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넷 아시아 서버에 들어가 보면 무려 2015년 말인 지금까지도 스타크래프트 1을 하는 사람이 제법 보인다. 방을 만들어 놓으면 새로운 사람이 의외로 금방 들어와서 1:1이고 2:2이고가 된다.
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사람들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스타에 자신의 10대와 20대 시절의 추억을 남긴 건 확실한 분들일 것이다.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직 활동 중인 건 일면 반가운 소식이긴 하지만, 이 사람들이 만만한 스타 초짜일 거라는 생각은 접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2015년, Windows 10이 나온 이 시점에서 640*480 256색 펜티엄 + 윈도 95급 컴용 초 구닥다리 스타 1을 찾아서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갓 입문한 뉴비 하수일 리가 있겠나..;; 방 이름을 "초보만요"라고 아무리 붙여도 실제로 초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 전엔 오랜만에 고딩 동창을 만나서 PC방에서 몇 판 땡겨 봤다.
스마트폰 덕분에 단순 인터넷 서핑용으로 PC방을 이용할 일은 전혀에 가깝게 없어졌고 게임마저도 모바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지만..
자그마한 스마트폰이 헤비 게임 매니아들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PC방이 아무리 코너에 몰린 산업이라고 해도 당장 몽땅 싸그리 폐업할 지경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확실하게 느낀 건 스타를 하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수준이 옛날과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무한/유즈맵이나 찾아 하는 초딩 따위는 없으며, 아저씨들 실력은 다들 왕창 상향평준화했다고 봐야 한다. 하긴, 아직도 리니지 1이나 퀘이크 아레나를 하는 사람도 있다니까 뭐..
본인의 대학 학부 시절엔 나보다도 못하는 사람, 황당무계한 플레이를 하는 애들도 종종 보였다. 팀플도 이만치 하면 나 같은 하수가 꼽사리로 껴도 승리도 종종 하곤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_=;; 만나는 상대방마다 단위 시간당 모으는 자원, 뽑아내는 유닛이 장난이 아니다.
저글링이나 질럿 같은 밀리 유닛은 뭉치는 컨트롤도 꽤 잘한다. 그냥 어설프게 어택 땅만 했다가는 대등한 유닛 수로도 몰살 당한다는 교훈을 뒤늦게 얻었다. -_-;; 에휴...
스타를 잘하려면 크게 다음과 같은 네 분야에 충실해야 할 것 같다. 운전으로 치면 집중, 방향 감각, 비상 대처 요령처럼 제각기 서로 다른 분야이다. 허나, 말은 쉬워도 실제로 지키기는 어렵다.
- 제일 기본적인 구도는: 일꾼을 꾸준히 많이 뽑아서 자원 왕창 모으고, 그 자원으로 물량 왕창 뽑아서 힘싸움을 한다.
- 그러기 위해: 자원이 너무 남거나 모자라지 않게 하고, 서플라이 병목이 발생하지 않게 관리한다.
- 장기적인 전략: 수시로 적진 정찰해서 무슨 테크나 전략으로 대응할지도 판단 잘한다. 그리고 말라죽지 않으려면 멀티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 마이크로 컨트롤: 전투 중일 땐 세세한 유닛들 컨트롤도 잘해 주고..;; 전장에서의 컨트롤과 본진에서의 컨트롤을 멀티태스킹으로 해야 한다. (전투 중에도 계속 유닛 뽑는 것 잊지 말 것)
스타(1998)는 실시간 전략 시뮬 분야에서, 퀘이크 3 아레나(99~2000)는 FPS 분야에서 세기말을 장식한 정말 불멸의 명작이었다. 너무 완성도가 높게 잘 만들어졌고, 후속 작품까지 팀킬할 정도로 너무 장수했다.
특히 아직까지 퀘이크 투기장을 어슬렁거리는 애들은.. 정말 인간이길 포기한 괴수들이라고 그 악명을 익히 들었다.
초짜가 한 명 들어왔다가는 그냥 눈 깜짝할 사이에 죽는다. 레일건 같은 즉발 무기는 당연히 초정밀 원샷 원킬이며, 로켓 런처나 심지어 수류탄 같은 비선형 무기까지 남이 움직이는 궤적까지 예측하면서 다 맞힌다. 거기에다 이동 속도는 그냥 축지법 쓰는 수준. 아무리 death cam 기능이 있어도 누가 날 죽였는지 확인조차 어렵다.
그러니 초짜는 질려서 다 떨어져나가고, 고수들만 남아서 평균 실력은 더욱 상향평준화하니 난이도는 더욱 헬인 매니아 게임이 돼 간다고.
스타도 장수한 만큼 그런 경지에 도달한 지 오래다. 오늘은 스타를 하면서 오랜만에 든 생각을 더 끄적여 보겠다.
.1.
스타크래프트에서 각 종족별로 건물을 짓는 걸 보면 잘 알다시피...
프로토스는 프로브가 워프 게이트만 만들어서 건물이 알아서 소환되게 하며, 테란은 SCV가 손수 건물을 짓는다. 그리고 저그는 드론이 자기 몸을 직접 건물로 변이시킨다.
지구상의 동물 중에도 비버처럼 재료를 물고 와서 SCV 스타일로 건축을 하는 동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저그에서 반영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morph 이런 말을 난 언어학에서 접하기 전에 스타에서 먼저 접했다.
스타 3종족의 빌드 형태를 프로그래밍에다 비유하면.. 프로토스는 작업이 비동기적이다. 함수를 호출해서 작업을 요청하면 그 작업은 별도의 스레드에서 백그라운드로 돌며, 그 상태로 함수 실행이 즉시 끝나고 되돌아온다.
