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원래는 있었는데 국토 분단으로 인해 기능이 상실되고, 게다가 6· 25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터만 남은 비운의 철도역을 심층 탐방해 보겠다. 오오오~ 흥미진진 두근두근~!
얘들은 황량한 부지만 달랑 있고 건물 실체가 없는 관계로, 주소도 도로명 주소 같은 게 없이 여전히 지번 기반이다. 이름도 '역'이 아니라 그냥 '역지'이다. 황룡사가 아니라 황룡사지인 것처럼 말이다.

1. 경의선 장단 역

장단 역은 원래는 1906년 4월에 경의선이 개통했던 당시부터 영업을 시작한 창립 멤버이다. 그때는 같은 창립 멤버인 문산 역의 바로 다음이 장단이었다. 지금 문산 이북에 있는 운천, 임진강, 도라산 같은 역은 먼 훗날 이뤄진 남북 경의선 철도 연결 작업의 산물이다. (더구나 운천은 그저 임시승강장일 뿐이고.)

장단 역이 유명해진 건 잘 알다시피 인근 선로에 반세기 동안 버려져 있던 녹슨 증기 기관차 때문이다.
1950년 12월 31일, 고 한 준기 기관사는 평양 방면으로 화물 열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그 때는 중공군의 인해 전술로 인해 국군과 UN군은 후퇴 중이었다(서울을 북한군에게 도로 빼앗긴 1· 4 후퇴의 불과 닷새 전이었다). 그래서 이 열차는 더는 북상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장단 역에는 전차대 같은 게 없어서 진행 중인 열차의 방향을 남쪽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결국 이 열차는 북한군에게 노획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차라리 동작 불능 상태로 파괴 대상이 되었다. 이에 명령을 받은 미군 병사들은 소총을 난사하여 기관차를 벌집으로 만들고 또 탈선까지 시켰다. 한씨는 다른 하행 열차를 갈아타고 후퇴했다. 김 재현 기관사 때처럼 열차가 무슨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서 벌집이 된 건 아니다.

그렇게 긴급 상황에서 버려진 증기 기관차 화통은 2005년에 임진각으로 옮겨졌고, 녹을 벗겨내는 대공사를 거쳐서 2009년부터 임진각에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 난리 중에 장단 역 자체는 완전히 파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위치 자체도 38선, 지금의 군사 분계선과도 너무 가까운지라 복원이나 관광지 조성 같은 건 요원하다. 민통선도 아닌 완전 비무장지대에 있으니 말이다.

장단역지의 공식 주소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동장리 198”이다. 지도 사이트에서 주소를 입력하면 위치가 정확하게 나온다. 도라산리도 아니고 동장리이기 때문에 도라산 역에서 1km가 넘게 북쪽으로 멀찌기 떨어져 있고, 군사 분계선이 몇백 m 코앞이다.
이 일대의 항공 사진을 보면 4차선 도로의 옆으로 경의선 단선 철길이 지나고, 주변은 온통 숲이다.
예전에 기관차가 임진각으로 옮겨지기 전에 시뻘겋게 녹슨 채 내팽개쳐져 있던 시절의 사진을 보면.. 여기 어딘가의 경의선 선로 옆에 나란히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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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 전의 리즈 시절엔 장단 역은 제법 컸다고 그러는데 지금 저 지형을 봐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또한 '죽음의 다리'라고 불리는 교량이 장단 역 남단 300m쯤에 지금도 있다고 하는데 항공 사진으로는 짐작을 못 하겠다.

