지역에서 처음으로 시행됐는가 보다.

안 그래도 지금 당장 기록적인 폭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산사태가 났는데, 현 시국과 관계가 있는 적절한 장소를 잘 찾아간 것 같다. 나도 이런 용어와 심지어 이런 과업을 기념하는 공원까지 있다는 걸 몰랐는데.. 지도를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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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흥해 일대가 사방 사업의 최초 시범 추진 지역이었던가 보다. 박 정희 대통령이 사방 사업을 특별 현지지도(?) 하는 장면이 이렇게 동상으로 꾸며져 있다.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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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밤과 새벽 시간대에 잠깐만 머무를 수 있어서 기념관 안에는 못 들어갔다. 더구나 날씨가 맑고 좋으면 여기서 바다까지 보이는 멋진 풍경 사진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넓고 경치 좋고 박 정희 대통령 동상까지 있는 공원을 혼자 독차지하면서 비 내리는 밤을 보낸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추억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21 19:37 2020/08/2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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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여름에 영화 인천 상륙 작전이 나왔는데, 이제는 그 스토리의 프리퀄 격인 장사 상륙 작전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져 나왔다. 이건 적을 혼동시키고 군사력을 분산시켜서 진짜 본론인 인천 상륙 작전이 차질 없이 수행되게 하기 위한 밑밥이었던 셈이다. 본인은 개봉 초기에 영화를 잘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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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팩트와 실존 인물을 표방한다는 것을 시작과 끝에서 명시하고 있다. 최소한 "대장 김 창수", "고산자 대동여지도", "자전차왕 엄 복동", "말모이" 같은 급으로.. 주 스토리 차원에서 말도 안 되는 왜곡, 주작, 창작, 각색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된다.
문산호가 좌초· 침몰한 것, 갑자기 통신이 끊겨서 상륙 후에 곧장 귀환을 못 하고 학도병 팀이 오랫동안 고립됐던 것 등등은.. 모두 팩트이다.

(2) 학생들이 보트 타고 상륙하고 총질하는 게.. 마치 배틀로얄 2 레퀴엠 장면 같았다..;; 학도병 주인공 둘은 "15소년 표류기"에 나오는 브리앙과 도니판 같아 보이기도 하고..

(3) 작중에 나오는 터널은 단면이 말발굽 모양인 게 명백하게 단선 철도 터널처럼 생겼는데..
일제 말기 때 만들다가 말았던 동해중부선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작전이 수행되었던 곳은 7번 국도 구간이라고 한다만..)
일제는 전쟁 중에 물자가 부족해서 금강산선, 경북선 같은 철도의 선로를 뜯어 가긴 했지만, 러시아 진출에 필요한 경원선은 복선화하고, 동해중부선은 오히려 새로 건설하고 있었다.

(4) "공산군 저놈도 알고 보면 한 부모의 아들이고 착한 놈이었어"라든가(북괴 기관총 사수를 죽이고 나서 보니 걍 앳된 학도병..), 오글거리는 어설픈 "태극기 휘날리며" 스타일의 신파극이 살짝 들어가 있다.
그리고 국군과 미군 수뇌부를 마냥 절대선이 아니라, 융통성 없고 학생들을 일회용품 총알받이로 쓰고 갖다버리려는 꼰대 집단 비스무리하게 묘사하긴 한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불순한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인천 상륙 작전과 달리, 적인 공산군 중에서 막 인상적인 활약을 하는 악역 주연이 딱히 없다. 그냥 떼거지로 몰려와서 아군에게 총질만 할 뿐이다.
그리고 아군도.. 스토리를 심하게 각색· 왜곡하지 않고서는 겨우 앳된 학도병이 일당백 용감무쌍 무공을 펼치는 식으로 묘사할 수도 없다. 걔네들은 일당백은커녕 총소리 듣고 혼비백산 겁 먹고 달아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너무 대단했던 10대 소년들이다. 이런 스토리 구조에서 굳이 대립· 갈등 비스무리한 걸 넣으려면 아군 수뇌부에게라도 그 역할을 약간 감당시켜야 했을 것이다.

요즘 시대에 197, 80년대 스타일의 일방적인 절대선 절대악 애국심 호소만 존재하는 반공 영화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저 영화가 오히려 더 현실적인 묘사를 한 면모도 있다.
미국도 결국은 위험을 무릅쓰고 조치원함을 보내 주고 애들을 구하려고 일말의 노력은 했다. 그리고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죽을 고생 하고 완수하고 살아 돌아온 이 명흠 대위를 국군에서는 전사자가 너무 많고 배(문산호)를 버리고 왔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하려고 했을 정도이니.. 실제로 융통성 없는 꼰대 집단인 것도 맞았다.. -_-;; (그래도 다행히 진짜 처형하지는 않음)

(5) 결말도.. 액자식 구성이 아닌 것으로 시작한 영화가 갑자기 저렇게 끝나는 건 대놓고 "태극기.."를 따라 한 억지 급조인 것 같다.
그래도 전체적인 결론은..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아무리 민족이니 뭐니 해도,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면 도저히 함께할 수 없으며, 서로 완벽하게 격리· 분리· 독립이 불가능하다면 최악의 경우 서로 죽고 죽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6) 이 영화의 모티브인 장사리 상륙 작전은 6·25 중의 여러 전투들처럼 단순히 오래되어서 인지도가 낮을 뿐이지, 무슨 실미도 급으로 존재가 부정되고 조직적으로 은폐된 작전은 결코 아니다.

이미 196, 70년대의 언론 보도와 매체에서도 버젓이 언급되어 왔다. 일반인들이나 잘 모르지 근현대사 전쟁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까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학도병들이 무슨 실미도 북파공작원이나 국정원 흑색요원 같은 존재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전투가 완전히 잊혀졌다가 뒤늦게 발굴되었네 어쩌네 유세를 떠는 것은 영화의 유니크함을 어필하기 위한 마케팅 과장이다. 걸러가며 들을 필요가 있다.

(7) 내가 이 영화 소개글을 블로그에다 올리려고 마음먹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저 실제 장사리 해변/해수욕장에 이미 철도로 접근할 수가 있게 됐다는 것을 본인도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도 7호선의 철도 버전으로 포항과 삼척을 잇는 동해중부선, 통합 동해선이 일단은 2022년에 전구간 개통을 목표로 공사 중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요즘 세상에 고속철이 아니고 광역전철도 아닌 생판 오지에 새로운 단선 비전철 철도가 새로 생긴다니 굉장히 이색적인데.. 포항-영덕 구간은 이미 작년 1월에 개통했다. 그 사이에 '장사'라는 역이 생겨서 여기서 내려서 몇백 m 걸어가면, 장사 해수욕장과 함께 그 이름도 장사 상륙 작전 전적지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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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정말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2018년 초 그 당시엔 평창 동계 올림픽과 함께 모든 관심이 경강선 KTX에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말에 서울-양양 고속도로(60) 춘천 동쪽 구간과 영천-상주 고속도로(301)가 거의 동시에 개통했지만, 전자의 인지도에 밀려서 후자는 묻혔던 것처럼 말이다.

장사리 영화를 안 봤으면 내가 일부러 거기 지형을 찾아보지 않았을 것이며, 세상에 "영덕 역이란 게 어딨어?"라는 무식한 소리를 2019년 가을까지도 늘어놓고 있었지 싶다.
나의 무지를 회개하며, 이를 일깨워 준 장사리 영화에 감사드리며 반성한다.
평창역에는 KTX만 서지만, 영덕역에서는 RDC 무궁화호만 탈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0/04 08:32 2019/10/0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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