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의 모세 이야기 -- 上에서 계속된다.
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지식과 더불어 김 성모 화백 명대사에 대한 지식이 동시에 필요함을 밝힌다. ㅋㅋㅋㅋㅋ)
모세가 파라오 앞에서 막대기를 뱀으로 만들고, 물을 피로 만들고 각종 재앙을 행할 때,
“폐하, 저거 다~ 사기입니다. 우리 마술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라고 훼방을 놓은 이집트 마술사의 실명이, 웬 생뚱맞은 바울 서신에 거론되어 있다. (딤후 3:8) 그러나 이들도 재앙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결국은 GG 치고 “이건 마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리에 제임스 랜디 같은 마술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_=;; (가짜 초능력자 잡아내는 걸 업으로 삼던 양반.)
보라, 주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들에게 임하여 매우 심한 전염병이 있으리라. (출 9:3)
이건 구제역, AI 같은 것들일까...?? 이건 정말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답이 없어서 닥치고 가축들을 매몰 도살 처분하는 수밖에 없는데.
재앙이 하나씩 지날 때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던 이집트가 거덜날 지경이 되었다.
이건 그야말로 생명과 무생물의 경계를 넘나들고 기상 현상이 마음대로 바뀌는 말 그대로 초자연적인 이적이었다.
경제적으로 손해를 입는 건 둘째치고라도, 이런 재앙을 겪으면서 이집트 국민들은 자기 왕에 대해서, 또 자기들이 믿던 신에 대해서 분명 심각하게 다시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모세 자신도 점차 믿음이 생기고 담대해졌다.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나중에 그는 파라오를 상대로 “아~ 그러셨어요? 님 저한테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졸라 무섭군요” 같은 식으로 농을 치거나 말을 비꼴 정도로 간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오는 칠전팔기 불굴의 의지로 모세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파라오는 결코 남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는다. 누가 이기나 보자!” 파라오는 정말로 김 화백이 롤모델로 삼기에 손색이 없을 근성가이였다. 마치 돈을 계속 잃으면서도 도박을 그만두질 못하는 것처럼.
아홉째 재앙은 말 그대로 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를 느끼는 재앙이었고, -_-;;
결국 마지막 열째 재앙인 모든 장자가 몰살 당하는 재앙으로 인해, 파라오는 자기 맏아들을 잃고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줬다. 앞의 재앙들이 이집트의 각종 동물· 자연 잡신들을 무력화하는 심판이라면, 마지막 재앙은 이집트가 과거에 저지른 이스라엘 유아 학살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 심판에 앞서 하나님은 이집트 탈출을 염두에 두고 유월절을 제정했다. 양을 잡아서 급하게 먹는 건 좋은데 왜 하필 피를 문설주에다 발라 놔야 할까?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묻어 있는 가정은 일명 죽음의 천사가 들어가지 않고 휙 돌아서서 열외(passover!)한 반면, 그렇지 않은 집은...;;
<이집트의 왕자>(이하 '이왕')에서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죽음의 천사가 여러 스레드로 갈라져서 길거리 그래프를 DFS 탐색하는 듯하다.
'이왕' OST인 When You Believe가 흘러나오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변덕 한번 심한 파라오는, 군대를 보내서 이들을 죽이거나 도로 잡아 오기로 작정한다.
마침 유대인들이 모인 곳은 하필 막다른 홍해 바닷가였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오병이어만큼이나 불신자들도 다 아는 성경의 그 유명하고 위대한 기적이 행해진다.
홍해 바닷물이 둘로 갈라져서 경부 고속도로가 중앙에 생겼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출 14:21을 보면, 하나님께서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냄으로써 길을 만들었다고 하신다. 동풍이라 함은 동쪽에서 불어오는 방향이다.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경로는 서쪽에서 동쪽 방면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바다는 모세가 있는 곳에서부터 바다 건너편으로 쭉 전진을 하면서 폼나게 밀려난 게 아니라...
바다 건너편에서부터 물 밀려나기 시작해 그 흐름이 모세가 있는 쪽으로 왔을 거라는 뜻이다. 이해하시겠는가?
그러므로, 위의 영화 장면도 엄밀히 말하면 고증 오류라는 뜻이 되겠다.. -_-;;;
백성들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홍해를 건넌다.
그런데
http://www.youtube.com/watch?v=6ZjgH0H7DkE&feature=related
의 3:44-46 지점. 낙타가 입 헤 벌리고 '오오욱' 하는 소리가... 둠에서 좀비 몬스터가 죽을 때 나는 소리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ㄲㄲㄲㄲ
홍해가 갈라져서 생긴 길의 폭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살림 가득 싣고 노약자와 어린이까지 다 싣고 가는 수십, 백수십만 명의 행렬의 진행 속도가 빠를 수가 없을 것이다(창 33:13-14 참고).