2. 경원선 철원 역 외

철원은 남북 분단 이전에는 지금의 춘천에 맞먹는 큰 도시였으며, 철원 역도 무려 1912년에 개통한 경원선의 창립 멤버역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교통 요지였다. 게다가 금강산선의 분기역이기까지 했으니 역의 덩치도 당시의 경성 역만큼이나 컸다고 한다.
철원 역 일대는 분단 직후에는 북한 치하에 있다가 6· 25가 발발하면서 건물과 시설이 모조리 초토화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대한민국이 수복한 후, 다행히 터와 최소한의 흔적은 건졌다. 위치도 DMZ는 아닌 단순 민통선 내부인지라 개인이 그럭저럭 찾아가서 답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안보 패키지 관광을 이용해서 이 지역을 방문하면, 철원 역은 아무래도 건물 실체가 짝퉁 형태로라도 남아 있는 월정리 역보다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관광버스가 정차하지도 않고 가이드가 그냥 차창 밖으로 “여기가 철원 역 부지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걸로 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를 직접 땅밟기를 하고 살펴보고 싶으면 평일에 개인이 자가용을 끌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물론 사전에 군부대에 연락해서 허가를 받고서 말이다. 다른 방문자의 경험담을 보자면, 원래부터 그 지대의 출입증을 갖고 있는 지역 주민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같이 들어가는 게 아닌 경우(외지인의 단독 방문), 감시하는 군인이 동승· 동행을 한다고 그런다.

"사람이 가득하던 도시가 어찌 외로이 앉았는가! ..." (애 1:1)
성경의 이 애가(lamentation) 구절이 철원역지를 보면 저절로 읊어질 것 같다.
경원선은 경의선과는 달리 남북이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니 지도를 펴 놓고 옛 철길 궤적을 한번 추적해 보도록 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그림 한 장으로 모든 게 설명된다.
좌측 최하단의 '묘장로' 인근에 있는 붉은 점은 바로 지금의 경원선 종점인 백마고지 역이다.
그리고 근처의 오른쪽 위에 있는 점은 옛 철원 역으로, 지금은 민통선 안에 빈 터만 남아 있다.
더 위로 들판과 산지의 경계에 있는 붉은 점은 월정리 역이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남한 쪽의 논밭 들판들은 거의 다 민통선 내부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단, 월정리 역은 원래는 민통선 지대를 넘어 더 북쪽의 DMZ 내부에까지 걸쳐 있었으나 좀 덜 위험한 곳으로 살짝 옮겨져서 복원된 것이다.
그리고 철원 역도 지금은 국도 3호선에 딱 붙은 지점에 복원되었지만 원래 있던 곳은 그보다는 좀 더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북한으로 넘어가서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는 붉은 점이 바로 가곡 역으로 추정되는 지점이다. 북한의 월정리 역에 해당하는 버려진 역이다! 선로는 없고 역사 흔적만 있다.
다음으로 '평강군'에 걸쳐 있는 점은 평강 역으로, 오늘날 경원선의 북한 구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북한에서는 자기 구간을 강원선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쪽에 있는 푸른 점은 철원에서 금강산선의 궤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각각 한다리, 대위교, 그리고 전선 휴게소 인근에 있는 교각이다. 위의 자료가 정확하다면, 철원 역에서 분기한 금강산선은 남쪽으로 좀 내려간 뒤에 동쪽을 향해 간다는 걸 알 수 있다.

끝으로, 군사 분계선 인근의 분홍색 점은 제2 땅굴 입구가 있는 지점인데 참고로 첨가해 넣었다.

위의 점들이 다 철길로 연결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할까?
본인은 경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황룡사지보다도 철원역지, 장단역지 같은 이름을 들었을 때 더욱 가슴이 뭉클하고 뭔가 울컥함을 느낀다. 분단된 철도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이기에.

미국의 로스엔젤레스는 잘 알다시피 '천사의 도시'라는 뜻이고,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평화와는 별 관계가 없는 짓을 하는 북한 같은 또라이 반국가단체가 '평강, 평양' 등 '평'자가 들어간 지명을 갖고 있다는 건 참 역설적인 것 같다. 북한은 자기들의 악한 체제의 유지를 위해 주민들에게 절대로 자유를 주지 않으며 눈과 귀를 강제로 틀어막고 지내고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한편, 경의· 경원 라인과는 달리, 동해중부선 쪽은 일제가 한창 공사를 하다가 패망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쪽에는 영업을 하다가 우여곡절을 겪고 파괴되고 없어진 역 같은 건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4/11/16 08:41 2014/11/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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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과 경원선은 서울에서 시작하여 한반도의 북쪽으로 뻗어 나가는 양대 철도이며, 국토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철도이기도 하다.
전자는 개성과 평양을 경유하여 중국 국경을 접하고 있는 평안북도의 신의주까지 가고, 후자는 6· 25 당시의 원산 폭격으로 유명한 동해 항구 도시인 함경남도 원산까지 간다.