Windows에서는 CreateProcess, TerminateProcess 같은 프로세스 관련 요청들이 대체로 비동기적이며, Windows RT 환경에서는 상당수의 작업들이 동작 형태가 비동기적으로 바뀌었다. 동기화를 위해서는 특수한 언어 문법을 동원해야 할 정도가 됐고.
테란이야, 함수를 호출하면 그 작업이 다 끝난 뒤에 함수 실행이 끝나고 제어가 되돌아오는 가장 일반적(순차적, 동기적)인 형태이고..
저그는 마치 Windows에서 배치 파일을 이용해 실행 중인 자기 파일을 제거하는 것처럼.. 작업 요청을 외부에다 해 놓은 뒤 자기 자신을 신속히 종료해야 다음 작업이 진행되는 형태이다.
성경에도 유언은 유언을 남긴 사람이 죽은 뒤에야 효력을 발휘한다는 말이 있는데(히 9:16), 그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2.
그나저나 이것도 종족별 컨셉인지는 모르겠는데, 프로토스는 건물이 완성되어도 어떤 형태로든 알림이 원래 전혀 없었구나. 지금까지 이걸 한 번도 따져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테란이야 미니맵으로도 위치가 하이라이트되고 SCV가 "Job finished!"라고 맵 전역에서 우렁차게 복창을 하기 때문에, 화면 어디를 보고 있건 건물 완성 이벤트를 모를 수가 없다.
저그는 맵 전역에서 들리는 소리는 없지만 그래도 미니맵으로 위치 하이라이트는 해 준다. 프로토스만 완전 나몰라라이다. 건물이 소환되고 있는 곳을 눈여겨보고 있어야 한다.
3.
프로토스는 건물과 유닛을 현장에서 생산하는 게 아니라 워프 게이트를 열어서 고향 행성으로부터 소환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심지어 지상 유닛들은 죽는 것도 죽는 게 아니라 치명상을 입을 뿐이고, 그 즉시 고향 행성으로 소환돼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질럿과 템플러는 죽더라도 테란· 저그의 지상 유닛과는 달리 피를 흘리는 시체가 남지 않는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라는 맥아더 장군의 연설처럼 되는 설정인 셈이다. (단, 드라군의 최후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그리고 프로토스도 모든 유닛이 소환은 아니다. 생명체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몇몇 '로봇 유닛'은 현장에서 생산한다. 넥서스에서 생산하는 일꾼 프로브, 그리고 로보틱스 퍼실리티의 유닛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얘들은 프로토스라 해도 생산 중일 때 opening warp gate가 아니라 buliding이라는 말이 뜨며, 프로브와 리버는 죽을 때 그냥 폭발하며 터지지 연기처럼 사라지는 효과는 없다. 또한 퀸의 브루들링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4.
스타에서 모든 종족의 건물들은 파괴되고 나면 잔해가 지면에 한동안 남아 있는다. 테란의 건물들도 공중에 뜬 상태에서 공격을 받아 터진 게 아니라면 잔해가 남아 있다.
그러나 프로토스는 건물 중에 파일런과 '실드 배터리'는 예외적으로 잔해가 남지 않고 그냥 펑~ 터져 없어진다. 파일런이야 성격이 좀 특이한 건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왜 실드 배터리도 잔해가 남지 않는 걸까?
링크로 소개하는 이 동영상은 프로토스가 테란을 상대로 매너 파일런으로도 모자라서 적진에다가 실드 배터리까지 박은 플레이 영상이다. 그래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질럿이 아군 기지가 아니라 적진 한복판에서 실드를 보충까지 하면서 SCV와 마린을 때려잡는다. -_-;;;
물론 파일런과 실드 배터리는 곧 파괴된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 잔해를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사라진다는 걸 알 수 있다. 비슷한 방어 건물인 포톤 캐논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신기한 일이다.
5.
건물에 "나 생산/업그레이드 중이요!" 상태를 거짓말 전혀 못 하고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종족은 테란이다. 모든 생산· 연구 건물들은 동작 중일 때 불빛이 반짝거리고 기계가 돌아가는 게 보인다.
저그는 알을 부화하고 있는 것이야 다 보이지만, 업그레이드 건물들은 연구 중인 게 티가 잘 안 나는 편이다. 단, 스파이어는 업그레이드 중일 때 꼭대기의 지붕 부분이 뭔가 돌아가는 것 같던데.
프로토스는 일단 생산 건물인 게이트웨이(지상 유닛)와 로보틱스 퍼실리티는 생산 중인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생산 건물이 이렇게 조용한 경우는 세 종족 중 프로토스가 유일하다. 단, 프로토스도 넥서스(일꾼)와 스타게이트(공중 유닛)는 생산 중일 때 불빛이 반짝거린다. 연구 건물의 경우, 일반 업그레이드를 담당하는 포지와 사이버네틱스 코어는 상태가 보이지만 나머지 건물들은 조용한 듯(시타델 오브 아둔, 템플러 아카이브, 플릿 비콘 등).
6.
골리앗은 카론 부스터(대공 사거리 증가) 업그레이드를 하고 나면 사거리만 느는 게 아니라 미사일의 비주얼 이펙트 자체가 바뀌는구나!
우와, 지금까지 꿈에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정말 놀랍다.
어떤 형태로든 사거리 업그레이드가 있는 유닛은 각 종족마다 하나씩 마린, 히드라, 드래군 정도가 있고 골리앗은 브루드워에서 좀 특이한 형태의 업그레이드가 추가된 경우이다. 대공에 한해 사거리가 +1 정도가 아니라 무려 +3으로 크게 늘어나는 것이니 비주얼이 같이 바뀔 만도 하다.
7.
옛날에는 드론이라고 하면 6드론/9드론 저글링 이런 게 먼저 떠올랐는데, 세월이 흘러 요즘은 드론이 소형 무인기를 뜻하는 용도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