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6월 30일엔 수인선 복선 전철 1차 구간이 개통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에는 서울 수도권에서의 첫 경전철인 의정부 경전철이 개통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시기인 6월 27일에는 철덕들이 기릴 만한 아주 의미심장한 사건이 또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딱 한 군데 존재하던 영동선 스위치백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문제의 장소는 태백선과 영동선이 합류하는 강원도 태백시와 삼척시 사이의 지점이다. 아래의 그림을 보기 바란다. (바탕 그림의 출처: 네이버 지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백산 역 이북으로 올라가는 영동선은 험준한 산을 오르느라 몹시 고달프다.
자, 무엇부터 설명하는 게 좋을까?
이번에 새로 개통한 노선은 연화산을 빙 도는 연보라색의 둥근 똬리굴(1)과 한 치의 곡선도 없이 북쪽으로 정면돌파하는 분홍색 선(2)이다. 이것이 기존의 초록색 선과 파란색 선을 대체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반세기 가까이 전에는 영동선에 인클라인이 있었다는 것을 철덕이라면 알 것이다. 거기는 철길이긴 하지만 경사가 지나치게 급해서 열차가 자기 힘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가 아니라, “레일을 깔아 놓았는데 왜 달리지를 못하니?”였다.
그래서 이 구간만 기관차와 객차를 한 량씩 크레인으로 끌어당기고, 승객들은 내려서 옆에서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크레인의 힘이 부족해서 승객이 내려야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객차에 승객과 짐이 꽉 차 있어 봤자 기관차 한 량보다 더 무거울 리는 없잖은가.
승객들을 부득이 다 하차시킨 것은 그냥 안전 문제 때문이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람들이 뒤에서 같이 객차를 밀어야 했던 건 더욱 아니다.

자, 그 인클라인이 있던 곳이 바로 지금은 폐역하고 없는 통리 역과 심포리 역 사이였고, 지도에서는 대략 '빨간색 선'에 해당한다. 이 1km 남짓 되는 인클라인을 8배가 넘는 거리와 그 대신 1/8 이하의 경사로 우회 대체시킨 것이 옆의 초록색 선이다.

그 뒤 그 이름도 유명한 스위치백은 N자 모양의 파란색 선이다. 초록색 선 정도의 회전 반경을 낼 공간마저 부족했던 관계로 부득이 열차를 정지시키고 후진을 하게 만든 것이다.

스위치백은 관광객에게는 흥미로운 체험 수단이지만 원시적이고 운전하기 까다로우며 열차의 원활한 운행에는 방해가 되는 존재였다. 게다가 구불구불한 기존 초록색-파란색 선로는 지반도 그리 좋지 않아서 위험했다고 하니,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대체할 깔끔한 선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다른 지대인 연화산 기슭을 한 바퀴 빙 돌면서 언덕을 오르는 대체 똬리굴이 개통했다. 평지가 아니라 터널이다. 똬리굴 자체는 우리나라에 이미 중앙선을 비롯해 몇 군데 있지만 이번에 개통한 건 국내 최대 규모이다. 이 터널의 이름은 '솔안 터널'이고, 터널 자체는 이미 2006년에 관통식까지 끝나고 완공되었다.

솔안 터널은 스위치백뿐만 아니라 과거의 인클라인 대체 우회 선로까지 훌륭히 대체했으며, 전체 거리는 기존의 우회 선로보다 더 단축시키고 열차의 운행 시간도 10분이 넘게 더욱 단축시켰다.
어떤 철도의 선형이 하루아침에 이 정도로 급격하게 바뀌고 지도까지 덩달아 바뀌는 일은 앞으로도 매우 드물 것이기 때문에 이는 국내 철도사에 길이 남을 큰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재래식 스위치백 선로의 폐선을 며칠 앞두고 코레일에서는 평소에는 정차하지 않던 스위치백 구간의 간이역에도 영동선 여객 열차를 정차시켜 줬었다. 거기서는 당연히 철덕들의 향연이 펼쳐지곤 했다.