분단 이후 이들 노선의 대한민국 관할 구간은 잘 알다시피 장거리 일반열차를 운행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너무 짧아졌다. 서울-인천보다는 길지만 서울-춘천보다는 짧은 어중간한 거리가 됐다.

그래서 이곳은 전통적으로 통근형 디젤 동차가 강세이다. 세월이 흘러서 전국 각지의 디젤 동차들은 죄다 무궁화호 RDC 내지 기관차-객차형 무궁화호로 바뀌거나 심지어 전동차로 바뀌었지만, 경의선과 경원선만은 우리나라에서 최후까지 CDC(통근형 디젤 동차)가 남아 있는 노선이다. 그래서 CDC를 시승하고 안보 관광까지 덤으로 하려는 철덕들에게 좋은 여행 코스를 제공하고 있다. 통근열차가 통근용이 아니라 옛 명칭인 '통일호'나 다름없게 된 셈.

지난 2006년 말엔 의정부까지만 가던 수도권 전철 1호선이 무려 동두천과 소요산까지로 연장됐고, 2009년에는 회송 열차 트래픽으로 인해 금기의 영역이던 경의선에도 수도권 전철화의 손길이 뻗쳤다. 그래서 디젤 동차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대부분의 구간이 전철화가 되어 버린 경의선의 CDC는 문산-도라산 사이의 4개역만 다니는 15분짜리 셔틀 열차로 전락했다. 마치 서울 지하철 2호선 용답-신설동 지선 열차처럼 됐다.

그 반면, 경원선은 비전철 구간이 경의선보다 더 길기 때문에, CDC가 다니는 역이 아직 9개이고 전구간 완주 시간도 46분가량이다. 동두천-소요산은 단선 전철로, CDC와 전동차가 공유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경의선과 경원선의 지리적 여건에 대해서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휴전선은 한반도의 서쪽으로 갈수록 더욱 남쪽으로 내려가고, 동쪽으로 갈수록 더욱 북쪽으로 올라가는 선형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쪽이 북한과 더 가까우며, 이런 이유로 인해 경의선이 경원선보다 더 짧다. 경원선의 연천군 구간은 경의선으로 치면 이미 북한 관할로 넘어간 개성과 장단 구간이다. 38선 시절에는 남한 관할이었지만, 6· 25 때는 북으로 빼앗겼기 때문.

경의선은 북한과 더 가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김 대중 정권 시절에 철도가 연결되었으며 임진강 역 이북의 민통선 내부에 도라산 역이 생겼다. 덕분에 통일만 되면 경의선 열차를 타고 당장 북한으로 갈 수 있다. 전기 규격이 남과 북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로 같은 게 없으니, 비록 전철은 직통 운행을 못 하겠지만 말이다. 당대의 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한 다른 행적이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철도가 연결됐다는 건 정치색을 배제하고 철덕의 순수한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다.

경의선과 관련한 유물로는, 장단 역에 있던 증기 기관차 한 량이 6· 25 때 폭격을 당해서 총알 벌집이 되고 탈선하여 버려진 것이 잘 알다시피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서쪽에 경의선이 있다면 동쪽에는 동해북부선(강원도 고성군. 속초보다도 더욱 북쪽 완전 끝에 소재)이 옛날에 남북 관계가 좋던 시절에 연결되었다. 경의선의 도라산에 해당하는 동해북부선의 역이 바로 제진 역이다. 하지만 거기는 연계되는 간선 철도가 없으니 인지도와 효용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너무 멀기도 하고 말이다.

일제가 포항 이북으로 건설하려다 말았던 동해중부선이 계획대로 완공되었다면, 포항, 영덕, 울진, 삼척이 철도로 연결되고 지금 영동선의 지선으로 간주되는 삼척선이 당당히 동해선으로 명명되었을 것이다. 이 공사는 일제가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고 한반도에서 물러나면서 중단되었다. 일제가 한반도에 건설하던 최후의 철도인 셈이다.

