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 연료와 액체 연료

우리 주변에서 연료를 태워 열 내지 에너지를 만드는 도구, 기계들을 생각해 보자.
하긴, 옛날에는 불을 최초로 피우는 것조차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집집마다 한번 만들어 놓은 불씨를 잘 간수해야 했으며, 옛날까지 갈 것도 없이 무인도 같은 오지· 험지에 홀로 내던져졌다면 불을 피우는 게 매우 중요한 생존 기술 중 하나로 변모한다. 성냥, 양초 같은 물건도 주류에서 밀려난 구시대 유물일지언정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연소나 폭발을 취급하는 물건들은 어떤 형태의 연료를 쓰는지에 따라 설계 방식이나 동작의 특성이 달라진다.
연료라는 건 크게 고체 아니면 액체로 나뉜다. 고체는 나무나 석탄, 혹은 다른 고체 폭약 같은 것이고, 액체는 잘 알다시피 석유나 액화 천연가스가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액체 연료를 다루는 기계적 메커니즘이 고체 연료보다 더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러나 액체 연료가 그만큼 연료를 아주 찔끔찔끔 균일하게 공급하면서 화력을 조절하기가 더 쉽다. 그리고 연소 후의 부산물도 액체 연료가 훨씬 더 깔끔하며 처리하기가 더 편하다.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연탄/화목 보일러나 난로는 불에 탈 수만 있다면 통나무건 종이 뭉치건 아무 덩어리나 집어넣어도 되니 기계 구조가 간단하고 당장 열을 만들어 내는 건 쉽다. 하지만 그 뒤부터는 여러 모로 불편한 점과 애로사항이 꽃핀다. 매캐한 연기와 냄새가 나며, 일단 불이 붙은 연료를 통제하기가 어렵다. 점화나 소화를 스위치 하나로 간편하게 할 수가 없다.

연탄은 크기와 모양이 규격화돼 있는 고체 연료라는 점은 그나마 낫지만, 여전히 점화와 소화가 불편하며 연료를 배달하기가 매우 번거롭다. 매번 연탄재를 처리하는 것도 큰일이고 말이다.
양초는 고체 연료인 것치고는 심지를 통해 연소가 균일하게 잘 일어나는 편이지만, 역시나 강약 조절을 할 수 있지는 않다.

옛날에 증기선이나 증기 기관차에는 보일러에다 석탄을 삽으로 퍼 넣는 화부가 탑승해야 했으며 즉각적인 동력 조절이 되지 않았다. 고체 연료 화통의 화력은 공기를 불어넣는 양 정도로나 조절 가능했다. 성경의 다니엘서에서 풀무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는 건 과연 기술적으로 어떻게 실현했을까? (단 3:19)

이것은 발사체인 고체 연료 로켓도 고스란히 갖는 한계이다. 한번 점화가 된 뒤에는 연료의 연소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동력 조절을 할 수 없으며, 가능하다 해도 그 과정은 몹시 어렵다.

이런 이유로 인해 요즘은 관광용 증기 기관차도 물을 끓여서 나아갈지언정, 물을 데우는 건 석탄이 아닌 석유로 한다.
그리고 로켓에는 액체 연료 로켓이 연구되었으며, 이 바닥의 선구자는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고다드이다. 우리말 표기로는 '더'와 '다'가 공존하면서 혼란스러운 이름인데...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도 움직이는 액체 로켓은 연료 자체뿐만이 아니라 산화제까지 액체여야 하기 때문에 고체 로켓보다 만들기가 더욱 어려웠다. 증발이나 부식 같은 문제 때문에, 산화제와 연료를 주입한 채로 로켓을 장시간 발사대에 놔 둘 수 없다는 점도 대단히 번거로운 점이다. 로켓의 발사가 연기된다거나 하면 그것들을 도로 빼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체 연료 발사체 기술 덕분에 인간이 우주로 나갈 수도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통제 가능한 발사체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되었다.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을 성공한 지 30년이 채 되지 않아 미국의 학계에서는 로켓의 이론적 근간이 연구되고 “달까지 가는 진지한 방법” 같은 게 논문으로 발표되고 있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때는 그랬는데 미국이 어쩌다가 스푸트니크 멘붕을 당할 정도로 잠시 주춤했는지?)

단, 고다드의 연구는 시대를 너무 앞서 있었으며, 그 당사자 역시 언플이나 사교력이 뛰어난 공돌이는 아니었던 관계로... 그의 연구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딱히 인정을 못 받았다. 1920년대에 뉴욕 타임스 신문은 고다드가 불가능한 목표를 두고 아무 쓰잘데기 없는 황당한 뻘짓을 한다고 막 조롱하고 디스하고 망신 주는 사설을 게재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고 고다드의 연구를 토대로 새턴 로켓이 발사되고 아폴로 우주선이 달까지 간 뒤에야 뉴욕 타임스는 자기네 옛날 사설을 취소하고 고인에게 사죄를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님의 연구 덕분에 후손들이 달에 진짜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짧았습니다.”라는 요지로.

