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우연히 이런 글을 발견했다. 경부선 철도가 1905년 첫 개통한 이래로 선로가 이설되고 선형이 바뀌어 온 대략의 내력이다.
우와! 이렇게 사진과 함께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거 완전 좋다. 딱 내 스타일이다. 저기 사진을 같이 펴 놓고 이 글을 보시기 바란다.
1.
지난 2010년엔 경부선 병점 역 이남으로 분기하는 지선 서동탄 역이 개통했다. 그런데 2000년 초까지만 해도 경부선은 원래 서동탄 방면의 병점기지선이 본선 구간이었다는 거 아시는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수원-천안 2복선 확장+선형개량+전철화 공사 과정에서 병점-오산대 구간 선로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이설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커브도 약간 줄어서 열차가 더 고속으로 달릴 수 있게 됐다. 기존 선로는 차량 기지 입출고용으로 자연스럽게 용도가 변경되었다. 적절하다. 저렇게 재활용을 할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그나저나 구 선로는 지금의 서동탄 역 이남 구간에서 상· 하행 선로가 실제로 저렇게 쩍~ 벌어져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2.
무슨 강이 지나는 것도 아닌데 두정-천안 사이 서쪽에 천안 축구 센터를 감싸는 둥그런 커브가 생긴 건.. 역시나 지금은 이설· 폐선되고 없는 철도의 흔적이었구나. 부산 방면 경부선 하행 선로가 저 궤적을 타고 장항선으로 갈아탔었다.
저 선로 대신 지금은 더 북쪽+동쪽에 공간을 덜 차지하는 입체교차 선로가 새로 생겼다. 이 역시 수원-천안 2복선 공사와 함께 이설되어 새로 생겼지 싶다..
3.
대전 부근은 지형이 험하기도 하고 경부고속선과의 연결 문제도 있고 해서 추가적인 선형 개량이 종종 있었다. 예전에는 고속선이 옥천에서 너무 일찍 끊어지는 바람에 KTX가 연결선을 타고 재래식 경부선으로 허겁지겁 내려와야 했으나, 2015년 8월에 대전과 대구의 도심 구간이 다 개통한 뒤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대전남연결선은 이제 더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그냥 철거해 버려도 할 말이 없으며, 해당 지역에서는 그걸 원하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번 힘들게 만들어 놓은 건축 구조물을 굳이 일부러 부숴 버릴 이유가 없다. 아까 경부선 구선로를 병점 차량 기지 입출고선으로 활용하듯이 이것도 뭔가 다른 활용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천-신동 사이에 있는 대구북연결선도 현재 비슷한 처지이다.
4.
그 다음으로 경부선에서 주목할 만한 이설은 엄청 옛날인 일제 강점기, 그것도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대구 역과 김천 역은 1905년 1월, 경부선 개통과 동시에 개업했다. 하지만 그 사이의 구미 역은 개업일이 1916년 11월 1일이다. 그 이유는 경부선이 첫 개통 당시엔 지금의 구미 시내 구간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지금의 경부고속선 내지 국도 4호선과 비슷한 선형으로 금오산을 관통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선로를 만들었더니 그 시절의 증기 기관차가 그 정도 오르막도 제대로 못 오르고 헉헉거렸다. 중간에 보조 기관차를 연결해 줘야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경부선 개통 후 10년 남짓 뒤엔, 영업거리가 더 길어지는 걸 감수하고라도 구미 시내 우회 경로로 선로를 대거 이설하게 됐다. 구미 역이 바로 이때 생겼으며, 곧 있으면 개통 100주년을 맞이한다. 반대로 옛 선로에는 '금오산 역'이라고 기관차의 관리를 위한 간이역이 있었으나, 그건 선로 이설과 함께 폐역됐다.