그리고 좀 옛날 소식이긴 하다만, 지난 6월 초엔 웬 KTX 산천 한 편성이 강릉으로 디젤 기관차의 견인을 받아 끌려가서 스위치백까지 넘는 사상 초유의 이벤트가 벌어졌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도 열리는데 앞으로는 강원도에도 고속신선이 깔리고 고속철이 들어갈 거라는 홍보 행사를 위해 현역 고속철 한 편성이 얼굴마담 자격으로 끌려간 듯하다.

발상 자체는 좀 병맛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KTX 산천이 강원도에 들어와서 스위치백 고개를 넘는다니, 게다가 한 달 남짓 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그 스위치백을 말이다. 이 소식은 전국의, 아니 듣자하니 심지어 일본의 일부 철덕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았다. 이 KTX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철덕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집중적으로 받았으며, 자가용을 굴리는 철덕은 아예 도로를 나란히 달리면서 열차를 따라가며 사진을 찍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비록 죄악도 있으나 일말의 아름다움도 갖추고 있다. 비록 본인은 교회크리와 논문크리 때문에 그 당시에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했으나,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응원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2/08/22 08:46 2012/08/22 08:46
, , , ,
Response
No Trackback , 6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723

철도 차량의 등판· 회차 요령

Q.
(1) 철도 차량이 급격한 오르막을 오르는 법
(2) 종착역에 도착한 철도 차량이 진행 방향을 돌리는 법 (대칭형 동차가 아닌 기관차+객차형 열차)

철도는 쇠로 된 궤도 위를 쇠바퀴가 구른다는 특성상 마찰이 작다. 그래서 수송 효율이 우수하여 일반 자동차보다 훨씬 더 길고 무거운 대형 차량이 연료를 적게 들이고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특성 때문에 철도는 자동차보다 가감속이 더디고, 경사를 오르는 데도 훨씬 더 취약하다. 또한, 길이 없는 곳엔 아예 가질 못하기 때문에 회차를 할 때도 선로 차원에서의 특별한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이런 크고 아름다운 덩치와 무게를 자랑하는 철도 차량은 위와 같은 두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동차에는 없는 대응 방식을 취해 왔다. 그런데, 대응하는 방식의 근본 사상이 서로 비슷한 구석이 있다.

A1. 차량 분리가 필요한 방식

(1) 인클라인: 열차를 한 량씩 별도의 크레인 시설로 끌어올렸다. 한국은 잘 알다시피 영동선 통리-심포리 사이에 딱 한 군데 있었다. 영동선이 갓 개통한 1940년부터 1963년까지 말이다. 아래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명한 사진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정도 경사의 기울기가 약 270퍼밀이었다고 한다. x축으로 1km (1000m) 이동하는 동안 y축인 위로 270m를 오르는 기울기라는 뜻이다. 일종의 탄젠트값인데, 각도로 환산하면 15도 정도 됐다고.

이건 철도 차량의 등판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기울기였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기관차+객차형 열차가 무리 없이 버티는 오르막의 기울기는 고작 35퍼밀. 각도로 환산하면 겨우 2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시절엔 기관차의 엔진 출력도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했을 텐데.

철도를 요 모양으로 만든 덕분에, 당시 영동선은 결국 이 언덕 앞뒤로 쪼개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철도로 통과할 수 없는 철도 구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기술과 자원으로는 길을 이렇게밖에 낼 수 없었나 보다. 어지간한 요즘 버스의 공인 등판능력이 320~400퍼밀 남짓(약 18~20도)이니, 저 구배는 자동차로도 1단 기어가 필요한 만만찮은 코스이다. 아예 30도가 넘어가는 급경사는 4WD 차량 정도나 오를 수 있다.

인클라인은 통과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 동안 승객은 저기 왼쪽의 행렬에서 보듯, 열차에서 내려서 1km 남짓한 거리를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같이 뒤에서 열차를 민 건 아니고.. 요즘 같았으면 차라리 연계 셔틀버스라든가, 스키장처럼 언덕을 오르는 리프트나 에스컬레이터라도 만들었을 텐데 그 시절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고... -_-;;; 정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승객은 그렇다 치고 화물은 어떻게 하려고?

이 악명 높던 인클라인은 이미 반세기 전에 없어져서 아래에서 설명할 루프 터널로 바뀌었다. 1km 남짓한 거리를 8.5km로 우회하여 오른다. 그래도 그렇게 우회하는 게 철도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월등히 낫다.

