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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27 철도 건널목 이야기 by 사무엘

철도 건널목 이야기

철도와 일반 도로가 평면 교차하는 곳에는 잘 알다시피 건널목이라는 게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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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차량은 어지간한 육상 자동차하고는 잽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질량을 갖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억소리나는 운동 에너지를 자랑한다. 그렇잖아도 이렇게 무거운 데다 쇠로 된 바퀴로 쇠로 된 길을 달리기 때문에 철도 차량은 가감속이 무진장 더디다. 새마을호가 비상 제동 수준의 강한 제동을 걸어야 시속 100km 상태에서 무려 600m를 더 진행한 후에야 완전히 멈춰 설 수 있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열차가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주변의 다른 사람이나 자동차들이 알아서 피해야 한다. 열차는 장애물 앞에서 딱 멈춰 설 수가 없다.
그러니 건널목에서는 열차의 통과 우선순위가 언제나 갑이다. 사람과 자동차들이 기다리지, 열차가 잠시 멈췄다가 사람과 자동차들을 피해 다니는 일은 없다.

건널목에서 충돌 사고가 났다 하면 육중한 열차는 하나도 탈이 없지만 자동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개발살이 난 채로 수십~100수십 미터를 질질 끌려가며, 사람이 치이기라도 하면 즉시 끔살 당한다. 철도 차량 객차 내부에 안전벨트가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와는 달리, 사람이 밖으로 튕겨져 나갈 정도로 급정거를 할 일이 없기 때문.

물론, 속도를 주체하질 못한다는 특성이 장점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닌지라, 장애물과 충돌한 열차가 그래도 뒷부분이 도무지 멈춰 서질 못한 나머지 탈선해서 앞 객차를 타넘고 오르는 일이라도 생기면, 철도로도 대형 인명 참사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건널목에도 세 가지 모델이 있어서 비교적 통행량이 많은 건널목은 표지판+노란 색의 차단기+경보기 3콤보가 모두 갖춰져 있지만, 잉여스러운 장소에는 몇몇 요소가 생략된 건널목도 있다. 자기 폐색 구간에 열차가 바퀴가 닿은 게 감지되면 띵동~ 띵동~ 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온다. 그리고 열차가 다 지나가면 다시 차단기는 올라간다.

우리나라의 교통 관련법에 의하면 철길과 도로의 교차는 45도보다 작은 각도로 하지는 않게 되어 있다. 대부분이 90도 수직이지만, 그래도 시골 도로를 보면 예각 교차도 그럭저럭 볼 수 있다. 건널목 사고를 줄이기 위해 요즘은 많은 건널목이 입체화되었으며, 특히 오늘날 새로 건설하는 철도는 건널목을 전혀에 가깝게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원선은 서빙고 역 일대와 회기-외대앞 역 사이에 일반열차도 아닌 전동차가 수시로 다니는 선로에 건널목이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서 입체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본인은 어렸을 때 주변에 중앙선 철길이 있는 지역에서 자랐다. 철길이 지역을 심리적으로 양분하는 효과는 무척 컸다. 옛날에 나라 분위기가 더 살벌하던 시절에는 ‘철길로 다니지 맙시다’와 더불어, 레일 위에다 돌을 올려 놓아서 열차 운행을 고의로 방해하거나 열차를 전복시키는 자는 무슨무슨 형에 처해진다는 경고문도 꼭 붙어 있었다.

우리나라에 발생했던 상당히 참혹한 건널목 사고로 철덕이라면 1970년의 장항선 모산 수학여행 참사를 기억할 것이다. 그건 아주 극단적인 예이다.
2002년 5월 1일에는 잘 알다시피 전라선 상행 새마을호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괴이한 3콤보 건널목 인명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오늘날에도 전국에서 건널목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연간 10~20여 명은 있는 모양이다. 이것도 물론 2, 30여 년 전의 100수십여 명에 비해서는 매우 크게 감소한 것이다.

비교적 최근인 2011년 7월 30일에는 좀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났다. KTX가 건널목에서 제네시스 승용차와 충돌하여 여성 운전자가 목숨을 잃었는데.. 아니, 고속선에서 시속 300km로 질주하고 있을 KTX가 호남선 구간도 아닌 무슨 연기군에서 웬 건널목 사고에 연루되는 게 가능한지 궁금할 것이다. 이 KTX는 대전-서울 구간을 기존선으로 달리는 녀석이었다.