이건 20세기의 우주 개발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나 독재 정권에 아부하던 메이저 언론이 나중에 자기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죄한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격인데,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찾기 힘든 모습인 것 같다. =_=;;

이것저것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여러 분야를 막론하고 액체 연료는 고체 연료에 비해 점화· 소화와 화력 제어가 용이하고 연소 결과가 깨끗하다는 많은 장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친구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러 갈 때도 고체 연료(숯)를 쓰는 식당과 액체 연료(도시 가스)를 쓰는 식당의 구조적인 공통점과 차이점을 나눠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고기를 굽는 데는 '연기와 향'이라는 변수가 추가되기 때문에 굳이 경제적으로는 더 불편한 고체 연료가 선호되기도 한다. ^^;;;

Posted by 사무엘

2014/12/17 08:35 2014/12/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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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주 2014/12/17 16:09 # M/D Reply Permalink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들은 항상 존재하죠. 예를 들어서, 이미 19세기에 미국이 지구에서 달으로 사람을 날려보낸다는 내용의 소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확하게는 1865년에 <지구에서 달까지> 라는 제목의 소설이 나왔는데, 이 소설을 쓴 사람이 바로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으로 유명한 쥘 베른입니다 ㅎㄷㄷ

    이 소설에서 쥘 베른은 땅을 깊숙히(지하 300m) 파서 그 안에 쇳물을 부어 대포를 만들고, 엄청나게 큰 대포알 속에 사람이 들어가서 타고 간다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당대에 알려져 있던 과학 지식을 어마어마하게 공부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밀폐된 대포알 안에 산소는 어떻게 공급할 것이냐라는 의문에 대해 화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환원 반응을 통해서 산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것이죠.

    그리고 발사 시기와 장소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데, 대포알의 경우 일단 쏘아올려지면 중간에 궤도를 바꿀 방법이 없으므로, 정확하게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오는 날에 정확하게 머리 위에 왔을 때에 맞추어 쏘아 올리면 달의 인력에 붙잡혀서 달 표면에 도달하게 될 거다.. 라는 식이죠. 지구와 달의 거리, 자전 속도 등을 고려해서 미국 영토 내의 가장 적절한 위치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출판된 시기가 워낙 앞선 만큼 실제로 과학자들도 쥘 베른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실제로 그렇게 했다가는 안에 있는 사람들은 끔찍한 중력가속도와 낙하 시의 충격에 사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걸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다가 나온 것이 로켓이었겠죠.

    아무튼 쥘 베른은 당대에 생각할 수 있는 수많은 공학적 이슈들을 그 시대의 과학적 지식들을 바탕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단한 점이 무엇인가 하면,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실제로 미국에 가본 적은 없었던 그가 선택했던 난제들을 이후 미국의 과학자들 역시 겪게 됩니다만...


    그가 대포 발사 지점으로 선택했던 곳이 케네디 우주센터가 되었고, 발사된 대포알이 지구 궤도를 빙빙 돌다가 다시 착지한 지점으로 선정한 곳이, 그로부터 103년 후에 아폴로 8호가 실제 낙하한 곳에서 고작 4km 떨어진 곳입니다 ㅎㄷㄷ

    이쯤 되면 거의 소설가를 넘어 선지자 급......

    1. 사무엘 2014/12/17 20:08 # M/D Permalink

      우주 대포의 선구자이자인 제랄드 불 박사가 그 아이디어를 부분적으로나마 실현시켰지요. 로켓은커녕 아직 동력 비행도 실현되지 못했던 시절에 그런 상상을 해서 그런 소설을 썼다니 쥘 베른도 참 대단합니다.
      로켓 없이 우주로 나가는 건 뭐랄까, 비교 연산 없이 O(n) 복잡도로 정렬을 하는 비주류 제한적인 알고리즘 같은 위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소설을 써서 일부나마 ㅎㄷㄷ한 예언을 한 다른 예로는 Futility (vs 타이타닉) 정도가 있습니다.

  2. 사무엘 2015/03/24 12:55 # M/D Reply Permalink

    참고로 이 홈페이지에서 한번 특집으로 다룬 적도 있는 과거의 우주 왕복선은 액· 고체 연료를 모두 사용한 하이브리드였다.
    탐사 로켓의 아래에 있는 거대한 연료 탱크는 액체(산· 수소) 기반이고, 그 양 옆에 달린 보조 부스터는 고체 연료 로켓이다.

    이 보조 부스터는 초기에 우주 왕복선이 뜨는 걸 도와 준 뒤, 연료가 소진되면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간다. 얘는 낙하산을 달고 떨어지며, 나중에 바다에서 회수되고 몇십 회 정도 더 재활용된다.
    그 반면 더 오랫동안 쓰이는 주 연료 탱크는 크기도 너무 크고 이미 너무 높게 올라가 버린지라 재활용을 못 하고 버려진다. 추락 중에 대기와의 마찰로 인해 타서 소멸한다.
    일회용 소모품이기 때문에 얘는 하얗게 도색을 안 하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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