이러한 경의선이나 심지어 동해북부선과는 달리, 경원선은 남북 철도 복원 같은 논의가 없었다. 그래서 철원이나 월정리처럼 위치가 영 좋지 않던 역은 그렇잖아도 전쟁 때 역사와 선로가 파괴되기도 했는데 일찌감치 시설이 철거되었으며 철도가 끊어졌다. 도라산이나 제진 같은 민통선 허브역이 이 노선에는 없다.

이 부근에서 군생활을 한 분이라면 절대 잊어버리시지 않겠지만, 경의선에 임진강이 있다면 경원선에는 한탄강이 있다.
경원선의 종점인 신탄리 역의 이북에는 그 유명한 '철도 중단점 -- 철마는 달리고 싶다' 기념비가 있었다. 그러나 코레일에서 신탄리보다도 더 북쪽에 '철마고지'라는 옛 철원 역과 비슷한 위상의 역을 신설하면서 그 기념비는 철거된 상태이다.

경의선과 경원선의 잔여 비전철 구간에는 1시간에 1대꼴로 CDC가 다닌다. 전철을 타다가 털털거리는 트럭 엔진 소리가 나는 CDC를 타 보면, 전철이 얼마나 조용하고 우아하게 달리는 아름다운 육상 교통수단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배차 간격이 저런 이유는 수요가 없어서라기보다도, 단선 철도에서 근본적으로 1시간에 1대보다 열차를 더 자주 투입하기란 도저히 무리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당 지금 같은 운임으로 별도의 디젤 동차를 굴려서 코레일의 입장에서 이윤이 남는 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밑지는 장사를 일부러 공익 차원에서 해 주는 것이다. 분단 같은 국가적인 사정만 아니었으면 이런 열차는 진작에 없어졌거나 전철 형태로 마저 바뀌었을 것이다.

CDC의 운임은 수도권 통합 요금과 연동되지 않는다. 적자를 감수하고 운행하는 걸 아니 환승 할인은 안 해 줘도 좋은데, 티머니 교통 카드로 운임 지불이라도 좀 가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한 우진 님 같은 분이 그걸 건의하신 적도 있다.

21세기가 되면서 우리나라의 철도는 KTX의 개통과 함께 새로운 트렌드가 시작되었다. 기존의 새마을-무궁화-통일호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콩라인 새마을호는 2010년대 중반까지 차량이 모조리 퇴역하여 차종 자체가 사라질 예정이고, 통일호는 명칭 자체는 진작에 없어져서 통근열차로 대체되었으며 이마저도 사라지는 중이다. 그 대신 기존 열차의 통념을 깨는 전동차들이 여럿 도입되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북한을 향하고 있는 경의선과 경원선의 비전철 구간은 전동차, 코레일체 유리궁전 등 21세기의 모든 철도 트렌드에서 소외된 채 시간이 정지된 상태로 국토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비록 지금까지 나쁜 불순분자들에 의해 본디 의도가 극도로 더렵혀지고 왜곡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궁극적으로 되어야 하고 필요한 것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그래도 한국어와 한글을 쓰는 사람끼리라도 최대한 뭉쳐야 살지 않겠냐 말이다.

금강산도 백두산도 보고 싶고 개마 고원에도 가고 싶고 압록강과 대동강과 두만강도 구경 가고 싶지 않은가? 의정부 역은 북쪽의 수원 역 같은 역이 되어야 할 것이고 수색과 성북 역은 서울 북부의 영등포 같은 큰 역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경의선과 경원선도 서울 시내 구간은 그야말로 2복선, 3복선급으로 확장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민족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인 김씨 왕조에 대한 잔재를 지우고 우리나라의 체제와 정체성을 유지한 통일(흠, 그럼 흡수 통일이네-_-)이 이뤄져, 철마가 북녘 '미수복 영토'까지 마음껏 달리는 날이 주님 다시 오시기 전까지 이뤄지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2/12/28 08:32 2012/12/2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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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철 경원선(중앙선)의 모든 것