그런데 어째, 철도의 등판 한계인 35퍼밀은 바닷물의 평균 소금 농도와 같은 값(3.5%)이다. 어?? 경부 고속철의 설계 최대 구배도 이 정도이며, 오늘날 지하철이 지상-지하를 오르내리는 구간(대표적으로 뚝섬유원지-건대입구, 남영-서울역 같은) 역시 그 정도 구배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영동선 옛 인클라인의 구배 퍼밀값 : 일반 철도 차량의 구배 한계 = 사해의 소금 농도 : 일반 바닷물의 소금 농도 = 250~270 : 35 얼추 비슷하다! 세계 지리 상식과 철도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 내는 데 성공했다. ㅋㅋㅋㅋ

(2) 전차대: 턴테이블이다. 열차를 한 량 떼어낸다는 점, 그리고 공간이 가장 적게 든다는 점에서 인클라인과 같은 급으로 분류했다. 옛날 철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골의 종착역--가령, 과거의 장항 역--에서 이런 시설을 볼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관차만 방향을 바꾸며, 객차는 위치 고정이다.
전차대는 여러 모로 옛날 철도의 유물인 게, 전기 기관차에는 팬터그래프 방식이든 제3궤조 집전식이든, 적용하기가 좀 므흣하다. 왜 그런지는 이유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기차 스핀
을 만든 용자가 있었다. 100톤이 넘는 기관차가 진짜 저 속도로 뱅글뱅글 돌면 그 원심력은... ㅎㄷㄷㄷㄷ 저기 맞으면 바로 끔살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2. 전진· 후진과 선로 전환이 필요한 방식

(1) 스위치백: 큰 경사를 여러 작은 경사로 쪼개서, 쉽게 설명하자면 Z 자 모양으로 전후진을 반복하며 지그재그로 경사를 오른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영동선 흥전-나한정-도계 구간에 유일하게 스위치백이 있다.

이 방식은 인클라인보다야 훨~씬 더 나아졌지만, 열차를 몇 번이나 세워야 하고 진행 방향을 바꾸고 선로 전환도 하는 등, 1차원 교통수단인 철도가 수행하기에는 번거로운 절차가 많아서 불편하다. 선로가 끊어지는 곳까지 후진을 하는 건 기관사의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있는 작업이고, 뒤를 봐 주는 승무원도 필요하다.
그래서 스위치백을 아래의 루프 터널로 대체할 거라고 5~6년 전부터 얘기가 있었지만 2010년 현재까지도 영동선의 스위치백은 건재한 실정이다.

(2) 스위치백과 비슷한 발상으로 열차를 회차하는 방식은 바로 삼각선이다. 간단하다. Y자 모양의 선로에서 전진→선로 전환→후진→선로 전환→전진. 자동차로 치면 수직 T자형 주차와 비슷한 동선이다.
이 역시 주행과 정지를 반복해야 하고 선로가 끊어지는 곳까지 추가 진행이 필요하기 때문에, 덩치 큰 철도 차량에는 위험 부담이 있다.

A3. 루프

(1) 오늘날 대세가 되고 있는 방식은, 마치 나사처럼 경사를 빙글빙글 돌면서 오르는 루프이다(터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로는 똬리굴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열차의 동선이 마치 뱀이 똬리를 동그랗게 튼 꼴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중앙선에는 금교1터널, 죽령 터널이 이 방식으로 건설되어 있다.
건설하는 데 공간이 많이 필요하고 선로의 길이가 길어진다는 흠이 있지만, 열차를 세우지 않고 신속하고 안전하게 통과시킬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2) 회차를 하는 데도 동일한 아이디어가 적용된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응암 순환 구간을 생각하면 바로 이해될 것이다. 루프를 한 바퀴 돌면 자동으로 열차의 방향이 바뀌니 얼마나 좋은가?
부지가 충분히 넓은 일부 철도 차량 기지(지하철 포함)에도 변두리에는 차량을 이렇게 돌릴 수 있는 선로가 존재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11/08 19:29 2011/11/08 19:29
, , , , ,
Response
No Trackback , 3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595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983922
Today:
1659
Yesterday:
1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