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선에 이어서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의 산악 철도 얘기를 좀 더 늘어놓아 보겠다. 즐거운 한국 철도 역사 탐방 -- 태백선 편이다.
태백선은 중앙선(제천)과 영동선(동백산) 사이에 있으며, 우리가 서울에서 강릉으로 열차를 타고 갈 때 거치는 노선이다. 고속철이나 대도시 광역전철이 아니면서 대한민국에 2013년 현재 마지막으로 건설된 지방 대 지방 ‘신규 간선 철도’로도 잘 알려져 있다.
태백선이 없던 시절엔 서울에서 강릉을 갈 때 무려 경상북도 영주까지 내려가서 영동선을 타고 다시 올라가야 했으니, 이는 어마어마한 우회와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태백선은 경부선처럼 처음부터 서울-부산 같은 식으로 전구간이 작정하고 한 번에 확 구상되고 건설된 게 아니다. 서로 다른 여러 소규모 철도들이 독립적으로 찔끔찔끔 건설되고 연장되어 왔는데 그것들을 통합하면서 최종적으로 태백선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이름도 여러 번 바뀌었다.
위키백과의 다음 그림이 태백선의 복잡한 내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철도 동호계에서 유명한 ‘조사부장’이라는 분이 만든 것이라 한다.
금강산선은 일제 강점기 때 건설되었다가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새로 치면 마치 멸종한 '모아'(moa)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태백선은 해방 이후에 전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 하에 건설되었다.
생각을 해 보시라. 예전에 한반도에는 탄광과 공장이 거의 다 북부 지방에 몰려 있었는데 그게 이제 전부 북한 차지가 되어 버렸다. 남한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자기네 지역에 있는 탄광이라도 개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산업선 철도의 건설은 국가의 생존이 걸린 과업이나 마찬가지였다.
1955년에 처음으로 제천-영월(약 34.1km) 구간이 건설된 것이 영월선으로, 이것이 태백선의 전신 되시겠다. 그 후 이 철도는 연장되어 함백 역까지 이어졌으며 함백선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함백 역에서 동쪽으로 더 연장을 하기가 어려웠다. 지형의 특성상 급커브와 급경사가 불가피했다.
그래서 함백이 아니라 전역인 예미에서 새 선로를 뻗어서 조동, 증산, 정선을 이었으며, 제천에서 정선까지를 통틀어 정선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함백선은 예미에서 함백까지 가는 구선로만을 가리키는 지선이 되었다.
그럼 함백은 막다른 종착역(terminal)으로 전락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함백에서도 조동으로 가는 선로는 1975년에 추가로 건설되어 함백선에 편입되었다. 단, 저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급경사를 감안하여 동그란 똬리를 그리면서 우회하는 형태가 되었다. 이것은 2013년 현재 대한민국 철도에 등장하는 4개의 똬리굴 중 하나이다. (중앙선에 두 곳, 영동선에 스위치백을 대신하여 건설된 솔안 터널, 그리고 저것)
결국 예미에서 조동으로 가는 길은 곧은 길과 함백을 경유하여 우회하는 길 두 갈래가 존재하게 됐다. 요약하자면 함백으로 가는 길이 가장 먼저 생겼지만, 그 뒤에 함백을 거치지 않고 바로 조동으로 가는 지름길이 나중에 생겼고, 함백에서도 조동으로 똬리를 틀며 가는 길이 가장 늦게 생겼다.
지선인 함백선과 태백선 본선은 지리적으로 서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건 혹시 태백선의 부분복선 구간으로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으며 이들은 서로 독립적인 단선이 둘 존재하는 형태일 뿐이다. 양 선로에서 상행과 하행이 모두 오간다.
다만, 똬리굴이 없는 지름길은 우회가 없는 대신, 법적인 설계 한계에 육박할 정도의 급경사를 자랑한다(30퍼밀). 2도가 채 안 되는 오르막도 철도 차량에게는 굉장한 부담이다.
그래서 무거운 화물 열차들은 상· 하행을 막론하고 함백선을 거쳐 가는 편이었다. 여객 열차는 맞은편에서 오는 열차와 원활히 교행하기 위해 함백선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있었다고는 하는데 요즘은 그쪽으로 지나는 열차가 없다고 그런다.
태백선과 함백선의 관계는 이 정도로 충분히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새로 건설된 예미-조동 지름길 선로(현재의 태백선 본선)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라멘(독일어 Rahmen) 식 교량 위에 놓여 있다. 일명 라멘교. 열차가 여기를 지날 때 창 밖으로 아래를 보면 함백선이 응당 내려다 보인다. (이 시점에서 FSM교의 'RAmen!' 구호라든가, 면발과 국물과 김치의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라면교가 떠오른다면 지는 거다 ㄲㄲㄲ)
그렇게 1960년대에 조동-예미 구간이 개량되고 정선선이 건설되고 있던 동안, 증산(현재의 민둥산)에서는 정선뿐만 아니라 고한으로 가는 철도도 건설되었으며, 동쪽에서도 황지(현재의 태백)에서 백산까지 현재의 영동선으로 치면 지선에 해당하는 철도가 건설되어 있었다. 이제 슬슬 두 철도가 동서로 한데 이어져야겠다는 스멜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3년에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가장 마지막으로 고한과 황지가 연결됨으로써 중앙선과 영동선을 한데 잇는 철도가 완성되어 최종적으로 태백선이 완성되었고, 정선선은 함백선과 마찬가지로 태백선의 지선이 되었다. 서울 방면에서 강릉으로 바로 올라가는 용도로 쓰이는 태백삼각선은 함백선의 똬리굴과 마찬가지로 1975년에 건설되었으며, 이 시기에 중앙선과 태백선, 영동선 구간은 전철화까지 완료되었다.
하지만 자동차 도로 교통이 발달하고 석탄 산업이 망하면서 이들 산업선의 지위 역시 오늘날 매우 쇠락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뭐, 화물 수요가 꾸준히 있고 사북-고한 구간은 강원랜드-_- 때문에 여객 수요가 있으니, 완전히 망한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다.
다만, 평창 동계 올림픽에 맞춰서 제천도 아니고 아예 원주에서 분기하는 강원도 행 철도가 복선 전철로 깔끔하게 건설된다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릉에 빨리 갈 수 있게 될 테고, 기존 태백선의 여객 수요는 크게 감소하는 게 불가피하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