서울 강북에는 예전부터 '국철'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전철 노선이 있었다.
경인선이나 경부선과는 달리, 이 전철은 나름 서울 중심부 구간에서 한강을 따라 미려한 경치를 선사하면서 지상으로 달렸다. 딱히 이름도 없이 그냥 국철이었고, 배차 간격이 12~15분대로 다른 지하철보다 꽤 길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 국철의 명목상 노선색은 군청색으로, 마치 1호선의 지선처럼 취급되었다. 그런데 지선은 본선에서 뻗어나가서 제 갈 길을 가는 형태가 보통인 반면, 얘는 용산에서 분기하여 한남, 옥수 따위를 지난 뒤에 다시 청량리에서 합류하여 일종의 고리를 형성했다. 여러 모로 특이한 노선이 아닐 수 없었다. 정식 명칭도 없는 이 국철의 정체에 대해 본인은 어릴 때부터 굉장한 호기심을 품어 왔다.

이것은 오늘날 '수도권 전철 중앙선'이라고 불리는 코레일 광역전철 노선의 옛날 모습이었다.
물론 용산-한남-옥수-청량리 구간 자체는 원래 경원선이라고 하여 일제 강점기 초창기인 무려 1911년부터 있던 철도이다. 그 경원선이 청량리와 성북과 그 이북으로 올라가서 신탄리까지 가고 북한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되면서 경원선은 경의선과 더불어 반쪽짜리 노선이 되었다.

수도권 전철이 개통하기 전에 경인선과 경부선(수원 이북)이 그랬던 것처럼, 경원선에는 용산에서 신탄리까지 디젤 동차가 다녔다(아마 비둘기호급?). 1974년의 광복절에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고 경부선· 경인선과 심지어 경원선의 일부 구간이(성북까지) 1호선에 편입되어 전동차가 직결 운행하기 시작했지만, 그때 경원선에는 아직 변화가 없었다. 다시 말해 회기-성북은 1호선 전동차와 기존 경원선 디젤 동차가 선로를 공용했다.

오히려 경원선은 철거당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1969년, 박통 시절에 서울의 유명한 자동차 도로인 강변북로가 건설되었는데, 경원선을 그냥 철거해 버리고 그 부지를 이용해 도로를 손쉽게 건설하자는 제안이 채택될 뻔했던 것이다. 그렇잖아도 경원선 서울 시내 구간은 도시 개발에 방해가 되고 잉여력만 펄펄 넘쳐 보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엔 용산과 청량리 사이에 어차피 역도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러나 이때 사명감 있는 철도 관계자들은 경원선을 절대로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그 의견에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우리나라 철도 건설사의 산 증인인 정 진우 박사의 저서 <평생 인연 철도 건설>을 보면 그 일화에 대해 잘 소개돼 있다. 저분은 경원선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경부 고속철 건설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고 우리나라에 고속철의 필요성을 적극 역설한 고속철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 책은 철덕들에게 강추인 아주 유익하고 귀한 문헌이니, 일독을 권한다.

저런 분들 덕분에 경원선은 철거와는 반대의 운명을 갔으며, 1978년 12월, 서울 지하철 1호선에 이어 별도의 복선 전철 노선으로 거듭났다.
비록 1974년 8월만치 유명한 날짜는 아니지만 철덕이라면 저 날짜도 잊지 말자. 이를 계기로 성북 역은 지하철 1호선과 국철의 동시 종점이 되었으며, 그 이남은 두 노선이 공히 디젤 동차가 완전히 퇴출되었다. 그리고 강변북로는 철길을 건드리지 않고 강변과 더 가까이로 건설되었다.

경원선 용산-이촌 사이에는 절연 구간(사구간; dead section)이 있다. 직류· 교류가 바뀐다거나 변전소가 바뀌어서 그런 건 아니다. 철길 위로 지나는 어느 노후한 교량의 높이가 너무 낮아서 전차선을 설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잠시 전력 공급이 중단된다. 그런데 거기는 그렇잖아도 급커브 때문에 열차가 굉장히 천천히 달려야 하는데, 관성으로 무동력 운행까지 해야 하니 좀 불안하다.

