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기둥에다가 케이블을 연결하고, “그 케이블 아래로 뭔가를 또 늘어뜨려서 하부를 지탱”한다는 개념은 현수교뿐만 아니라 전기 철도에서 전차선을 설치할 때도 쓰인다.
현수선을 영어로는 카테너리(catenary)라고 한다. 이것은 철덕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전기 철도에서 가공전차선(= 제3궤조가 아닌 공중 부설) 방식으로 전깃줄을 매다는 방식들에 온통 저 이름이 붙기 때문이다.

전기 철도는 사용하는 전기 종류에 따라 직류와 교류로 나뉘고, 전차선이 부설된 위치에 따라 제3궤조(아래) 또는 가공전차선(공중)으로 나뉜다. 가공전차선의 경우, 차량 쪽의 집전 장치는 트롤리 폴, 뷔겔, 팬터그래프의 순으로 바뀌어 왔다. 옛날 원시적인 노면전차에서는 전자가 쓰여 왔지만 오늘날 전기 철도 차량의 대세는 팬터그래프이다.

그런 것처럼 공중에다가 전차선을 매다는 방식도 생각보다 매우 다양하다. 어느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건설 비용과 유지 보수 비용, 그리고 심지어 열차의 주행 속도 한계까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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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차선 하나만 대롱대롱 매달아 놓는 건(직접현가식) 형태가 간편하고 건설 비용이 저렴하다. 하지만 전선이란 게 아무래도 축 늘어지는 관계로, 전신주 기둥에 가까운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높이와 장력이 동일하게 유지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이런 생짜 방식은 고속 주행을 하지 않는 옛날의 소형 노면전차 수준에서나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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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노면 전차. 차량의 집전 장치인 뷔겔이나 트롤리 폴도 원시적이지만, 전깃줄도 현대의 전기 철도에 비하면 꽤 단순하고 허술하게 매달려 있다.)

(2) 현대의 전기 철도에서는 선의 계층을 하나 더 추가했다. 보조 가선을 양 기둥과 연결해서 늘어뜨린 뒤, 보조 가선의 아래에다 전차선을 매달아 놓는 것이다.
교량으로 치면 현수교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셈이다. 전봇대는 주탑이요, 보조 가선은 주케이블, 전차선은 보조 케이블과 이어진 다리 상판에 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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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전기 철도 설비는 이 정도가 보통이다. 과거의 노면 전차 시절에 비해 얼마나 복잡한가~!)

이렇게 하면 전차선의 높이와 장력이 훨씬 더 균일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열차가 안정되게 고속 주행을 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심플 카테너리, 헤비 카테너리, 트윈-심플 카테너리, 컴파운드 카테너리 등 여러 변종이 존재하는데, 어떤 형태든 핵심은 전차선의 위에 선이 이중으로 깔렸고 이들이 상하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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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너리는 전차선 위의 보조선이 축 쳐지는 역할을 대신함으로써 아래의 진짜 전차선을 평평하게 유지하는 방식이다.)

카테너리 방식은 여러 장점 덕분에 고속철까지 커버하는 주류 전차선 형태가 됐다. 단점은 아무래도 터널을 더 높게 만들어야 하고 시설이 더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3) 요즘은 스크린도어 때문에 제대로 보기가 어렵겠지만, 지하철 선로를 눈여겨본 분이라면 지하철의 전차선은 여느 지상 전철만치 선이 치렁치렁 복잡하지 않고 단촐(?)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 지하철은 터널의 단면적을 줄여서 건설비를 절약하기 위해 전차선 한 줄만을 단단 딱딱한 쇠막대기 형태로 만들어서 천장에 매달아 놓는다(강체 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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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전차선은 지상 철도의 전차선보다 왠지 군더더기 없고 더 깔끔 단촐하게 생겼다.)

강체 가선 방식은 복잡한 줄들을 여러 겹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 게 없어서 공간을 덜 차지하고 깔끔하며, 유지보수 비용도 덜 드는 등 장점이 많다. 자갈 노반 대비 콘크리트 노반의 장점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유연성이 없는 강체의 특성상 팬터그래프의 높이와 잘 맞게 처음에 건설을 아주 정확하게 잘 해야 하며, 그러고도 고속 주행과는 어울리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얘는 천상 지하철용이다.

일반인에게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겠지만, 강체 전차선을 매다는 방식은 일명 T-bar 아니면 R-bar이라는 두 계열로 나뉘어 있다. T는 1960년대에 일본에서 독자 개발한 방식으로, 구조물이 꼭대기 천장에 달려 있다. 그 반면 R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점진적으로 발전시킨 방식으로, 구조물이 전차선의 옆으로 비스듬하게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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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R-bar, 오른쪽은 T-bar. 복정 역은 코레일 광역전철과 서울 지하철이 지하에서 매우 가깝게 교차하는 환승역이다 보니, 서로 다른 강체 전차선을 쉽게 대조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1974년의 서울 지하철 1호선 때부터 모든 지하철들이 전통적으로 T를 사용해 왔다. R은 1990년대에 최초의 지하철 형태의 광역전철인 과천선과 분당선이 만들어질 때 철도청에서 처음 도입했다. 이때 지하 교류 구간에, VVVF 전동차에, R-bar까지 나름 신기술이 많이 등장한 셈이다.

