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뿔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천재 예술가(화가 겸 조각가)이다.
그는 성경의 인물 중에서 다윗을 조각으로 남겼으며(1501~1504, 보통 '다비드'라고 알려져 있..), 또 모친 마리아의 품에 안긴 형태이긴 하다만 예수 상도 만들었다(피에타, 1499). 이 둘은 워낙 엄청난 명작이기 때문에 조각가의 이름만 검색해도 이미지 검색에서 곧장 걸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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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는 다윗과 예수뿐만 아니라 모세 상도 만들었다(1515).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에 들어가는 장식 차원에서 만든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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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머리에 뿔이 달려 있다.. 왜..?
참 놀라운 일이지만, 그 당시에 성경이 그렇게 (잘못) 번역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시내 산에 다시 올라가서 하나님을 오랫동안 독대하고 십계명 돌판을 다시 제조한 뒤에 하산했는데.. 출 34:29에 따르면 하나님 버프를 받은 덕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에서 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머리가 빛나는 게 아니라 얼굴 말이다.;;

허나, 그 중세 시절에 가톨릭 교회에서 쓰이던 제롬의 라틴어 벌게이트(불가타) 성서에서는 his face shone (= shined) 부분이 his face was horned라고 번역되었다.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성경 번역의 먼 조상뻘인 위클리프 성경도 벌게이트의 영향을 받았다 보니 그렇게 됐고, 두에 랭스 가톨릭 성서까지도 다 출 34:29에 horned가 들어가 있다.

모세가 시내 산에 혼자 올라가서 하나님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머리에 졸지에 뿔이 돋아 버린 거다..;;
뿔 난 모세, 앵그리 모세스.. 괜찮은 컨셉인 거 같다.
그 앞에 금송아지 사건 때문에 빡쳐서 뿔이 돋은 거라고 하면 차라리 훨씬 더 자연스럽겠다만, 저건 도대체 뭐냐. ㄲㄲㄲㄲㄲ

뭐, 뿔이 빛보다는 조각으로 표현하기 훨씬 더 유리하긴 하다만..ㄲㄲㄲㄲㄲㄲ
그리고 뿔은 성경에서 흉물이 아니라 긍정적인 심상이 강하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오죽했으면 '구원의 뿔'(시 18:2; 눅 1:69)이라는 명칭도 있을 정도이다.

저걸 최초로 찾아내서 바로잡은 사람은 그럼 누구이며 언제쯤의 일일까...??
옛날에는 사람들이 지식·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글을 다루는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성경에도 본문 계보의 정확도와 별개로 오역이나 실수가 종종 들어갔던 모양이다.

이런 악의적이지 않은 오류는 원어를 아는 소수의 학자 집단에서 경험적으로 알려지고 알음알음 공유되었다. 그러나 그걸 바로잡아서 역본을 또 만드는 건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개정한 뒤에 오역이 또 발견되면 어떡하려고..? 게다가 이때는 컴퓨터고 인터넷이고 아무것도 없고 종이의 가격도 엄청 비쌌다는 걸 생각하자.

에라스무스의 공인 본문이 나오고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개신교 쪽에서 라틴어로도 모자라 독일어와 영어로 성경 번역을 주도하면서 오랜 번역 오류가 고쳐졌던 게 아닌가 싶다.
그 반면, 가톨릭은 이때 본격적으로 고인물 썩은물이 돼 갔던 것 같다. 자신이 파문한 이단자들이 일으키는 변화를 당연히 전혀 수용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무려 1580년대에 안티 종교 개혁 차원에서 만들어진 두에 랭스 역본까지도 모세의 뿔이 여전히 들어있었던 것이다. (☞ 링크)

물론 개신교 계열의 옛날 성경도 과도기적인 실수나 오류가 있었다.
10여 년 전에 영국에서 만들어졌던 KJB: The book that changed the world라는 다큐 영상을 보면, 제임스 왕이 성공회와 청교도를 중재하면서 새로운 끝판왕 성경을 만들 것을 지시하는 과정이 잘 묘사돼 있다.

제임스 왕은 성공회에서 사용하던 비숍 성경은 대놓고 오역이 많다고 깠고, 청교도들이 사용하던 제네바 성경은 번역 스타일이 편향되고 잡다한 난외주와 주석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꼴도 보기 싫다며 깠다. 한쪽만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 모두까기 소신이었다.

