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 2: 내륙 산악 드라이빙

아침에 눈을 뜨니 숙소 주변은 안개가 자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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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다를 뒤로 하고 양구로 가기 위해 꼬불꼬불 고갯길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둘째 날엔 하루 종일 이런 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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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위성 사진 지도를 보면, 동북부는 온통 초록색 삼림으로 뒤덮였는데 양구 일대만 사람 머리로 치면 땜통처럼 동그랗게 패여 있다. 양구는 대구처럼 일종의 분지 지형이며 6· 25 전쟁 당시에 외국인 종군기자는 우묵한 사발(punch bowl)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한글로는 장모음의 표기가 생략되어 '펀치볼'이라고 적는데, '볼'이라고 해서 ball인 건 아니다. ball은 단모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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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옛날 서체가 참 정겹다. 옛날에 우리나라는 각종 표지판과 간판, 자막에 이런 어설픈 둥근고딕 형태의 서체를 굉장히 많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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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한번 탔다가 다시 내려오니 '사발의 안'에 자리잡은 양구 시내가 나타났다.
을지 전망대와 제4 땅굴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양구 통일관에 가서 입장료를 내고 민통선 출입 신고를 하면 된다. 절차가 고성 통일 전망대를 관람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 오후에 늦게 도착해서 시간이 충분치 않으면 둘 중 하나는 못 볼 수도 있다.
양구 통일관 자체도 북한의 실상 같은 안보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양 옆에는 각종 전적비· 충혼탑과 탱크가 놓여 있고 또 독특한 외형을 한 '전쟁 기념관'도 있다. 나름 볼것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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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화해와 협력을 통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 이 좁아 터진 땅덩어리에 1국가 2체제가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그에 반해 북괴는 여전히 자기 체제의 유지를 위해 주체사상과 남조선 혁명, 공산화 통일 구도를 접은 적이 없다.
하지만 북괴의 마귀적인 현 체제를 갈아엎지 않으면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선사할 수 없으며, 그럼 남북은 통일을 하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안 하는 것만도 못하다. 그러니 현실은 둘 중 하나가 물리적으로 없어져야만 통일이 될 것이고 남한 주도의 통일은 사실상 무력 흡수 형태가 될 공산이 크다.

그걸 감당할 리스크가 없다면? 그냥 영구분단, 고립, 봉쇄이라도 제대로 해서 북한이 스스로 붕괴라도 하게 내버려 둬야지.
매정· 냉정하게 들리더라도 저 북괴한테 평화를 구걸하며 계속 퍼주는 것보다는 저거야말로 훨씬 올바르고 더 인간적인 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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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전쟁 기념관은 전쟁터를 형상화한 기발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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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증을 받은 뒤엔 양구 통일관의 북쪽(12시 방향)으로 간다. 로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 3시를 선택하면 을지 전망대로 가며, 계속 12시 방향으로 직진하면 땅굴로 갈 수 있다. 난 먼저 을지 전망대로 갔다.
전망대도 북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이 먼저 3시 방향으로 나 있는 이유는.. 산을 오르는 우회로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길이의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을지 전망대는 해발 고도가 무려 1000미터가 넘고 국군 GOP가 코앞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높이를 무시하고 보면 전망대와 땅굴은 직선 거리가 상당히 가까우며 길이 서로 연결돼 있다. 하지만 보안 때문인지 안전 때문인지는 몰라도 민통선 안에서 이 두 장소를 곧장 왕래할 수는 없었다. 전망대를 본 뒤엔 다시 민통선 밖으로 나와서 그 로터리까지 갔다가 그야말로 수십 km를 뺑이를 치면서 땅굴을 보러 가야 했다. 동선이 아쉽다.

뭐 아무튼..
앞서 얘기했듯이 을지 전망대는 본격 군사 시설이기 때문에 전망대 건물 자체와 양구 시내 방면으로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북한 쪽은 촬영이 절대 금지.
하긴, 파주의 도라 전망대는 금이 그어져 있어서 카메라질은 금 밖에서 어깨 너머로만 할 수 있던데, 여기는 통제가 더 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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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 전망대에서는 나무로 뒤덮인 빽빽한 산과 숲, 그리고 끝없이 둘러진 철조망, 띄엄띄엄 설치된 우리나라와 북한의 GOP를 볼 수 있었다. 도라 전망대는 평지, 철원의 평화 전망대는 초원, 고성의 통일 전망대는 바다인데 여기는 그냥 산이다.