오늘날 기술적으로는 R이 T보다 더 우수하고 경제적이고 발전 가능성이 더 높은 솔루션으로 여겨진다. T는 직류 전용인 반면 R은 둘에 모두 대응 가능하다는 차이까지 있다.
하지만 T는 R보다 훨씬 일찍부터 국산화에 성공했고 덕분에 단가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지하철에서는 T가 주류 노릇을 해 왔다. 2010년대에 와서는 R도 국산화에 성공했으니, 앞으로 만들어지는 가공전차선 방식의 지하 철도에는 R-bar를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1/19 19:34 2020/11/1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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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철도의 집전 장치

전기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은 아니고, 훌륭한 동력 공급원이며 매력적인 에너지이다. 그러나 생산과 동시에 광속으로 흘러가 버린다는 특성상, 전기는 여느 물리적인 연료와는 달리 저장과 축적이 어렵다는 게 난감한 점이다. 획기적인 장거리 무선 송전 기술이라도 개발되지 않는 한, 전기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에다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은 다음 세 시나리오 중 하나로 귀착될 것이다.

  1. 자기가 전력을 직접 생산해서 쓴다: 이건 뭐 원자력 잠수함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제낀다. 디젤 전기 기관차 같은 경우도 응당 논외로 하고.
  2. 전적으로 배터리로부터 공급받는다: 무겁고 비싼 배터리의 충전 용량과 충전 시간, 그리고 수명 같은 여러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배터리는 충· 방전을 거듭할수록 용량이 하락하기 때문에 교체가 필요한 소모품이다. 그래서 순수 배터리 기반 전기 자동차는 단거리나 소형 교통수단에 머물러 있고, 하이브리드는 반대로 무게와 가격 문제 때문에 중형급 이상의 고급차에나 적용되고 있다.
  3. 전차선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철도는 그나마 이게 가능해서 다행이다. 아니면 딱 전차선이 놓인 노선만 달리는 시내버스 정도나 말이다.

그래서 3번에 속하는 전기 철도 차량의 경우, 차량의 일정 부분이 전차선과 접촉하면서 끊임없이 전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가장 무난한 방식은 전차선을 선로의 위에다 달고, 열차는 천장에 달린 팬터그래프가 그 전차선과 접촉하여 전기를 받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어떤 철도가 전철화되면 선로 주변엔 일정 간격으로 어마어마한 개수의 전봇대가 세워지고 빨랫줄마냥 전깃줄이 선로를 따라 주렁주렁 달린다. 전철화는 아무래도 주변 미관에는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다. 무슨 지중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전철화 작업에는 초기에 굉장히 많은 시설 부설 비용이 들기 때문에, 초기 투자 비용을 능가하는 이익이 날 거라는 확신이 설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노선만을 선별하여 전철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이 최초로 쓰인 것은 아니다. 전차선을 열차의 위에다 설치하는 게 아니라 아래의 선로에다 같이 설치하는 방식이 먼저 쓰였다. 일명 제3궤조 집전식.

여기서 용어 설명을 좀 하겠다.
'궤조'란, 열차 하나가 다닐 수 있는 철길을 구성하는 길다란 선 모양의 쇳덩어리 하나를 가리킨다.
이 궤조가 특정 궤간을 유지하여 평행하게 둘 깔리면 '궤도'가 된다. 열차가 궤도를 벗어나는 사고를 일으키면 탈선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모노레일은 궤도가 단 하나의 궤조로만 구성된 교통수단이다.
끝으로, 노반이 다져지고 침목도 깔리고 열차가 실제로 달릴 수 있는 형태로 궤도가 놓인 철도 시설 전체를 '선로'라고 부른다.

따라서 제3궤조라 함은, 한 궤도에 양 바퀴를 올려놓는 두 개의 궤조뿐만 아니라 전력을 공급하는 제3의 궤조가 하나 또 놓인다는 걸 일컫는다. 전기 철도라고 해서 무조건 치렁치렁 전차선과 전봇대가 달려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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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유명한 사진이다. 이것은 독일의 베르너 폰 지멘스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전기 기관차로, 1879년에 베를린 박람회에 출품하여 선보인 모습이다.
좌우로 총 6명의 승객이 앉은 객차가 3개(= 총 18명) 편성되었으니, 영락없는 놀이공원용 꼬마열차 크기이다. 궤간은 겨우 490mm로 일본 케이프 궤간의 절반, 표준궤의 1/3 규모에 불과하다. 박람회장 내부에 설치된 시험선은 300m 남짓한 길이였다고 한다.