건널목을 건너던 중에 차가 시동 꺼져 뻗은 것도 아니고, 자세한 경위를 들어 보니 정말 “아 씨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급이다. 차가 건널목을 통과하고 있던 도중에 차단기가 내려와 버렸다.;; 그래서 그 차는 철길에 갇혀 고립됐다. 타이밍 한번 정말 더럽다. ㄷㄷㄷㄷ

경부선은 복선이기 때문에 철길의 폭과 양쪽 건널목 사이의 간격이 단선보다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이런 케이스가 가능했다. 복선 건널목이 단선 건널목보다 더욱 위험하다는 건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마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하이패스가 인식되지 않아서 차단봉이 내려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일단 통과는 해야 하듯, 이때도 차 범퍼로 차단기의 철길 안쪽면을 툭 치기만 하면 차단기는 다시 올라가게 돼 있다. 차단기는 위험을 알려서 사람을 살리려고 만들어진 장치이지 사람을 잡으려고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랬는데,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그 운전자는 당황하여 그대로 차를 세운 채 철길 위에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하다못해 밖으로 탈출하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이 철길 밖의 건널목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냥 가만히 있었다. 열차가 알아서 정지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가 보다.

충돌 직전 몇 초 동안 KTX 열차가 비상 제동을 걸면서 필사적으로 경적을 빵빵 울릴 때 그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뒤 시밤쾅! 그 고급 승용차는 박살 난 채 전복되어 나뒹굴었다. 이건 뭐 스크린도어에 끼인 채로 열차가 출발해 버려서 사람이 죽은 것 같은 그런 기괴한 사고이다만, 더 근본적으로는 고인이 철도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여 벌어진 참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철도 당국은 사고의 원흉인 평면교차와 건널목을 없애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호 받으면서 수시로 가다 서다 하기가 어려운 교통수단일수록 자기만의 독립된 길에서 쭉 가기만 하게 해 주는 게 당연히 유리하니까 말이다.

다만 철도가 너무 입체화만 되면 사람의 발이 철길과 직접 교감을 할 기회가 없어지니, 발을 어느 정도 뻗어야 표준궤 궤간인지 감을 익히기가 어렵다. 난 고향에 가면 철길 건널목에 도보로 들를 일이 있을 때 그거 연습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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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여담 하나.

<다리>(Bridge)라고 2003년에 체코에서 만들어진 단편 독립영화가 있다. 원제목은 Most인데, 이건 영어의 형용사/부사를 뜻하는 most가 아니라, 자기네 체코 어로 bridge라는 뜻이다.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어느 강에 철교가 놓여 있는데, 이게 배가 지나갈 때는 공간 확보하려고 다리를 들어올리게 돼 있다. 다시 말해 이 다리는 승강교이며, 자동차가 아니라 배와 열차 사이의 평면교차로이다.
신호 지시에 따라 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관리자가 있고, 그에게는 어린 외아들이 있다. 그런데 어느 열차의 기관사가 적색 정지 신호를 못 본 채, 다리가 열려 있는 철교 구간으로 열차를 진입시키고 만다. 그러고 보니 이 열차는 가감속의 매우 힘든 증기 기관차이며, 영화의 배경은 20세기 초중반으로 보인다.
다리 관리실 근처에서 놀고 있던 아들은 멀리서 이 열차를 보고 황급히 놀라지만,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배경 소음 때문에 아버지는 상황 파악을 못 한다. 아들은 열차가 끊어진 다리로 더 진입을 못 하게 하려고 선로 쪽으로 달려가다가 잘못해서 다리의 부품에 끼이고 만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모든 상황을 파악한다. 지금이라도 다리를 황급히 내리면 열차를 아주 간신히 다리 건너편으로 통과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다리가 내려가면서 부품에 끼여 있던 아들이 끔살 당하게 된다. 그 반면, 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열차는 끊어진 선로 너머 강으로 추락하고 수백 명의 승객들이 죽거나 다친다.
이때 애 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결국 승객들을 살리는 길을 택한다. 다리를 내리는 스위치를 누른 후 절규한다. 열차 안의 승객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히 다리를 통과하는데, 예전에 굉장히 방탕하게 살던 한 여인만이, 이 일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예전의 방탕한 생활을 딱 끊고 결혼도 하고 바른 생활로 돌아오더라는 내용.


이 영화는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의도하고 만들어졌다. 그 다리 관리인이 자기 아들을 희생시켜서 수백 명의 승객들을 살렸듯이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도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이하 생략이다.

영화 제작자의 의도는 알겠으나, 설정이 좀 억지스러운 면모가 있긴 하다. 오늘날 철도에 구비되어 있는 기본 중의 기본 시스템인 ATS 하나만 있어도 적색 신호를 무시하고 가는 열차는 얄짤없이 자동으로 멈춰 서게 된다. 하지만 저 때는 아예 증기 기관차가 다니던 시절이니 기관사의 시력과 재량이 철도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겠다.

요즘은 그런 원시적인 후진국형 철도 사고는 근무 기강이 빠질 대로 다 빠진 막장이거나, 진짜 철도 인프라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곳에서나 난다.
아무튼 철도는 디테일을 알면 알수록 더욱 재미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2/05/27 08:24 2012/05/2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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