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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07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by 사무엘 (8)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우리나라의 문자 언어 문화는 지난 20세기 후반에 큰 변화를 겪었다. 이는 두 양상으로 요약된다. 첫째로 한자를 섞어 쓰는 빈도가 크게 감소하였으며, 둘째, 세로쓰기가 전멸하다시피 하고 가로쓰기가 대세가 되었다. 사실, 예전에 한글 학회의 슬로건이 “한글만으로 가로로 쓰자”일 정도였다. 한글 전용만 주장한 게 아니라 가로쓰기까지 주장했다는 뜻.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세로쓰기는, 태생상 세로로 길쭉할 수밖에 없는 간판이나 책의 등짝 같은 극소수 제한된 환경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하다. 더 나중에는 그런 곳에서마저도 세로쓰기를 하느니 차라리 영문 문화권처럼 가로쓰기를 90도로 돌린 표기로 대체될지는 모르겠다.

붓글씨+세로쓰기 스타일이던 성경책은 이미 1990년대 중· 후반부터 한국 교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지 오래이다. 신문은 1990년대 초반에 한겨레가 처음으로 한글 전용+가로쓰기를 시작한 후, 1999년에 그 보수적인 조선일보마저 가로쓰기로 돌아섰다.

출판물뿐만이 아니라 영상 매체에서도 분명한 추세를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TV 프로에서 방송이 시작되기 전 ‘제공’이라는 명목으로 뜨는 광고주 리스트라든가, 일부 중요 인명이나 문구는 때에 따라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혼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 가로쓰기이다.

영화관에서는 과거에 길쭉한 스크린의 우측 상단에 으레 세로쓰기로 뜨던 한글 자막도, 이미 옛날에 가로쓰기로 다 바뀌었다. 세로쓰기는 확실히 낡은 구닥다리 스타일로 간주되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할까?

세로쓰기가 천덕꾸러미가 되고 도태된 가장 큰 이유는, 컴퓨터가 세로쓰기를 전혀 하지 않는 문화권에서 처음으로 발명되었고 따라서 세로쓰기도 컴퓨터에서 직관적으로 처리하기 곤란한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전락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물론, 본인은 명백히 가로쓰기에 익숙한 가로쓰기 지지자이다. 세로로 써진 빽빽한 글은 한국어가 한국어처럼 덩어리 단위로 눈에 확 들어오질 않는다. -_-;; 일단은 가로든 세로든 자기에게 익숙한 방향의 텍스트가 눈에 더 빨리 들어오겠지만, 아무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두 눈이 가로로 달려 있는 이상, 가로쓰기가 더 유리하게 읽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세로쓰기를 일부러 의도적으로 배척할 필요는 없고 제목이나 장식용으로 제한적으로는 적절하게 활용하는 게 한글의 특성도 살릴 수 있고, 공간 활용 면에서 더 효율적이지 않냐 하는 정도의 견해를 갖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저렇게 읽기 불편한 세로쓰기 책들로 도대체 어떻게 독서와 공부를 했을까?

마치 요즘 자동차들이 전부 자동변속기로만 나와서 운전자들이 수동변속기 운전의 묘미를 경험할 기회가 없는 것처럼, 가로와 세로쓰기가 모두 가능한데 오로지 가로쓰기만 함으로써 우리가 다른 방면에서 얻는 기회비용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열린 가능성을 생각해 볼 의향은 있다는 뜻이다. 그렇잖아도 요즘은 컴퓨터도 온통 와이드 화면이 대세인데, 이런 곳에서는 세로쓰기가 공간 활용이 더 효율적이기도 할지 모른다. (가독성 같은 다른 요소는 제끼고 오로지 공간 효율만)

오늘날 국내엔 세로쓰기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 극소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강경한 한자 혼용론자이고 세로쓰기를 거의 종교적인 숭배에 가까운 수준으로 미는 경향이 있는데, 본인은 그런 주장에까지 공감하지는 못한다. 가령,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때문에 남한의 지식· 학문의 수준과 깊이가 하락하고, 사상까지 온통 좌경화되었다는 식의 드립. -_-;;

원래 한자의 종주국이 세로쓰기의 종주국이기도 한지라 한국과 일본의 세로쓰기 관행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20세기 중반에 간체자를 만들고 가로쓰기를 전면 시행하면서 어문 규범이 크게 바뀌었고, 한국 역시 스타일이 상당 부분 서구화했다. 현재는 일본만이 세로쓰기를 아주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소프트웨어의 국제화에서까지 진지한 고려 대상이 되어 있다.

윈도우 운영체제의 경우 한글 글꼴의 이름 앞에 ‘ @ ’가 붙은 세로쓰기 바리에이션 글꼴을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편집 중인 텍스트의 방향이 가로인지 세로인지 운영체제 IME에게 알려 주는 프로토콜도 제공한다.  MS 워드에서 MS IME나 <날개셋> 한글 입력기로 한글-한자 변환을 해 보면, 세로쓰기 중일 때는 한자 후보 리스트도 세로쓰기로 나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날개셋> 타자연습은 아예 세로쓰기로 타자 연습도 가능하다. ㄲㄲ

일본은 자기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 이름-성 순으로 표기하는 건 일찌감치 서구화했으면서, 세로쓰기는 서양 스타일을 따르지 않고 자기 식으로 고수하고 있으니 흥미로운 차이인 것 같다. 미국이 관습상 110V 전압과 비표준 단위계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만큼이나 일본 역시 세로쓰기를 언제까지나 고집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서양의 라틴 알파벳 문화권에서는 진짜 크로스워드 게임 같은 데서나 세로쓰기를 볼 수 있는 듯하다. 애초에 단어의 일부가 양 줄에 걸쳐서는 안 되는 정서법이니, 세로쓰기와는 더욱 어울리기 힘들다고 볼 수 있겠다.

문득 드는 생각은, 한글에도 세로쓰기 용도로 잘 튜닝된 글꼴이 개발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가로쓰기용 가변폭 글꼴이 ‘이’보다 ‘빼’가 더 길쭉한 것처럼, 반대로 세로쓰기용 가변폭 글꼴은 ‘이’보다 ‘봅’이 더 길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 개 같은 글자가 세로로 배열되었을 때 구조적으로 중심이 잘 잡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당장 가로쓰기용으로도 가변폭 글꼴이 연구된 게 잘 없는데, 벌써 세로쓰기까지 생각하는 건 사치인 것 같다. ㅋ

Posted by 사무엘

2012/03/07 08:25 2012/03/0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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