그래서 두 진영 학자들을 한데 모아서 서로 교차검증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성경 번역을 시작했는데.. 성공회 진영의 대표 학자가 "그래도 기존 비숍 성경이 더 나으니 그거 스타일대로만 따라가면 별 문제 없겠는뎁쇼"라고 사석에서 국왕 폐하에게 은근슬쩍 자랑을 했다.
허나, 제임스 왕은 표정이 썩으면서 바로 말을 끊고 이렇게 맞받아 쳐 버렸다.

"뭐, 비숍 성경이라고?? 전 11:1 '빵을 물에다 던져 넣어라'가 '빵을 젖은 얼굴 위에다 놔 둬라'라고 황당하게 오역돼 있는 그 역본 말여?? 오 맙소사!
이번에 비숍 성경보다 더 나은 성경을 니가 책임지고 새로 만들지 못한다면.. 짐이 손수 니 얼굴을 물에 적셔서는 그 위에다 빵을 올려놓을 테니 그리 아시오"


끄응.. 요 유튜브 동영상 56:18 이후 지점을 참고하시라. 저건 창작 각색인지, 아니면 무슨 조선 왕조 실록처럼 잉글랜드 왕조 실록에 기록된 160x년대의 실제 대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를 보니 비숍 성경은 진짜로 전 11:1이 젖은 얼굴 위에다가 빵을 놔 두라고 혼자 특이하게 번역돼 있더라..! (☞ 링크)
하지만 얘는 모세가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돼 있지는 않았다. ㄲㄲㄲㄲ

이래서 옛날 성경은 그냥 역사에만 이름이 남아 있지 오늘날까지 교회 예배 때 쓰지는 않는구나. -_-
두에 랭스 역본은 내가 알기로 가톨릭의 킹 제임스 비슷한 고전 역본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나온 시기가 비슷하고 같은 고어체이기도 해서.. 하지만 유럽 역사나 교회사깨나 아는 신자들은 그 역본의 오역을 뻔히 얘기하며, 저 모세의 뿔 일화도 당연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개신교(?) 쪽의 킹 제임스 성경은 400년 넘게 묵은 옛날 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무오하다는 유일주의를 믿는 진영이 있다. 본문의 내용이 이역 수준을 넘어 완전히 다른 것도 있고, 또 성경에 대한 인식과 믿는 방식이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여담

  • '피에타'는 옷과 피부 묘사야 뭐 신의 경지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아무리 봐도 마리아가 덩치가 너무 크게 나온 것 같다..;;
  • 그림 중에서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이고.. "최후의 만찬"은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3/26 19:35 2022/03/2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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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의 모세 이야기 -- 上에서 계속된다.
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지식과 더불어 김 성모 화백 명대사에 대한 지식이 동시에 필요함을 밝힌다. ㅋㅋㅋㅋㅋ)

모세가 파라오 앞에서 막대기를 뱀으로 만들고, 물을 피로 만들고 각종 재앙을 행할 때,
“폐하, 저거 다~ 사기입니다. 우리 마술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라고 훼방을 놓은 이집트 마술사의 실명이, 웬 생뚱맞은 바울 서신에 거론되어 있다. (딤후 3:8) 그러나 이들도 재앙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결국은 GG 치고 “이건 마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리에 제임스 랜디 같은 마술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_=;; (가짜 초능력자 잡아내는 걸 업으로 삼던 양반.)

보라, 주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들에게 임하여 매우 심한 전염병이 있으리라. (출 9:3)

이건 구제역, AI 같은 것들일까...?? 이건 정말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답이 없어서 닥치고 가축들을 매몰 도살 처분하는 수밖에 없는데.
재앙이 하나씩 지날 때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던 이집트가 거덜날 지경이 되었다.
이건 그야말로 생명과 무생물의 경계를 넘나들고 기상 현상이 마음대로 바뀌는 말 그대로 초자연적인 이적이었다.
경제적으로 손해를 입는 건 둘째치고라도, 이런 재앙을 겪으면서 이집트 국민들은 자기 왕에 대해서, 또 자기들이 믿던 신에 대해서 분명 심각하게 다시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모세 자신도 점차 믿음이 생기고 담대해졌다.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나중에 그는 파라오를 상대로 “아~ 그러셨어요? 님 저한테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졸라 무섭군요” 같은 식으로 농을 치거나 말을 비꼴 정도로 간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오는 칠전팔기 불굴의 의지로 모세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파라오는 결코 남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는다. 누가 이기나 보자!” 파라오는 정말로 김 화백이 롤모델로 삼기에 손색이 없을 근성가이였다. 마치 돈을 계속 잃으면서도 도박을 그만두질 못하는 것처럼.