믿어지지 않는 얘기이지만 가이드 아가씨의 설명에 따르면, 옛날에는 북한이 남한 병사들을 꾀어 내려고 자기네 여군들을 근처의 계곡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대놓고 노출시켰다고 한다. 이거 무슨 선녀와 나무꾼 얘기도 아니고..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미인계엔 미인계로 대응했는데, 1992년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일부러 을지 전망대 GOP 근처에서 했다고 한다. 이 1992년도 대회에서 진을 차지한 우승자가 바로 이 승연 씨. 하지만 이분은 각종 부적절한 언행들로 인해 지금은 몸값이 많~이 하락하고 망가진 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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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전망대와는 달리 이 전망대는 응당 내비 지도에 나와 있지 않다.
산을 내려갈 때는 2단 고정 엔진 브레이크를 단단히 걸면서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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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적지인 제4땅굴 광장에 도착했다. 얘는 서부가 아닌 동부 전선에서 최초이자 현재까지 최후로 발견된 땅굴이다.
과거의 제1과 제2 땅굴은 지상에서의 이상 징후를 토대로 발견된 반면, 제3과 제4는 귀순자의 증언을 토대로 발견되었다. 다만, 제4 땅굴을 제보한 귀순자는 우리나라 군 내부에까지 드나들었다가 나중에 또 중국에서 잠적해 버렸기 때문에 쟤 혹시 이중간첩이 아닌가, 제4 땅굴은 그저 역정보 떡밥 유포일 뿐인가 하는 불안한 음모론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귀순자가 얘기하는 장소 일대에서 시추공을 이곳 저곳 내리꽂으며 수백 번이나 허탕을 친 뒤에야 땅속의 빈 공간을 발견했다. 우리나라가 땅굴의 존재를 확실히 인지한 때는 1989년 12월 24일이다. 그 뒤 우리 쪽에서 역갱도를 파기 시작해서 북한의 땅굴과 실제로 관통에 성공한 것은 그로부터 3개월 정도 뒤인 1990년 3월 3일이다.

제2와 제3 땅굴은 민통선 검문소를 통과한 뒤에도 북쪽으로 엄청 깊숙히 들어간 곳에 있지만, 이 제4 땅굴은 가는 경로의 대부분이 의외로 민통선으로 잠겨 있지 않았다. 단지, 땅굴 광장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무슨 군부대 입구처럼 막혀 있었고, 여기 안으로 들어가려면 아까 양구 통일관에서 발급받은 출입증을 제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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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 땅굴은 자가용을 끌고 개인 단위로 찾아갈 수가 있기 때문에, 가는 길목에 이런 표지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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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광장의 중앙에는 이런 멸공탑이 세워져 있고, 땅굴 발견 당시에 육군 참모총장이던 이 진삼 대장이 작성했다는 '건립취지문'이 새겨져 있다.
저 사람은.. 리즈 시절에 자기가 북파공작원 신분으로 휴전선을 몰래 넘어가서 소수의 부하들과 함께 북한군 수십 명을 사살했다는 이빨 무용담을 늘어놓아 왔으나... 그게 사실인지 주작인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그는 군인 신분을 벗어난 정치질과 똥별질 때문에 안 좋은 평판이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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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견 헌트 소위의 무덤과 동상을 드디어 현장에서 실물로 보게 됐다. 제1과 제2 땅굴을 저지하던 시절엔 우리 군인들이 북한군의 총격을 당하거나 지뢰를 밟아서 죽거나 다치곤 했다. 제3 땅굴이 발견됐을 때는 다행히 그런 얘기가 없었음.
어쨌든, 과거 경험을 토대로 인명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4 땅굴을 정찰할 때는.. 화약 냄새를 맡을 줄 아는 군견을 처음으로 투입하여 먼저 보내 봤다.

그리고 이 전략은 매우 현명했음이 입증되었다. 저 군견은 땅굴 안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고 혼자 앞으로 뛰어가다가 북한군이 설치한 지뢰를 밟고 폭사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죽을 걸 군견이 대신 죽어 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값진 공을 세웠기 때문에 이 군견은 사후에 이렇게 떠받들여지게 되었고, 소위라는 장교 계급과 인헌 무공 훈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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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의 입구는 이렇게 생겼다.
제2 땅굴은 그냥 전구간 걸어다녀야 한다.
제3 땅굴은 북한군이 판 땅굴 내부에서는 걸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판 역갱도는 걸어서 오르내리는 갱도도 있고 전동차로 오르내리는 갱도도 있다. 전동차를 타려면 땅굴 입장료에다 전동차 이용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그 반면 제4 땅굴은 역갱도에서는 걸어야 하고 땅굴 내부는 전동차로 다닌다. 터널의 단면적이 너무 작아서 사람이 걸어 다니려면 어정쩡한 오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그마한 전동차를 타고 쪼그리고 앉은 채로 이동해야 한다. 안 그래도 북한은 가평 남이섬과 임진각 공원에 있는 꼬마열차를 연상케 하는 협궤 레일을 제4 땅굴 내부에 부설해 놓기도 했었다.

물론 제2와 제3 땅굴도 공간이 충분히 큼직한 건 아니다. 성인 남자가 간신히 서서 걸을 수 있는 정도이며, 울퉁불퉁한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기 쉽기 때문에 안전모는 반드시 쓰고 다녀야 한다.

제4 땅굴은 길지만 민간인에게 공개된 구간은 겨우 100여 m 남짓에 불과하며, 생각했던 것만치 거창하게 볼 건 없었다. 지하로도 민통선 영역까지만 가지, 남방한계선을 넘어 DMZ까지 가지는 않는다. 위도를 비교해 보면 제4 땅굴의 입구는 을지 전망대보다는 훨씬 남쪽에 있다(몇백 m 정도 차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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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간단한 안보 전시관이 있어서 6· 25 전쟁 때 양구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또한 제4 땅굴의 특징도 잘 설명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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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 땅굴 역시 내비게이션 지도에는 보이지 않는다. (4편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6/09/20 19:32 2016/09/2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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