서빙고 역 근처에는 아예 평면교차 건널목이 있고 열차가 지나가기 전에 차단기가 내려온다. 덜덜~ 전동차가 지나는 길목에 건널목이라니. 1호선도 북쪽 어느 구간에 딱 하나 아직 입체화가 되지 않은 건널목이 있다. 건널목 있지, 일반열차도 가끔씩 취급하지, 1호선과 공용하는 선로가 있지...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국철 경원선은 지하철 수준의 증차가 곤란하다.

게다가 경원선 국철은 옛날엔 사람과의 평면교차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용산 이남으로는 어차피 운행을 안 하니까 별 문제될 게 없는 반면, 청량리-회기에서는 1호선과 합류해서 같이 성북으로까지 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평면교차가 존재했다. 용산에서 출발한 경원선 전동차가 1호선의 상행(=원래 경원선인) 선로로 합류하기 위해서는 1호선 하행의 선로를 필연적으로 침범해야 했다.

예전에 성북,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1호선 상행 전동차들이 청량리-회기 구간에서 심심하면 정체· 서행을 반복했던 주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말이다.
과거엔 1호선의 남쪽 끝인 수원 역에도 전동차가 아예 일반열차 선로를 침범하여 회차하느라 평면교차 장애가 있기도 했으니... 1호선은 이렇듯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병목 지점들이 존재했다. 덧붙이자면, 인천 역은 평면교차 지장은 없지만 인상선도 없는 열악한 두단식 승강장이어서 회차 성능이 영 안습이었고.

그러다 국철 경원선에 봄이 찾아온 것은 2005년, 덕소 역까지 수도권 전철 중앙선이 개통하고부터이다. 이 국철은 운행 계통상 경원선이 아닌 중앙선으로 편입되었고, 청량리-성북 구간에 더부살이를 하지 않는 별개의 노선으로 독립해 나갔다. 평면교차 장애가 없어진 것은 보너스. 과거에 안산선이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경부선 지선처럼 운행되기도 하다가 결국은 4호선으로 운행 계통이 완전히 분리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중앙선은 고유 노선색(옥색)까지 부여받았다! 더는 이름 없는 국철이 아니다.
옛날에는 이 노선에 이름도 없어서 안내방송조차 “옥수· 청량리 행 열차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였는데 이제는 다 지나간 얘기. 이미 수 년 전부터 '중앙선'이라는 당당한 이름이 생겼다.

2000년도에 서울시에서 기존 지하철과 직통 운행을 하는 국철들은 다 지하철 호선 번호로 노선명을 통합했다. 그런데 용산-성북 국철은 지하철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면서 1호선에 또 붙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분당선만치 독립적인 노선도 아니다 보니, 꽤 오랫동안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중앙선부터 시작해 경의선, 경춘선 등 워낙 국철들이 많이 개통하다 보니 국철이라는 말은 조용히 사라지고 각 노선명을 따로따로 부르는 게 대세가 되어 있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2009년에 드디어 수도권 전철로 탈바꿈한 경의선도 옥색 노선색을 쓰고 있고,
경의선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수도권 전철로 탈바꿈한 경춘선은 마치 중앙선에서 분기하는 지선 같은 위상으로 동일한 옥색을 쓰고 있다.
옛날에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선은 빨강, 국철들은 다 회색을 쓰던 노선 배색이, 회색이 옥색으로만 탈바꿈하여 되돌아온 게 아닌가 모르겠다.

다만, 경의선과 경원선은 궁극적으로 상호 직통 운행을 하여 파주에서 양평까지 한큐에 가게 하겠다는 계획이 잡혀 있으니, 지금부터 동일한 노선색을 쓰는 게 합리적인 정책이긴 하다. 오오~ 40년 전에 철거 위기까지 맞았던 경원선이 이 정도면 가히 장족의 발전을 한 게 아닌지?

이들에 이어 다른 국철인 분당선은 왕십리까지 올라가고 수원까지 내려가서 수인선하고까지 직결이 계획되어 있다! 노랑 국철과 옥색 국철의 거대한 발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경의선과 경원선이 만날 때쯤엔 건널목도 입체화하고, 특히 용산-이촌 사이의 절연 구간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경원선상에 있는 용산과 회기 역이 6, 7년 전에 비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변했는지가 아직까지 기억에 선하다. 특히 용산은 KTX 정차역으로까지 지정되었으니, 비록 광장은 서울 역보다 좁지만 건물 덩치는 서울 역보다 더 커졌다.
왕십리와 청량리 역은 크고 아름다운 민자역사로 바뀌었고 청량리의 경우 역시나 거의 30년 만에 지하철과 국철역 사이의 환승 통로도 드디어 생겼다.