아홉째 재앙은 말 그대로 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를 느끼는 재앙이었고, -_-;;
결국 마지막 열째 재앙인 모든 장자가 몰살 당하는 재앙으로 인해, 파라오는 자기 맏아들을 잃고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줬다. 앞의 재앙들이 이집트의 각종 동물· 자연 잡신들을 무력화하는 심판이라면, 마지막 재앙은 이집트가 과거에 저지른 이스라엘 유아 학살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 심판에 앞서 하나님은 이집트 탈출을 염두에 두고 유월절을 제정했다. 양을 잡아서 급하게 먹는 건 좋은데 왜 하필 피를 문설주에다 발라 놔야 할까?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묻어 있는 가정은 일명 죽음의 천사가 들어가지 않고 휙 돌아서서 열외(passover!)한 반면, 그렇지 않은 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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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왕자>(이하 '이왕')에서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죽음의 천사가 여러 스레드로 갈라져서 길거리 그래프를 DFS 탐색하는 듯하다.

'이왕' OST인 When You Believe가 흘러나오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변덕 한번 심한 파라오는, 군대를 보내서 이들을 죽이거나 도로 잡아 오기로 작정한다.
마침 유대인들이 모인 곳은 하필 막다른 홍해 바닷가였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오병이어만큼이나 불신자들도 다 아는 성경의 그 유명하고 위대한 기적이 행해진다.

홍해 바닷물이 둘로 갈라져서 경부 고속도로가 중앙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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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출 14:21을 보면, 하나님께서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냄으로써 길을 만들었다고 하신다. 동풍이라 함은 동쪽에서 불어오는 방향이다.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경로는 서쪽에서 동쪽 방면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바다는 모세가 있는 곳에서부터 바다 건너편으로 쭉 전진을 하면서 폼나게 밀려난 게 아니라...
바다 건너편에서부터 물 밀려나기 시작해 그 흐름이 모세가 있는 쪽으로 왔을 거라는 뜻이다. 이해하시겠는가?

그러므로, 위의 영화 장면도 엄밀히 말하면 고증 오류라는 뜻이 되겠다.. -_-;;;

백성들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홍해를 건넌다.
그런데
http://www.youtube.com/watch?v=6ZjgH0H7DkE&feature=related
의 3:44-46 지점. 낙타가 입 헤 벌리고 '오오욱' 하는 소리가... 둠에서 좀비 몬스터가 죽을 때 나는 소리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ㄲㄲ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홍해가 갈라져서 생긴 길의 폭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살림 가득 싣고 노약자와 어린이까지 다 싣고 가는 수십, 백수십만 명의 행렬의 진행 속도가 빠를 수가 없을 것이다(창 33:13-14 참고).
이들이 모두 홍해를 건널 때까지 하나님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집트 군대의 진입을 차단하고 시야도 가리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 동안 이집트 군대는 근처에서 진을 치고 한없이 기다리다가, 유대인들을 추격하러 멋도 모르고 갈라진 홍해 밑바닥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갈라져 있던 바닷물이 원상복귀되면서 시ㅋ망ㅋ.

이때 파라오 자신도 죽었을까? 아들에 이어 아버지까지??
'이왕'에서는 파라오 혼자 살아남는 설정으로 나오고, 모세는 홍해 건너편에서 “형. 이제 영원히 굿바이.”라고 한 마디 한다.
성경에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지만, 출 14의 정황으로 볼 때 파라오도 추격 작전의 선두에 나섰고 그 인원들이 한 명도 남김 없이 몰살당했다고 했으므로, 이집트는 이제 왕까지 잃고 군대도 잃고 국가가 존폐의 위기에 몰렸을지도 모르겠다.

