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 땐 철도로
이번 크리스마스는 가족하고도, 교회 사람들과도, 심지어 애인-_-(그런 게 있을 리가? ㅋㅋㅋㅋ)하고도 보내지 않았다.
우리 교회는 성탄절에 크리스마스트리, 산타 나부랭이 따위는 없다. 그 대신 그 날 전통적으로 복음 전도 집회를 해 왔다. 보통 거기 가곤 했는데 올해는 그것도 빠지고, 그 대신 25, 26일에 걸쳐 철도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혼자 간 건 아니고,
누군지 아마 짐작하는 분도 있겠지만... 카이스트 후배이며 본인의 최측근자-_-에 속하는 모 지인과 함께 갔다. 여행 가서도 서로 노트북 꺼내서 각자 만들던 프로그램을 열심히 짜는 골수 덕후들끼리,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______^
대략의 경로를 얘기하자면 강릉 정동진을 찍은 후 부산행이었다. 동해 바다까지 가서 회 요리를 안 먹을 수가 없어서 맛있게 먹었는데, 참고로 횟값이 방값보다 더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엔 그 길로 부산까지 갔다.
유난히도 커플들이 많이 보였던 정동진 해수욕장.
해수욕장에서의 인증샷
청량리-강릉 열차를 제외한 나머지 열차는 정말 텅 비어 있었다. 연휴 기간이 이런데 나머지 기간엔 적자가 얼마나 심할까, KTX와 경인선 전철로 번 돈을 이런 데에다 메꾸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갈 때와 올 때 모두 스위치백을 오르내렸다. 강릉 방문은 거의 3년 반만에 처음이고 영동선 방문은 2년 반만에 처음이었다. 정동진 역은 역시 바닷가를 찾은 관광객이 많았고 아침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는데,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출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성탄절이 이러한데 신정 연휴 때는 더욱 붐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행 코스에서 영동선과 태백선을 전구간, 그것도 다 낮에 이렇게 답사하는 건 그때 내일로 티켓 때도 못 했었기 때문에 기쁘기 그지없었다. 정말 맑고 좋은 겨울 날씨가 여행을 더욱 즐겁게 했다. 같이 간 녀석은 이제야 내일로 티켓을 샀던데, 내가 여행가는 요령 코치를 잔뜩 해 줬다. 철도 덕후 후학을 양성해야 하는데 얘가 유력한 후보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얘는 내일로 티켓으로 좌석이 없고, 나는 매 여행 경로마다 지정석 표를 사서 같이 동반하는 그런 형태였다.
강릉에 이어 경부선 대구-부산 구간도 정말 천하절경이기 때문에 강원도 산악 철도와 잘 어울렸다. 차이가 있다면 경부선은 중앙-태백-영동선보다 열차 주행이 훨씬 더 빠르며 승객도 훨씬 더 많다는 것이었다. 경부선에서 전기 기관차 열차를 탄 것도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다. 그 전엔 새마을호(디젤 동차) 아니면 KTX만 탔으니 경부선에서 딱히 기관차형 열차 자체를 접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는 부산 지하철을 1~3호선 모두 속성으로 시승했다. 3호선 전동차의 구동음과 대구 2호선 전동차 구동음은 음높이까지 완전히 동일하다는 사실에 부산 출신의 다른 철도 전문가-_- 후배와 함께 합의를 봤다.
부산은 김해 경전철을 사실상 지하철 4호선으로 보고 노선색도 보라색으로 설정한 모양이던데, 그렇다면 부산은 정말 1호선부터 4호선까지 스케일이 전부 다 다르고 숫자가 커질수록 규모가 더 작아진다. 역시 먼저 생긴 게 장땡이며, 서울 지하철 1호선보다 더 큰 지하철은 앞으로 결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 올 땐 비행기로
저 녀석은 내일로 티켓 여행을 계속하지만 나는 이내 서울로 복귀해야 했기 때문에, 지하철 구경만 잠깐 한 후 부산에서 헤어졌다. 그 후 나는 김해 공항으로 가서 무려 비행기-_-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를 듣고 싶고, 오랜만에 인천 말고 김포 공항 구경도 좀 하고 싶어서였다. ^^;;
공항까지는 버스를 탔는데, 덕분에 지하철 3호선으로만 통과하던 부산 시내 동서를 지상 도로를 이용해서 구경할 수 있었다. 만덕-미남 사이의 터널은 서울로 치면 마치 남산 1호 터널 같았다.
그리고 철도로 부산을 방문하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경부선의 부산 시내 고가 구간은 100년 전에 경부선이 처음 건설되던 시절부터 고가였을 리는 없을 텐데 언제 저렇게 이설됐는지도 궁금하다. 심지어 서울조차도 경부선 서울 구간은 그냥 평지인데 말이다.