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에 혹시 그냥 배터리로 달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아니고, 그 작은 선로의 중앙에 직류 150V짜리 제3궤조가 있었다. (오늘날 지하철이 사용하는 1500V가 아님! 0이 하나 빠졌다. 그냥 가정용 전기 콘센트와 비슷한 규모의 전압.)
기관차는 3마력짜리 전동기로 그냥 사람이 살짝 빨리 걷는 속도인 시속 6km를 냈다고 한다. 단, 객차를 끌지 않고 기관차만 혼자 달릴 때는 그 두 배의 속도도 가능했다고.

제3궤조 집전식은 선로 주변의 미관을 해치지 않으며 시설 부설 비용이 저렴하다. 차량의 위에 치렁치렁거리는 주변 시설이 없으니 특히 지하철의 경우, 딱 열차 하나만 간신히 지나갈 만치 터널을 작게 뚫어도 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건설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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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극단적으로 작은 터널은, 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을 기준으로 건설된 지하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사진은 세계에서 최초로 건설된 지하철인 런던 지하철이다. 런던이야 제3으로도 모자라서 제4궤조라는 특이한 집전 방식까지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쓰는 동네이다만, 얘네들뿐만 아니라 고무 타이어로 유명한 파리 지하철도 제3궤조요, 일본 도쿄의 지하철도 초창기에 개통한 두 노선인 '긴자'(1927) 선과 '마루노우치'(1954) 선은 직류 600V 제3궤조 집전식이다. 그러니 이들 지하철이 다니는 곳은 선로 주변에 전차선이 보이지 않는다.

전차선을 차량 아래의 선로에다 또 하나의 궤조 형태로 설치하는 방식은 저렴하고 미관에 좋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단점도 만만찮아서 선로에 사람이나 이물질이 떨어지면 안전이 굉장히 위협받게 된다. 또한 선로 분기나 교차가 발생하는 지점에서 전력을 공급해 주기 어려우며, 건널목 같은 데는 아예 절연을 시켜 줘야 한다. 선로가 침수되거나 결빙됐을 때도 골치가 더 아파지는 건 덤이다. (작년 겨울에 의정부 경전철이 운행 멈춘 것 기억하시는지?)

물론, 바닥에 놓인 전차선의 위에다 덮개를 씌워서 제3궤조를 사람이 밟는 것 정도로는 감전이 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는 다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열차의 입장에서 집전 설비가 더 복잡해지고 유지 비용이 증가하는 건 불가피하며, 이런 한계로 인해 제3궤조 방식 전철은 고속화가 좀 어렵다. 영국에서 있는 수단 없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시속 160~170km 정도까지 달려 본 게 최고 한계라고 한다.

게다가 제3궤조로는 직류 수백 V, 혹은 정말 많아야 1000몇백 V 정도까지는 보내도, 이런 방식으로 수만 V에 달하는 교류 전기를 보내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고 무리이다. 장거리 철도로 쓰기에는 전력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3궤조 집전 방식은 고속철 내지 장거리 간선용으로는 쓰이지 않으며, 끽해야 광역전철이고 지하철, 혹은 아예 저비용 경전철용으로 용도가 굳어져 가는 추세이다.
롯데월드에 가 보니 범퍼카가 천장을 향하는 집전봉이 달려 있지 않고 바닥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다는데, 이게 개념적으로는 제3궤조식으로 바뀐 셈이다. 하루 종일 눈 코 뜰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카에 배터리가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공중에다 전차선을 따로 부설하는 방식도 사실 역사가 길며, 우리나라만 해도 그 기원을 찾자면 서울에 노면전차가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에는 전차선으로부터 전기를 끌어 오기 위해 '집전봉'(trolley pole)이라는 막대가 쓰였다. 이건 점과 점을 일치시켜 접촉해야 했기 때문에 전차선이 레일과 조금만 어긋나 있어도 전기 공급이 끊어지기 쉬웠으며, 특히 한 상태로 차량이 전진과 후진을 동시에 할 수 없었고 고속 주행도 당연히 어려웠다.

그래서 접촉면을 점이 아니라 전차선과 수직 방향인 선으로 바꿔, 선의 아무 지점에나 전차선이 닿아도 집전이 가능하게 한 뷔겔(bow collector)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것도 전차선의 높이 변화라든가 주행 방향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어서 스프링이 달린 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이 발명되었으며, 이것으로 오늘날의 신칸센이나 KTX 같은 고속열차가 달리고 있다.

뷔겔과 팬터그래프의 차이는 간단하다. 전자는 열차 지붕에서 전차선까지 닿는 데 꺾이지 않는 막대기 하나가 쓰이지만, 후자는 사람의 팔처럼 한 번 꺾이는 막대기가 쓰인다.

앞으로 전기 철도를 구경할 일이 있으면 집전 장치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도록 하자.

Posted by 사무엘

2013/06/03 08:37 2013/06/0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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