천지창조 이래 전무후무한 기적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쁨과 자신감으로 용기백배 했다. 정말 얼마나 기뻤겠는가? 출애굽기 15장의 대부분이 그 감격을 못이겨 불러진 찬송시이다. 이 엄청난 소식은 사실 해당 지역 주변의 민족들에게도 퍼져서 흠좀무와 충공깽을 선사했다. (수 2:9-10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을 통해 홍해를 직접 건너지 않았다면, 이집트 군대의 몰살 같은 다른 수많은 관련 에피소드들은 어떻게 설명할 거란 말인가? 그런데 이걸 무슨 얘네들은 홍해가 아닌 갈대밭을 건넌 거라고 심지어 성경 지도의 출애굽 경로도 영 엉뚱하게 설명해 놓은 책도 있다. 원어상 홍해가 아니라 갈대밭이라고 설명하는 신학자까지 있는 모양인데, 이건 거의 '싫어요'가 두음법칙 상 '좋아요'로 바뀐 개드립 급이다.
믿기 싫으면 자기가 안 믿는 거야 개인 자유이고 내가 절대로 뭐라 안 하는데, 남이 믿는 것에 대해서 엉뚱하게 해석이나 하지 마셈..;;

역사를 보면, 성경 구절을 자기의 이념적인 일에다 영적으로 적용한 사람이 있다. 몇 가지 유명한 예를 소개한다.

A father of the fatherless, and a judge of the widows, is God in his holy habitation. (시 68:5) -- 고아원을 기도만으로 운영한 조지 뮬러
Stand fast therefore in the liberty (...) and be not entangled again with the yoke of bondage. (갈 5:1) -- 평생을 조국 독립을 갈망하고, 광복 후에도 자유 민주주의를 추구한 이 승만
...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롬 1:17 등) -- 종교 개혁자 루터


이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영적으로 적용하여 우리나라 개신교의 성시 교독을 보면, 광복절 편에 “내가 주께 노래하리니 그분께서 영화롭게 승리하셨도다. 그분께서 말과 거기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도다.” (출 15:1) 같은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이집트 군대의 패배를 일제의 패망에다가 비유한 모양이다.

맹렬한 김 정일 안티로 유명한 북한 인권 운동가 남 신우 씨는 “Let my people go”를 아주 즐겨 인용한다. 성경에서는 66권 전체를 통틀어 출애굽기 5장~10장 사이에서밖에 등장하지 않는 문장이다. 그가 사용하는 문맥은 물론 파라오로부터가 아니라 “인간개백정 김 정일로부터 가게 하라”이다.

이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은 상징적인 의미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래봤자 모세를 포함해 홍해를 건넌 이 세대들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뺑이 치다 다 죽었으니 그저 안습.
아니, 홍해를 건너면서 이제 뭘 해도 하나님 앞에서 꺼뻑 죽을 정도로 자신만만하던 그들도... 겨우 며칠 못 가 광야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그만치 연약하고 어떤 면에서는 간사하다.

모세는 120세에 약속의 땅을 몸소 밟지는 못하고, 대신 산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면서 감격에 찬 채로 쓱~ 쓰러져 죽었다. 성경에 따르면 그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려하셔서 죽는 순간까지 몸이 노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죽은 후에 아마도 몰래 부활, 승천하지 않았나 추정된다(유 9).

그 위대한 모세가 출애굽 2세대들을 교육하면서 예수님이 오실 것임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예언을 남겼으며(신 18:15),
신약 성경은 사도행전에서 두 번이나 그 예언을 인용하면서 그게 바로 예수님이 맞다고 입증했다(행 3:22, 행 7:37).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모세를 그렇게도 추종하면서 정작 예수님을 모른다. 다른 엉뚱한 메시야 기다린다고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고 하루빨리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여야 할 텐데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21 15:29 2011/01/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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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2009년 말에 성경을 7독까지 했다. 그러나 그 후 한동안 개인적인 게으름, 바쁜 스케줄 등의 이유로 인해 성경을 읽지 않고 지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다시 각성하여, 석사 과정에 있는 동안 최소한 한 번은 더 완독해서 8독까지 달성할 계획이다.
성경을 꼬박꼬박 읽다 보면 블로그에도 성경 관련 글을 더욱 자주 쓰게 될 것이다.

최근엔 출애굽기를 읽었는데, 이번 기회에 모세에 대해서 심층 논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또 직업병이 발동하여 장문의 글을 쓰게 됐다. 특별히 성경 본문뿐만이 아니라 유명한 관련 영화인 <이집트의 왕자>(1998. 애니메이션)와 <십계>(1956)도 끼워넣었다.

영한사전을 보면 중학교 수준의 매우 중요한 단어는 별이 세 개, 고등학교 수준은 투스타 이런 식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성경의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 중요도 랭크를 매긴다면 모세는 단연 별 세 개짜리일 것임이 틀림없다.