잘 알다시피 박 정희가 1917년 구미 출생인데, 마침 그 즈음에 거기로 경부선 철길이 지나게 된 것은 뭔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상록수 최 용신 선생이 활동하던 당시에 수인선 철도가 건설된 것처럼 말이다.
이건, 훗날 1930년대에 행해진 복선화 공사 때문에 왜관철교 일대가 이설된 것과도 별개의 이야기이다.
5.
다시 우리나라 얘기로 돌아온다. 대구선 이설과 경부고속선 대구 이남 구간의 건설의 영향을 받아서 그쪽에 경부선 본선이 살짝 이설된 건 제끼고..
청도군 소재의 남성현 역 일대는 이미 유명하다. 험준한 산악으로 인한 경사+커브 때문에 건설하기도 힘들고 열차가 다니기도 힘든 구간이다. 성현 터널이 완공되기 전에는 무려 8단계 스위치백 선로를 임시 부설해서 건설 자재를 나르면서 경부선 철길을 깔았으며, 터널이 완공된 뒤엔 임시 선로는 철거됐다.
그런데 기껏 뚫은 성현 터널도 약 30여 년 뒤인 1937년에는 경부선 복선화 공사 과정에서 선로가 또 통째로 딴 데로 이설되면서 폐쇄됐다. 지금 성현 터널은 '청도 와인터널'이라는 관광지로 재활용 중이다.
6.
밀양으로 내려가면, 상동 역 이북으로 산을 직통으로 뚫고 가는 직선 터널들은 역시나 경부선 개통 처음부터 그랬던 건 절대 아니었다. 원래는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꼬불꼬불 굽이치던 선형이었다.
단선도 아닌 복선 공용 터널이 일제 강점기 때 있었을 리가 절대 없지. 단순히 일제 강점기 시절의 복선화가 아니라, 경부선 KTX 1차 개통을 앞두고 대구-부산 기존선의 전철화 과정에서 선형 개량을 한 거지 싶다.
또한, 지금 선로는 추화산을 서쪽 끝 밀양 시내 근처에서 터널로 직선으로 쌩 통과하는 반면, 옛날에는 동쪽 능선으로 빙 둘러 갔다.
우회 구간에는 짤막한 단선 터널이 있다. 바로 이것. 단면은 아래쪽이 다시 좁아지는 말발굽 모양이다.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하고 자동차용이 아닌 철도 터널이었다는 증거다. 옛날에는 경부선이 여기를 지났음을 말해 준다.
7.
이제 부산으로 간다.
부산 북부 구간도 1990년대 말, 화명 신도시의 개발로 인해 선로가 내륙이 아닌 강쪽으로, 그 대신 더 곧게 이설되었다. 구포 바로 이북의 화명 역이 1999년에 이 과정에서 새로 생겼으며, 1993년에 구포 무궁화호 전복 참사가 난 곳도 지금은 이설되고 없는 구간상의 지점이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는 구포보다는 화명 역에 더 가까이 있었다.
예전에는 경부선 선로가 지금의 부산 지하철 2호선과 비슷한 선형으로 시가지를 꽤 깊게 지났다. 어쩐지 지금 경부선 부산 북부 구간은 선로가 평지에 있지 않고 다들 높은 고가이던데, 다 나중에 그렇게 바뀐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제 강점기 때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님.
옛날에는 경부선이 지금의 서울 역(남대문)보다 더 북쪽까지 이어졌었고(서대문), 지금의 부산 역(초량)보다 더 남쪽까지 더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간 구간에도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다.
1908년의 경의선 직결+부산 개통, 1916년의 구미 시내 구간 개통은 일제 강점기의 일이고, 1930년대 이후 경부선 복선화도 큰 이벤트이다.
해방 후에는 주로 경부고속철 내지 수원-천안 2복선화로 인한 이설이 많았던 걸으로 요약된다.
다들 나의 정신을 살찌우는 소중한 철도 역사 지식이다. 머리에 몽땅 집어넣고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
Posted by 사무엘