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러가지 교통 관련 썰을 좀 풀어 나가도록 하겠다.

1.
지난 추석 때, 고향을 왕래하는 고속버스 차창 밖으로.. "고속국도 제1호선 언양-영천간 확장 공사" 라고 표지판이 붙고 터가 닦여 있는 걸 봤다.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 이래로 지난 40여 년간 최후까지 오리지널 4차선 그대로 남아 있었던 마지막 구간까지도 드디어 확장된다니 감회가 새롭다.
이 고속도로에 대해서는 3년 남짓 전에도 글을 한번 쓴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경부 고속도로의 옛날 사진을 보면 중앙 분리대가 화단 형태로 된 모습이 있어서 무척 신기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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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옛날에는 일부 직선 구간(성환, 신갈)은 아예 물통 같은 임시 중앙 분리대만 만들어 놓고 유사시에 활주로로 쓸 수 있게 해 놓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해당 구간을 잠시 폐쇄하고서 전투기 이착륙 훈련을 한 적도 있다.
아래 사진은 신갈 활주로에서 실제로 훈련을 하던 모습이다. 신갈 일대 고속도로 좌우 모습이 저랬을 정도이면, 아니 경부 고속도로의 수도권 구간을 폐쇄하는 게 가능했을 정도이면 지금으로부터 엄청, 굉장히 먼 옛날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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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 형태든 임시 형태든.. 경부 고속도로의 중앙 분리대가 모습이 저랬다는 것은 오늘날로서는 참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경부 고속도로는 처음에는 전구간 4차선으로 건설되었다.
지금이야 88 올림픽만이 전국 유일의 겨우 2차선짜리 고속도로라고 까이지만, 옛날에는 반대로 경인과 경부 정도만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다차선이었다. 2차선 고속도로는 여럿 있었다. 당장 호남이나 영동 등.
그런데 옛날에야 그렇다 치더라도 1990년대까지만 해도 높으신 분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고속도로를 마치 88 올림픽처럼 겨우 2차선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중앙 고속도로인데.. 이건 마치 21세기에 개통 예정인 철도를 표준궤가 아닌 협궤 크기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막장 행위였다. 이것은 다행히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끝에 뒤늦게 4차선으로 허겁지겁 개조되었다.

감사원? 철도에서 일산선 건설도 서울 지하철 3호선처럼 우측 직류 규격으로 임의로 바꿔서 과천-안산선처럼 꽈배기굴 시즌 2가 생길 뻔한 것을 막은 그 기관 말이다. 철도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를 만들 때도 그나마 세금값을 했다.

2.
철도 경부선은 영업거리표 상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공식 거리가 441.7km이다.
옛날처럼 지금의 서울 역(그 당시엔 남대문) 이북으로 레알 서울 역이 있고, 지금의 부산 역(그 당시엔 초량) 이남으로 진짜 부산 역이 또 있었다면 거리는 지금보다 2km 남짓 더 길어졌을 것이다.
한편, 경부선 철도에 상응하는 경부 고속도로의 전체 거리는 416.4km이다. 개통 당시엔 428km가량이다가 선형 개량을 통해 더 짧아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경부 고속도로는 경주와 울산을 거쳐서 크게 우회하는데 어떻게 유사 노선의 철도보다 거리가 이렇게 짧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경부선도 서울 구간에서는 서쪽 영등포 방면으로 우회를 좀 해서 동선이 안 좋지만, 그래도 고속도로에 비할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한데, 바로 시내 구간의 포함 여부이다.
철도는 서울 역이라는 서울 도심으로 깊숙이 들어가며, 부산 역도 부산 시내를 다 관통한 후 완전 최남단에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양재 IC라는 서울 남쪽 외곽에서 끝나고, 부산도 시점인 구서 IC는 부산의 북쪽 끝자락이다.
양재IC - 서울 역 내지 구서-부산 역만 쳐도 각각 직선 거리만 거의 15km에 달한다.

이걸 퉁쳐 주면 고속도로나 철도나 거리는 서로 비슷해진다.
경부선 기존선이 아니라 서울-대구 구간을 고속선으로 달리는 KTX는 서울-부산 전체 주행 거리가 408km대로 크게 감소한다. 경부고속선이 기존 선로의 구불구불하던 주름을 얼마나 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대구 이남 구간은 고속선이 경주와 울산을 경유하기 때문에 KTX의 거리는 423.8km로 15km 남짓 증가한다.

3.
교통· 운수 업계에서는 경사로의 기울기나 차량의 등판능력을 말할 때 각도가 아니라 언제나 기울기(탄젠트)를 쓴다. 고정된 X축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높이 Y가 바뀌는 비율인 것이다.
요즘은 자동차 제원표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보통 등판능력이 0.3xx가 나오는데, 그것도 탄젠트이기 때문에 실제 각도는 10몇 도 정도이다. 도로 표지판에서 볼 수 있는 5% 경사, 10% 경사 이런 것도 당연히 탄젠트 값임.

우리나라 K2 전차의 홍보 영상을 보니 무슨 60도 경사를 오른다고 자랑을 하던데.. 이건 오류이다.
45도보다도 높은 60도 경사를 오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사실은 탄젠트 0.6에 해당하는 거의 30도대의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무거운 쇳덩어리가 그 정도 경사를 오르려면.. 엔진 힘뿐만이 아니라 무한궤도를 이용한 접지력이 정말 살인적인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철도 차량은 일반 육상 차량보다 등판능력이 훨씬 뒤떨어지기 때문에 백분율도 아니고 천분율을 써서 '퍼밀' 단위로 표기한다. 각도로는 2도가 채 안 되는 30 퍼밀 정도의 경사도 철도 차량에게는 우리나라의 태백선 같은 산악 철도에서나 볼 수 있는 굉장한 급경사이다. 견인 중량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데다 쇠 바퀴와 쇠 선로는 마찰도 작으니 등판능력이 쥐약일 수밖에 없다.

육상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상승/하강률도 기울기로 표기된다. 1000m를 이동하는 동안 고도가 몇 m 바뀌는지가 기준이다. 우주왕복선은 엔진이 없이 글라이더 활강을 하기 때문에 일반 여객기보다 하강률이 훨씬 더 높다. 정확한 숫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또 찾기는 귀찮..;;

이렇게 업계에서 각도 대신 탄젠트가 즐겨 쓰이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는 고저차를 무시한 이동 거리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며, 또 경사각이 올라갈수록 차량에게 필요해지는 동력 같은 각종 물리량도 각도가 아니라 탄젠트에 비례해서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탄젠트가 현실적인 의미가 더 크고 유용하다는 뜻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11 08:29 2014/12/1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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