★★★: 불신자들도 상식적으로 다 알고 관용적으로 인용하는 인물. 예수, 마리아, 모세, 아담, 이브, 솔로몬, 베드로, 유다, 아브라함, 다윗, 골리앗
★★: 위보다는 좀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명하고 성경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 여호수아, 바울, 사울, 누가, 요한, 이삭, 이스라엘과 12지파
★: 일단 성경의 책이름에 등장하는 마이너 인물들, 그리고 덜 유명하지만 그래도 성경에서 두 번 이상 언급되는 인물. 요엘, 요나, 호세아, 스가랴, 히스기야, 스바냐. 이세벨, 발람..
(-): 이 정도까지 알면 꽤 '골수'이며,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사람임. 아히도벨, 아비멜렉, 아사헬, 고라, 데메드리오, 맛디야, 아가보, 나봇 ...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학정으로부터 구한 민족 지도자이며, 하나님과 직통으로 대화하고 그분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온 위대한 대언자이다(신 34:10-12). 골수 유대교 신자들은 '모세' 하면 정말로 꺼뻑 죽는다.

그런데 그런 모세는 그 누구보다도 출생이 위태로웠다. 이집트가 유대인들을 노예로 삼고, 심지어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강제로 죽여 버리던 시절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때는 태아 성감별이라든가 강제 낙태 기술은 없었던 듯-_-;;;
대피라미드는 불가사의가 아니며 강제 노역이나, 외계인(?)의 힘으로 만든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가 강제 노역으로 거대한 건축 사업을 벌인 것 자체는 사실이다. (출 1:11-14)

이때 모세의 어머니는 3개월째 애를 숨겨서 키웠는데, 나중에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애엄마는 아이의 최후를 차마 자기 눈으로 못 보겠다며 아기 모세를 바구니에다 넣고 강물에 띄워 보낸다. 누나인 미리암은 바구니가 어디까지 떠내려가나 하염없이 강을 쳐다만 볼 뿐. <이집트의 왕자>(이하 '이왕')가 이 장면을 뮤지컬 형태로 잘 묘사하고 있다.

Brother, you’re safe now
And safe may you stay
For I have a prayer just for you:
Grow baby brother
Come back someday
Come and deliver us too
(자장가의 일부)

그런데 그 모세를 이집트의 공주가 발견했다. “흠. 어느 유대인 가정에서 (우리나라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린 애새끼군?” 이렇게 넘길 수도 있었는데 마침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공주는 모성애가 발동하고, 아기를 입양하기로 마음먹는다. 이건 에스더기 만만찮게 드라마틱한 스토리이다.

이때 미리암은 “공주님, 혹시 젖 먹일 유모를 찾으세요?”라고 제안했다. 덕분에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자기 친아들의 유모 노릇을 하면서, 국가로부터 삯을 받고 애를 젖을 뗄 떼까지 키웠다. 그 후 애는 국가에 반납. -_-;; .. 이 성경의 스토리이나,

'이왕'에서는 저 장면이 안 나온다, 모세는 그냥 닥치고 바로 왕궁 행이다. 공주도 아니고 왕비가 입양한다.
그러나 '이왕'에서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자기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모세의 모습이 더욱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성경에 없는 내용을 나름 각색했다.

모세가 왕궁을 나섰는데 미리암· 아론 남매와 극적으로 마주친다. 미리암은 '앗, 왕자님께서 웬일로 이런 누추한 곳에...' 하다가 수십 년 전 모세의 얼굴을 곧바로 알아보고는 “아, 드디어 네가 커서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주러 왔구나!” 하면서 잔뜩 설레발을 친다.

그러나, '이왕'의 설정상 자기 가족 얼굴도 모르는 모세는 “너 미쳤니?”라는 식으로 응수한다. 미리암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나 필사적으로 “넌 지금이라도 알아야 돼. 넌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구! 친어머니가 널 강물에다 띄워 보낸 후 이집트 왕궁으로 입양된 거야! 잘 모르겠으면 아버지 되는 사람에게 물어 봐!” 라고 소리친다.
아론은 그저 데꿀멍 하면서 “왕자님, 제 여동생이 사람을 못 알아보고 헛소리를 하는가 봅니다.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만 할 뿐.

굉장히 불쾌해진 모세는 미리암 네년을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내리고 돌아선다. 그러나 이때 미리암이 흐느끼면서 부르는 자장가 한 소절이 모세의 옛날 기억을 깨운다.