내 스스로 국내선 비행기를 탄 건 난생 처음이고, 김포 공항 구경은 거의 10년만에 처음이었다. 주말이지만 전혀 혼잡하지 않았다.
시속 60은 낼까 궁금하던 그 느려 터진 중앙-태백-영동선 열차를 타다가 돌아올 땐 비행기를 타니, 분위기가 이보다 더 극과 극일 수 없었다. 역시 국내선은 국제선보다 훨씬 더 타기 쉬우며, 여권도 필요 없고 출입국 신고 절차도 없이(당연하지만) 신분증만 있으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의 비행기 탑승 기록이 해당 항공사 외에 정부 기관 차원에서 남지는 않는다. ^^ 또한 국내선은 보안 구역으로 들어가도 면세점 같은 건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김해 공항인데 저가 항공사인 에어 부산을 이용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메이저 항공사하곤 놀라울 정도로 가격 차이가 별로 없는 데다 서비스는 대한이 훨씬 더 낫다는 평판에 따라 지난번에 미국 갈 때 이용했던 대한 항공을 또 이용했다.
뭐, 그래 봤자 비행 시간이 40분밖에 안 되는 국내선은 역시 국내선일 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착륙 모드로 들어섰다. 시속 800km가 채 안 되는 속도에 순항 고도는 7000m대에 머물렀다가 금세 내려가야 했으며, 도중에 먹거리가 나온 건 음료수 한 컵밖에 없었다. 영상/음성 서비스도 당연히 없고 비상시 대처 요령도 승무원이 직접 시범을 보이더라.
김포 공항은 명색이 그래도 서울 시계 안에 있다 보니, 비행기가 착륙 직전에 인근 도로의 차들로부터 불과 2~30 m 남짓 위까지 하강하는 것도 봤다. 멀찍이 오지에 건설된 인천 공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니 김포 공항은 24시간 운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항공 상식 사이트에서 본 것처럼, 착륙할 때 비행기 날개에서 뭔가를 탁 치켜세우면서 거센 역풍 소리가 들리는 것도 확인했다.
이렇게... 이틀 동안 한 20만원이 좀 넘게 돈지랄-_-을 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강릉-부산-서울을 다니니 우리나라가 정말 좁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로 다른 교통수단들에 대한 차이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게 내가 노는 방법이며 유흥비 지출을 하는 방법이다. 정말 보람있게 돈 썼으며 알찬 재충전 시간이었다. ^^;;
성탄절 연휴는 이렇게 보냈고 다음 주의 신정 연휴는 그냥 집에서 코딩하고 쉬다가 서울 근교의 지인이나 좀 만나면서 보낼 생각이다.
※ 그 외의 비행기 관련 추가 소감
1. 지난번에도 글로 쓴 적이 있을 것이다. 기차 내지 지하철을 타면서는 안내방송에서 ‘고객’이라는 단어를 귀가 따갑도록 듣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냥 손님이다.
2. 비행기와 공항 건물 사이를 드나들 때 김포 공항은 여전히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보통 도착했을 때만 버스인지? 최신식 초대형으로 건설된 인천 공항은 그와 달리 출발과 도착 모두 통로가 비행기와 건물이 일체형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바깥 공기를 마실 일이 없었다.
3. 각종 표지판에서 전속 서체를 사용하는 인천 공항과는 달리, 김포 공항은 다 맑은 고딕으로 바뀌어 있는 걸 확인했다. 그나저나 도착장을 나선 후 지하철 5호선을 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분. 김포 공항은 접근성이 좋다는 것 하나는 정말 인정한다.
4. 올가을부터 새롭게 무슨 종이 영수증 스타일로 개정된 철도 승차권은, 영락없이 국내선 비행기 탑승권(국제선 아님)을 따라한 게 맞음을 확인했다. ㅋㅋ
5. 비행기로 이렇게 짧은 여행을 하니 오로지 시작과 끝점만 있고, 정말 중간 과정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다. 교통 정체라든가 역/휴게소 정차, 멀미 나부랭이가 없다. 그냥 부산에서 서울로 싹 순간 이동을 한 느낌이고, 중간에 체력이나 정신력의 소모가 전혀 없다. 이게 단순히 소요 시간이 짧아서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글쎄다.
그러니, 공항까지 오고 가느라 까먹는 시간을 감안했을 때 설령 총 소요 시간이 다른 육상 교통과 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출장 갈 때 비행기가 뭔가 업무 효율면에서는 승산이 있기도 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