이들이 모두 홍해를 건널 때까지 하나님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집트 군대의 진입을 차단하고 시야도 가리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 동안 이집트 군대는 근처에서 진을 치고 한없이 기다리다가, 유대인들을 추격하러 멋도 모르고 갈라진 홍해 밑바닥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갈라져 있던 바닷물이 원상복귀되면서 시ㅋ망ㅋ.
이때 파라오 자신도 죽었을까? 아들에 이어 아버지까지??
'이왕'에서는 파라오 혼자 살아남는 설정으로 나오고, 모세는 홍해 건너편에서 “형. 이제 영원히 굿바이.”라고 한 마디 한다.
성경에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지만, 출 14의 정황으로 볼 때 파라오도 추격 작전의 선두에 나섰고 그 인원들이 한 명도 남김 없이 몰살당했다고 했으므로, 이집트는 이제 왕까지 잃고 군대도 잃고 국가가 존폐의 위기에 몰렸을지도 모르겠다.
천지창조 이래 전무후무한 기적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쁨과 자신감으로 용기백배 했다. 정말 얼마나 기뻤겠는가? 출애굽기 15장의 대부분이 그 감격을 못이겨 불러진 찬송시이다. 이 엄청난 소식은 사실 해당 지역 주변의 민족들에게도 퍼져서 흠좀무와 충공깽을 선사했다. (수 2:9-10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을 통해 홍해를 직접 건너지 않았다면, 이집트 군대의 몰살 같은 다른 수많은 관련 에피소드들은 어떻게 설명할 거란 말인가? 그런데 이걸 무슨 얘네들은 홍해가 아닌 갈대밭을 건넌 거라고 심지어 성경 지도의 출애굽 경로도 영 엉뚱하게 설명해 놓은 책도 있다. 원어상 홍해가 아니라 갈대밭이라고 설명하는 신학자까지 있는 모양인데, 이건 거의 '싫어요'가 두음법칙 상 '좋아요'로 바뀐 개드립 급이다.
믿기 싫으면 자기가 안 믿는 거야 개인 자유이고 내가 절대로 뭐라 안 하는데, 남이 믿는 것에 대해서 엉뚱하게 해석이나 하지 마셈..;;
역사를 보면, 성경 구절을 자기의 이념적인 일에다 영적으로 적용한 사람이 있다. 몇 가지 유명한 예를 소개한다.
Stand fast therefore in the liberty (...) and be not entangled again with the yoke of bondage. (갈 5:1) -- 평생을 조국 독립을 갈망하고, 광복 후에도 자유 민주주의를 추구한 이 승만
...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롬 1:17 등) -- 종교 개혁자 루터
이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영적으로 적용하여 우리나라 개신교의 성시 교독을 보면, 광복절 편에 “내가 주께 노래하리니 그분께서 영화롭게 승리하셨도다. 그분께서 말과 거기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도다.” (출 15:1) 같은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이집트 군대의 패배를 일제의 패망에다가 비유한 모양이다.
맹렬한 김 정일 안티로 유명한 북한 인권 운동가 남 신우 씨는 “Let my people go”를 아주 즐겨 인용한다. 성경에서는 66권 전체를 통틀어 출애굽기 5장~10장 사이에서밖에 등장하지 않는 문장이다. 그가 사용하는 문맥은 물론 파라오로부터가 아니라 “인간개백정 김 정일로부터 가게 하라”이다.
이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은 상징적인 의미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래봤자 모세를 포함해 홍해를 건넌 이 세대들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뺑이 치다 다 죽었으니 그저 안습.
아니, 홍해를 건너면서 이제 뭘 해도 하나님 앞에서 꺼뻑 죽을 정도로 자신만만하던 그들도... 겨우 며칠 못 가 광야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그만치 연약하고 어떤 면에서는 간사하다.
모세는 120세에 약속의 땅을 몸소 밟지는 못하고, 대신 산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면서 감격에 찬 채로 쓱~ 쓰러져 죽었다. 성경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려하셔서 죽는 순간까지 몸이 노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죽은 후에 아마도 몰래 부활, 승천하지 않았나 추정된다(유 9).
그 위대한 모세가 출애굽 2세대들을 교육하면서 예수님이 오실 것임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예언을 남겼으며(신 18:15),
신약 성경은 사도행전에서 두 번이나 그 예언을 인용하면서 그게 바로 예수님이 맞다고 입증했다(행 3:22, 행 7:37).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모세를 그렇게도 추종하면서 정작 예수님을 모른다. 다른 엉뚱한 메시야 기다린다고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고 하루빨리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여야 할 텐데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