잠시 후에 나오는 1분 30초 남짓한 벽화 CG 애니메이션은(모세의 악몽) 본인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히 경이로움과 충격 그 자체였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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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은 성경이고 영화는 영화. 성경에서 모세가 정체성 때문에 저렇게 고뇌한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성경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때 유모(=친엄마 ㄲㄲ)에게서 철저하게 정체성과 사상 교육을 받은 채 궁궐로 들어갔으며, 훗날 장성해서는 애국 애족 정신이 충만하여 자발적으로 왕자 자격을 포기하기까지 했다고 나온다. (히 11:24-25; 행 7:23)

모세는 의협심이 너무 충만한 나머지, 동족을 때리는 이집트 노예 감독을 암살해 버렸는데... 정작 동족들은 그 선한 뜻을 못 알아보고 “당신은 우리도 그렇게 죽일 작정이냐?”하고 되물었다. 그렇다. 모세는 배척받은 민족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모세에게 민족주의자적인 이념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쌍것들 피지배민이라 해도, 사내아이를 죄다 죽여 버리는 건 이집트의 왕자가 보기에도 너무 불쌍하다는 식으로, 꼭 그렇게 해야만 했냐는 그냥 인도적인 차원에서 동정한다. 그가 이집트 노예 감독을 죽이는 것도 계획적인 살인이라기보다는 동작을 단순히 stop 시키려 했는데 과실치사가 발생한 것처럼 묘사된다.

이런 뉘앙스의 차이를 잘 분별하도록 하자. 마치 실존 인물인 최 용신이 얼마나 억세고 강인한 분이었는데, <상록수>의 채 영신은 상사병이나 앓는 식으로 너무 유약하게 그려져 있어서 샘골 학원 당사자들이 심 훈 소설을 싫어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모세는 그렇게 이집트에서 사고를 친 후 광야로 도피한다. 그리고 거기서 양치기 일을 한다. 십보라와 만나서 결혼하는 장면에다 저 정도 각색 애드립을 넣은 건 애교로 봐 줄 만한 수준.
영화 <십계>를 보면, 모세와 관련된 모든 역사 기록이 이집트 왕조 실록에서 말소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가히 이집트의 흑역사가 된 셈이다.

모세가 목자가 되었다는 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그의 신변에 훨씬 더 심각한 변화였다.
양치기는 이집트에서 3D 중의 캐 3D로 취급받는 천한 직종이었다. (창 46:34) 한국으로 치면 백정급? 그런데 이집트의 왕자가 이전의 모든 지위를 잃고 양치기로 전락한 것이다..
양치기는 야곱이 삼촌 라반에게 그 고충을 토로하듯이(창 31:38-40) 정말 힘들고 고달픈 일이지, 절대로 낭만적이고 전원적인 직업이 아니었다.

이집트의 왕자로 40년, 목자로 40년을 산 뒤에야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집트로 돌아온다.
성경은 이때 모세의 가정이 귀환하는 도중에 겪었던, 잘 알려지지 않은 깜짝쇼 해프닝에 대해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자기 둘째 아들에게 할례를 안 베풀고 있다가, 여관에서 하나님에게 끔살 당할 뻔한 것이다. (출 4:24-26)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은 이 사건이 기록된 출애굽기 4장 뒷부분을 읽다가 이 에피소드 때문에 어리둥절해하고 깜짝 놀라곤 한다.

시간과 분량 관계상 지금 그 문맥에 대해서 모든 설명을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대략 이런 상황을 상상하면 된다.

모세: 여보, (켁켁 숨막혀..) 그러게 둘째 아들에게도 (크허헉~) 할례를 해야 된다고 전에 내가 말했잖아! (나 죽겠어..) 그러니 제발 군소리 말고 지금 어서..;; (으윽~)
십보라: ㄲㄲㄲㄲㄲ 어휴 이런 야만적인 짓을 왜 하는지 몰라... (할례를 행하고 아들의 포피를 베어 던지면서) 이제 됐어요? 당신은 참 피비린내나는(bloody) 남편이군요.