왕십리 역은 민자역사가 생기기 전에는 마치 신도림 역처럼 코레일 관할의 역사 자체가 없어서 이것도 2호선과 동시 개통한 최신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그렇지는 않다. 경원선의 이 지점에 역 자체는 이미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역사가 아주 길다.
저런 메이저 역들과는 달리 응봉, 한남 같은 역은 서울 도심의 시골 간이역 같은 정취가 여전히 물씬 풍긴다. 직접 가 보면 안다. 응봉과 옥수 역은 굉장한 곡선 승강장역으로도 유명하다.

성북 역은, 경원선 국철이 없어지고 최근엔 경춘선 무궁화호도 없어지면서, 역의 규모에 비해 이제 1호선 전철만 탈 수 있는 평범한 역이 되어 버렸다. 경원선이 북한으로까지 뻗어나갔으면 가히 강북의 영등포 같은 역이 됐을 텐데 아쉬울 뿐. 그래도 국철과 경춘선으로 인해 야기되던 고질적인 평면교차는 완전히 사라졌으니 앞으로는 1호선 하나만이라도 쌩쌩 운행 잘 해 주길 기대하겠다.

중앙선이 이렇게 발전하고 있는 동안 1호선이 접수하고 있는 경원선 북쪽 구간도 전철의 세력이 커져서 지금은 무려 소요산까지 가 있다. 디젤 동차인 CDC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짤막한 단선 비전철 구간을 생각하면 그저 안습뿐. 거기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1시간에 한 대꼴 열차보다는 차라리 20분에 한 대꼴 셔틀버스를 굴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경원선을 접수하고 있는 용산 역하고, 우리나라 킹왕짱 역인 서울 역과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서울 역은 지금의 민자역사 말고 옛날 건물 시절부터 거의 공항 수준으로 크고 아름다웠고, 이름에 걸맞게 경부· 호남· 전라· 장항선에 심지어 경의선과 교외선까지 혼자 다 취급하던 역이었다.
그랬는데 고속철이 개통하면서 뭔가 서남쪽으로 가는 호남· 전라· 장항선 노선은 용산 역으로 이사를 갔다. 이것 때문에 지역 차별이라고 굉장히 불만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행선지별로 역이 이원화하는 것은 결코 나쁜 현상이 아니다. 청량리 역이 중앙· 경춘· 영동· 태백선 열차를 취급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강원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아무 불만 없었는데. -_-
역을 이원화하는 주 이유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회차 용량과 취급 가능한 열차수를 늘리기 위해서이다. 거의 10분 간격으로 운행 가능한 그 많은 KTX 열차들을 서울 역 부지에다가만 세워 두기엔 공간이 부족하잖아? -_-;;

더구나 용산 역은 앞으로 경의선까지 뺏어 와서 경의· 경원· 중앙선 횡축에다 1호선 종축의 연계 전철망까지 구축하게 된다. 서울 역에서 출발하는 경의선은 회송 열차 트래픽도 있고, 또 신촌 같은 역도 있다 보니 아주 없애지는 못하지만 여객 전철은 여전히 1시간에 1대꼴로 아주 뜸하게 운행된다. 경의선이 비주류인 대신 서울 역은 잘 알다시피 공항 철도를 확보해 있다.
이렇듯, 서로 일장일단이 있으니
서울· 용산 구분이 무슨 지역 차별이라는 식의 말은 없었으면 한다. 용산구도 의심의 여지 없이 서울의 중심부이다.

생각해 볼 문제:
국철을 탈 때와 지하철 1호선을 탈 때 용산-회기까지 소요 시간의 차이는 어느 정도 날까?
비슷한 문제로 공덕-청구(5, 6), 영등포구청-왕십리(2, 5), 도봉산-온수(1, 7)의 경우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03 08:43 2011/06/0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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