십보라의 말은 기가 찬 듯한 비아냥거림에 가깝다. 모 성경 역본처럼 “당신은 피로써 맺어진 나의 달링님이에요” 같은 사랑 고백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본문으로 미뤄 볼 때, 모세는 이방신의 제사장의 딸인 십보라와 결혼한 후, 저런 할례를 포함하여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가정 불화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왕'에서 묘사된 것처럼 십보라가 이스라엘 백성하고 같이 홍해를 건너고 미리암과 함께 얼싸안고 기뻐하다가 “Look at your people. They are free!” 같은 멋진 말로 엔딩을 장식했을 가능성은.. 유감스럽지만 대단히 희박하다. 오히려 십보라는 모세를 따라다니는 데 염증을 느끼고, 도로 친정으로 돌아갔다가 출애굽기 18장에서야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에서는 모세-십보라 부부가 파라오 앞에 나아가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 역시 완벽한 허구이다. 성경에 따르면 오히려 영화에서 믿음을 저버리고 모세에게 야유를 퍼붓는 사람으로 나오는 아론이 모세와 함께했으며, 그가 처음부터 모세의 대변인 노릇을 했다.
모세와 아론은 이집트에 재앙을 퍼붓기에 앞서 먼저 동족들 앞에서 표적을 행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민족을 구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인정을 받았다. “파라오님, 우리 민족 대표가 이집트를 향해 할 말이 있답니다. 잠시 좀 들어 보시죠.”

그러나 모세는 사실 파라오 앞에 서는 걸 극도로 꺼리고 두려워했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대면했을 때도, 자기는 그 일 못 하겠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하나님을 불쾌하게 할 정도로 얼마나 뒤로 내뺐던가? 예전에 이집트에서 사고 친 것도 있고, 또 한때 내 집이었던 이집트를 상대로 적대적인 행위를...
나라도 하기 싫었겠다. 나이도 80이나 되고 나니, 젊었을 때의 그 혈기와 깡은 찾을 수 없었다. 모세는 그냥 목자로 살면서 손자 보면서 잔돈으로 애새끼들 과자나 사 주고 조용하게 살다 가고 싶었을 것이다.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세는 파라오 앞에서 대놓고 당당하게 “우리 백성을 종살이에서 풀어 주시오!”라고 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이집트 담화는 벌벌 떨면서 쥐꼬리 만하게...

“광야에서 종교 의식을 행하고 오게, 우리 민족에게 한 며칠간만 휴가를 주면 안 될까염? 안 그러면 우리 민족이(이집트가 아님!) 신님에게서 천벌을 받거든요. 유대인들이 죽으면 노예 노동력도 감소하니까 이집트의 국익에도 어차피 안 좋지..... 않겠습니까요?”


이런 애원, 탄원, 아니면 협상급이 되고 말았다.
'이왕'에서는 모세하고 형 람세스(현재의 파라오)가 극적으로 상봉해서 얼싸안는 장면도 나오지만, 성경에 그런 설정은 없으며,
파라오가 모세의 저런 연약함에 호소하는 간청에 귀를 기울였을 리도 없었다.
노예 주제에 웬 자기네 듣보잡 루저 민족신에게 종교 의식을 행하겠다니.. (이집트의 종교는 다신교적이다)
이것들이 군기 빠지고 살 만하니까 종교 타령이나 한다는 식으로 파라오는 알아들었다.

결국 제 1라운드에서 모세는 처절한 참패를 당했다. 자유가 찾아오기는커녕 파라오는 끄떡도 안 했고 오히려 노동 강도만 더욱 늘었다.
모세는 동족을 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손발리 오그라들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출 5:22-23)
그런데 이때 영화에서 또 등장하는 누나 미리암. 그녀는 특히 아론과 대비되어 완전 눈물나게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믿음의 여인으로 묘사된다. 이 점에 관해서는 모세의 누나가 아니라 거의 어머니 수준이다. 비록 성경에는 없는 대사이지만, 이런 캐릭터가 좀 있어야 영화의 감동이 살아나겠지. ㅎㅎ

Moses. Hear what I say. I have been a slave--all my life. And God has never answered my prayers until now.
God saved you from the river, he saved you in all your wanderings. Even now he saves you from the wrath of Pharaoh.
God will not abandon you. So don’t you abandon us.

“하나님은 너를 결코 버리지 않으셔. 그러니 너도 우릴 버리지 말아 줘!”

그리고 본격적으로 파라오를 굴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재앙이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The Plagues라는 뮤지컬이 나온다.

(글이 길어지니 이후 내용은 下에서 계속하겠다. 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1/19 15:14 2011/01/1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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